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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벌집촌 ‘순이’의 삶을 엿보다

    벌집촌 ‘순이’의 삶을 엿보다

    지역서울특별시 금천구 편집국        사진편집국 2017-02-16 호감도

    벌집촌 ‘순이’의 삶을 엿보다

    • 프롤로그
    • 1.순이의 방
    • 2.희망의 방
    • 3.비밀의 방
    • 4.차디 찬 공동세면장
    • 5.벌집촌, 그 좁은 추억
    • 6.순이를 두 번 울렸던 시절
    • 7.아프지만 남겨둬야 할 기억
    • 8.우리들의 외딴 방에는
    • 에필로그

    벌집촌 ‘순이’의 삶을 엿보다

    - 서울특별시 금천구 -

    지금의 금천구 가산동은 화려한 IT산업 중심의 디지털단지로 탈바꿈했지만, 과거 ‘벌집촌’이라 불렸던 구로공단 자리였습니다. 잊혀질 법도 하지만, 이 자리에서 과거 산업화와 수출의 첨병 역할을 해야 했던 여공들의 애환이 아직 그대로 서려 있습니다. ‘구로공단 노동자생활체험관’에 가면 군사정권 시절 ‘산업화의 역군’으로 포장됐지만 ‘공순이’로 더 잘 통했던 구로공단 여성근로자들의 애환을 엿볼 수 있는 방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오늘 <트래블아이>의 미션은 바로 ‘1970~80년대 구로공단 벌집촌 여공들을 기억하라!’입니다.

    가난한 아버지를 위해, 중학교에 진학하는 동생을 위해, 대학 입학을 앞둔 오빠를 위해 새벽부터 밤까지 미싱을 돌리던 순이의 심정이 ‘순이의 방’에 들어서면 느껴질까?

    “옷장, 연탄, 밥상, 편지, 급여봉투 등 여공들이 사용했던 소품들을 가지런히 진열해놨어.”

    “순이는 교복 입고 학교 다니는 여학생들 보면서 너무나 부러웠겠지? 맘껏 공부하고 책 읽고 낮에 학교 다니고 밤에 잠자고. 그러면 소원이 없었을 거야.” “학교가 다 뭐람! 당장 부족한 잠이나 실컷 자고 일어나면 더 바랄 게 없었겠지.”

    하지만 이곳 전시관은 노동자들의 성장 스토리를 풀어놓아 색다른 느낌을 준다. 그중 하나가 ‘희망의 방’. 어떤 숨은 이야기가 있을까?

    “힘겨운 하루를 보낸 소녀들이 야학에서 배운 내용을 복습하고 숙제하는 장면이 그려지지 않니?”

    “그런 점에서 순이도 완전히 학업을 포기했을 거라고 보지 않아. 옷 상표를 제대로 붙이지 못해 영어공부를 시작하게 됐을 게 분명해.”

    공장에서 일을 마치고 쪽방에서 잠들기 전 이들은 무슨 이야기를 나눴을까? 1층 안쪽에 자리한 비밀의 방으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겨보자.

    “남몰래 좋아하던 사내아이 이름을 순덕이에게 털어놓았을까? 아니면 공장장 뒷담화? 고단한 몸을 뉘이고도 바로 잠들지 못했을 거야. 영락없는 소녀들이었으니까.”

    “쉬는 날에도 쪽방을 지키며 떠들었을 이야기들, 그 속에 희로애락이 다 담겨 있었겠지? 그들이 나누는 얘기는 소리통에 담아놓았다는데, 궁금하지 않아?”

    수도꼭지에서 물을 받아 세수를 하는 여공들의 모습도 공동세면장에서 실물 크기로 생생하게 재현해 놓고 있다.

    “가난한 아버지를 위해, 중학교에 진학하는 동생을 위해, 대학 입학을 앞둔 오빠를 위해 새벽부터 밤까지 미싱을 돌리던 순이의 심정, 저 시린 물로 세수를 하는 것보다도 가슴 시렸겠지?”

    “그랬겠지. 눈물을 세수로 덮듯 아픈 심정도 가족들에게 절대 내보이지 않았겠지.”

    지하 1층으로 내려가면 당시 소녀들이 살았던 쪽방들이 줄지어 광경은 그야말로 ‘벌집촌’을 연상케 한다. 이 안에는 어떠한 모습이 담겨 있을까?

    “이 비좁은 부엌을 좀 봐. 연탄 화덕과 야트막한 선반, 그릇 몇 가지가 전부로구나.” “부엌 너머가 바로 방이야. 근데 방 크기가 더 가관이잖아! 성인 2명이 누울 수나 있을까?”

    “2평 겨우 되겠어. 이 비좁은 방에 사계절 옷이 뒤섞인 옷장, 신발… 책도 꽤 되네! 한자책, ‘국어완전정복’ 교과서에 ‘서양요리’ 서적까지. 좁아도 갖출 건 다 갖췄구나.”

    2층에는 당시 여공들의 생활모습, 노동운동 등 여러 영상자료를 제공하는 영상전시실이 있다. 이곳에는 또 1970~80년대 발간된 신문자료 내용은 ‘벌집촌’ 느낌과 사뭇 다른데?

    “신문들 제목을 봐봐. ‘근로청소년 생활의 질 높인다’, ‘구로아리랑 개봉 전부터 구설수’ 등. 이 벽면 한쪽을 가득 채운 당시 신문기사도 다 비슷한 내용들이야."

    “산업민주화가 이루어지기 전이었지만 언론은 전부 노동환경의 좋은 점들로 기사를 왜곡해놓았구나.”

    체험관은 구로공단 역사 기념사업의 출발점이다. 하여 노동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체험교육을 위주로 각종 테마 중심으로 한 다양한 체험거리들도 직접 접해보자.

    “다른 건 몰라도 연탄 갈기 체험은 뭔가 신선하면서도 마음 한쪽이 아려오면서 좀 씁쓸해.”

    “고통스럽고 지우고 싶고 잊고 싶은 흔적이기 때문에 그런 감정 충분히 공감이 돼. 하지만 ‘공순이’, ‘공돌이’가 이룩한 역사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이 또한 자랑스러운 역사로 남겨야 하는 게 우리 역할 아닐까?”

    수십 가구가 사는데도 화장실은 달랑 한 개였고, 미로 같은 계단 끝에 발만 간신히 뻗을 수 있는 여공들의 공간은 어떤 의미로 남게 될까?

    “이곳은 가족에게 붙일 급여봉투에 진학의 꿈도 접어 넣어야 했던 ‘순이의 방’, 여럿이 찬물에 세수하던 공동세면장, 밤늦게 공부하던 ‘희망의 방’, 몰래 소리통으로 대화를 나누던 ‘비밀의 방’… 전부 노동의 가치와 의미 되새기는 공간들이야.”

    “여공들의 삶이 비록 이곳에서 재현됐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소중한 공간이라는 거지?”

