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출산에 올 때부터 이상하긴 했다. ‘달이 떠오르는 산’이라길래 이름마냥 고요하고 아름다울줄 알았는데, 웬걸, 기암절벽에 바위 천지, 산세는 또 어찌나 험한지!
“이 산이 원래 이렇게 험한 거야, 아님 내가 가는 이 코스만 험한 거야?”
그는 스마트폰을 꺼내어 검색을 시작했다.
“월출산, 우리나라에서 풍수지리상으로 기세가 가장 센 산? 아, 내가 잘못 골라도 한참 잘못 골랐구만. 게다가 구름다리 코스가 가장 난코스? 아아악, 젠장!”
당장이라도 휴대전화를 던져버리고 싶었지만, 참았다. 이따 아내와 통화를 해야 하니까. 싸우고 꼴 보기 싫어도, 집에는 같이 가야한다. 한 집에 사는 사람이라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이렇게 꼬일 줄 알았으면 아내와는 같이 안왔을텐데. 그는 지금 후회하고 있었다.
그의 아내는 처음부터 월출산에 가는 걸 싫어했다. 이왕 여름휴가를 받아 쉴 거면 산 보다는 바다가 좋았다. 하지만 그는 이미 가지도 않은 산악 캠핑장에 푹 빠져 있었다. 그의 아내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망할 리얼 버라이어티가 대한민국 남자들을 전부 된장 캠퍼로 만들어 놨어...’
게다가 전국의 술이란 술은 다 먹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그인데, 하필 영암에는 그가 아직 섭렵하지 못한 술이 있었다. 그래서 목적지는 두말할 것도 없이 영월이 됐다. 도대체 그냥 막걸리도 아니고, 무화과 막걸리가 뭐길래!
남편의 소원대로, 그들은 월출산 캠핑장에서 무화과 막걸리를 마셨다. 막걸리는 생각보다 맛이 좋았다. 처음에는 툴툴거리던 아내도 한 사발, 두 사발 받아먹더니, 혼자 한 동이를 다 비웠다. 그렇게 둘이서 세 동이쯤 먹었을까? 혀가 살짝 꼬인 채 남편이 말했다.
“야, 너는 그렇게 오기 싫어하더니, 이렇게 맛나게 출을 처마시냐? 너 인제 내가 하는 말에 토 달지마 이 여편네야.”
“야, 너 지금 말하는 스타일이 왜 그 모양이야. 너 잊었어? 난 지금도 산이 싫어. 벌레는 왜이리 많고, 저 깎아지른 듯 한 산세는 뭔데? 네가 언제 내가 원하는 대로 말 들어준 적이나 있어? 내가 참아주고 사니까 이게 그걸 당연한 줄 알아. 뭐 그리고 술을 쳐 마셔? 그래, 나 아주 상스럽게 처마시고 있다. 너 때문에 열 받아서 술이 아주 그냥 술술 들어간다. 됐냐?”
사실 남편은 말을 입 밖으로 뱉는 순간부터 후회하고 있었다.
‘내가 미쳤지. 아, 입이 방정이다. 오늘 분위기잡고 첫째 만들려고 했는데, 이거 뭐 분위기고 뭐고, 내일 무사히 집에나 갈 수 있음 다행이게.’
결국 아내는 텐트에서, 그는 해먹에서 잤다. 2세 만들기는 생각조차 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함께 나란히 오르기로 한 월출산을 따로 나섰다. 아내는 바람폭포 쪽으로, 남편은 구름다리 쪽으로.
월출산 캠핑장에서 구름다리까지 걸어서 한 시간 정도 걸렸다. 그러나 구름다리에 도착하기도 전에, 그는 이미 후회하고 있었다. 이 어마어마한 산새는 무엇인가; 한 시간 밖에 안 걸었는데도 다리에서 힘이 풀리고 있었다. 게다가 남들은 고어텍스 옷이며 등산용 스틱이며 만반의 준비를 하며 걷는데, 그의 무기는 달랑 등산화뿐이었다. 걷다가 벌써 생명의 위협을 몇 번이나 느꼈던가! 긴장감에 물을 마구 들이켰더니, 물도 벌써 다 떨어져가고 있었다.
구름다리는 정말 장관이었다. 밥로스 아저씨가 나이프로 휙휙 휘저어 그린 듯한 바위절벽 사이에 끝도 보이지 않게 긴 다리가 있었다. 어마어마한 공포가 밀려왔다. 한참동안 다리 입구에서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두 손으로 난간을 꼭 잡은 채 한 발 두 발 걸어갔다. 다리가 덜덜 떨렸다. 경치는커녕 눈을 어디에도 돌릴 수 없었다. 간신히 눈을 돌려 난간을 잡은 자신의 손끝을 바라보다, 그는 깜짝 놀랐다. 난간에는 매직으로 네 글자가 적혀있었다. ‘떨어져라.’
