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 많고 많은 커플들은 전국 방방곡곡 어디를 가도 상관이 없겠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더 멋있고 더 로맨틱한 장소를 찾곤 한다. 결혼을 앞둔 남녀는 더욱 그럴 것이다.
“가을여행으로 어디가 좋을까?” 하늘은 구름 한 점 없고 쾌청했으나 하늘을 올려다보아도 눈이 부시지는 않았다. 눈을 살짝 찡그리며 가을여행지를 생각하고 있는 젊은 여자를 향해 남자는 말했다.
“어디긴 어디야, 가을하면 낭만, 낭만하면 갈대 아니야? 갈대를 보러가자.”
낭만을 입에 달고 사는 남자는 이번에도 또 낭만이다. 다른 때 같았으면 무슨 또 낭만이냐고 했겠지만 이번에 제안한 가을갈대를 보러 가는 것은 꽤 솔깃한 제안이었다.
별다른 준비가 필요 없이 순천으로 가는 차에 올라탔다.
“노을이 짙게 내릴 때면 더 죽여줄 텐데. 안 그래?”“그럼 멋있긴 하겠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돼. 곧 5시 반이야.”
가을이라곤 했지만 아직은 늦더위가 가시지 않아서일까 둘은 약간 거리를 두고 걷고 있었다. 각자가 생각하는 가을 낭만을 떠올리고 있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사진 찍는 것이 취미인 남자는 순천만 갈대밭의 이곳저곳을 담기에 바빴다. 바람에 스러지는 갈대의 모습이며 빛을 받아 반짝이는 갈대의 모습까지. 남자친구는 주로 풍경사진을 찍었다. 그 사이에 간간히 여자의 모습이 함께 담긴 사진들도 있었으나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여자도 남자의 취미를 존중하고자 남자가 사진을 찍을 때에는 달리 말을 걸지 않았다.
‘찰칵’
“어!”
남자의 외마디 감탄에 여자는 남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연히 굉장히 잘 나온 사진을 건진 것이 분명하다는 직감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남자는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백발의 두 노인이 손을 꼭 잡고 있는 모습이었다.
할아버지는 온 신경을 할머니에게 쏟고 있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 손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이제는 힘이 많이 빠져 손에 힘줄이 솟아나도록 힘을 주지 않으면 할머니 손을 놓칠 것 같아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잡은 손에 힘을 꽉 주셨다. 할머니는 꽃분홍색 스웨터를 입고 계셨는데 표정이 마치 소녀 같으셨다. 볼에 분칠을 하지 않으셨는데도 발그레 하게 꽃이 핀 것 같았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꽤 먼 거리에 계셔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시는지 들을 수는 없었지만 해가 저무는 노을빛을 받은 갈대밭 사이로 서로를 향해 웃음 지으시는 노부부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두 분이 어떤 말씀을 나누고 어떤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지 알 것만 같았다.
“와, 정말 멋지지 않아?”
“응. 그렇다. 아마 두 분의 귓가에는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들려올 거야. 왜냐면 이렇게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함께 손을 잡고 걸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 자체에 감사함을 느끼고 계실 테니까.”
어쩐지 저렇게 늙어갈 수 있다는 것이 참 행복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언제까지 순수한 마음으로 서로를 사랑스럽게 바라봐 줄 수 있을까. 너의 늙음이 나의 늙음과 같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따뜻하게 보듬어 줄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말없이 서로의 손을 찾아 손을 뻗었다. 맞잡은 두 손이 어쩐지 따뜻했다.
“우리도 나중에 저렇게 아름답게 늙을 수 있을까? 난 말이야. 늙는다는 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 그리고 정말 로맨틱하다. 나는 로맨틱이라는 단어는 젊은 이 삼십대 사람들에게만 어울리는 단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정말 로맨틱하다.”
바람이 살짝 귓가를 스치는 날씨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밝지도 어둡지도 않게 내려앉은 노을 때문이었을까. 여자는 감성에 젖어있었다.
“우리도 지금처럼만 지낸다면 저렇게 아름답게 늙을 수 있다고 생각해. 이렇게 로맨틱하게. 그럼 지금 이 노부부 사진에 제목을 한번 지어볼까?”
“음. 생각났어. 더 로맨틱!”
아이를 잃은 지 벌써 닷새가 조금 넘었다. 집 앞 골목에서 놀던 아이는 이내 사라져버렸다. 달도 기울어진 밤. 어스름히 비추는 가로등이 자꾸만 깜박거린다.