    한국 최초의 공단인 구로공단이 국가 경제에 큰 역할을 했지만, 그 주역은 우리의 어린 누이들이었습니다. 가족을 위해 그들은 봉제, 섬유, 가발 공장 등지에서 그토록 많은 땀을 흘렸습니다. “나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 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는 김수영의 노래를 생각해보면, 그 시대 우리 누이들을 기억하는 건 매우 중요합니다. 인간이 역사를 쓰는 것도 ‘기억’을 간직하기 위해서일 겁니다. 역사의식의 소산이 된 구로공단 노동자생활체험관에서 지금 여러분은 어떤 기억을 간직하고 돌아오는 길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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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고 넘는 박달재를 아시나요?

    울고 넘는 박달재를 아시나요?

    지역충청북도 제천시 편집국        사진편집국 2017-02-17 호감도

    울고 넘는 박달재를 아시나요?

    • 프롤로그
    • 1.휴게소에 다다를 즈음 들리는 ‘울고 넘는 박달재’
    • 2.박달재의 또 다른 이름
    • 3.금봉을 위한 암자
    • 4.함께 살자고 굳게 약속해놓고
    • 5.박달의 넋이 서린 절벽 끝에 서서
    • 6.목각공원에서 만난 표정들
    • 7.박달과 금봉 캐릭터를 찾아라!
    • 8. 다시 듣는 ‘울고 넘는 박달재’
    • 에필로그

    울고 넘는 박달재를 아시나요?

    - 충청북도 제천시 -

    천등산과 지등산 사이에 가로 놓인 고개 박달재는 대중가요 '울고 넘는 박달재'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천등산 박달재를 울고넘는 우리 님아~ 물항라 저고리가 궂은비에 젖는구려~ 왕거미 집을 짓는 고개마다 굽이마다 울었소 소리쳤소 이 가슴이 터지도록~” 노래만 들어봐도 이 고개에 뭔가 가슴 아픈 사연을 품고 있음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연이 있기에 가슴 터지도록 소리치고 울며 넘어야 했을까요? 짐작하셨겠지만, ‘박달재에 서린 슬픈 전설을 찾아라!’ 이것이 오늘 <트래블아이>가 여러분께 드리는 미션입니다.

    ‘울고 넘는 박달재’가 이 조용한 산기슭의 적막을 깨고 들려온다. 한 개에 노래에 여러 버전을 입혀 똑같은 노래 같지 않다.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노래를 감상해보자.

    “지금 흘러나오는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여봐. ‘울고 넘는 박달재’야. 여러 노래를 틀어주는 줄로 착각했는데 계속 들어보니 한 노래를 갖고 여러 버전으로 편곡했네.”

    “정말 그렇구나. 이 노래들이 박달재휴게소에서부터 들리고 있어. 기분 좋은데? 산행을 하면서 귀가 이리도 호강한 적은 없었는데 말이야.”

    박달재 정상에 다다르기 전 박달재의 옛 지명을 알려주는 ‘이등령’이라는 팻말을 발견할 수 있다. 왜 이 고개 이름이 현재는 박달재로 바뀐 걸까?

    “여기 팻말을 봐봐. 이곳을 본래 이등령이라 명명했다고 나와 있어. 양쪽으로 보이는 두 산 가운데에 위치했다고 해서 ‘이등령(二等嶺)’인가?”

    “맞아. 박달재의 본래 이름은 천등산과 지등산의 영마루라는 뜻을 지닌 ‘이등령’이었어. 하지만 지금은 박달과 금봉이의 애달픈 사랑 이야기가 회자되면서 박달재로 고쳤지.”

    마당바위 인근 목굴암이라 칭하는 곳으로 향하면 한 스님이 사후 박달도령보다 조명 받지 못하는 금봉의 처지를 딱히 여겨 만든 암자 하나를 만날 수 있다.

    “저 암벽의 여래좌상 표정을 좀 봐봐. 정말 온화하지? 오랜 시간 박달에 대한 기다림과 그리움으로 지쳤을 금봉의 쓰라린 마음을 달래주고 있는 듯해.”

    “정말 그렇네. 저 또한 깊은 애정에서 비롯된 것 아닐까? 그런데 애초 금봉을 위해 생겨났다는 이곳이 목굴암으로 더 잘 알려지게 된 이유는 뭘까?”

    설렘 가득한 표정이 있는가 하면 가슴을 울리는 슬픈 표정의 동상도 있다. 이 표정에서 두 사람의 비극적인 결말을 암시하는 듯하다. 두 사람은 정말 행복한 결말을 맺지 못했을까?

    “과거 급제 후 함께 살기로 굳게 약속하고 한양에 올라온 박달은 결국 낙방했고 금봉을 볼 면목이 없어 평동을 다시 찾지 않았어.”

    “그렇게 금봉은 돌아오지 않는 박달을 기다면서 고갯길을 수십 번도 더 오르내렸겠구나.” “그렇지. 그렇게 목놓아 박달을 기다리다가 결국 마음의 병을 얻고 세상을 떠나게 됐대.”

    뚜벅이로 넘기에 험하디 험했던 이 고갯마루 절벽 끝에 서보자. 한서린 금봉과 박달의 생의 마지막 모습이 그려질까?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야. 금봉의 소식을 듣고 슬퍼하던 박달은 그녀의 환상을 보았고 금봉이 이 천길 낭떠러지로 향하자 그녀를 끌어안으려던 박달도 절벽 아래로 떨어지게 돼”

    “지금은 박달재에 터널이 뚫려 자동차로 쉽게 오갈 수 있지만 이 험준한 절벽 아래에서 내려다보면 금봉이 고갯마루를 향해 너울너울 춤을 추며 달려가는 듯해.”

    정상에서 100m 정도 아래로 내려가면 목각공원이 나온다. 이곳에 두 주인공의 목각동상과 함께 즐비하게 세워진 장승들의 표정에 희로애락이 모두 담겨 있는 듯하다.

    “박달재 목각공원은 정상에는 없는 장승들이 곳곳에 있구나. 전설 속 두 주인공의 극락왕생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을까?”

    “꼭 그렇지만은 않아. 지역의 번영과 무사안녕을 기원하기 위함이라는데, 네 말대로 마치 이 정승들이 이루지 못한 둘의 사랑을 위로하고 그 넋을 기리는 듯하구나.”

    산 정상과 목각공원에만 두 사람을 형상화해 놓은 것이 아니다. 과연 두 주인공의 캐릭터가 이 일대 어디어디 숨어 있을까?

    “가로등 하나까지 캐릭터를 새겨놓았어. 박달재 이야기가 제천의 상징임을 단번에 알 수 있지.”

    “가만 생각해보니, 여기 말고도 제천역 바로 앞 동상에서도 같은 캐릭터를 본 적이 있어! 정말 제천 하면 박달재, 박달재 하면 제천이구나.”

    정상에서 공원까지 모두 둘러봤다면 돌아오는 길에 다시 한 번 ‘울고 넘는 박달재’를 들어보자. 사뭇 달라진 느낌을 받게 된다면 박달재의 전설이 마음을 울렸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의 트로트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들으니 이토록 애절하게 와닿을 줄이야.”

    “과거시험을 마치고도 소식을 알 길 없는 박달을 그리워하며 고개를 오르내리던 금봉의 마음과, 금봉의 죽음을 마주한 뒤 절망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박달의 마음이 가사에서 구구절절이 느껴지지 않니?”

