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오빠! 이번에는 진짜 맛집이라고 했잖아!”
한바탕 화를 내려다 오빠의 허탈한 표정을 보고 그만두었다. 그래, 또 허탕이었다. 국밥 한 그릇 먹자고 부산까지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오빠도 나도 날이 갈수록 짜증만 더해갔다. 사건의 시작은 한 달 전, 부산에 있는 외할머니 댁에 갔다가 그 유명한 서면 돼지국밥을 맛보고 만 것이었다.
오빠의 제대 기념으로 남매끼리 떠났던 기차 여행. 하지만 여행 초반부터 예산을 초과해버린 탓에 하루 종일 차를 타고 이동하다 내려서 사진만 찍는 스파르타식의 여행을 하게 되었다. 부산의 명소란 명소는 다 돌았지만, 배가 고프고 지치니 즐겁지가 않았다.
그 때 내가 묘안을 내 놓았다. 서면에 살고 계시는 외할아버지가 생각 난 것이다. 외할아버지를 깜짝 방문한다면 끼니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고, 어쩌면 용돈도 넉넉히 받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먼저 연락을 드려 볼 것을 그랬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할아버지는 오랜만에 보는 손주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을 정도로 냉장고를 채워 두지 않으셨던 것이다. 곤란해 하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우리도 덩달아 초조해졌다. 할아버지는 고민 끝에 우리를 서면 시장으로 데리고 가셨다. 친구 분께서 하시는 유명한 국밥 집이 있다는 것이었다.
“아이구, 그 꼬맹이들이 벌써 이만큼 큰 거여?”
처음 보는 할머니 한 분이 나오셔서 반갑게 우리의 손을 잡으셨다. 오빠도 나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친구 분께서는 우리가 아주 어렸을 때에는 할아버지 댁의 바로 옆집에 살고 계셨다고 한다. 대여섯 명의 직원들이 있는데도, 그 할머니께서는 우리에게 손수 국밥 두 그릇을 말아다 주셨다.
“순자 그 할망구가 지금까지 살아만 있었어도 이 양반이 여기까지 걸음하진 않았을 텐데 말이여. 그 할망구는 뭐한다고 그렇게 일찍 가 버렸대.”
넋두리 반, 국밥 반이었다. 그 할머니께서는 돌아가신 우리 외할머니와 절친한 사이셨던 모양이었다. 친손자를 보듯 따뜻한 눈길에 마음이 참 편해졌었다. 그런데, 그게 문제가 아니라 그 때 먹은 그 국밥이 정말이지 너무도 맛이 있었다.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말이다.
서울로 돌아온 오빠와 나는 그 때 그 맛을 다시 한 번 보고 싶은 마음에 온 서울의 돼지국밥 집을 다 찾아다녔지만, 번번이 허탕이었다. 새우젓으로 간을 맞추고 다대기와 부추를 넣는 것은 물론 고기 위에 새우젓까지 올려 정석대로 먹었지만, 부산에서 먹은 그 맛이 나지를 않았다.
엄마는 기대에 가득 찬 모습으로 집을 나섰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잔뜩 실망 한 얼굴로 터덜터덜 걸어 들어오는 우리들의 모습이 퍽이나 재미있으신 모양이었다. 평소에도 엉뚱한 일을 많이 벌이기로 소문난 우리 남매지만, 이번엔 유독 별나다고 하셨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오빠는 어디서 구해 왔는지 ‘오늘 밤 고백할게 너와 함께 돼지국밥을 먹고 싶다 부산으로 떠나자’라는 가사의 노래까지 틀고 있었다. 정말 부산으로 가야만 그 돼지국밥을 다시 먹을 수 있는 걸까. 국밥이라 우습게 봤는데 도무지 그 맛을 다시 볼 수가 없으니, 괜한 집착만 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날 밤 엄마는 새벽 내내 부엌을 들락거리셨고, 다음 날 일어나 보니 식탁 위에 돼지국밥이 차려져 있었다. 아마 밤새 돼지 뼈를 삶으신 모양이었다. 집에서 돼지국밥이라니, 이게 웬 일인가 했더니 엄마가 나고 자라신 곳이 바로 부산이었다.
“할머니가 가르쳐 주신 지 하도 오래 돼서, 제 맛이 나려나 모르겠네.”
엄마는 멋쩍으신 듯 웃으셨지만, 우리의 칭찬을 은근히 기대하고 계시는 것 같았다. 오빠와 나는 한 숟갈을 떠먹고는 서로 눈빛을 교환한 뒤 입을 모아 말했다.
