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탕의 품격
- 전라남도 나주시 -
영산강이 흐르는 이 도시는, 남쪽의 서울이라 할 만큼 번성했던 곳이라고 합니다. 지리적인 여건도, 인재도 풍부했던 이 도시는 바로 전라남도 나주입니다. 모든 것이 풍요로웠던 이곳은 물론 먹거리도 번성했는데요, 특색 있는 음식이 많이 발달하기로 유명한 곳입니다. 전라도 특유의 먹거리인 홍어를 비롯해 바다와 강이 만나는 곳에서 잡히는 구천포 장어까지! 하지만 우리에게 더욱 가까운 음식이 있다고 하는데요! 오늘의 <트래블아이>미션은 ‘풍요로운 서민의 맛을 느껴라!’입니다.
늘 쉽게 보던 하얀 국물이 아니다. 투명한 듯, 신비로운 색을 가진 국물과 그릇 가득 들어찬 고기. 이것에는 특별한 맛이 있다.
“이제 바로 ‘나주곰탕’이야. 간단한 반찬과 밥, 국이 전부인 밥상이지만, 이 소박한 상에는 사실 품격이 담겨있어.”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나주곰탕거리에 있는 식당 곳곳마다 길게 늘어선 줄을 보니 나주곰탕의 명성을 알 것 같아!”
전라남도에서 가장 널리 보급되어 서민들에게 자리 잡은 육류문화가 바로 ‘나주 곰탕’이다. 그들에게 있어 이 나주 곰탕은 어떤 의미일까?
“국물 맛이 베어서 달짝지근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인 걸? 그런데 이렇게나 많은 고기를 넣어 만든 음식이 서민의 음식이었다니 정말 놀랍지 않아?”
“그런 나주에서 20여 년 전, 나주의 5일장에서 팔기 시작한 이 나주곰탕은 점점 그 기세를 키워 이제는 나주의 대표음식이 된 것이지!”
옛날의 나주 곰탕은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었다고 한다. 소를 잡고 나온 내장과 고기로 육수를 내었던 국밥을 팔았던 것이라고 하는데?
“곰국은 원래 양반가의 음식 아닌가? 고기가 귀했던 옛날에 이렇게 좋은 고기가 들어간 음식이 어떻게 서민들에게 널리 알려졌을까?”
“예로부터 주변의 곡창지대에서 벼농사를 지을 만큼 비옥한 곳이었어. 그러다보니 소사 흔하고, 고을 아치들이 즐겨 찾는 음식이 바로 곰탕이었다고 해.”
나주 곰탕은 좋은 고 기인 사태와 양지머리 살을 통째로 넣고 마늘, 양파 등을 함께 넣어 오래도록 끓인 육수를 사용한다. 하지만 또 다른 맛의 비밀이 있다는데?
“약간의 기름이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 떠 있고, 부드럽게 넘어가는 국물 맛은 대체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그저 고기와 야채만으로는 안 될 것 같은데…”
“하지만, 이렇게 부드러운 고기가 더 놀라워! 익힌 소고기는 질기기 마련인데, 결을 따라 얇게 찢거나 썰려 나온 고기의 식감이 부드럽기까지 하니. 나주 곰탕은 정말 독특해!”
너무 짜지 않고, 그렇다고 싱겁지도 않은 짭짤한 맛의 국물 맛! 나주 곰탕에서 사용하는 소금은 조금 특별하다.
“나주 곰탕에 사용하는 소금은 3년을 묵혀 간수가 모두 빠진 것이라고 해. 귀찮은 과정이지만 그 맛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끊이지 않는 것이지.”
“아무리 많은 양을 끓이고, 많은 사람들이 스쳐가도 변하지 않는 맛의 비결을 끝없는 노력과 반듯한 의지 때문이구나! 또 다시 오더라도 변하지 않은 맛을 느낄 수 있겠지?”
서민의 음식이라서 그럴까? 나주 곰탕 거리 어딜 가나, 나주 곰탕과 함께 오르는 찬은 김치와 깍두기가 전부이다.
“왜 나주 곰탕과 함께 올라오는 찬은 김치와 깍두기가 전부일까? 더 많은 찬이 나오는 전라도의 한식과 비교되는 것 같아.”
“하지만, 나주 곰탕 자체가 가진 영양과 풍부한 맛 때문에 다른 찬이 생각나지 않는 것도 있어. 국물에 만 밥과, 고기, 국물을 한 수저에 떠 깍두기와 먹으면, 정말 최고의 맛이지!”