그는 꽁지에 모터가 달린 듯 건너편을 향해 걸어갔다. 차원이 다른 공포였다. 산의 기운이 짓누르기 전에 산과 산을 잇는 이 허공에서 도망가야 할 것 같았다. 그는 민망할 정도로 빠르게 구름다리 건너편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전화기를 꺼냈다.
“뚜르르르르... 뚜르르르르... 딸칵. 왜?”
“너 어디야, 바람폭포야?”
“아니, 나 천황봉 거의 다 왔는데? 이제 내려갈 거야. 끊어.”
“야야야야야! 너! 아니, 미안하다.”
“너 왜 그래, 약먹었어?”
아내의 목소리를 듣자 그는 오만생각이 떠올랐다.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순간에 떠오르는 건 역시 마누라밖에 없구나. 지가 아무리 기가 세고 바가지를 긁는들 그 기운이 월출산만큼 뻗치진 않으니. 적어도 생명의 위협을 느끼진 아니하잖나. 악처라도 처가 있는 게 낫다고, 감사하며 살자.
“아냐. 생각해보니까 그냥 미안해서. 나 인제 구름다리니까 조금만 기다려. 사랑한다.”
“놀고 있네... 빨리와. 투둑. 뚜.뚜.뚜.뚜...”
볕이 좋은 주말 오후에도 체육관은 기합소리와 땀 냄새로 그득하다. 여기 모인 사람들이 가슴에 태극마크 하나씩 달고 저마다의 목적을 위해 운동을 한다. 하나같이 종목들과 운동을 하는 이유는 다 다르지만 ‘국가대표’라는 직분은 같기에 오늘도 기합소리가 새어나온다. 그들은 힘이 들어도 힘들다는 말을 차마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고 몸이 뒤틀리는 고통을 웃음으로 넘긴다. 4년의 기다림을 알기에 그들은 참고 또 참는다. 누군가는 메달이라는 상징물 혹은 4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큰 세계적 이슈로 보겠지만 그것은 누군가의 희망이 될 수도 나라의 미래일수도 또 다른 의미에서는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다 쓰러지겠어. 메달 따고 싶어 하는 맘은 나도 알겠는데 그래도 컨디션 조절이 제일 중요하다는 거 몰라?”
“나 메달 따려고 이러는 거 아니야.”
“메달 따려고 그러는 것도 아니면서 왜 이렇게 몸을 힘들게 해. 좀 쉬었다 하자.”
한준은 몸에 땀이 비 오듯 흘러 운동복이 흠뻑 젖었다. 파트너 희진의 만류에 겨우 기구를 내려놓았다.
미지근한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는 한준에게 희진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어머니 때문에 그렇지?”
“무슨 소리야 그게.”
“한준이 너, 어머니 찾겠다고 그러는 거잖아. 메달 따서 당당하게 찾아뵈려고. 아니야?”
한준의 부모님은 한준이 12살이 되던 해에 각자의 삶을 살기로 하였고 한준은 아버지를 따라가야 했다. 그 이후로 한준은 어머니를 자주 볼 수 없었다. 20살이 되던 해에 국가대표로 선발되면서 태릉선수촌에 들어왔다. 그 이후로는 어머니를 만나러 가지 않았다. 한준은 메달을 따고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었을 때 당당한 모습으로 어머니를 만나러 가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주말이나 휴일에도 오로지 운동만 했다. 나라를 위해서도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아니었다. 그저 어머니 하나만을 위한 피땀 어린 노력이었다.
“배고프지 않아? 오늘은 주말이고 사람도 별로 없으니까 우리 나가서 먹자. 외식하자 외식.”
생각 없다는 한준을 억지로 끌고 나왔다. 체육관을 벗어나기만 했을 뿐인데 왠지 공기마저 다르게 느껴졌다.
바깥바람을 만끽하며 걷는 희진과 달리 바닥만 보고 걷던 한준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 바로 앞에는 낡은 구두가 있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아주머니 한분이 눈물이 그렁한 채로 한준 앞에 서있었다. 서로 말을 주고받지 않았지만 한준의 어머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한준아.”
“여긴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돌아가세요.”
“저기, 한준아. 밥. 밥은 먹었니? 안 먹었으면 점심만 같이 먹고 가면 안 될까?”
둘의 관계를 알아차린 희진이 순발력을 발휘해야 했던 순간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저는 한준이 파트너 김희진이라고 합니다. 한준이 어머님이시죠?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헤헤. 아, 마침 저희도 점심 먹으러 나가려던 참인데 제가 오늘 운동스케쥴이 있었던 걸 깜빡했지 뭐에요? 그래서 그런데 두 분 이서 식사 하고 오시면 될 것 같은데…….”