아이를 찾으려 경찰, 미아신고센터 등 발을 넓혀 수소문해보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실마리는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 유괴라면 협박을 하는 전화 한통쯤은 걸려왔을 법한데 이상하리만큼 잠잠했다. 그렇다면 아이의 실종일까. 일곱 살 난 아이가 혼자서 길을 잃었다면 누군가 보호를 하거나 신고를 했을 텐데 동네에 아이의 흔적은 토막 난 시간처럼 깨끗했다.
“생김새가 유사한 아이를 목격했다는 제보전화입니다. 사례금을 먼저 묻는 걸 보니 약간 의심스럽긴 한데 그래도 일단 만나보심이…….”
사람들은 남들의 아픔에 치명적인 순간을 노리곤 한다. 장난전화라는 무책임한 단어에 피가 마르고 심장이 덜컥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돈을 노린 하이에나들처럼 전화를 걸어오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솟는다는 기분이 이럴까. 아내는 자신이 아이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에 반 실성을 하며 통공했다. 식음을 전폐하고 결국 자리에 누웠다. 아이의 이름만 중얼거릴 뿐이었다. 경찰은 아직 일주일을 넘기지 않은 상황이니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노력을 해보자고 했다. 물론 그들도 달리 뾰족한 방법은 없는 듯했다.
아이가 어디로 사라진 걸까. 단순히 길을 잃은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 보호하고 있는데 이야기를 해주지 않는 것일까. 그 다음의 최악의 상황은 떠올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런데 왜 불길한 상황에서의 생각은 자꾸만 최악의 상황으로 빠져드는지 모르겠다. 아이가 ‘아빠’하며 찾을 것을 생각하니 밤이 깊어가도 좀처럼 자리에 누울 수 없었다. 아이가 어디에서 살아있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데 부모가 되어서 어떻게 발 뻗고 잠들 수 있을까.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났다. 경찰에서도 우리 쪽에서도 그렇게 발 빠르게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이제는 조금 느슨해졌다.
따르르르르릉. 전화 한 통이 울렸다.
화순의 한 절이라고 했다. 우연히 아이를 찾는 전단지를 보았는데 자신이 보호하고 있는 아이와 비슷한 것 같아 전화를 했다고 했다. 몇 차례 장난전화를 받았지만 매번 아이를 보호하고 있다는 전화가 걸려오면 심장이 심하게 요동쳤다. 그런데 아이를 보호하고 있는 곳이 절이라니. 장난일리는 없겠다고 생각이 되었지만 만약 정말 아이가 있다면 어떻게 그곳에서 보호하고 있을까 생각했다. 전화를 건 사람의 목소리에서는 장난기라고는 없었고 꽤나 진실했다. 우선 아이는 잘 있다는 말을 먼저 하는 걸 보니 안심이었다. 문제는 그곳까지 아이가 어떻게 갔을까이다. 차로 족히 10Km는 가야할 거리이다. 버스를 타고 간다고 해도 아이혼자 쉽지 않은 거리인데. 아이를 만나러 가는 길임에도 자꾸만 의심이 가슴 속에서 콕콕 솟아올랐다.
급하게 차를 세워두니 저 멀리서 아이가 뛰어왔다. 아이의 상태는 괜찮은 듯 했다. 눈으로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니 5일간의 마음고생이 사라지니 급하게 피곤이 몰려왔다. 아이를 어떻게 보호하게 되었는지 자초지종을 듣기위해 스님과 잠시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많이 놀라셨지요? 빨리 연락을 드리지 못하여 죄송할 따름입니다.”
“아닙니다. 그래도 이렇게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아이도 잘 보살펴주시고.”
스님은 천천히 칠성바위 쪽으로 나를 안내했다. 며칠 째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여 몸이 천근만근이었으나 아이를 찾았다는 마음 하나만으로도 버틸 수 있었다.
“이것이 칠성바위입니다. 언뜻 보면 그냥 7개의 원반석으로 보이나 자세히 보면 북두칠성이 지상에 그림자를 드리운 듯한 모습을 하고 있지요.”
아이를 어떻게 보호하게 되었는지를 묻었는데 스님은 대뜸 북두칠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다. 그렇다고 스님의 말을 자를 수 없었기에 말없이 예에. 하고 듣고만 있었다.
“북두칠성은 북극성과 같이 나그네의 길잡이가 되어준다지 않습니까. 아이가 저를 찾아오게 된 것도 다 그런 이치이지요.”
스님은 자꾸만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으셨다. 간절한 마음이 북두칠성의 밝은 빛을 받아 아이를 이쪽으로 움직이게 하였을까.