그저 고소한 맛이 나는 독특한 국물. 고기가 가득하고 야채라고는 김치뿐인 이 밥상. 부족해 보이지만, 이 건강한 맛은 대체 어디에서 느껴지는 것이지?
“나주 곰탕은 성장기 어린이들에게 정말 좋다고 해! 양질이 지방과 단백질, 게다가 함께 우리는 쇠뼈의 칼슘이 있으니 그럴 만도 해!”
“뿐만 아니라, 야채로 함께 국물을 내고, 또 조미료가 일체 첨가되지 않은 이 나주국밥은, 어른들의 건강에도 더 없이 좋은 음식이야!”
이 나주 곰탕 골목의 한 식당에서 만들었다는 말도 있고,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오는 음식이라는 말도 있다. 과연 언제부터 먹기 시작한 것일까?
“나주국밥의 유래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20년 전, 서민들을 위해 장터에 나왔던 그 맛 그대로 이어져 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아.”
“맞아. 나구 곰탕의 이 유명세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 같아. 이 맛을 잊지 못하고 다시 나주를 찾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면 말이야!”
남도음식의 본고장이라 불리는 나주에는 아직도 수많은 음식들이 유명세와 함께 이어져오고 있답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나주의 이름을 그대로 간직한 나주곰탕은 입소문을 타더니 점차 유명해서 방송에 까지 출연하는 스타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맛과 변함없는 정성은 나주 곰탕의 진가를 제대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뽀얀 국물과 야들야들 삶아진 고기 한 점에 밥 한 술 떠보시지 않겠어요? 나주 곰탕의 진가는 여러분이 직접 찾기 전에 알 수 없을테니까요!
기차야, 다시 달려라!
- 경기도 의왕시 -
더 이상 ‘칙칙 폭폭’라는 소리를 내며 달리지는 않지만, 기차역에만 서면 왠지 모를 설렘이 느껴지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버스는 너무 느리고, 자동차는 너무 비좁으며, 비행기는 너무 빠르니 여행에 가장 좋은 교통수단은 기차일 것입니다. 어린 시절 엄마 손을 잡고 탔던 기차만큼 짙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도 흔치 않을 텐데, 사이다 한 병에 삶은 계란, 혹은 김밥 한 줄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다면 오늘의 미션을 수행하기에 딱 알맞은 분일 것 같습니다. <트래블아이>가 권하는 오늘의 미션, ‘기억 속의 기차를 찾아라!’
철도박물관은 1988년, 용산의 철도 기념관을 모태로 하여 개장했다. 증기 기관차부터 전동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델의 열차 실물이 이곳에 모여 있다는데?
“저 간판을 좀 봐. 역장과 기관사, 안내양 언니의 얼굴까지 새겨져 있어. 모두 내 기억 속 모습 그대로야. 웃고 있는 모습들이 즐겁다기보다는 참 아련해 보이는구나.”
“저도 여행을 갈 때 종종 기차를 타곤 하는데, 아주 어렸을 때 갔던 가족여행처럼 정겨운 모습은 찾기 힘든 것 같아요. 오늘 제 추억 속의 기차도 찾을 수 있을까요?”
박물관 입구에서 건물까지 이어지는 길은 철골로 만들어져 있다. 푸른색이 칠해진 이 철골 길을 걷다 보면 저도 모르게 추억이 떠오른다.
“조금만 천천히 걷자꾸나. 아주 느린 기차를 타고 다리 위를 건너는 것 같아.”
“아직 박물관에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추억에 젖으신 것 같아요.” “그럼. 내가 어떻게 이 풍경을 잊을 수 있겠니. 산으로 들로, 기차가 달리는 것을 보며 얼마나 황홀해 했는지! 내가 어렸을 때에는 기차를 탄 게 큰 자랑거리였단다.”
실내 전시실에 들어서자마자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정면에 놓인 커다란 모형 증기 기관차. 실제 차량은 아니지만, 상상력이 샘솟는다.
“어렸을 때 보았던 만화, <은하철도 999> 속의 바로 그 열차예요! 만화 속의 그 열차에 얼마나 타고 싶던지! 경적도 울릴 수 있는 바로 그 열차 맞지요?”