“아. 그래요? 우리 한준이 파트너 분이세요? 반가워요. 같이 식사하면 좋은데.”
“아, 아닙니다. 저는 다음에요. 한준아, 밥 맛있게 먹고 와. 나 먼저 들어간다!”
몇 년 만에 본 어머니의 얼굴은 몰라보게 야위어 있었다. 잘 살고 계시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가까이에서 마주보니 더 늙고 초라해진 모습에 마음이 아픈 한준이었다.
“한준아. 엄마가 미안해.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운동하면 힘들 텐데. 뱃속 든든하게 채우고 운동해야지.”
“국수가 먹고 싶어요. 멸치국수.”
공릉동 국수거리에서도 한참을 들어온 곳에 몇 평 안 되는 작은 가게에 들어왔다. 가게가 8평 남짓한 공간이라 더욱 밀착해서 앉게 되었다. 멸치 국수 두 그릇에 김밥 한 줄을 시켰다.
“좀 더 근사하고 든든한 거 먹지, 국수는 배 금방 꺼지는데.”
“김밥하고 먹으면 괜찮아요. 그리고...”
한참을 머뭇거리던 한준은 뒷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언제 한 번 어머니랑 여기 와보고 싶었어요. 여기 국수가 옛날에 어머니가 해주던 거랑 비슷한 맛이 나서 가끔 혼자 와서 먹고 가고 그랬거든요.”
어머니의 눈물이 국수그릇으로 똑 떨어졌다. 그동안 혼자 이곳을 찾아왔을 한준이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이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듯했다.
한준은 이제 경기 전까지 운동에 전념한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경기 끝나면 엄마가 직접 끓여주는 국수 맛보러 가겠다는 말을 용기 내어 꺼냈다. 어머니를 정류장까지 모셔다 드리고 돌아오는 길에도 여전히 한준의 귓가에는 후루룩 소리가 맴돌았다.
아이스크림, 초콜릿, 딸기우유……. 아이는 할아버지 댁에만 가면 기다렸다는 듯 할아버지 손을 잡고 슈퍼로 향한다. 평소에는 군것질거리를 사 먹이지 않으니 이때다 싶은 것이다. 슈퍼에 도착하여 고른 것들은 온통 단것들이다. 당당한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와서는 의기양양하게 과자들을 품에 쏙 넣는다. 내가 빼앗으려고 하면 할아버지 품으로 쏙 숨는다.
“아빠도 참, 애가 떼를 써도 이렇게 단거 막 먹이면 안 된다니까.”
“자주 먹이지도 않는데 뭘 그러냐. 그리고 애들 때는 다 이런 거 먹고 싶은 거야. 그리고 꼬맹이가 이렇게 매달리는데 할애비가 되가지고 어떻게 모른 척하냐?”
“그걸 노린 거라니까. 아빠, 요즘 애들 다 유기농이다 몸에 좋은 것들만 먹이는 거 몰라요? 이렇게 슈퍼에서 파는 거 입맛 들면 못쓴다니까. 과자도 마약과 같은 거야. 먹다보면 계속 먹고 싶어진다니까.”
“유난은, 너도 다 이런 거 먹고 자랐어.”
“요즘 애들은 피부가 연약하고 아토피 그런 것도 잘 생긴단 말이야.”
“알겠다, 알겠어. 그럼 저기 곶감을 가져다 줘야겠구나.”
아이가 귀여운 얼굴을 하고 애교를 떨면 어찌 안 넘어가고 배기겠는가. 자식보다 손주새끼들이 더 끔찍하게 예쁘다는데.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손주가 사달라고 하는 걸 딱 잘라 거절하기 어려우셨을 것이다. 더군다나 늦게 결혼한 딸내미가 노산으로 힘겹게 얻은 자식이니 친정 부모로서 말은 안 해도 애를 많이 태우신 모양이다. 그래서 아이를 만지면 닳을까 애지중지 하신다. 구부정한 허리는 이제 다시 반듯해지기를 포기한 화석처럼 굳어져 있고 지팡이 없이는 오래 걸으시지도 못하지만 아이와 함께라면 힘든 줄도 모르신다고 한다. 요즘말로 손주바보가 따로 없다.
아이를 불러 곶감을 내미니 아이는 냄새부터 킁킁 맡아본다. 감을 말린 것 이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먹는 건지 아닌지 확인부터 하는 것이었다. 할아버지가 맛있다고 먹어보라고 해도 뒷걸음질을 칠뿐이다. 그러자 좋은 묘책이 생겨났다는 듯 아이를 무르팍에 눕히더니 재미있는 곶감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이다. 아이는 재미있는 이야기라는 말에 냉큼 할아버지 무릎에 누웠다.