자꾸만 졸음이 쏟아져 스님의 이야기가 희미해진다. 이제 겨우 아이를 어떻게 발견하였는지 이야기를 하는데 정신이 희미해지고 몽롱해진다.
에헴 할아버지를 중심으로 마을의 꼬마들이 빙 둘러앉았습니다. 올해 102세로 마을의 가장 장수하신 에헴 할아버지는 늘 아이들을 보면 에헴! 하고 헛기침을 하시는 할아버지라 아이들이 할아버지를 부를 때 에헴 할아버지라고 부르곤 하지요. 오늘은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약수터 정자에서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실 모양입니다.
아이들은 이야기가 궁금하여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하고 몸을 할아버지 쪽으로 바짝 당겨 앉았습니다.
“에헴! 여기 약수터 보이지? 오늘은 이 약수터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이 약수터는 아주 오래되었지. 아마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 일게다. 이 약수는 지금보다 더 신비로운 물이었지. 바로 아무리 많은 사람이 마셔도 그 물이 마르지 않았단다. 그리고 이 물은 톡 쏘는 맛과 신비로운 효능이 있어 배가 아프고 몸이 아픈 환자가 먹으면 힘이 솟으며 병이 낫는다고 알려졌었지. 그래서 우리 마을로 이 약수를 먹으러 오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훨씬 많았단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 해가 뉘엿뉘엿 질 때였지. 수상한 차림의 남자가 큰 배낭을 메고 우리 마을로 들어왔어. 그리고는 큰 통에 물을 마구잡이로 퍼 날랐지. 이 특별한 약수를 빼돌리려고 했던 모양이야. 그렇게 많은 물을 퍼 나른 남자가 다녀가자 아무리 마셔도 마르지 않던 약수터의 약수는 점점 말라가게 되었어. 물이 점점 말라가는 것을 안 마을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서로 더 많은 물을 차지하려고 싸우기 시작했단다.
그렇게 사이가 좋던 마을 사람들은 서로 눈치를 보고 거짓말을 하고 심할 때는 물을 빼앗기도 하였지. 쯧쯧쯧”“그래서 어떻게 되었어요?”
“에헴. 끝까지 들어 보아라. 그렇게 약수 때문에 싸움이 계속되자 보다 못한 마을의 산신령이 물의 맛과 효능을 싹 없애버렸단다. 그래서 아무리 물을 먹어도 병이 낫는 사람도 없고 물도 점점 흘러나오지 않았지. 사람들은 또다시 이게 다 다른 사람들의 욕심 때문이라고 하며 자신의 잘못을 뉘우칠 생각을 하지 않았단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의 터줏대감으로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받던 한 할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이 마을에 퍼지게 되었어. 사람들은 그제야 약수 때문에 싸운 것을 후회하고 반성했지. 그러면서 자신이 예전에 받아두고 얼마 남지 않은 약수를 한 바가지씩 할아버지네 집으로 가져왔어.
그렇게 한 바가지씩 모은 약수를 가지고 몸에 좋은 토종닭을 잡아 닭백숙을 푹 고아 할아버지께 드렸지. 그러자 할아버지의 병은 씻은 듯이 낫게 되었고 마을 사람들은 할아버지가 건강해지셔서 매우 기뻐했단다. 할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한 바가지씩 약수를 모은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기특하게 여긴 산신령을 달기약수터의 효능을 다시 되살리고 그 옆에 또 다른 약수터를 만들어 많은 사람이 물을 마시고 건강해지기를 바랐단다.”
에헴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은 아이들은 한 명씩 약수를 마셔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너나 할 것 없이 팔을 들어 힘이 불끈불끈 솟는다고 하였지요.
아이들은 에헴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물을 마시니 마을의 약수에 대한 자부심이 생겨났지요. 그런데 이야기 속 닭백숙을 먹고 건강을 되찾은 할아버지가 에헴 할아버지라는 사실은 아무도 모른 채 각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2012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오 년 전 초겨울 즈음의 일이었다. 옆 동네에서 건너 온 소식으로 아침부터 마을이 들썩였다. 어린이대공원 안의 동물원에 있던 어린 여우 두 마리를 소백산으로 돌려보냈는데, 그 중 한 마리가 옆 동네의 아궁이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는 것이었다.
“허이구, 그게 삼십 년 전인가에 멸종했다던 그 여우 아니여?”
“맞아요, 맞아. 서울대공원에서 번식 시키려고 그렇게 노력했다던데 정말 아깝게 됐어요.”
“여우? <어린왕자>에 나오는 그 여우?”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졸린 눈을 비비며 어른들의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할머니가 장난스러운 얼굴로 나를 보며 말씀하셨다.