“우리가 찾던 그 맛이네.”
솔직히 말하자면, 엄마가 만든 돼지국밥의 맛보다 부산에서 먹은 돼지국밥이 훨씬 더 맛있었다. 그런데 돼지 뼈를 삶고 옮기다 데셨는지 엄마의 검지가 빨갛게 부어올라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돼지국밥 찾기를 그만두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진부한 말처럼, 맛의 비결은 역시 사랑이라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백설공주가 한입 베어 물고 죽음의 문턱까지 이르렀던 독사과. 세 번이나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던 그녀가 또 모르는 사람이 내민 사과를 덥석 받아 물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빛깔이 좋았던 것일까 향이 치명적으로 달콤하였을까? 마녀가 백설공주에게 사과를 내민 것을 아무 의심 없이 받아주었던 것처럼. 그래서 다들 사과를 할 때 손을 내민다고 하나. 손을 내밀면 아니 사과를 하면 받아줄 수밖에 없는 것일까?
승희는 딸에게 명작동화 백설공주를 읽어주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든 것이다. 딸아이가 그 다음 이야기를 말해달라고 보채지 않았다면 그녀의 머릿속은 수만 가지 질문들로 가득 채워졌을지도 모른다.
승희는 정신없이 떠올리던 생각들을 더듬어보았다. 사과를 내민다. 사과를 받아준다. 그것이 백설공주의 목숨을 앗아갈 뻔할 만큼 치명적이든 아니든. 사과하고 싶은 사람에게 정말 사과를 내밀면 사과를 받는 사람도 문득 이런 생각을 하며 받아줄 수 있을까? 유치하다.
삼 년 전 승희와 다툰 그녀의 친구 A와의 일이 떠오른다. 전혀 관계없는 세계 명작 백설 공주를 읽으면서 왜 A가 떠오른 걸까. 그녀와 A는 쌍둥이처럼 생각이 잘 맞곤 했다. 그래서 대학 캠퍼스 시절엔 늘 A와의 추억이 가득했다. 그런 그녀들이 다시는 얼굴을 마주하지 않기로 다짐하던 그 순간, 4년간의 우정이 모래성이 쓰러지듯 한 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하지 말아야 하는 걸 알면서도 승희는 A에게 못된 말을 쏟아 부었고 A도 울부짖으며 다시는 만날 일 없을 것이라며 관계를 끝내버렸다.
둘은 울고 있었고 서로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서로가 서로에게 서운했던 마음이 물밀 듯이 몰아쳐 오면서 폭풍우처럼 상대방의 가슴으로 쏟아져 내렸다. 그 후 승희는 결혼을 했고 귀여운 아이도 낳았다. 간간히 또 다른 친구를 통해 A의 소식을 들었으나 관심 없는 척 했다. A도 승희의 소식을 들었겠지만 감감무소식인걸 보니 그녀의 마음도 아직 인가 보다.
딸아이가 자꾸만 보챘다. 이번엔 밖에 나가자고 하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복잡한 생각들을 했던 승희는 몸이 천근만근이라 나가기 싫었지만 딸아이는 좀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승희는 하는 수없이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볼 심산이었다.
“엄마! 사과다 사과. 오늘 우리가 책에서 읽었지? 사과!”
목요일이었지. 오늘은 우리 동네 장이 열리는 날이다. 딸아이는 그새 과일을 파는 곳을 본 모양이었다. 그리고는 신이 나서 과일아저씨가 하는 말을 흉내 내기 시작했다.
“아주 달고 맛있는 장수 사과입니다. 당도가 높고 몸에 좋은 장수사과입니다.”
승희는 순간 사과를 보내면 A가 받아줄까요? 라는 바보 같은 질문을 던질 뻔했다. 순간 얼굴이 달아오른 승희는 사과 한 박스를 주문하는 걸로 질문을 대신했다.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에 사각사각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아까 시식용 사과를 집어 들더니 여전히 사각사각 잘도 베어 먹는다.
누군가에겐 큰 상처가 될 만한 일을 그런 유치한 사과를 보낸다고 해서 받아줄 수 있을까?
나 같으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받아줄 수 있을까?
사과를 보내본다.
빛깔 좋고 치명적인 달콤한 향이 나는 사과를 받아든 A. 상처가 아물지 않는 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백설공주처럼 한 입 베어 물어본다.