“맞아. 바로 그 열차야. 저쪽에 달리는 증기 기관차의 정면 모습은 꽤 압도적인데? 앞에 서 있으니 얼른 비켜서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실내 전시실에서는 세월이 따라 변해가는 기차의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증기 기관차인 팟휭빌리부터 디젤 전기 기관차에 이르기까지!
“기차의 변천사를 보고 있으니 시간 여행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난 철도 건널목 모형이 참 마음에 드는구나. 지금도 지방에서는 많이 볼 수 있는 모습이지만, 저것도 곧 사라져버리지 않을까? 발전은 좋은 일이지만 이런 때에는 조금 씁쓸해.”
“그런 생각은 못 해 봤어요. 다음에 철도 건널목을 보면 기념사진을 찍어둬야겠네요.”
철도박물관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 철도 모형 파노라마 실. 운영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미리 확인해 보고 가자. 이곳에서는 그야말로 추억이 달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데?
“기차가 하나 둘씩 달리기 시작해요! 정말 멋진데요? 우리나라의 철도 역사가 바로 이곳에 있군요! 야경도 정말 멋져요. 밤기차로 여행을 떠나고 싶어요.”
“아까 내가 했던 말과 비슷하구나. 저 기차도, 이것도 이제 사라져버린 기차구나. 달리는 모습을 보니 좋은데? 이곳은 잊어버린 것과 잃어버린 것들을 한 번에 만날 수 있는 곳이야.”
실외에는 여러 기차들의 실제 차량들이 전시되어 있다. 증기 기관차 뿐만 아니라, 대통령 전용 열차까지 없는 것이 없는 진기한 보물창고!
“빨간색에 노란색, 초록색까지! 이 알록달록한 기차들이 한 번에 달린다면 정말 진풍경일 것 같아요. 아까 철도 모형 파노라마 실에서 보았던 것처럼 말예요!”
“몇몇 열차를 제외하고는 모두 타 본 것이구나. 모처럼 철도 박물관에 왔으니, 철로에 누워 사진이라도 찍어볼까? 철도 박물관에서가 아니면 평생 못 해 볼 일이니 말이야!”
2000년에 비둘기호가 사라졌고, 개통 당시에는 초특급 열차였던 통일호도 2004년에 자취를 감추었다. 젊은 층도 비둘기호와 통일호라면 타 본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둘 다 저도 들어본 적이 있어요. 없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기차인가 봐요.” “맞아. 너 어렸을 때 탔던 열차가 바로 비둘기호란다. 완행열차라 가족여행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었지. 강촌으로 여행을 갈 때에는 경부선 열차인 통일호를 많이 타곤 했지.”
“아, 기차인데 왜 이렇게 느리냐고 했던 그 열차가 바로 비둘기호군요!”
철도 박물관의 가장 인기 있는 포토 존도 바로 이 실외 전시장에 있다. 경례를 하고 있는 기관사의 모습으로 사진을 찍었다면, 기관석에 올라 기관사가 되어보라!
“이 열차는 실제로 타 볼 수도 있어요! 기관석까지 연결되어 있는데요? 기차 운전 한 번 해 보고, 객실에 잠시 앉아 있다 갈까요?”
“그러도록 하자. 둘 다 아주 좋은 추억이 되겠구나. 자, 네 마음대로 기차를 운전 해 보렴. 너 어렸을 때에는 장래 희망이 기관사였단다.”
철도 박물관은 찾는 사람들 중에는 지식을 쌓기 위해서가 아니라 추억을 되새기기 위해 온 사람들이 많습니다. 지금도 기차는 우리나라 구석구석을 달리고 있다는 사실이 사라진 기차에 대한 그리움을 더 커지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철도 박물관은 기차를 좋아하는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기차 여행에 추억을 가진 모든 연령층의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지요. 철도 박물관에 다녀왔다면, 곧 사라져버릴지도 모르는 우리 주변의 장소들에서 기념사진을 한 번씩 찍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바우덕이와 신명나게 놀아보세!
- 경기도 안성시 -
주문한 사람의 마음에 꼭 맞는다 하여 탄생한 ‘안성맞춤’이라는 말은 바로 안성유기에서 비롯됐습니다. 이 말이 시작된 곳도 단연 경기도 안성입니다. 이곳은 조선시대의 대표 놀이 문화인 남사당의 발상지이기도 합니다. 뛰어난 예술가들이 많이 모여 있는 안성의 특색을 나타내기라도 하듯, 너리굴마을과 미술관, 입사박물관, 아트숍, 조각공원 등 온갖 전통공예 체험전시시설도 갖추고 있습니다. 자연 속에서 만나는 문화와 예술`을 고스란히 감동으로 만들어줍니다. 오늘의 미션입니다, ‘안성의 전통과 어우러져 신명나게 놀고 오라!’