“아니야, 아가. 구미호가 와서 죽었단다.”
그 때 그 이야기 속의 주인공은 불여우나 불여시로 불려왔으며, 구미호 전설의 주인이기도 한 토종 붉은여우였다. 온몸이 황적색의 털로 덮여 있는 이 붉은여우는 원래 우리나라에 아주 많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마치 옛날 얘기 속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뒷산의 호랑이처럼 말이다. 호랑이만큼이나 여우가 많았던지 여우를 소재로 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졌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구미호 얘기였다.
이렇게 많았던 붉은여우는 안타깝게도 밀렵되거나 쥐약 먹은 쥐를 잡아먹어 야생에서는 멸종되었었다. 옆 동네 아궁이에서 그 새끼 여우가 죽은 채로 발견되기 몇 년 전에 서울동물원에서 40년 만에 토종 여우의 번식을 성공시켰고, 이에 힘입어 야생에 여우 한 쌍을 방사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한 쌍의 여우 중 암컷은 아궁이에서 죽었고, 수컷은 이로부터 며칠 뒤에 덫에 걸린 채 발견되었다.
다시 말해, 구미호는 아니었다. 하지만 할머니의 이야기 속에서 붉은여우는 백 년, 혹은 천 년을 살기도 하며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으로 변하여 사람을 유혹해 생간을 빼 먹기도 하는 요물이었다. 여우가 와서 죽은 뒤로, 할머니는 밤이면 밤마다 어렸던 내게 불여우가 얼마나 무서운 동물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셨다.
불여우는 아홉 개나 되는 꼬리를 치마 속에 감추고 나그네를 유혹했다가, 나그네가 잠들면 쇠고랑 같은 손톱으로 생간을 빼 내 먹는다고 했다. 구미호가 인간이 되려면 사람의 간이 백 개나 필요해서, 나그네만 보면 해치려 든다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하다 지친 할머니가 먼저 잠이 드셔도 나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그럼 서울동물원에서는 구미호를 키우고 있는 것일까.
나는 할머니의 고른 숨소리를 들으며 여우를 상상했다. 여우는 아마 몸집은 아주 커다랗고 온 몸이 붉은 색 털로 뒤덮여 있으며, 날카롭고 긴 발톱을 가졌을 것이다. 입가에는 항상 피가 묻어 있고, 어쩌면 그 입에 갓 빼낸 싱싱한 생간이 물려 있을지도 몰랐다. 밤이면 늑대처럼 주둥이를 길게 빼며 울거나 처녀 귀신같은 모습으로 변해 숲을 돌아다니며 사냥감을 찾을 것이었다. 밤에는 절대 집 밖에 나가지 않겠다고 몇 번씩 다짐하고, 문을 꼭꼭 잠근 뒤에야 잠들 수 있었다.
그런데 몇 달 전에 텔레비전에 여우가 나왔다. 오랜 노력 끝에 드디어 붉은여우가 소백산자락에 터를 잡고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산 너머에 붉은여우가 살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붉은여우가 우리 집 근처에 살고 있다는 것보다 더 놀라웠던 것은 화면 속 여우의 모습이었다. 붉은여우는 작은 몸집에 날씬한 다리, 길고 탐스러운 꼬리를 가지고 있었다. 전설 속의 주인공이라기에는 너무도 앙증맞은 모습에 나는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리고 며칠 뒤, 나는 친구와 함께 서울대공원에 있는 붉은여우를 보러 가기로 했다. 번식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이제는 대공원에서 아기 붉은여우들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나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산을 한 번 더 바라보았다. 아마 산 속에서는 붉은여우들이 코를 킁킁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을 것이다.
때는 1990년도. 나는 설레는 스무 살이다. 아니 스무 살이었다. 풋풋하고 순진함이 가득했던 그 때. 스무 살.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 그런 나이다.
왠지 스무 살은 그렇지 않은가. 고작 한 살 더 먹은 것 가지고 다른 세계로 순간이동을 한 느낌이다. 적어도 그땐 그랬다. 십대에서 이십대로 변화되었고 술과 담배를 지적받던 청소년은 작은 카드 하나만 내밀면 만사 오케이니까. 그것이 스무 살이 누리는 행복이라는 단어였으니까.
수능만 끝나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나의 이십대는 흩날리는 사월의 벚꽃만큼 하늘하늘 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들어간 대학 그리고 짙푸른 잔디밭이 펼쳐진 캠퍼스를 꿈꿔왔던 나는 드디어 학교 동아리에서 첫 MT를 떠났다. 장소는 강원도 인제.