    박달재는 흘러간 유행가를 통해 다시 살아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1948년 반야월 작사 김교성 작곡의 '울고 넘는 박달재' 속에서 말이죠. 그러면서 노랫말 속 박달과 금봉의 안타까운 사연에 관심을 갖는 이들도 점차 늘어났어요. 하지만 박달재터널에 직접 가면 애절하고도 슬픈 사랑 이야기 외에 또 다른 모습들을 발견하게 될 거예요. 다름아닌 금봉의 수수하고 청초한 모습과 박달의 준수하고 늠름함을 동시에 닮아 있는 박달재의 모습이죠. 젊은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마음으로 듣고 싶다면 백운면 박달재터널에서 잠시 차를 멈춰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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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곡매괴성당에 새겨진 또 다른 기억

    감곡매괴성당에 새겨진 또 다른 기억

    지역충청북도 음성군 편집국        사진편집국 2017-02-17 호감도

    감곡매괴성당에 새겨진 또 다른 기억

    • 프롤로그
    • 1.고풍스러운 멋이 있는 매괴성당
    • 2.진짜 이름은 감곡 매괴 성모순례지
    • 3.100여 년의 긴긴 역사
    • 4.어느 프랑스 신부의 간청
    • 5.무염시태의 기적
    • 6.매괴박물관에 들어서면
    • 7.나라와 종교를 뛰어넘은 독립운동가
    • 8.그가 성당에 남겨둔 말
    • 에필로그

    감곡매괴성당에 새겨진 또 다른 기억

    - 충청북도 음성군 -

    이 땅에 오랫동안 뿌리를 내린 유서 깊은 성당을 가보면, 그 곳엔 헌신적인 신부가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매괴’라는 이름마저 낯설게 느껴지는 감곡의 옛 성당에도 그런 분이 있으니 바로 임 가밀로(Camille Bouillon, 1869~1947)라는 프랑스 신부입니다. 100년도 훨씬 전인 1986년도에 세워진 감곡 매괴성당의 초대신부인 임 신부에게는 전형적인 신부 모습 외에도 남다른 면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를 알면 뼈아픈 역사와 슬픈 희생의 정신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트래블아이>가 제안합니다. 매괴성당의 숨겨진 발자취를 만나라!

    논과 밭, 산으로 둘러싸인 한적하고 평온한 마을 감곡에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면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을 만난다. 바로 매괴성당이다. 쉽게 찾을 수 있을까?

    “시계를 보니 서울에서 감곡터미널까지 버스로 1시간반 가량 걸렸구나. 감곡마을 방향으로 10분 정도 걸어온 것 같은데? 이즈음에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매괴성당이 보인다고 했어.”

    “저쪽을 봐! 야트막한 동산 위에 붉은 벽돌과 첨탑이 있는 웅장한 건물이 바로 매괴성당일 거야! 가까이에서 보니 더욱 위풍당당하고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있는데?”

    성당 내부 앞마당에 세워져 있는 이국적인 모습의 성모 마리아상은 ‘매괴의 어머니’로 불리며 많은 사람들의 내적 치유를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왜 ‘매괴’라 할까?

    “수녀님, 그런데 ‘매괴’라는 이름이 너무 낯설어요.”

    “지금은 잘 사용하지는 않는 용어죠. 천주교에서 하는 때문에 묵주기도는 장미꽃다발을 뜻하는 ‘로사리오(Rosario)’ 기도라고 불리는데 이 로사리오의 중국식 번역 한자어가 바로 ‘매괴’에요. 이곳은 ‘성모’를 수호성인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매괴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이다.

    1896년 임 신부에 의해 설립된 이 성당은 충북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다. 민족의 아픈 역사,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함께한 셈이다. 차근차근 그 이야기를 들어보자.

    우리나라가 중국으로부터 천주교를 받아들일 당시였으면 정말 이 성당은 긴긴 역사를 갖고 있군요.

    일제강점기엔 청년들과 학생들에게 한글교육을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민족의 맥을 이어주었고,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전쟁 때엔 성모상이 수난을 당하기도 했었어요.

    초대 신부였던 임가밀로는 1896년 여주 장호원에 본당을 세우고 이후 1930년에 다시 지 었다. 그 험한 시대에 성당과 이곳 성모광장 건립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새로운 사목지를 찾던 중 장호원에서 멋지고 큰 집 하나를 발견한 임가밀로 신부는 “이 집을 성당으로 삼을 수 있게 해달라고, 그러면 성모님을 마리아의 주보(수호성인)로 모시겠다”며 매일같이 성모께 간청을 했지요.“

    “그의 신념이 현실로 이루어진 거군요.”

    1943년 이곳에 또 한번 이곳에 성당이 지어진 연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곳은 본명 일본군이 신사를 지으려고 터를 닦던 곳이었는데?

    “당시 임 가밀로 신부가 무염시태 기적의 패를 묻어두고 “이 공사를 중단하게 해주시면 이곳을 성모님께 봉헌하겠습니다"라고 기도하셨답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공사 중 여러 가지 기상이변으로 더 이상 진행하지 못했다고 해요.”

    “그의 뜻이 간절했기에 신사터가 될 뻔한 이곳이 성모광장으로 봉헌될 수 있었군요!”

    이곳 매괴박물관 또한 1930년대 지어진 오래된 건축물. 충북 최초의 석조물인지라 회색빛을 띠기 때문에 화려하지는 않지만 자연스런 멋이 느껴진다. 그 안으로 들어가 보자.

    “전시실에는 1930년대에 사용됐던 신구약성서 한지 필사본 등 다양한 천주교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군요. 앗! 이건 임가밀로 신부의 태극기를 소개하는 글 아닌가요?”

    “맞아요. 국 직후 임 신부는 고종 황제로부터 태극기 하나를 받았는데, 일제강점기 때 이 태극기를 제의장 밑에 깔고 미사를 돕던 사람들에게 몰래 보여줬다고 해요.”

    일제의 감시로 사람들은 태극기를 만들지도, 마음대로 꺼내기도 어려웠던 시기였다. 이에 임 신부는 우리 민족에게 태극기를 보여줌으로써 민족의식을 일깨우고자 했던 걸까?

    “정말로 마음 깊숙이 한국을 사랑했고, 한국의 신자들을 사랑했던 마음이 느껴져요.”

    “박물관 옆으로는 산을 따라 묵주기도길과 십자가의 길 14처가 이어져 있어요. 이 성지를 한 바퀴 둘러보고 나면 아름다운 풍경과 100여 년 전 이곳에 살았던 외국인 신부의 마음이 전해져 마음이 더욱 따스해질 거예요.”

    51년 동안 본당에서 사목 생활을 하던 임 신부는 194년 10월 "성모여 저를 구원하소서"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가 평소 하던 말은 더욱 뜻깊다는데?

    “‘나는 여러분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 임 목사가 평소에 자주 했던 말이었습니다. 매괴 성모성지 ‘영성의 집’ 앞에는 임가밀로 신부의 동상과 그 발아래 이 한 줄의 글이 새겨져 있죠.”

