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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무덤이라는 것을 알기 전에는 그저 완만한 동산이었다. 죽음이 만들어낸 자연을 인간은 죽음으로만 기억할 뿐.
이곳을 걸으며 길이 좁음을 탓할 이가 있을까. 나무 사이를 비껴 길이 열렸다.
그늘을 지나자 등골이 서늘하다. 그 어떤 말보다 차갑고 시린 것이 발가락을 타고 올라온다.
어느 틈에 채워질까. 채워지지 않은 여백에 채워진 모습을 상상해 본다.
붉게 타는 가을, 이라는 눈에 익은 수식어. 하지만 그런 말이 곱게 어울리는 자리를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헌 책이라는 건 종이가 조금 바래고, 표지가 약간 낡았다는 뜻. 그 속의 내용이 헌 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걸음을 멈추게 하는 상상력. 모르는 체 속아보는 것도 멋진 일이다.
그늘 아래 웅크린 또 하나의 그늘. 주변을 메운 솔향에 속내까지 시원하게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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