옛날, 어느 마을에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잠잘 때, 밥 먹을 때 빼고는 입을 쉬는 일이 없었다. 목소리는 또 얼마나 우렁찬지 가까이 있으면 귀가 따가울 정도였다. 도대체 어떤 말을 하고 다니느냐. 옆집 똥개가 새끼 낳은 일부터 아랫동네 아낙이 바람난 일, 나라님 흉보기, 어제저녁 밥상의 반찬, 죽다 살아난 할아버지 이야기, 조상님 묏자리까지 인간세상 일은 다 관여하고 다녔다. 남의 일이라면 상대 가리지 않고 이리저리 말을 나르는 탓에 피해 본 사람도 한둘이 아니었다.
하루는 마을 사람들이 훈장님 댁에 모여 앉아 불만을 토로했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 때문에 귀가 따가워 일할 수가 없소.”
“그가 안 해도 되는 말을 옮긴 탓에 나는 아직도 마누라와 전쟁 중이라네.”
“이대로는 안 되겠소. 이제부터 우리 모두 그의 얘기를 들어주지 맙시다.”
그리하여 마을 사람들은 그의 이야기를 듣고도 못 듣는 척했다. 들어주는 이가 없자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마을을 떠날 결심을 했다.
“좋아. 말을 하면서 전국 팔도를 유랑하는 거야. 내가 직접 들을 사람을 찾아서 이야기하고 다니자.”
그는 그렇게 봇짐을 꾸려 여행을 떠났다. 세상은 넓고 말할 사람은 많았다.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말을 지어내고 옮기며 행복하게 몇 년을 보냈다.
전국방방곡곡을 다니던 어느 날,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정동진에 도착하였다.
“풍광이 아름답구나. 신선이 따로 없네. 이제 내 얘기를 들어줄 사람만 있으면 되겠어.”
이야기할 사람을 찾아 바닷가를 걷던 그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하지만 너무 작아 잘 들리지 않았다. 소리를 향해 다가가자, 파도가 바닷가에 선 나무를 향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는 바위 뒤에 몸을 숨겼다.
“그래서 토끼가 용왕님에게 뭐라고 했느냐면…….”
파도의 목소리가 신기하여,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집중해서 듣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파도의 이야기는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이야기보다 재미있는 게 아닌가.
‘아니, 이렇게 재밌는 이야기가 있었단 말이야? 전부 들어 말하고 다녀야지.’
그는 바위에 쪼그려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파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는 난생처음 들어보는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가 다리가 저렸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슬쩍 다리를 펴다가 솔잎을 밟고 말았다.
“어머나, 깜짝이야.”
솔잎의 소리에 놀란 파도가 저만치 바닷속으로 도망쳤다. 그는 파도를 향해 외쳤다.
“파도야. 도망치지 말고 더 이야기해다오. 뒷내용이 궁금해서 자리를 뜰 수가 없구나.”
하지만 파도는 그를 경계하며 말했다.
“안 돼요. 제가 했던 말은 용궁의 비밀이랍니다. 오로지 해안가의 나무만이 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요.”
용궁의 비밀이라니, 더없이 탐나는 이야기였다. 용궁의 비밀을 전국 팔도에 말하고 다닐 생각에 잔뜩 들뜬 그는 파도를 향해 외쳤다.
“내 그 이야기를 위해 기꺼이 나무가 되마.”
그러자 그는 다리가 땅에 박히고 피부는 점점 딱딱해졌다. 손에는 싹이 돋았고 머리칼은 초록으로 변해갔다. 하지만 소나무가 되자 입도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말하는 데에 눈이 멀어 영영 말할 수 없게 되어버린 그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에게 입이 없으니 영원히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는 소나무가 되어 아직도 정동진 해변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다.
때는 백제시대. 어둠이 얕게 깔리고 개구리의 울음소리가 커지던 그 순간 어디선가 발자국 소리가 들려온다. 검은 그림자가 달빛을 받아 더욱 선명하게 드리운다. 휘리릭 소리가 들려오더니 한 여인이 서있는 곳으로 다가간다. 차림새를 보아하니 왕실의 사람은 아닌듯하다.
드넓게 펼쳐진 연꽃 사이에 청초하게 서있는 여인은 왕실의 여인이 아닌가. 고운 비단 옷에 단정하게 빗어 내린 검은 머리카락. 달빛을 받아 더욱 고운 얼굴빛은 희고 여리다.
연못을 가로지르는 다리와 가운데 놓인 정자는 잔잔하게 일렁이는 물빛을 받아 아름답고 아름답게 피어난 연잎은 맑은 이슬을 머금고 있다. 그 가운데에 왕실의 여인이 서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했다. 그 때 검은 그림자가 여인에게로 다가갔다. 여인이 기다리던 사람인 듯했다.