인제까지 가는 봉고차 안에서는 여행을 떠나요가 흘러나왔고 사람들은 이때다 싶어 목청껏 따라 불렀다.
봉고차 안에서 나는 새내기다운 특유의 얌전함으로 창밖만을 내다보았다. 그때 옆자리로 다가온 한 남자, 현규선배다.
“혼자 뭐해? 이번에 들어온 신입생이지?”
다정하게 웃는다. 웃을 때마다 미묘하게 움직이는 볼을 따라 보조개가 살짝 패인다.
“네. 안녕하세요?”
나는 멋쩍은 듯 웃었지만 현규선배는 아무렇지 않은 듯 옆자리에 앉았다. 사실 현규선배는 우리 동아리에서 킹카로 불린다. 수수한 생김새를 하였지만 동아리 장답게 남자다운 면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옆에 앉은 선배보다 주위에 다른 사람 시선을 더 많이 살폈다.
도착을 알리는 내비게이션의 목소리가 들렸고 사람들은 숙소에 짐을 날랐다. 여자들은 레포츠를 즐기기 위해 가벼운 차림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듣기만 해도 시원한 내린천은 이미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인제는 열 가지가 넘는 레포츠를 경험할 수 있는 곳으로 우리는 2조로 나누어 내린천 래프팅을 하였고 진 팀에서 두 명을 선발해 번지점프까지 하기로 내기를 했다.
나는 현규선배와 같은 조였고 우리는 열심히 물살을 갈랐으나 상대팀의 덩치가 좋은 남자 선배의 리더십으로 우리 조가 지게 되었다. 번지점프를 해야 하는 사람을 뽑기 위해 가위 바위 보를 하였는데 그만 나와 현규선배가 걸리게 되었다.
이 무슨 우연의 일치인가. 나는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선배는 히죽거리며 웃었다.
무서워하는 나를 말없이 꼭 안아주던 선배였다.
하나 둘 셋의 구호에 맞게 하늘을 날았다. 사월의 벚꽃이 하늘하늘 내리듯 그날 번지점프 위에서 내 마음도 하늘하늘 날았다.
낭만과 기대로 가득 찼던 첫 MT. 날이 저물고 캠프파이어 앞에서 통기타를 치던 선배가 생각난다. 돌이켜보면 즐거운 시절. 벌써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서른 즈음에 들어선 나는 괜히 그 때가 그립다. 이제는 웬만한 일에도 익숙해져서 인지 아니면 익숙함이 나를 익숙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때의 풋풋하고 어리숙함이 그립다.
번지점프 대위에 올랐을 때, 현규선배가 나를 안고 뛰어내릴 때 내 심장소리가 그에게 들렸을 까 고민하던 그 때로.
다시금 그 장소에 가보고 싶다. 무작정 떠나본다. 지갑, 휴대전화, 사진기 한 장 달랑 들고 떠난다. 사진첩에 담긴 그 장소 그 자리에서 다시 사진을 찍어본다. 선배도 함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바람이 불고 나는 네가 그립다.
멀리서 경종소리가 들려왔다. 바우덕이는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했다. 청룡사 남사당패인 개패거리에 들어온 지 오늘로 꼬박 열 두 해째 되는 날이었다. 그녀가 다섯 살이 되던 해 홀아비 머슴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생을 얼마 연명하지 못하고 숨을 거두고 말았다. 시름시름 앓던 그가 끼니도 제대로 연명하지 못한지 닷새만이었다. 아비는 임종 직전, 때때로 함께 술을 나누던 청룡사 남사당패 꼭두쇠에게 그녀를 맡겼다. 왜 하필 남자들만 있던 남사당패에 그녀를 맡겼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개머리패에 들어온 그날부터 그녀는 김암덕이라는 이름 대신 바우덕이라고 불렸다.
그녀는 갖가지 기예를 배워나갔다. 어름(얼음 위를 걷듯이 어렵다는 줄타기), 풍물과 버나(대접돌리기), 살판(땅재주)까지 기예를 하나씩 익혀갈 때마다 사람들은 그녀의 재능을 놀라워했다. 바우덕이는 모든 기예에 능했다. 그녀가 거리낌 없이 재주를 익혀나갈 수 있었던 것도 꼭두쇠인 곤(滾) 덕분이었다. 그는 바우덕이에게 있어 아비나 마찬가지였다. 발이 부르트도록 줄 위에 올려두었다가도, 밤이 되면 그녀의 발에 어렵사리 장(醬)을 구해 발라주던 것도 그였다. 바우덕이는 곤을 유독 따랐다. 그럴수록 줄타기에 매달렸다. 그녀는 위태로운 줄 하나에 몸을 내맡겨 날아오르는 것이 좋았다. 그 모양새가 제 처지와 비슷해 보이기도 했고, 늘 바닥에 납작 엎드려서 살아야 했던 그녀에게 하늘을 위해 솟아오르는 일은 유일한 해방구였다.