“옛날 옛날에 호랑이 한마리가 먹이를 구하려고 마을 어귀까지 어슬렁어슬렁 내려왔단다. 그런데 어느 집안에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크게 들리는 게야. 그래서 아기 엄마가 아기에기 "귀신 온다." 그랬지, 그랬는데도 아기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어. 그래서 이번에는 "호랑이 온다."그랬지. 그랬는데도 아기는 더욱 크게 우는 것이었지.
그래서 이번에는 "곶감 줄까?" 그랬더니 아기가 울음을 딱 그쳤다는 거야. 그것을 들은 호랑이는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호랑이인 줄 알았는데 자기보다 더 무서운 것이 곶감이로구나 생각했지. 그 뒤로 곶감소리만 들리면 뒤꽁무니가 빠지게 도망쳤다는 구나.“
우와. 하고 탄성을 지르더니 아이는 이내 할아버지 손에 들린 곶감에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 아이들은 역시 단순하구나 생각하면서도 아이의 순수함에 웃음이 났다.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곶감이 자기 앞에 있다고 신기하다며 한입 베어 문다.
생각보다 단맛이 돌아서인지 아이는 과자를 내려놓고 곶감을 찾았다. 곶감이야기 때문인지 아이는 그날이후로 곶감할아버지네 가자고 한다. 그러면서 할아버지 손을 잡고 슈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말려놓은 곶감을 가지고 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성화다. 혹 떼려다 혹 붙였다며 껄껄껄 웃으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니 엷은 미소가 지어졌다.
“곶감 하나 줄까?”
“웅 할아버지, 재미있는 이야기도!”
“자. 그럼 시작해볼까? 옛날 옛날에~”
안녕? 마일로. 나 동호야.
벌써 네가 우주로 간지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어. 벌써 보고 싶다. 너와 처음 만난 날은 절대 잊을 수 없을 거야. 쪼글쪼글한 얼굴에 귀여운 외모를 가진 너는 나보다 키가 훨씬 작아서 난 네가 개미인 줄 알았다니까.
고인돌 앞에서 우연히 널 처음 만났을 때 네가 하도 작아서 내가 널 밟을 뻔한 것도 기억이 생생해. 그땐 정말 아찔했는데 말이야. 그때 넌 머나먼 별에서 왔다고 하며 이곳이 어딘지 물었었지. 특히 넌 고인돌을 보고 이 큰 돌이 무엇이냐고 신기해했었지.
널 우리 집으로 몰래 들여보내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것이 생각나. 넌 내가 사는 지구 그리고 우리 마을에 대해 궁금해 했고 난 네가 살고 있는 우주에 대해 궁금해 했었지. 그래서 우주에서 온 너를 위해 나로우주센터과학관에 널 데려갔었지. 그때 넌 정말 신기해하면서도 집에 가고 싶어 했던 것이 생각나. 그리고 난 과학자를 꿈꾸고 있기 때문에 널 만난 것을 참 행운이라고 생각했어. 너에게 직접 우주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고 우주과학센터에서 보는 것들에 대해 너와 직접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어.
그리고 넌 우주로 오는 지구인들을 봤다는 이야기도 했었지. 그때 넌 정말 신기해했는데. 지구인들은 우주에 오면 신기한 옷을 입고 생활한다면서 말이야.
우리 고흥은 특히 과학의 도시야. 너도 알다시피 우리 고흥에서는 100kg급의 인공위성으로 지구 저궤도에 진입시킬 수 있는 한국 최초 우주발사체 나로호 발사 준비에 한창이었지. 사실 1차와 2차를 발사했었지만 아쉽게도 실패했었어. 그래도 좌절하지 않고 열심히 3차 준비에 매진하던 시기였어. 그때 널 만난 것도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고.
넌 왜 고흥에서 나로호를 발사하는 것이냐며 궁금해했었지? 그건 발사장 주변의 안전과 발사각도, 발사장의 여러 시설의 설치 등을 생각해서 발사해야 하기 때문이야. 특히 우리 고흥은 발사운용 각도가 15도로 넓고 발사체를 발사했을 때 발사체의 추락과 같은 국제적인 문제도 생각해야 했기 때문이라고 들었어. 나 꽤 똑똑하지? 네가 다시 우주로 돌아가고 더욱 우주와 과학에 대해 궁금해졌어. 그래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지.