궁남지는 무왕이 신라 진평왕의 딸인 선화공주가 고향을 그리워하여 무왕이 선화공주를 위해 만든 인공정원으로 천한 신분의 사람이 함부로 발을 들일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항상 어둠이 짙게 깔리면 사람들의 눈을 피해 만나온 것이다. 사실 이 둘이 처음 만난 곳도 이 궁남지이다. 그래서 무왕과 선화공주만큼이나 이 둘에게도 이곳 궁남지는 특별한 공간이다.
선화공주는 왕가의 무왕과 함께 이곳에서 달을 보는 것을 즐겨하였으나 왕실의 여인들과 산책하는 것도 즐겼다. 그래서 이 여인도 궁남지를 몇 번 들른 적이 있다. 그러다 선화공주는 궁남지 연못 한가운데에 핀 연꽃이 유난히 아름다워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 했다.
그러나 연못 한가운데에 핀 꽃을 꺾으려면 연못으로 들어가야 했고 신하들도 무르고 나온 터라 꺾어다 줄 사람이 없었다.
그러던 와중이었다.
“마마, 이 연못 근처 마를 팔던 남자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사람에게 꽃을 꺾어달라는 청을 해 보는 것이 어떻겠사옵니까?”
그러자 왕실의 다른 여인이 반기를 들며 말했다.
“아닙니다. 이곳은 저렇게 마를 파는 신분의 천한 사람은 들어올 수 없는 곳이니 그냥 돌아가는 것이 맞는 듯 하옵니다.”
그러자 선화공주가 단호하게 말했지요.
“그런 말 마십시오. 마를 파는 사람이라고 어찌 다 천하다 할 수 있겠습니까. 누군지 궁금하니 이곳에 올 수 있으면 얼굴 한번 보고 싶습니다.”
그렇게 마를 팔던 남자는 궁남지에 들어와 선화공주에게 꽃을 꺾어다 주고 왕실의 여인을 처음 보게 된 것이다.
이 여인과 남자는 백제 무왕과 선화공주를 많이 닮아있었다. 그만큼 신분을 초월한 사랑은 이루어지기기도 힘들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래서 둘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몰래 이곳에서 사랑을 키워나갔다. 진흙과 닮은 남자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난 아름다운 연꽃을 닮은 여인.
무왕과 선화공주의 사랑과 닮은 이 둘의 사랑도 둘처럼 아름답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가?
봉화마을의 깊고 깊은 숲 속 작은 연못이 있었어. 이 작은 연못에는 아름다운 빛깔과 향기를 자랑하는 은어가 살고 있었지. 그리고 작은 연못 옆에는 오래된 소나무 한그루가 있었어. 늘 푸름은 간직하는 소나무 밑에는 작은 송이 하나가 있었지.
은어가 처음 작은 연못에 살게 되었을 땐, 숲 속의 맑은 공기와 작은 새들의 노랫소리 그리고 무엇보다 맑은 물에 사는 친구들과 지낼 수 있다는 것이 매우 좋았어. 그렇게 매일 친구들과 유유히 헤엄치며 숲 속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지냈지. 그런데 물이 너무 맑아서 그런지 연못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에 너무 잘 띄게 되었어. 그래서 친구들과의 이별도 잦아지게 된 거야. 은어는 이곳의 생활이 점점 지겨워졌어. 맑은 물과 친구들 그리고 숲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재미가 없어진 거야.
그런데 연못 옆에 있는 오래된 소나무 옆에 살고 있는 작은 송이도 이 숲 속 생활이 지겨워 진 건 마찬가지였어. 늘 소나무 옆에서 소나무의 수다를 들어야 했기 때문이야. 그리고 자신의 고유한 향이 강하여 숲 속 동물들에게 놀림을 받기도 하였지.
그렇게 은어와 송이는 점점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에 싫증이 나기 시작했어. 그래서 은어는 송이와 함께 다른 마을로 떠나기로 했어. 소나무는 친구를 떠나보내는 것이 슬펐지만 송이를 보내주기로 했어.
그렇게 다른 마을로 여행을 떠난 은어와 송이는 어느 날 작은 냇가에서 미꾸라지 친구를 만나게 되었어. 미꾸라지는 헤엄을 치며 맑았던 물을 흙탕물로 만들어 자신을 숨기곤 했지. 그 모습을 본 은어는 너무 부러웠어. 사람들 눈에 띄지도 않고 마음껏 헤엄칠 수 있었기 때문이야. 그래서 은어는 미꾸라지와 함께 이곳에 남기로 했어.