    “이제는 성지 곳곳에 그의 향기와 그를 기억하려는 이들의 사랑이 자욱하게 남아 있어요”

    종교적 의미는 말할 것도 없는 감곡매괴성당. 이와 더불어 이곳은 일제강점기의 혹독한 감시 하에서도 성당을 방문하고 미사를 보던 신자들에게 몰래 숨겨둔 태극기를 보여주곤 했던 임가일로 신부의 투철한 독립운동정신이 깊이 서린 곳이기도 합니다. 당시 신부가 꺼내든 태극기는 한국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그였기에 여기가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우리 민족의 가슴에 새겨두라는 의미였을 겁니다. 진정 나라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가능했을까요? 여러분은 이곳 성지에서 어떠한 진정성을 느끼고 돌아올 생각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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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도사에 숨겨진 천년설화

    통도사에 숨겨진 천년설화

    지역경상남도 양산시 편집국        사진편집국 2017-02-17 호감도

    통도사에 숨겨진 천년설화

    • 프롤로그
    • 1.용을 타고 극락세계로
    • 2.‘9’를 찾아라!
    • 3.아홉 마리의 용
    • 4.금강계단의 진실
    • 5.단순한 연인설화를 넘어
    • 6.겨울에도 떠나지 않는 금개구리
    • 7.문수보살이 호랑이와 만난 불이문
    • 8.무풍한송
    • 에필로그

    통도사에 숨겨진 천년설화

    - 경상남도 양산시 -

    똑같은 이야기라도 햇빛에 말리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말리면 전설이 된다고 했습니다. 삼국사기가 전자에 가깝다면 삼국유사는 후자에 가깝습니다. 삼국유사에는 우리나라 유명 사찰의 창건 설화가 가득합니다. 그런 삼국유사의 전통을 계승한 경남 양산 하북면의 통도사는 딱 부러진 설명은 없지만 금강계단이 있던 연못터에 얽힌 설화붙터 명부전의 토끼 설화 벽화까지, 불교신앙과 민속신앙, 풍수사상이 두루 펼쳐진 궁극에는 하늘, 자연, 인간의 이야기가 녹아 있습니다. 그리하야 오늘 <트래블아이>의 미션! 통도사에 숨겨진 천년설화를 찾아라!

    통도사는 오리, 닭, 봉황, 독수리 용, 개구리 등 동물에 얽힌 전설이 많다. 대웅전 앞의 용꼬리 조각물의 비밀을 파헤쳐라.

    “이 조각물은 통도사의 창건설화와 관련된 장식물이로구나. 사찰 곳곳에 걸려있는 용모양 장식을 보더라도 알 수 있겠어.”

    “사찰의 법당이 하나의 반야용선이라고 들은 적이 있어. 반야용선은 해탈을 통해 극락세계로 가기 위해 타고 가는 용모양의 배를 의미한다지? 어떤 모양이기에 그럴까?”

    통도사는 아홉이란 숫자와의 인연도 깊다. 이중 일제강점기 통도사 부흥을 일으킨 스님이 아홉 개의 강을 건너왔다는 뜻을 지닌 구하(九河) 스님의 이야기는 무엇일까?

    “구하 스님의 제자인 경봉 선사가 가왕 조용필을 만나 “가수면 꾀꼬리로구나? 꾀꼬리를 잡아와라”라는 선문답을 남겼대.“

    “나도 들어본 적 있어! 이 화두가 ‘못 찾겠다, 꾀꼬리’라는 노래를 낳게 했다지?” “통도사의 아홉이란 숫자와의 인연을 더 찾을 수 있을까?”

    국내 주요 사찰은 연못이나 늪지대에 지어져 물을 다스리는 용과 밀접하게 연결되듯 이곳 금강계단 자리도 바로 그러하다. 이 연못터에는 어떤 설화가 있을까?

    “이곳에 원래 아홉 마리 용이 사는 연못이 있었는데 자장율사가 이를 쫓아내고 한 마리만 남겨 뒀다는 설화, 들어본 적 있니?”

    “그럼, 승려들이 이 금강계단 아래를 통해야 득도할 수 있다다는 뜻을 되새기게 하기 위해서 이 사찰을 통도사라 한 걸까?”

    금강계단의 ‘계단’은 사람이 오르내리는 계단이 아닌 불사리를 모시고 수계의을 행하는 단을, ‘금강’은 일체의 것을 깨뜨릴 수 있는 가장 단단한 것을 말한다. 어떤 깨달음일까?

    “불교에서는 금강과 같은 반야의 지혜로 모든 번뇌를 물리칠 것을 강조하지. 통도사의 핵심인 금강계단 내 불사리탑도 그러한 자장율사의 뜻과 깊은 관령이 있어.”

    “통도사가 불보사찰이라는 칭호를 얻은 이유도 이 불사리탑이 생겨난 과정을 듣고 나면 자연스레 알게 된다는데, 혹시 알고 있니?”

    ‘용화전’ 벽화 7점은 막연히 불교 인연설화 정도로 해석됐으나 최근 그 의미를 두고 새로이 해석되면서 다시금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도대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 걸까?

    “음… 이 벽화들을 봐 조선시대 사찰 벽화에는 고사 인물이나 ‘삼국지연의’와 같은 소설류에 등장하는 소재처럼 연인들을 다루고 있는 듯해. 일단 가장 흔하니까.”

    “처음에는 그랬지. 글씨가 희미해 과거에는 이를 주목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정밀조사를 통해 보니 이는 정말 센세이션이었어! 우리가 알고 있는 스토리가 발견됐거든!”

    통도사는 거찰답게 산중에 19개의 암자를 품고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암자인 자장암에는 ‘금와보살’ 설화가 전해진다. 아직도 암자 구멍 안에는 금개구리가 살고 있을까?

    “자장암은 차분하고 아름다워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구나.” “‘금와보살’ 설화를 듣고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찾는 이도 있지 않을까?”

    “암자 주위를 떠나지 않는 금개구리 이야기 말이지?” “자장율사가 암벽에 뚫어놓은 구멍 안을 보면 아직도 금개구리가 있을까?”

    코끼리와 호랑이 조각상이 천장을 받치고 있는 ‘불이문’을 찾아보자. 이 동물들에서 현실과 이상, 선과 악, 진리가 둘이 아닌 하나라는 의미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중로전, 대광명전, 용화전, 관음전의 세 전각이 하나의 중심축에 일렬로 배치돼 있구나. 보봐! 저게 바로 불이문이야!”

    “그런데 좀 이상하지? 코끼리는 보현보살을, 호랑이는 문수보살을 상징한다고 했어. 원래 문수보살은 사자와 짝인데, 호랑이로 조각이 된 이유는 뭘까?”

    통도사 입구에서 1km에 이르는 소나무숲 또한 이 절의 자랑거리. 둘레가 한 아름 되는 수백 년 된 적송이 그늘 터널을 이루고 있다. 천천히 명상하면서 걸어보는 건 어떨까?

    “울창한 소나무 숲을 보면 불교의 총림이라는 말이 실감이 나. 스님들이 수풀처럼 얽혀 정진하는 도량처럼 기개 넘치지만 단아하잖아!”