아참! 나 너와 약속했던 비밀 아직도 지키고 있어. 바로 3차로 발사될 나로호에 널 몰래 태운 말이야. 지금 생각해도 심장이 두근거린다니까. 나로우주과학관에서 나온 넌 네가 살던 별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면서 눈물을 보였었잖아. 그때 나도 무척이나 가슴이 아팠었어. 그래서 생각했지. 네가 우리 마을로 떨어진 날이 1월 28일이었잖아. 그런데 1월 30일에 나로호 3차 발사가 예정되어있었어. 그래서 널 몰래 나로호에 태웠었지.
그래서 나로호가 발사되는 것이 나에게는 더욱 뜻깊은 일이 되었어. 네가 나로호에 탄 것은 아마 우리나라 사람 아무도 모를 거야. 그리고 난 네가 나로호에 탔기 때문에 3차 발사에 성공하길 더욱더 간절하게 바랐어.
나로호 발사를 몇 분 남겨놓지 않고 너와 작별인사를 했을 때가 생각나. 널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야. 그래도 널 너의 별나라로 보내줄 수 있어서 기뻤어. 그리고 나도 더 열심히 공부해서 2021년에 다시 한 번 발사될 한국형 발사체에 탑승해 널 꼭 다시 만나고 싶어. 너와 함께 보냈던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될 거야. 너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으면 좋겠어. 비록 너의 소식을 들을 수는 없지만 네가 잘 도착해서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이야. 그럼 다음에 또 만날 때까지 안녕. 동호가.
주말의 밤은 언제나 시끌시끌하다. 극장 앞은 아직도 오늘 공연에 대해 찬사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극장 안으로 들어와 앉았다. 긴장과 환호성, 불빛이 가득한 아름다운 극장의 모습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만, 사람들이 모두 돌아가고 난 뒤의 조용한 극장의 모습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입장권을 비롯한 자질구레한 쓰레기들이 나뒹구는 가운데서, 나는 재빨리 다음 공연을 위해 연필을 놀렸다.
“윤 작가님, 벌써 또 시작하셨어. 하여튼 못 말린다니까.”
무대 철거를 위해 분주히 움직이던 스탭들 가운데서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터져 나온다. 나도 그 쪽을 보고 씩 웃어 주었다.
내가 이곳에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 지도 어느 새 삼 년.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여 순수 예술을 하겠다고 큰소리를 치던 내 기가 꺾인 지도 삼 년이 지났다.
삼 년 전, 나는 내 자신 이외에는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예술을 하던 꽉 막힌 예술인들 중 한 명이었다. 나는 내 손끝에서 탄생한 시나리오가 시처럼 아름답고 고상한 언어들로 가득 차 있길 바랐다. 정작 요즘엔 시인들도 그런 아집에 갇힌 언어들을 사용하기를 거부한다는 것을 알게 된 지도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여하튼, 나는 내가 배워 온 모든 것들이 아까워 견딜 수가 없었다. 어깨 너머로 배운 철학이나 심리학 따위로 내 시나리오의 절반 이상을 채워야 직성이 풀렸고, 어쩌다 한 번씩 내 시나리오로 공연을 올리게 되면 무지한 관중들에 대한 분노로 밤새 술을 마셔야 했다.
“연극에 대해, 시나리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내 공연을 보러 오니 당연히 반응이 시원찮을 수밖에 없지!”
연극계에서 꽤나 입지를 굳힌 선배들이 조언이랍시고 내 놓는 대중성에 대한 문제는 도무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네가 관객과 함께 호흡하는 법을 조금만 배운다면 이렇게 힘들어하지 않을 텐데.”
그런 말을 들으면 나는 선배들도 똑같다며 테이블을 뒤엎기 십상이었다.
그러던 나를 바꾼 것이 바로 이 극장에서 우연히 보게 된 마임 공연이었다. 선배들이 하나같이 말하던 관객과의 호흡. 그 날도 모니터의 하얗게 빈 화면 위에서 홀로 깜빡이는 커서만을 바라보다가, 내게는 도무지 알 수가 없는 그 호흡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찾은 극장이 바로 이 곳. 작은 극장 돌체였다.
처음 보는 마임 공연은 내게 있어 충격 그 자체였다. 무대 위의 피에로와 어릿광대들이 펼치는 공연은 내가 그렇게 집착해 왔던 언어의 아름다움을 완전히 무시한 공연이었던 것이다. 한껏 무게를 잡은 채 절규하거나 눈물을 흘리는 비극의 주인공들 대신에 외발자전거를 타거나 저글링을 하고, 마술을 선보이는 광대들로 채워진 무대 앞에서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게다가 공연에 대한 예의를 갖추어 침묵을 지켜야 할 관객들은 여기저기서 손뼉을 치며 깔깔대며 웃고 있었다.
뭐 이런 공연이 다 있나 싶어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찰나, 풍선을 불던 어릿광대 하나가 다가와 내게 풍선으로 만든 꽃을 하나 건네주었다. 아이들이 부러움에 가득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어찌할 줄을 모르고 서 있던 나를 내버려둔 채 어릿광대는 무대로 다시 돌아가 버렸다. 그게 이 극장과 나의 첫 번째 이야기다.