혼자 남은 송이도 또 다른 친구를 찾아 계속해서 길을 나섰어. 그러다 정말 멋진 사과나무를 발견하였어. 사과나무는 향긋한 향기와 넓은 그늘을 만들어 주었지. 송이도 사과나무 옆에서 살기로 마음먹었어. 그렇게 봉화를 떠난 은어와 송이는 새로운 친구들과 함께 새로운 삶을 꾸려나갔어.
송이는 냇가 흙탕물에서 미꾸라지와 함께 마음껏 헤엄을 쳤지. 그런데 맑은 물에서만 살던 은어는 흙탕물에서 사는 것이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어. 아름답던 황갈색의 빛깔은 점점 어두워져 가고 빛나던 지느러미도 축 늘어져 볼품이 없어졌지. 이런 상황은 송이도 마찬가지였어. 늘 소나무 밑에서 소나무의 영양분을 받고 살아가던 송이에게 사과나무는 아무런 영양분을 줄 수 없었어. 그래서 향은 물론 수분도 사라지며 점점 말라가기 시작하였어. 그리고 사과나무는 송이 말고 친구들이 너무 많았어. 그래서 송이는 늘 외로웠지. 소나무처럼 자신만을 바라봐주길 원했지만 사과나무는 그렇지 않았어.
그렇게 은어와 송이는 봉화에서 살던 기억을 그리워하게 되었지. 그리고 은어와 송이는 봉화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었어.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은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거든,
은어와 송이는 그렇게 자신이 있어야 할 공간을 벗어나 다른 삶을 살다 보니 아름다운 빛깔과 고유의 향을 잃어버렸지. 그래서인지 좀처럼 동물 친구들 모두 은어와 송이 보고 아름답다고 하지 않았어. 봉화에 있었을 때에는 연못이나 소나무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자신들을 보고 기뻐하고 아름답다고 했었거든. 은어와 송이는 더는 아름답지도 향기가 나지도 않는 자신들이 볼품없다고 생각되었어. 그래서 다시 봉화로 돌아가게 된 거야.
봉화의 작은 숲 속은 여전히 맑은 공기가 가득했고 물은 투명하게 반짝였어. 새들은 작은 소리로 노래를 했고 동물친구들은 즐거운 이야기를 늘어놓았지. 작은 연못의 친구들은 다시 돌아온 은어를 반갑게 맞이했고 소나무도 다시 돌아온 송이를 반갑게 맞아주었어.
그렇게 맑은 물에 지내게 된 은어는 빛깔과 윤기를 되찾게 되었고 송이도 소나무의 영양분과 사랑을 받고 아름다운 향을 퍼뜨리게 되었어.
동물친구들은 아름다운 빛깔과 향을 내는 은어와 송이를 아름답다고 이야기해주었고 은어와 송이를 보기 위해 봉화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었어. 그래서 은어와 송이는 어떻게 되었냐고? 은어와 송이도 자신을 아름답게 만드는 작은 숲 속의 삶에서 행복을 되찾게 되었다고 해.
팔이 아파 펜을 내려놓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가을 하면 딱 떠오르는 건 높고 맑은 가을 하늘인데, 왠지 며칠 째 날씨가 우중충했다. 그래도 바람에 단풍잎 한 장이 날려 오는 것을 보니 가을은 가을이다.
이직을 앞두고 몇 달 간, 일을 쉬게 된 나는 이 며칠 동안 편지를 썼다. 마치 동물원의 오래 된 노래처럼, 그리고 동물원의 노래를 들으면서 말이다.
대학을 졸업한 뒤 바로 취업을 해서 쉴 새 없이 일만 한 지 어느덧 삼 년. 친구들은 다 서울에 취업을 했지만, 나는 이사한 집 근처에 취직을 했다. 일을 하랴 저축을 하랴 주말에는 부쩍 건강이 안 좋아지신 어머니의 병간호를 하랴, 그야말로 정신이 없었다. 친구들은 잘도 놀러 다니는데 나만 왜 이렇게 바쁘게 살아야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내 나름대로 장녀의 책임을 다 하고 있는 것이 뿌듯하기도 했다.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것이었다. 친구들과 즐겁게 술잔을 기울이며 속 얘기를 털어놓은 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았다. 만나지를 못하다 보니 연락이 뜸해지는 것도 당연지사. 서운하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가끔, 간절곶에서 보았던 소망 우체통이 생각났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해가 빨리 뜨는 곳이라 해서 찾아간 간절곶이었지만,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소망 우체통이었다. 사람 키보다 훨씬 더 큰 그 우체통을 보며 나는, 저 안에는 얼마나 많은 사연들이 담겨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 머릿속에 차 있는 이 그리움들을 모두 보내려면, 역시 그 우체통에 찾아가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문구점에 가서 편지지 몇 묶음과 펜 한 세트를 산 것이었다. 그날 저녁부터 나는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오랜만의 조우는 특별해야 했다. 휴대전화를 통해 께적께적 내 소식을 알리고 싶지 않음이 첫째요, 인간관계에 조금은 진지해져 보고 싶은 마음이 둘째였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의 네 권의 졸업앨범을 모두 펼치고, 편지를 쓰고 싶은 사람들의 이름과 주소를 편지봉투에 옮겨 적었다.
