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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 위에 넝쿨이 굴러가고 있다. 머잖아 동그만 호박덩이들이 열릴 상상에 벌써 즐겁다.
만 년의 세월, 이곳에 잠들다. 타임머신을 믿은 적이 있다면 당신의 상상력을 모두 발휘해 볼 때가 왔다.
소금이 잔뜩 달라붙어 그런가, 전구에 불이 들어오는 밤에는 빛의 바다를 찾으러 온 무리가 짠내를 풍긴다.
도선국사가 피안이라 이른 이곳. 천 년이 지난 뒤에도 고즈넉하니 영원한 풍경이길 기대해 본다.
산등성이를 따라 이어진 길을 걸으면서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가지를 흔들며 쫓아오는 너를 자꾸만 돌아보게 된다.
길을 잃은 중생을 인도하듯 밤이 되면 환히 빛날 테지만 그 빛에 누군가가 다칠 수도 있음을.
고요히 낡지만 빛바래지 않는 마음. 그 한 켠을 열어 기다리고 있으니 감사하는 마음에 잠시 고개를 숙인다.
잘게 부서진 흙이 발 아래서 으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어디까지 부서져야 너는 편히 묻힐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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