“아니, 어떻게 그런 곳이 다 있어?”
분노가 섞여 있는 내 물음에 선배가 웃음을 터뜨렸다.
“거긴 원래 장애인이나 다문화 가정이나, 아니면 청소년들이 참여할 수 있는 연극도 많이 올라 와. 인천 클라운 마임 축제도 거기서 열리고.”
“대체 비전문가들을 왜 무대에 올려? 전문 연극인들만으로도 어려운데.”
내 물음에 선배는 네가 처음에 왜 글을 쓰겠다고 다짐했는지를 떠올려 보라고 대답했다. 그 순간, 나는 기이한 풍경을 보게 되었다. 시나리오를 쓰는 대여섯 명의 고정 멤버가 한 달에 한두 번씩 모이는 그 술자리에서, 나를 뺀 모두가 아주 즐거운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오직 나만이 세상의 모든 걱정 근심을 다 지고 있는 양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몇 달이 지나지 않아, 나는 내가 쓴 시나리오 한 편을 들고 이 극장을 다시 찾았다. 그 동안 써 온 수십 개의 시나리오를 모두 버렸기에, 나는 이것을 내 첫 번째 시나리오라고 소개했었다.
내 첫 시나리오로 공연이 올라가던 날, 나는 이 극장을 처음 찾았던 날처럼 관객 틈에 앉아 있었다. 이미 정해져 있는 무대 위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동안, 무대와 관객들이 함께 만드는 또 하나의 이야기가 태어나고 있었다.
남자의 걸음에 여자는 자꾸만 뒤쳐진다. 벌써 몇 번이나 천천히 걷자고 했으나 남자의 걸음은 자꾸만 빨라진다. 여자는 헤어짐이 아쉬워 조금 더 같이 있고 싶은 마음에 일부러 느리게 걷고 있는데 남자는 여자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꾸만 재촉이다. 하지만 남자의 속마음은 헤어짐이 아쉬워 좀 더 많은 곳에서 여자와의 추억을 남기고 싶은 것이었다. 이렇게 서로의 속마음이 어긋난 채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얼마나 남았지?”
여자는 남자에게 시간을 물어보았고 남자는 자동적으로 자신의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지만 언제인지 남자의 시계가 멈춰있었다.
“시계 약이 다 달았나보다. 이 근처 시계가 있을 텐데.”
남자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멀리서 은은한 노랫소리가 울렸다. 여자와 남자의 시선은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향했다.
“여기 이런 것이 생겼어? 못 보던 새에 여기도 많이 변했네.”
“그러게. 다른 나라에 와 있는 것 같아.”
남자와 여자는 어느새 아찔한 높이의 시계탑 앞에 도착해있었다. 때마침 카리용이 들려주는 아름다운 선율이 바람을 타고 날아왔다. 여자의 긴 생머리가 바람에 따라 살며시 흔들렸고 여자의 머리카락이 흔들릴 때마다 좋은 향기가 났다. 남자는 문득 이 향기가 그리울 것 같았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시계의 분침이 12를 가리킬 때 남자는 떠나야했다. 둘은 헤어짐을 크게 내색하지 않았다. 이미 수차례 생각하고 고민해서 내린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남자는 잠시 동안만 떨어져 지내는 것일 뿐 영영 헤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여자는 몸이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는 것이 아니겠냐고 답했다. 누구의 의견이 맞는지는 여자도 남자도 몰랐다.
“2년이야. 군대 갔다 생각하고 봐주면 안돼?”
“2년 후면 나 서른다섯이야. 군대 간 남친 기다리는 거 20대도 아니고 못해 난,”
“나 곧 가. 정말 이대로 헤어질 거야? 우리 아직 사랑하잖아.”
“그래. 아직 사랑한다면서 왜 가려는 거야? 그만하자 벌써 이 얘기만 며 칠 째야. 가. 잘 가고 행복했으면 좋겠어. 시간 없잖아.”
여자가 돌아서려는데 카리용의 노래가 절묘하게 멈췄다. 뒤돌아서려는 여자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여자는 남자를 쿨하게 보내주기로 하였기에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애썼다. 그 때 남자가 여자의 팔목을 잡았다.
여자는 팔에 힘을 뺐고 남자는 그대로 돌아섰다.
그렇게 계절이 두 번 바뀌고 각자의 삶속에서 치열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남자는 기계에 몰두하여 밤낮없이 일을 했고 가끔씩 여자를 떠올렸다. 여자를 떠올리는 이유가 단순히 고향을 떠나온 외로움일 것이라 여겼다. 이 또한 지나가겠지라며.