초등학교 때의 친구가 세 명, 중학교 때의 친구가 다섯 명, 고등학교 때의 친구가 열한 명, 그리고 대학교 때의 친구가 열일곱 명. 손을 꼽아 몇 명인지를 세며, 세월이 흐르면 잊혀 진다는 게 이런 것일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유경이에게. 안녕, 나 신윤지야. 나이를 두 배는 먹었으니까 내가 기억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사학년 때 네 짝이었던, 빨간 실내화 가방 주인 말이야…….’
‘민지에게. 안녕, 나 윤지야. 난 아직도 우리 학교 앞에 있던 떡볶이 아주머니의 얼굴이 기억 나. 혹시 아직도 그 가게가 있니? 너랑 다시 그 곳에 가고 싶다. 내 사춘기 때의 기억들은 다 거기에 있어…….’
‘윤수에게. 안녕, 나 윤지! 잘 지내지? 고등학생 때에는 그렇게 날 쫓아다니더니, 연락이 없는 걸 보니 대학 가서 예쁜 여자 친구라도 생겼나봐? 하긴, 지금 생각해보니 너도 꽤 인기가 있었지. 하지만 그래도 넌 내 친구야, 그냥 친구. 네 동생도 이제 대학생이겠구나. 어렸을 때 진짜 귀여웠는데…….’
‘현경이에게. 야! 어떻게 이 년 동안 연락이 없을 수가 있어? 얼굴도 잊어버리겠다야. 내가 그 동안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알기나 해? 나 이제 쉬어. 그러니까 이거 받으면 빨리 전화 해. 내가 이미 너희 집 앞에 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긴장하고. 아, 그리고 언제 한 번 같이 윤 교수님 뵈러 가자. 윤 교수님이 우리 진짜 예뻐하셨잖아. 설마 벌써 다른 애제자가 생기신 건 아니겠지? 그럼 진짜 서운할 것 같아…….’
편지를 쓰며 나는 예상보다 많은 후회를 했고, 예상보다 많은 그리움을 느꼈다. 편지지 한 장씩에 꾹꾹 눌러 담은 기억들만큼이나 말이다. 마지막 편지에 마침표를 찍으며, 나는 대나무밭에서 목청껏 소리를 내지른 이발사처럼 후련해졌다. 내 앞에, 못 다한 이야기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봉투 하나하나를 밀봉해가는 동안, 흐린 가을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내일은 소망 우체통에 간다.
남자는 언젠가 여행지에서 뿌리가 얽혀있는 괴기한 나무를 떠올렸다. 그 나무는 가여울 정도로 뿌리가 훤히 드러나 있었고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뿌리를 밟고 다녔다. 그렇게 뿌리를 드러내고 있는 나무를 본 뒤로는 가로수 길이나 공원에 뿌리가 드러난 나무는 슬쩍 돌아가거나 슬쩍 흙으로 덮어 주곤 했다.
남자에게 내릴만한 뿌리는 없었다. 교과서에 나오는 족보나 성씨, 가문 등의 이야기는 꽤나 먼 과거의 이야기로 여겼을 뿐 더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에게도 이름이 있었으나 그는 이름은 그저 name. 그러니까 견출지에 붙어있는 식별 가능하기 위해 세워둔 표식 정도로만 여겼다. 이름의 뜻은 물론 성에 대한 집착도 하지 않았다. 남자의 이름은 송태식이였다. 남들은 그를 송씨 혹은 태식씨라고 불렀고 남자도 그에 별다른 의의가 없었다.
그는 어릴 적부터 동네 고아원에서 자랐다. 원장님 말로는 잠시 위탁식으로 맡겨 둔 것이었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하도록 부모는 나타나지 않았고 원장님은 그저 둥지에서 자식들을 떠나보낼 뿐이었다. 원장님이 혹시나 해서 맡겨두실 때 남겨놓은 주소와 부모님의 이름을 알려주셨지만 고아원을 나와서도 그는 부모님을 찾거나 연락을 하지 않았다.