곤은 그녀가 열다섯이 되자 꼭두쇠에서 물러났다. 이레 전 수레에 다리가 밟히는 사고를 당했기 때문이었다. 바우덕이를 향해 돌진하던 수레를 가로막아 당한 사고였다. 곤의 다리는 점차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더 이상 놀이를 하지 못하는 그는 꼭두쇠로 있을 수 없었다. 곤은 울고 있는 그녀를 불렀다.
“덕아, 왜 우느냐.”
덕이는 울음이 북받쳐 대답할 수 없었다. 그러자 곤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는 그저 놀면 되는거다. 네 재주껏 한 판 놀면 되는 거란다.”
그녀는 그날부터 힘껏 뛰어올랐다. 조금 더 높이. 더 크게. 그녀의 줄타기를 본 사람들은 저마다 탄성을 질렀다. 그토록 위태롭고도 높이 날아오르는 사람은 없었다. 바우덕이는 안성을 넘어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탔다. 그녀의 줄타기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대원군은 경복궁 중건에 쓰이는 일꾼들을 위해 그녀의 남사당패를 불러 들였다.
합장을 하던 그녀의 손이 떨렸다. 그녀는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쥐고 있던 부채를 크게 펼쳐보았다. 곤에게서 받은 부채였다. 그녀는 그것을 무척이나 아꼈다. 가는 부채살들이 제대로 펼쳐졌는지 꼼꼼히 살폈다. 살 하나가 크게 구부러져 있었다. 부러진 살을 세우려고 했다. 하지만 한번 부러진 부채살은 세워지지 않았다. 눈을 질끈 감았다. 그녀는 크게 한번 숨을 가다듬었다. 바우덕이에게 오늘은 무엇보다 제일 큰 놀이판이었다. 머리에 두른 두건을 다시 한번 질끈 묶었다. 꽹과리 소리가 크고 경쾌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그때 멀리서 곰뱅이쇠가 뛰어왔다. 숨을 헐떡이는 그의 얼굴은 온통 눈물범벅이었다. 그녀는 보따리에서 탈 하나를 꺼내들었다. 곰뱅이쇠가 바우덕이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녀는 곤이 처음으로 만들어주었던 탈을 썼다. 바우덕이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어떠한 표정으로 서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녀의 손이 줄을 튕겼다.
이내 바우덕이는 줄을 타기 시작했다. 그리고 평소보다 더 거침없이 뛰어올랐다. 한번! 두 번! 세 번! 일꾼들이 그녀의 줄타기를 보며 추임새를 넣었다. 그녀는 마치 춤을 추는 듯 했다. 한 손에는 활짝 펼쳐든 부채를 부드러운 곡선을 따라 흔들었다. 바우덕이의 양 다리는 꼿꼿이 그러면서도 유연하게 움직였다. 하늘을 향해 춤을 췄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크게 회전하며 돌기 시작했다. 그녀의 춤은 멈출 줄을 몰랐다.
후회라는 것은 언제나 지나고 난 다음에야 든다. 내가 그렇고 다른 사람이 그렇듯 언제나 동일하게.
“따님이 어머님을 많이 닮았어요.”
미용사가 엄마의 머리를 빗으로 다듬으면서 살갑게 말을 걸어왔다. 어쩌면 지금껏 엄마를 봐온 나보다 엄마를 처음 본 미용사가 더욱 살갑게 느껴질 정도였다. 엄마는 참 오랜만에 미용실을 찾았다.
“우선 희끗한 저 흰머리 좀 염색해주시고 머리는 가볍게 파마해주세요.”
엄마는 온순한 양처럼 가만히 앉아있다. 바로 앞에 마주하고 있는 큰 거울이 어색해서 인지 자꾸만 시선은 아래를 향하고 있다.
“엄마, 고개 좀 들어봐. 그래야 머리가 예쁘게 되고 있는지 알지.”
내 말에 그제야 고개를 살짝 들어 거울을 본다. 여전히 어색한 표정은 남아있지만 그런 어색함이 낯설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따님이랑 이렇게 시내 나오시니 좋으시죠?”