여자도 나름대로의 생활에 바빴다. 주변에서는 얼른 다른 남자를 만나보라고 재촉도 하고 권유도 했지만 여자는 생각이 없었다. 그렇다고 남자를 무작정 기다리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아직 준비가 안 된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남자가 파리의 시계탑 앞에 서있다. 시간은 12시 정각을 가리키고 있었고 여자도 우연히 혜천타워 앞에 서있다. 시계를 보고 있었다. 그날 남자가 손을 잡았을 때를 떠올렸다. 남자가 그리웠으나 별 도리가 없었다.
둘은 그렇게 한참을 그 앞에 서있었다. 그때 익숙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남자의 손에는 인천행 비행기티켓이 들려있었다.
우리 엄마는 해녀입니다. 나는 우리 엄마를 인어공주라고 부르지요. 책에서 나오는 인어공주가 우리 엄마보다 조금 아주 쪼금 더 예쁩니다. 인어공주는 입술은 분홍색, 머리는 빨갛게 물을 들였기 때문일 거예요. 우리 엄마도 화장하면 인어공주보다 백배는 더 예쁠 거라고 생각해요.
나는 엄마의 모든 것이 다 좋지만, 엄마랑 같이 자는 것은 싫어요. 왜냐하면, 엄마는 잘 때 코를 심하게 골거든요. 유난히 코를 심하게 골 때 코를 살짝 막은 적도 있어요. 그래도 엄마는 모르더라고요. 엄마는 왜 늘 숨을 호오이 쉬느냐고 물어본 적도 있어요. 그런 엄마는 해녀들이 물 위에서 숨을 몰아서 쉬는 버릇 때문에 그렇다고 하였지요.
그런데 얼마 전에 엄마는 해녀 일을 그만두셨답니다. 언니가 계속해서 말린 일 때문이지요.
나와 언니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납니다. 언니는 회사에 다니고 나는 아직 초등학생이거든요.
언니는 엄마가 걱정된다며 이제 그만 집에서 쉬라고 했고 엄마도 그동안 많이 힘드셨던 모양입니다. 매일같이 물속에서 지내서인지 귀도 먹먹하고 이제는 물에 들어가면 오래 숨을 참기도 힘들다고 하셨지요. 언젠가 엄마와 잠수놀이를 한 적이 있는데 내가 엄마를 이긴 것만 보아도 엄마가 이제는 숨 참기가 정말 힘든가 봅니다.
언니는 오랜만에 제주에 내려왔으니 맛있는 것을 사주겠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신이나 방방 뛰었지만, 엄마는 그냥 집에 있는 해산물로 매운탕이나 끓여 먹자고 했습니다. 엄마는 바다냄새가 지겹지도 않은 모양입니다. 나는 이제 바다냄새 가득 나는 해산물이면 질리도록 먹어서 치킨이나 햄버거가 더 좋습니다.
언니는 그럼 비싼 회를 사주겠다고 싫다는 엄마를 모시고 횟집에 들어갔고 엄마는 한 상 차려진 음식 중에서 전복과 멍게, 해삼, 성게들을 한참 바라보았습니다. 아마 엄마가 물질을 하면서 매일 따던 것들이라 그럴 것이겠지요. 엄마는 늘 물질하는 것이 힘들다고 했었는데 막상 그만두려니 슬픈 마음이 드는 것 같았습니다.
엄마는 나와 언니에게 많이 먹으라고 하시더니 소일거리로 시내에 수영장에서 물청소를 해볼까 한다고 말했습니다. 언니는 이제 물이 지겹지도 않으냐고 소리를 버럭 질렀습니다. 언니는 이제 집에서 쉬라고 했지만 엄마는 싱긋 웃으시더니 아직 쌩쌩하다고 하셨지요.
"엄마 인생에서 물을 빼놓으면 내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엄마는 물을 떠난 삶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단다. 젊었을 때 처음 물질하면서 숨 참기도 힘들고 수영도 잘 못해서 많이 울었었는데 이 악물고 버텼지. 다 너희들 웃는 얼굴 보면서. 너희들 더 맛있는 것 먹이고 더 좋은 옷 입히고 싶어서…․ 후후. 특히 우리 막내.”
엄마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새우를 까 내 입에 넣어주었고 언니는 말없이 물만 꿀꺽꿀꺽 삼켰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언니는 안방에서 엄마 옛날 사진첩을 보고 있었습니다. 나는 처음 보는 엄마의 젊었을 때 모습이 담겨있었지요. 엄마는 참 예뻤습니다.
검은색 해녀복을 입고 물허벅을 찬 모습으로 브이자를 그리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전복을 한가득 따서 신이 난 엄마의 모습도 보였어요.