    “이 소나무들, 임진왜란 때 왜적의 피해를 입지 않아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보존된 숲 가운데 하나라지?”

    어떤 이들은 양산이 영축산 통도사 빼면 볼 것 없지 않냐고 반문하기도 합니다. 물론 통도사는 참으로 좋은 사찰이고 여행지입니다. 하지만 양산에서 통도사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코끼리 다리를 만지고 코끼리라고 하는 것만큼 우스운 이야깁니다. 그럼에도 통도사에 들르면 얼마나 많은 볼거리와 그것을 감싸고 있는 이야기로 가득한지 알게 될 것입니다. 소나무 사이로 한밤중 휘영청 빛나는 달을 바라보거나 새벽안개 속을 헤매면 어디에선가 문득 문수보살을 친견할 것만 같습니다. 이번 주말 천년설화가 가득한 통도사로 떠나보는 건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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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주에서 만난 황희정승

    파주에서 만난 황희정승

    지역경기도 파주시 편집국        사진편집국 2017-02-16 호감도

    파주에서 만난 황희정승

    • 프롤로그
    • 1.새로운 파주
    • 2. 황희를 만나다
    • 3.황희선생묘소에서 듣는 이야기
    • 4.걷던 길을 걸으면
    • 5. 갈매기를 벗삼는 정자
    • 6.양지대에서 바라본 풍경
    • 7.방촌선생영당
    • 8.황희정승을 떠올리다
    • 에필로그

    파주에서 만난 황희정승

    - 경기도 파주시 -

    경기도 파주는 출판단지 혹은 헤이리 예술마을과 같은 특화된 관광명소를 가장 먼저 떠올리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황희정승과 율곡이이와 같은 조선 초기 명재상과도 관계가 깊다는 것을 알고 계시나요? 파주시 금승리로 들어서면 청백리의 표상이자 귀감을 보인 방촌 황희 선생의 묘소와 유적지 등이 위치해 있습니다. 이처럼 황희선생의 은둔생활에서부터 다시금 관직에 이르다 말년을 보내며 파주와의 깊은 연을 맺게 된 황희선생을 만날 수 있는 이번 <트래블아이>의 미션은 ‘파주에서 황희의 발자취를 좇고 오라’입니다.

    파주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관광지가 있는가? 그렇다면 과감히 백지로 비워두자. 그리고 역사책 하나 끼고 파주로 뛰어들자.

    “파주는 꽤 여러 번 갔던 곳이잖아. 새로울 것이 있을까?” “이번 여행은 좀 달라. 그러니 우리가 다녔었던 파주에 대한 기억은 잠시 접어두는 것이 좋을 거야. 이번여행의 테마는 역사거든.”

    “역사? 그럼 무슨 유적지 같은 거야? 파주에 그런 역사적 유적지가 있었다고?”

    황희선생은 고려 말부터 조선 초까지 여러 요직을 거치며 큰 업적을 남긴 인물로 익히 들은 바 있다. 그런데 황희정승과 파주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황희선생 유적지? 오늘 역사탐방 한다더니 그 인물이 우리가 아는 그 황희정승?”

    “그래, 조선 초 가장 오랜 기간 재상으로 청백리의 귀감이 되신 방촌 황희선생의 발자취를 따라 가보는 여행이 될 거야. 먼저 태종과 세종을 도와 조선이 바로 설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고 소신과 원칙은 물론 관용과 배려로 정치를 펼치시던 선생의 묘소로 가보자.”

    황희선생유적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엔 황희정승의 묘역이 자리하고 있다. 묘역 앞에 서면 선생께서 전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와, 재상의 명성답게 상당한 크기의 봉분이구나. 인적이 드물고 조용해서 더 위엄이 넘치는 것 같아.”

    “묘역 아래에 세워진 신도비에는 선생의 삶을 기록해 두었는데 신숙주가 짓고 안침이 썼다고 전해져. 묘역 건너편엔 선생의 셋째 아들인 황수신의 묘도 자리하고 있다고 해.”

    황희선생이 과거에 걸었던 길을 뒤쫓아 걸어본다. 선생이 남긴 발자취를 따라 걷다보면 선생이 남긴 숨결과 정신을 배울 수 있을까?

    “아마 우리나라 사람들 중 대부분은 황희선생에 대한 큰 업적을 알 고 있을 텐데 묘역이나 유적지가 파주에 조성되어 있는 줄은 모를 것 같아. 나처럼.”

    “그래서 이렇게 새로운 마음으로 유적지를 찾고 선생의 뒤를 좇아 선생의 뜻과 정신을 기리는 것도 많은 이들에게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관직에서 물러난 선생이 여생을 보내던 반구정 아래에서 내려다보는 임진강의 절경이 마음을 울렁거리게 만든다.

    “반구정을 들어본 적은 있는데 이곳이 황희선생과 관련된 곳이었구나!”

    “반구정은 선생의 나이 89세에 관직을 사양하고 돌아와 임진강의 절경을 바라보던 곳으로 알려져 있어. 예부터 이곳에 갈매기가 많이 날아들어 그 이름도 갈매기를 벗삼는 정자라 하여 반구정이라 이름 짓게 된 거야.”

    1915년 반구정을 옮기면서 지은 양지대 위에서 바라보는 임진강은 아름답고 평화롭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풍경에 잠시 가던 길을 멈춘다.

    “양지대는 반구정을 재건하면서 원래 반구정이 있던 자리에 옮겨 지은 정자야. 선생의 유덕을 우러르는 마음으로 양지대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는데 상량문에 적힌 그 뜻을 보면 백성들이 선생을 생각하던 마음이 그대로 전달 돼.”

    “아름답고 평화롭긴 한데 저기 임진강 사이로 보이는 철조망이 가슴 아프기도 해.”

    황희선생의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6.25전쟁으로 인해 불에 타 1962년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조심스럽게 선생의 영정 앞에 서본다.

    “여기는 방촌선생영당이야. 본래 영당은 불에 타 소실되어 1962년에 복원되었지. 영당 중앙에 선생 영정도 모시고 있어. 묘역과는 달리 조금은 소박한 영당은 어쩐지 선생의 정치적 삶과 닮아 있는 것 같아.”

    “그래. 방촌영당은 경기도기념물 제29호로 지정되어있고 그 옆에는 동상도 조성되어 있어.”

    파주에서 떠올린 황희선생은 우리가 익히 일던 소신과 원칙을 지키며 재상까지 역임한 인물에서 나아가 황희선생의 다양한 인간적인 면모를 느낄 수 있다.

    “생각지도 못한 파주에서 황희선생의 발자취를 좇게 되어 뜻밖이었어. 여행지는 단 한 번의 여행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것 같아.”

    “네 말이 맞아. 파주의 유명한 관광지를 관람하는 것도 좋지만 숨겨진 여행지에서 새로운 문화, 역사의 견해를 넓힐 수도 있지.”