“네”
엄마의 단답형 대답에도 미용사는 여전히 수다스럽게 이것저것 질문을 했다. 아무래도 직업병이 아닌가 싶었다.
“점심은 맛있는 거 드셨어요? 따님한테 오늘은 맛있는 거 사달라고 하세요. 예를 들면 스파게티라던지 경양식도 좋고요.”
“네”
미용사는 친절히 메뉴까지 들어주었지만 여전히 엄마는 무뚝뚝했다. 미용사도 조금은 지쳤는지 머리손질에 신경을 두었다. 두어 시간 지나자 엄마는 몰라보게 달라졌다. 희끗했던 흰머리는 단정한 자연갈색으로 물들었고 헝클어져있던 머리칼은 가벼운 펌으로 탄력이 생겼다.
“이야. 누구 엄마인지 정말 예쁜데?”
엄마는 피식 웃었다. 엄마도 마음에 드신 듯 웃음을 보이셨다.
엄마는 얼마 전 자궁근종 수술을 받았다. 암은 아니라 다행이었지만 자궁을 들어낸다는 것에 엄마는 여자로서의 삶이 끝난 것처럼 많이 우울해 하셨다. 수술은 잘 되었고 건강관리만 잘 하시면 일상생활에도 큰 문제가 없을 거라 했다.
“엄마,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한동안 죽만 먹어서 좀 질렸을 텐데. 엄마가 좋아하는~”
순간 엄마가 좋아하는 하고 말문이 막혔다.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엄마는 내가 자취집에서 집에 가는 날이면 우리 딸 좋아하는 순두부다 갈비찜이다 한상 떡 벌어지게 차려놓고 계셨는데 나는 이렇게 많은 식당이 있음에도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 하나가 떠오르지 않아 엄마 손을 잡고 계속 걷기만 하고 있다.
“칼국수 먹자. 칼칼하고 시원한 게 먹고 싶네.”
엄마는 내가 당황한 것을 알아챘는지 칼국수를 드시고 싶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엄마는 입맛이 없다고 하는 날이면 국수를 말아 드셨던 기억이 났다.
등촌동 칼국수는 뽀얀 국물에 바지락이 들어가 있는 모양이 아니었다. 버섯 매운탕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얼큰한 국물에 버섯과 미나리 그리고 칼국수 면을 넣어 칼칼하게 먹는 방식이었다. 한여름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먹다보면 땀이 나면서 몸에 원기가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음, 국물 시원하다. 엄마 여기 와 본적 있어?”
“응, 저번에 네 아빠랑. 국물이 칼칼하고 시원한 게 좋더라고.”
“아빠랑? 언제?”
“엄마 수술하기 전에. 여기에서 답답하던 속 다 풀고 가라고.”
무뚝뚝하던 아빠는 수술 전에 엄마를 모시고 나온 적이 있으셨나보다. 엄마의 갑작스런 수술에 아빠도 적잖이 걱정이 되셨던 모양이다. 평소 말 한마디 선물 하나 제대로 해본 적 없으셨던 아빠가 먼저 외식을 하자고 했다는 것에 엄마도 아빠의 마음을 조금은 느끼셨으리라 생각한다.
국수를 다 건져먹고 갖은 채소와 계란까지 풀어 볶음밥까지 싹 비우고 나서 음식점을 나왔다.
나는 엄마에게 뭐 해보고 싶은 것이 없는지 물었다. 엄마는 내손이랑 엄마손을 비교해보더니 “나도 이런 거 해보고 싶다. 이걸 뭐라 하더라? 네일아트?” 엄마는 생각도 못한 네일아트를 해보고 싶다고 하셨다.
“그래, 엄마. 이제 엄마 해보고 싶은 거 다 하면서 그렇게 사세요. 새로운 마음으로 새롭게!”
엄마와 걸어가는 데 발걸음이 훨씬 가벼워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야, 서울은 역시 죽이네. 사람들 때깔부터가 다르다. 우리 동네랑은 비교도 안 된다.”
서울로 갓 상경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느끼는 서울의 첫인상은 그랬다. 사람들은 저마다 바쁜 걸음으로 어디론가 향했고 고층 건물들은 한참을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아찔한 높이를 자랑했다. 고층 건물 하나를 가리키며 저기를 올라가려면 며칠 전에 올라가야 하나? 라는 촌티 팍팍 나는 생각은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그 당시에는 엘리베이터라는 것이 생소할 시기였으니 그럴 만도했다.