남자는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기술을 배웠다. 홀몸이라고 해도 입에 풀칠은 해야 했기에 짬짬이 아르바이트를 병행해가며 열심히 일을 했다. 태식은 열심히 일 한 대가로 집도 장만하고 남들처럼 윤기 좔좔 흐르는 양복도 몇 벌 장만하였다. 태식은 어렸을 때 돈을 많이 벌면 꼭 그렇게 양복을 사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그런 태식도 어느덧 나이가 서른 즈음에 들어섰기에 주변에서 선자리가 많이 들어왔고 한 여자를 만나게 되었다. 서로 호감을 가지며 몇 달을 만났고 드디어 여자의 집에 처음으로 인사를 가게 되는 날이었다.
남자는 자신이 가장 아끼는 양복을 하나를 꺼내 입고 머리까지 단정히 손질했다. 비록 옆에서 챙겨줄 식구는 없었지만 모자라는 것 없이 반듯하게 자란 그였다. 그런데 그것이 남자를 혼란에 빠뜨릴 첫 단추가 될 줄은 몰랐다.
“처음 뵙겠습니다! 송태식이라고 합니다. 어머님, 아버님.”
꽤나 당차고 씩씩하게 첫 인사를 나눈 그는 여자의 부모님을 처음 대면했다. 부모가 없이 자란 그라 그는 집 안에 부모님이 있는 따뜻한 가정에 약간을 이질감을 느꼈으나 불편하지는 않았다. 그저 처음 가보는 집이라 그런 것이라 생각할 뿐이었다.
“반갑네. 여기 좀 앉게. 그래. 송태식이라고. 이름이 참 멋있군 그래. 무슨 뜻인가? 아니지 송씨면 여산 송씬가? 아님 은진 송씨? ”
남자의 등줄기에서는 돌연 식은땀이 주륵 흘러내렸다. 뜻하지 않은 질문이었고 자신도 답을 할 수 없는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여자친구가 태식의 부모님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 저 그게. 실은 어릴 때 고아원에 맡겨져 지금까지 쭉 혼자 지냈습니다. 아버님. 그래서 이름만 원장님께 들었을 뿐 가문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태식은 조금 풀이 죽었다. 당차던 목소리도 어느새 말끝이 흐려졌고 처음으로 부모에 대한 생각과 말을 내뱉고 있음에 자신이 없었다.
“그런가. 음. 그렇구만. 그럼 그 이름은 누가 지어주신 줄도 모르고? 혹시 원장님이라는 그 분이 그냥 지어주신 게 아닌가?”
그러자 과일을 깎고 계시던 여자의 엄마가 옆구리를 꼭 찔렀다. 한순간에 분위기는 냉랭해졌다. 그래도 차려주신 저녁밥까지 먹고 나오는 배짱을 보였으나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 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혼란스러웠다.
그날 이후 남자에게 자신의 이름 그리고 부모에 대한 물음표가 항상 드리워져 있었다. 몇 번이고 자신의 이름을 되뇌어 보기도 했고 그 자리에서 그냥 아무런 송씨나 댔더라면 그렇게 싸늘한 저녁식사를 하지는 않아도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남자는 매사에 당당하게 살았으며 고아원 출신이라고 해서 특별히 기가 죽은 적도 없었다. 물론 여자네 부모님의 반응도 아주 이해를 못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크게 실망하지도 않았다.
남자는 아주 잘 열어보지 않던 수첩을 하나 꺼내었다. 거기에는 옛날 고아원을 나올 때 원장님께서 적어주신 부모님의 이름과 주소가 적혀있었다. 아주 오래전 주소이기에 이사를 가셨겠다라고 생각했지만 어쩐지 마음이 크게 울렁거렸다.
남자는 그날 이후 다시금 얽힌 뿌리를 훤히 내놓고 있던 나무가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요즘 시에서 가장 크게 투자를 하고 잘 꾸며 놓았다고 소문난 뿌리공원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쩐지 그곳에서는 뿌리를 내놓고 있는 나무들이 많이 있을 것만 같았다. 주말에 뿌리공원을 찾은 그는 꽤나 넓은 공원을 천천히 걸었다. 나무들은 단장이 되어 깔끔한 차림을 하고 있었으며 넓은 공원엔 저마다 어떤 비석이 있었다. 족보박물관 앞에 선 순간 남자는 문득 여자 친구 댁에 인사갔을 때를 떠올렸다. 송태식, 자신의 이름을 되뇌며 말이다.