    파주는 알면 알수록 새로운 도시라는 생각이듭니다. 임진강변을 따라 걷는 풍경을 좇는 여행이나 젊은이들이 환호하는 아울렛 그리고 특화마을 등이 올망졸망 모여 하나의 지구마을을 이루고 있는 듯합니다. 그중에서도 파주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는 관광지들도 많이 있는데요. 파주의 황희선생 관광지를 비롯하여 안보관광(DMZ), 파주삼릉, 맛고을 등의 관광지가 파주와 어떤 관계를 맺으며 문화와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는 것도 보람된 여행의 한 부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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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와牛 횡성, 名品 한우

    와牛 횡성, 名品 한우

    지역강원도 횡성군 편집국        사진편집국 2017-02-17 호감도

    와牛 횡성, 名品 한우

    • 프롤로그
    • 1.횡성하면 역시 한우
    • 2.소를 생각하는 남다름
    • 3.뚜레길의 비밀
    • 4.횡성한우에 열광하는 이유
    • 5.부드러운 육질과 풍부한 육즙
    • 6.달콤 쌉쌀한 더덕과 함께라면 금상첨화
    • 7.가격이 걱정이라고?
    • 8.횡성사람들에게 한우란?
    • 에필로그

    와牛 횡성, 名品 한우

    - 강원도 횡성군 -

    남녀노소 누구나 식탁에 오르면 젓가락이 가장 먼저 향하게 되는 것이 바로 '고기'입니다. 그 중에서도 부드럽고 담백한 한우는 담백하고 부드러운 맛에 반하여 체면 불구하고 젓가락질 전쟁을 멈출 줄 모르게 합니다. 한우 하면 횡성! 횡성으로의 여행에서 한우를 맛보는 것은 빠질 수 없는 필수 코스가 되어버렸습니다. 횡성한우는 그 이름 하나만으로도 하나의 브랜드를 형성하며 맛과 품질에 신뢰를 이어오고 있는데요, <트래블아이>가 제안하는 오늘의 미션은 ‘횡성 한우의 5가지 특별함 찾아보기’입니다.

    횡성 톨게이트를 지나 마을입구로 들어서면서부터 보이는 한우 동상이 역시나 한우의 고장다운 느낌을 물씬 풍기게 한다. 마을 건물들 사이로 한우전문점이 많이 보이네?

    “역시 한우의 고장답게 횡성으로 들어서자마자 한우전문점들도 많이 보이는데, 횡성 어딜 가나 신선하고 맛있겠지만 특별한 맛집이 따로 있을까?”

    “소 잡는 날을 표기해둔 한우 직판장들이 보인다. 그곳에 가면 한우의 특별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을 것 같은데?”

    횡성한우가 명품이 된 이유는 따로 있다. 소를 생각하는 마을사람들의 남다른 마음 때문일 것. 자식보다 더 끔찍이 생각하고 가족처럼 보듬던 그 마음 때문이 아닐까?

    “횡성은 예부터 소를 생구(生口)로 여기면서 한 식구처럼 살았어. 농사를 짓는 사람들로 소는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재산이었지. 소 하나만 바라보면 안 먹어도 배부르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논밭을 갈고 짐을 나르던 소를 팔러 우시장으로 가는 길엔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발걸음이 차마 떨어지지 않아 가다 쉬다를 반복했더랬지.”

    소와함께 뚜벅뚜벅 걷는 길. 소가 사람의 발에 걸음을 맞추고 사람은 소의 힘겨움에 발걸음을 늘인다. 함께 걸어온 지금까지의 세월이 뚜레길의 비밀이 아닐까?

    “주인아저씨 말을 들으니까 횡성 사람들이 얼마나 소에게 각별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이따 저기 뚜레길도 걷고 와봐. 220km 정도의 도보길인데 소코뚜레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 뚜레는 몸과 마음의 질병에서 벗어난다니 한번 쯤 걸어보는 것도 좋지.”

    횡성한우가 고유의 브랜드로 인정받고 신뢰할 수 있게 된 것에도 특별한 이유가 숨어있겠지?

    “횡성에 한우가 유명해진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아. 아마 소를 생각하는 마음에 소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고 건강한 소가 건강한 맛을 내는 게 아닐까?”

    “맞아. 그리고 논농사를 지으며 나온 볏짚을 소에게 먹이고 오염 없는 좋은 송아지만 잡아서 부드럽고 담백한 맛을 자랑한다고 해.”

    횡성한우는 입에 넣는 순간 부드럽게 씹히는 감칠맛이 일품이다. 건강하고 우수한 소가 건강하고 담백한 맛을 내는 비결이 아닐까?

    “핏기가 가셨으니 한 번 먹어볼까? 음~ 정말 부드러운데? 이래서 명품한우라고 하나봐.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진해져.”

    “천천히 먹어. 횡성한우는 역시 부드럽고 풍부한 육즙이 살아있는 것 같아. 자꾸만 손이 가네.”

    횡성의 또 다른 별미 중 더덕을 빼놓을 수 없다. 달콤 쌉싸래한 더덕과 배를 올려 노른자를 탁 깨 넣으면 금세 신선한 더덕육회 한 접시가 완성이다.

    “횡성하면 더덕을 빼 놓을 수 없잖아. 한우랑 함께 먹어도 그만이라기에 조금 주문해봤어.”

    “횡성더덕은 화학비료나 농약을 사용하지 않은 태기산기슭에서 재배한 더덕으로 국내 최고 품질로 인정받고 있다지? 함께 먹으니까 심심하지 않고 간이 딱 맞는 것 같아.”

    가족의 건강과 여행의 즐거움에 가격걱정은 잠시 접어두자. 입이 즐겁고 통통해진 뱃살에 얇아지는 지갑이 대수랴.

    “그런데 우리 이렇게 많이 주문해도 괜찮을까? 슬슬 걱정이 되는데?”

    “여기는 한우 직판장이라 일반 한우전문점보다 가격이 훨씬 낮다고. 하지만 품질은 다른 곳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라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그리고 밑반찬도 다른 가게와 다를 것 없이 준비된다고 하니 훨씬 저렴하게 먹을 수 있어.”

    소 하나만 바라온 세월만큼 정직하고 건강한 한우를 만들어 내는 것일 터. 횡성 사람들에게 한우는 횡성사람들의 삶 그 자체가 아닐까?

    “횡성 한우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한우를 먹어보니까 왜 횡성한우가 횡성의 대표가 된 것인지 알 것 같아.”

    “난, 왠지 횡성 사람들이 지금도 소를 몰며 어디론가 가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소는 횡성 그 자체 인 것처럼 말이야.”