내가 서울이라는 곳 그것도 영등포구라는 이 네 글자를 기억하는 건 단 하나였다. 다름 아닌 ‘라디오’ 그때의 청춘이라면 누구나 문세오빠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들었을 것이다. 나 역시 매일 같은 시간이면 지지직거리며 주파수를 잡았고 스탠딩 불빛 하나만 켜놓은채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다. 매일 밤 10시 5분부터 밤 12시까지 문세오빠의 달콤한 목소리와 각각의 사연들 그리고 언제 나올지 모르는 신청곡을 기다리는 재미는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시간들이었다.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가사를 받아 적느라 팔이 아프도록 글씨를 끼적인 적도 있고 문세오빠가 읽어주는 사연에 눈물콧물을 쏟기도 했다.
라디오는 나에게 그런 존재였다. 그런데 항상 라디오에 신청곡이나 사연을 보내라며 말하던 곳이 영등포구 여의도동 사서함…… 이렇게 시작했다. 지방에 사는 나로서는 서울 하면 내가 늘 들어오던 영등포구 여의도동밖에 떠오르는 곳이 없었다. 그렇게 내게 영등포구 여의도동은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그런 공간이었다.
그렇게 올라온 서울은 역시나 특별했다. 사실 정신없는 도로와 사람들 때문에 별 다를 것 없는 공간이 더욱 특별해 보인 것일 수도 있다.
“야야! 저 봐라. 저기 진짜 높은 건물 있다. 저게 다 몇 층일까?”
“야, 니 저거 모르나? 63빌딩!! 63빌딩이니까 63층이지.”
“니는 어떻게 알았는데? 그나저나 63층? 이야. 저기 올라가면 서울 시내 다 보이겠다. 그렇지?”
“올라가볼래? 여기까지 왔는데 63빌딩도 안 올라가보면 사람들이 욕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긴 시간을 보낸 채 도착한 곳은 63빌딩의 전망대였다. 서울 시내가 한 눈에 들어왔다. 꿈에 그리던 서울 길. 그리고 그 속에 속해있는 나 자신이 신기한 순간이었다. 서울이라는 단어가 마치 다른 나라 같은 느낌이었는데, 내심 뿌듯해지는 순간이었다.
“야! 저기 저 방송국! 저기에서 문세오빠 라디오 하잖아. 저기서 한참 있다 보면 오빠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바보야, 지금 아직 오후 4시도 안됐는데 무슨, 오빠 라디오 밤에 하는 거 몰라?”
“아, 그렇지. 그럼 우리 오늘 우리 여기 왔었다고 라디오에 사연 보내볼까? 그럼 당첨돼서 문세오빠가 우리 이름도 불러줄걸?”
63빌딩에서 내려와 한참을 문방구를 찾아 헤맸다. 우리 동네는 그냥 마을 어귀에 자그마한 문방구가 하나쯤은 있었는데 여기는 그 흔한 문방구도 잘 보이지 않았다. 무슨 서울이 문방구 하나 없나 하며 지나가는 사람에게 문방구를 물어보니 손끝으로 가리키는 곳에 도착하니 문구와 여자아들이 좋아할 만한 머리핀, 작은 장난감까지 함께 팔고 있었다. 눈이 휘둥그레져 한참을 구경하다 예쁜 엽서 하나를 골라왔다.
투. 문세오빠.
안녕하세요? 문세오빠. 이렇게 시작한 글에 우리는 참 손글씨로 어여쁘게 엽서를 꾸몄다. 긴장감에 손이 부르르 떨렸다. 이 글이 영등포구 여의도동으로 드디어 실려 가는 구나 생각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우리는 두 손을 모아 엽서를 빨간 우체통에 집어넣었다. 언제 방송이 될지도 모른 채 혹여 채택이 안 되면 어쩌나 노심초사 걱정도 되었다.
앗, 10시다! 별이 빛나는 밤에 할 시간이야.
별이 빛나는 밤에. 문세오빠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얼굴에 꽃받침을 하고 이불속에 쏙 들어가 라디오를 한 참 듣는데 익숙한 이름과 글귀가 흘러나왔다.
투 문세오빠.
안녕하세요? 문세오빠.
그렇게 우리가 보낸 사연이 채택되어 라디오를 타고 흘렀다.
처음 영등포구를 찾던 날, 63빌딩에 올라가 서울 시내를 본 것, 라디오에 사연을 쓰게 된 이야기까지 라디오는 참 신기하게 우리의 이야기를 타고 흘렀다.
라디오에 온 감성을 쏟았고 학창시절이 라디오로 가득 차 있던 시기. 그 속에는 가 본적이 있어도 가보고 싶은 영등포구 여의도동이 있다.
오늘은 어떤 사연이 이 주소로 흐르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