그리고는 낡은 수첩을 들여다보며 자신의 아버지 이름을 들여다보았다. 송현식. 남자는 불현 듯 자신도 뿌리를 내려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드디어 뿌리를 내릴 곳을 찾았다는 중얼거림과 함께.
차마 그리움을 말로 다 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사람들은 의례적으로 어떤 장소를 찾아가곤 한다. 그곳에서 보고 싶은 사람의 흔적을 더듬어보기도 하고 음성을 떠올리며 추억의 끝을 걸어보곤 한다. 항상 후회는 무언가 지나고 난 후에 스며드는 것이라 했던가. 준서는 문득 부모님을 만나러 그곳에 간다.
그곳은 늘 조용했다. 먼발치에서 동그랗고 작은 무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약간 허무하기도 했다. 두 분이 나란히 사이좋게 누워계시는 곳이지만 준서의 눈에는 잔디가 무성한 작은 언덕으로 보였으니 말이다.
맨손으로 무덤가에 자란 잡초를 몇 개 뜯으며 말했다.
“어머니 아버지 저 왔어요. 저 준서 왔어요.”
혼자서 이야기 하는 것이 어색한 것인지 듣는 사람이 눈앞에 보이지 않아서인지 준서는 퍽 어색해했다. 마치 연극무대에서 독백을 하는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준서는 부모님이 살아계셨을 때 부모님과 제법 자주 마찰을 빚었다. 그래서일까 준서는 꽤 긴 방황을 했고 준서의 부모님도 많이 지쳐있었다. 외아들이라 오냐오냐 곱게만 자랐을 것 같다는 다른 사람의 시선과는 다르게 준서의 부모님은 꽤 엄하셨다. 교수였던 아버지는 아들의 방황이나 조금의 일탈도 용납하지 않으셨고 그럴수록 준서는 더 엇나가기만 했다. 아버지의 기대에 못 미친다는 생각과 어머니의 방관은 준서를 더욱 힘들게 했다.
준서는 차라리 이럴 거면 부모님이 없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물론 그런 생각을 품었다는 것이 몇 년 후 뼈저리게 아픈 말로 남을 줄은 준서도 몰랐을 것이다.
종이컵에 소주를 조금 따르고 절을 올렸다.
“저 곧 결혼해요. 듣고 계시죠? 좋은 사람이에요. 저한테도 잘해주고 마음도 넓어요. 저 이런 유별난 성격 다 받아주는 사람이면 어머니 아버지도 이 여자 인정해주실 거라 믿어요. 부모님 없이 결혼한다고 생각하니까 문득 서글퍼져서 이렇게 찾아왔어요.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이렇게 여기 누워계시니까 정말이지 그 때는 바보 같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결혼을 하고 아이도 태어나면 부모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까요?
사실 전 아버지처럼은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어요. 늘 어머니를 외롭게 만들었으니까. 그런데 지금 이렇게 옆에 나란히 누워 손 잡아주고 계시죠?”
준서는 부모님이 가지런히 누워계신 이곳을 자주 찾지 않았었다. 옛날에는 삼년상이라고 해서 부모가 돌아가신 후 3년 동안 낳아주시고 키워주신 부모에 대한 효를 다하고자 여막에 거처하며 아침저녁으로 식사를 올리고 호랑이한테 잡혀가서도 묘성을 쌓기 전까지 죽을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하였다던데 준서는 어쩐지 이곳이 낯설었다.
이렇게 부모님께 푸념 아닌 푸념을 늘어놓는 것도 새삼 놀라울 일이었다.
곧 결혼을 하고 부모가 될 준비를 해서일까 준서는 새삼 부모님의 곁이 그리웠다. 호통을 쳐도 쓴 소리를 해도 좋으니 곁에만 함께 있어주기를 바랐다.
산소에 오기 전 준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부모님께 올리는 편지를 썼다. 어버이날에도 써보지 않았던 서툰 편지로 준서는 부모님께 편지를 썼다.
그리고 산소 앞에 조심히 편지를 놓아두었다. 썼다 지웠다를 반복한 편지였지만 어느 때보다 진지하고 진실 된 편지였다.
편지를 놓아두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왠지 부모님과 깊은 대화를 나누고 온 기분이었다. 그리고 낯설 것만 같았던 이 길이 낯설지 않았던 것처럼 다시 이곳을 찾고 부모님을 뵐 때도 낯설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