    횡성에 들어서면 거리마다 줄지어 늘어선 한우전문점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질 좋은 한우 중에서도 으뜸이라는 횡성한우는 언제나 품질과 맛에서도 언제나 앞서고 있습니다. 횡성한우의 다섯 가지 특별함으로 함께 맛본 한우, 그 중에서도 소를 생각하는 횡성사람들의 진심이 가장 특별한 비밀이 아닐까요? 육즙이 살아있는 고기 한 점에 달콤 쌉싸래한 횡성 더덕 하나 올려 크게 쌈 하나 싸먹으면 다른 보약이 필요가 없습니다. 소를 위하는 마음이 담겨 더욱 특별한 한우의 맛이 궁금하다면 지금 바로 횡성으로 떠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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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사초롱 금당실마을에서 보물찾기

    청사초롱 금당실마을에서 보물찾기

    지역경상북도 예천군 편집국        사진편집국 2017-02-15 호감도

    청사초롱 금당실마을에서 보물찾기

    • 프롤로그
    • 1.정겨운 농촌마을
    • 2.꼬불꼬불 미로를 따라 보물찾기
    • 3.동서남북을 찾아라!
    • 4.지푸라기 예술가
    • 5.재래식된장 만들기로 선인들의 지혜 엿보기
    • 6.리듬에 맞춰 떡메를 쳐라!
    • 7.흔들다리에서 추억 쌓기
    • 8.선조의 힘을 느끼다!
    • 에필로그

    청사초롱 금당실마을에서 보물찾기

    - 경상북도 예천군 -

    멀리서 바라보는 동네는 두 팔로 감싸 안은 듯 아담하고 봉긋한 산이 정겹고, 마을주민들의 소박한 인심에 푸근함이 절로 느껴지는 경북 예천군 용문면 일대는 단순히 산과 물, 소박한 시골 인심이 어우러진 농촌체험마을이 아닙니다. 조선시대 고택과 예스런 돌담, 1960년대 우리 농촌의 모습이 옛 형태 그대로 남아 발걸음하는 곳마다 조상들의 정신과 문화를 배울 수 있는 곳입니다. 그 중심에 놓인 금당실마을이 있습니다. 이곳에 가면 어떤 체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트래블아이>의 미션! ‘금당실마을에서 선조들의 얼을 담아라!’

    조선 태조가 도읍지로 고려할 정도로 금당실마을은 한 눈에도 그 경치가 빼어나다. 실제 마을에 들어서면 그 자체로 영화나 드라마 세트장을 방불케 할까?

    “입구부터 고택들을 연결하는 이 구불구불 얽히고설킨 돌담길이 가장 시선을 끄는 게 참 재미있지? 십수 년 전 우리 농촌의 정겨운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구나.”

    “그렇긴 한데, 아까 ‘골목에서 길 잃어버리지 않게 조심하라’고 한 주민이 일러준 말이 농담은 아닌 것 같아요. 골목 길이가 얼마나 될까요?”

    금당실의 돌담길은 대부분 같은 모양을 하고 있어 길찾기가 매우 어렵다. 미로처럼 얽혀 있는 금당돌담길과 소나무숲 ‘쑤’에서 동서남북을 찾아라!

    “돌담길 아래가 출발점이야. 다섯 가지 미션을 줄 테니 이를 모두 수행을 하고 빨리 돌아오는 사람이 승리예요! 자~ 다 같이 동서남북을 찾아 파이팅!”

    “우리는 오늘 영화촬영지를 모두 찾아서 도장을 받는 미션이에요! 빨리! 1등에게는 금당꿀이랑 쪽마늘을 준대요!”

    영화 ‘영어완전정복’이 촬영됐던 고택은 박연이 씨 댁이다. 이곳에서 골목을 벗어나 역시 영화 ‘나의 결혼 원정기’를 촬영했던 집도 곧장 찾을 수 있다. 과연 어디 있을까?

    “서울서 여꺼정 구경왔는가벼?” “예. 여기서 박춘수 씨 댁을 가려면 어떻게 가나요? 팸플릿만 보고 찾아가려니 우리 같은 길치는 곧 잘 헤매네요.”

    “쭉 가다가 사거리가 나옴 오른쪽 틀어가 세 번째 골목 끼고 가면 나옵니데이. 살펴 가소!

    전통놀이를 겸한 체험거리가 이 마을에는 즐비하다. 이중 짚을 이용해 새끼나 계란 꾸러미를 만들어 보는 직접 짚으로 공예품을 만들며 멋진 예술가가 되어보는 건 어떨까?

    “짚신, 짚 바구니, 계란 꾸러미, 새끼꼬기… 쓸모없을 거라는 지푸라기가 이렇게 화려한 변신을 한다고요?”

    “물론이지. 벼의 나락을 추수하면서 남은 볏단을 잘 말리면 튼튼한 짚이 된 거야. 이걸로 옛날 초가집의 지붕도 얹었단다. 물론 금당실 돌담길을 장식할 수도 있지.”

    최근 웰빙 열풍에 대표적인 발효식품으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 된장을 이곳에서는 좋은 콩 고르는 법부터 전통장 담그는 법까지 하나하나 순서대로 배워볼 수 있다는데?

    “가마솥에 장작을 지펴 콩을 삶고 메주를 만들면서 이 숨 쉬는 옛날 항아리에 맑은 공기와 햇볕을 가미해 자연 숙성시켰지.”

    “전통 재래식 된장 만드는 건 참 손이 많이 가는 일이구나.” “예로부터 된장은 우리의 식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귀한 음식이었으니까.”

    전통이 살아 숨 쉬는 금당실마을에서 우리 조상이 즐겨 먹던 인절미를 떡메치기로 직접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서로 마주보고 박자를 딱딱 맞춰서 내리쳐야 하는데, 자꾸 떡을 보면서 치면 어떻게 해?” “안 그러면 떡을 똑바로 못 내려칠까봐 그렇죠.”

    “쿵짝이 맞아야 해! 철떡, 철떡, 쫄깃해지는 소리가 들리도록 공을 들여야 어느 때보다 부드럽고 차진 인절미를 먹을 수 있다고.”

    초간정 앞 맑은 물에서 발도 담가보고 솔솔 바람 부는 노송 숲을 거닐기 위해 향하는 길, 이때 범상치 않은 다리를 발견할 수 있는데?

    “와! 여기 서봐요! 흔들~ 흔들~ 하하!” “여러 사람들이 한꺼번에 지나갈 때 네가 크게 움직이니까 다들 깜짝 놀라잖니!”

    “너무 신나서 나도 모르게 그만…” “그래도 이렇게 흔들거리는 다리를 만나 뜻밖의 추억을 만들게 됐네!”

    금당실마을에서 호기심을 가장 자극하는 건 단연 양반가 둘러보기다. 선연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선연들의 그들 생각의 깊이와 그 힘을 느낄 수 있을까?

    “와~ 울창한 수림과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루고 있는 이곳에 놓인 정자가 특이하게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이에요!”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을 만든 저자 권문해 선생이 건립한 초간정인데, 지금 그의 유덕을 기리기 위해 유고를 보관하는 전각을 현손이 세웠지.”