엄마는 물속에서 행복해 보였습니다. 물을 떠나면 살 수 없는 인어공주처럼 엄마는 물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당신, 그것 좀 내려놓을 수 없어요?”
한 달 전, 오랜 직장 생활을 마치고 쉬게 되신 아버지는 저녁을 먹자마자 또 통기타를 잡으셨다. 퇴직하신 지 얼마 되지 않아 얼큰하게 취하셔서 집으로 돌아오신 아버지의 등에 난데없이 업혀 있던 바로 그 기타다.
“기억 안 나? 내가 왕년엔 기타로 아주 날렸잖어, 민정이 엄마!”
“그건 왕년 얘기고!”
어머니의 반격에 나는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그 말 그대로였다. 예전엔 아주 잘 치셨다지만, 수십 년 동안 한 번도 기타를 연주한 적이 없는 아버지의 솜씨는 엉망진창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오랜만에 기타를 잡았다는 사실이 마냥 좋으신 모양이었다. 내게 부탁하셔서 MP3에 가곡들을 잔뜩 다운로드 받으신 것은 물론이고, 7080 콘서트 프로그램 시간을 미리 적어두었다가 꼬박꼬박 챙겨보시기도 하셨다.
“어휴, 얘. 난 네 아빠 기타 소리 때문에 죽겠어, 아주.”
말씀은 항상 그렇게 하시지만, 나는 어머니는 아버지가 기타 치는 모습을 바라보시는 것을 은근히 좋아하신다. 젊은 시절의 어머니는 대학 캠퍼스의 잔디밭에서 기타를 치고 계시던 아버지의 모습에 반했다고 하셨다. 옛날 드라마나 소설 등에서 상징처럼 등장하는 바로 그 모습, 바로 흰 티에 청바지를 입고 장발을 한 채로 잔디밭에서 기타를 연주하던 모습 말이다. 문학소녀였던 어머니는 소설처럼 아버지에게 첫 눈에 반했고, 매일 먼 발치에서 자신의 모습을 지켜보는 어머니의 존재를 눈치 챈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거셨다고 했다.
“왜, 낭만적이고 좋은데.”
“다 늙어가지고 낭만은 무슨. 예전처럼 잘 치는 것도 아니고 하루 종일 저걸 듣고 있자니 고역이다, 야. 저 양반, 내일이 결혼기념일이라는 것도 까먹은 건 아닌지 몰라.”
어머니의 말에 나는 정신이 퍼뜩 들었다. 독립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맞는 부모님의 기념일인 만큼, 올해는 꼭 내 손으로 챙겨드리고자 다짐했던 일이 떠오른 것이다.
“여보, 민정이 엄마. 이리 좀 와 봐. 티비에 지금 누군 나오는지 알아?”
나는 들어본 적도 없는 이름이었지만, 어머니에게도 익숙한 이름인 듯 어머니가 텔레비전 앞으로 달려가셨다. 서로 어깨를 기대고 앉아 노래를 따라 부르시는 모습이 정겨워 한참을 바라보고 있다가 나는 무릎을 탁 쳤다.
“대체 어딜 가는 거냐?”
“가 보시면 다 알아요.”
저녁 식사 때 자르실 요량으로 아버지께서 사 오신 케이크를 그대로 조수석에 싣고, 나는 부모님을 모시고 미사리로 향했다. 서울 근교에 라이브 카페촌이 있다는 말을 들은 것이 기억 나 어제 부랴부랴 검색을 해 보았더니, 꽤나 유명한 곳인데다가 생각보다 가까웠다.
서두른다는 것이 예약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해버렸기에, 조정 경기장에 차를 세웠다. 운이 좋으면 모터보트 경기를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데, 오늘은 시간이 맞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잔디밭과 꽃나무로 꾸며진 경정공원과 산책로, 솟대가 데이트코스로는 아주 그만이었다.
나는 아버지 몰래 어머니에게 예약된 카페의 전화번호와 약도를 건네 드렸다. 어머니는 초대 가수의 이름을 듣고는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하셨다.
“네 아버지 알면 아마 여기서 춤을 추실 거다.”
“그럼, 방해꾼은 이만 빠질게요. 한 삼십 분 있다가 이 길 따라서 쭉 걸어가시면 돼요.”
공연이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카페 앞으로 두 분을 모시러 갈 것을 약속한 나는 혼자 자전거를 빌렸다. 공도교까지 이어지는 자전거 도로를 따라 갔다 오면 얼추 시간이 맞을 것 같았다. 한강변을 따라 자전거로 달리는 동안 종종 팔짱을 꼭 끼고 걷는 어르신들이 보였다. 아버지가 즐겨 부르시는 노래 가사처럼, 추억이 흘러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