    이 마을의 특별한 체험 한 가지를 더 소개하면 소달구지에 올라 문화재와 고택을 구경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때, 자동차가 없던 시절 먼 거리는 어떻게 이동했는지, 물건 나를 때는 어떠했는지, 어려웠던 시절 소는 사람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재미난 이야기도 함께 곁들여집니다. 천년고찰 용문사가 마을을 굽어보고 있는 이곳은 예로부터 살기 좋고 정취가 뛰어나 정감록에 수록된 십승지 중의 한 곳 입니다. 옛 모습 그대로의 돌담길부터 발길 닿는 곳곳 선인의 얼과 마을인심까지 두루 맛볼 수 있는 시간, 이번 기회에 한번 가져보는 건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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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촌풍경에 취한다, 취해~

    어촌풍경에 취한다, 취해~

    지역울산광역시 북구 편집국        사진편집국 2017-02-17 호감도 hotmark

    어촌풍경에 취한다, 취해~

    • 프롤로그
    • 1.7번 국도를 따라
    • 2.항구운치 맛나다
    • 3.어촌풍경
    • 4.물길 따라 간 곳에 빨간 귀신고래가?!
    • 5.붉을 밝히는 빨간 등대
    • 6.여기가 명당자리
    • 7.싱싱함이 춤춘다
    • 8.풍경에 취하고 맛에 취한다
    • 에필로그

    어촌풍경에 취한다, 취해~

    - 울산광역시 북구 -

    대게가 생각나는 계절이면 한적하던 어촌풍경에 활기가 돕니다. 영덕대게 만큼이나 인기가 좋은 정자 대게는 울산 북구의 자랑입니다. 정자항 활어직판장은 싱싱한 대게로 가득하고 구경하는 사람들과 흥정하는 사람들이 어우러져 정겨운 흥취를 돋웁니다. 부서지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먹는 싱싱한 회 한 접시에 코끝이 찡해지는 정자마을은 해양수산부 선정 아름다운 어촌마을로 선정되기도 하였는데요, 그래서 제안하는 <트래블아이>의 미션은 ‘정자마을에서 3樂즐기기’입니다.

    부산에서 7번 국도를 따라 가다 아름다운 해변풍경이 보이면 멈춰 서자. 한껏 물오른 어촌풍경에서 노닐다 가자.

    “부산에서 7번 국도를 따라 쭈~욱 올라가면 나온다고 했으니까 이제 곧 도착이야.” “이쯤인가? 바닷가 풍경이 예사롭지 않은데?”

    “방파제와 어촌풍경이 한껏 운치 있는데, 보자~ 여기가 맞네. 자 내려!” “공기부터가 다르다. 비릿한 바다냄새도 좋구나, 좋아~”

    어딘가에서 한 번쯤 봤음직한 장면임에도 이내 눈앞에 펼쳐진 항구운치에 절로 감탄이 새어나온다. 항구운치를 두 눈에 담았다면 그 다음은?

    “바닷가나 항구는 여러 번 가보았는데도 볼 때마다 새롭고 그 분위기가 다른 것 같아.”

    “그건 아마 그 이름과 어우러진 분위기 때문일 거야. 정자항은 오래 전 마을에 24그루의 느티나무 정자가 있어서 정자(亭子)라는 지명을 얻게 된 거래. 몽돌로 이루어진 해변과 분위기 좋은 카페와 레스토랑도 있다니까 더 운치 있지?”

    비로소 만난 어촌풍경에 가슴속 케케묵은 먼지가 쓸어 내려가는 듯하다. 오늘만큼은 알코올보다 어촌풍경이 선사하는 낭만과 분위기에 취해보는 건 어떨까?

    “이야~ 어촌풍경 끝내준다. 이런 풍경을 바라보고 싱싱한 회 한 접시에 소주 한잔 딱 마셔줘야 되는데, 안 그래?”

    “오늘 같은 날은 이 낭만과 분위기에 취할 순 없어? 어민들의 고단한 삶이 녹아있는 항구에 어민들의 전부인 낡은 배 한척을 보고도 그저 술 생각이야?”

    구불구불 물길을 따라 간 곳에 무시무시한 빨간 고래가 있다는데? 색은 물론 이름까지도 무시무시한 이 빨간 고래가 하는 일은 무엇일까?

    “바닥 한 번 봐봐. 붉은 색으로 구불구불하게 길이 나있어. 마치 물길 같다. 이 물길 끝엔 무엇이 있을까?”

    “난 알고 있지! 길을 따라 가면 바로 무시무시한 귀신 고래가 나타난다고! 그것도 아주 붉은 색을 한 귀신고래 말이야.”

    빨간 귀신고래는 바닷길을 비추는 등대다. 그런데 왜 붉은 귀신고래형상으로 등대를 만들게 된 것일까? 궁금증을 품은 여행은 하나의 즐거움을 주기 마련.

    “자세히 보니 등대잖아! 그런데 왜 하필 붉은 귀신고래형상을 하고 있을까?”

    “그건, 암초가 많은 곳에서 귀신같이 출몰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귀신고래들이 새끼를 낳기 위해 이동하는 경로라 자주 출몰했다고 해. 지금은 자취를 감춰 보기 힘들지만 그래도 여전히 울산을 상징하고 있지!”

    정자 대게뿐 아니라 동해안의 오징어, 우럭, 가자미 등이 잘 잡힌다고 알려진 낚시 명당자리, 정자항. 손에 짜릿함이 느껴진다면 힘껏 당겨보자!

    “벌써 여러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우리도 얼른 준비하자. 오늘은 어떤 물고기가 손맛을 짜릿하게 해줄까? 혹시, 귀신고래 잡는 거 아니야?”

    “꿈도 야무지셔. 동해안의 여러 고기들이 지나다니는 길목이라서 그런지 고기가 잘 잡힌다고 하는데, 난 큰 우럭이나 한 마리 잡았으면 좋겠다!”

    낚시까지 즐겼다면 이제 맛에 취하는 즐거움을 누릴 차례. 활어직판장에 다다르면 파닥이는 싱싱함에 절로 입맛이 돈다.

    “낚시로 힘을 빼서 그런지 출출하다. 날도 곧 저물 것 같고. 듣기로는 근처에 바로 활어직판장이 있다는데, 거기서 싱싱한 회 한 접시 먹어야지!”

    “그래, 가서 어떤 수산물들이 있는지 구경도 하고 맛도 봐야지. 정자항의 한껏 운치 있는 풍경을 보면서 말이야.”

    정자마을의 아름다운 어촌풍경은 낯익은 듯 새로운 모습을 하고 있다. 정자마을에서 3가지 보물을 발견했다면 숨어있는 보석과 같은 또 다른 아름다움도 찾아보자.

    “밤이 되니 정자마을의 분위기가 또 다른데?” “그렇지? 아무리 익숙한 풍경이라도 시간의 변화나 마음의 변화에 따라 이렇게 분위기가 달라진다니까!”

    “내일은 또 어떤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려나? 내일이 기대되는 정자마을인데?”

    정자마을에서 3가지 즐거움(樂)을 맛보셨나요? 코끝이 저릿한 정자항의 어촌풍경과 짜릿한 손맛 가득한 낚시 그리고 싱싱함이 펄떡이는 활어직판장까지. 아름다운 어촌마을 정자마을은 3가지 이외에도 숨겨진 아름다움이 보물처럼 숨어있는 어촌마을입니다. 가끔 일상에서 벗어나 삶의 쉼표 하나 찍고 싶을 때, 낯익은 풍경에서 오는 아늑함과 기대감으로 보물을 찾는 기쁨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정자마을에서 한껏 오른 흥취에 취하고 정자 활어직판장에서 싱싱한 맛에 한 번 더 취해 보는 삶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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