남사당은 조선 후기에 장터와 마을을 떠돌아다니며 곡예와 춤, 노래 등의 다양한 공연을 펼쳤던 집단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대중연예집단이다. 좀 더 자세히 들어볼까?
“남사당은 40명이 넘는 집단이었다고 해. 남사당패에 처음 들어갔을 때의 바우덕이는 고작 여섯 살이었다고 하니, 얼마나 다양한 연령층이 포함되어 있었을지 짐작이 가니?”
“영화 <왕의 남자>에 나왔던 광대패들이 바로 남사당인가요? 외줄을 타는 모습이 아주 멋져 보였는데, 그걸 여자가 해냈다니 조선의 시대상을 고려해보았을 때, 정말 대단하다.”
바우덕이의 본명은 김암덕으로 안성의 가난한 소작농의 딸이었다. 집안 형편 문제로 불당골 남사당패에 맡겨진 바우덕이가 열다섯 살에 남사당패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바우덕이는 이른바 천재였다고 해. 풍물놀이뿐만 아니라 버나, 살판, 어름, 덧뵈기, 덜미까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고 한단다. "
"성격도 호탕하였던 바우덕이는 남자들과 어울리며 리더십을 키웠는데, 불당골 남사당패보다 큰 안성 남사당패에 들어갔을 때에는 이미 전국적인 유명 인사였다고 해. 그래서 만장일치로 안성 남사당패의 꼭두쇠가 된 거지.”
고려 공민왕 때 나옹화상이 불도를 일으킬 절터를 찾아다니다가 이곳에서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청룡을 보았다는 데서 유래된 청룡암. 이곳이 남사당패와도 연관이 있다는데?
“이곳은 1900년대 남사당패의 근거지이기도 했다지?” “맞아. 청룡사에서 겨울을 난 후 안성장터를 비롯해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연희를 팔며 생활했다고 알려지고 있지.”
“절 건너편에 있는 남사당마을이 그 이야기를 대변해주는 듯해.”
바우덕이는 오랜 유랑 생활 탓에 스물셋이라는 꽃다운 나이로 폐병을 얻어 죽게 된다. 화려한 명성과는 달리 쓸쓸한 바우덕이의 죽음에서 남사당패를 엿볼 수 있다.
“안성 남사당패는 훗날에 이르러서는 아예 ‘바우덕이’라고 불렸다고 한단다. 우리나라 최초의 연예인은 바우덕이인 셈이야. 바우덕이는 아주 아름다운 외모와 목소리를 지니고 있었다고도 해."
"바우덕이가 병에 걸리자, 남사당 단원들이 모두 바우덕이를 간호했다고 하지. 남존여비 사상이 강할 때였을 텐데, 모두들 그만큼 바우덕이를 사랑했대.”
바우덕이 이야기뿐만 아니라 안성유기에는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을 엿볼 수 있다. 이제는 추억 속의 전통 문화유산이 된 안성유기의 거쳐온 세월을 더듬어보자.
“안성유기는 점차 생활양식이 유기 대신 스테인리스 그릇을 사용하게 되면서 자취를 감춘 것 아닐까?”
“진짜 계기는 따로 있지.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키고 전국의 유기를 전략물자로 거둬들이면서 수난을 겪어야 했어. 그러나 뜻있는 유기공들이 이곳 안산에서 유기를 만든 거야.”
해방과 더불어 안성시내 곳곳에서 유기업이 번성하게 된다. 안성맞춤박물관에 가면 그 진가를 톡톡히 만나볼 수 있다.
“봉남동 유기공방 뒤뜰에 이렇게 생각지 못한 유기박물관이 있었구나. 안성유기의 제작방법과 여러 명사들의 유기작품, 다양한 수집 청동기, 생활용품, 도자기 등을 살펴볼 수 있어.”
“안성유기에 방자 제작법이 도입된 시기 등을 정확히 알려주고 있어. 이때가 안성유기의 절정을 이루게 된 때 아닐까 해.”
인근 비탈진 길을 올라가면 건축물들의 자태가 눈에 들어오고 나무와 돌, 수풀들이 매끄럽게 어우러지는 마을 하나가 나온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공예 체험이 가능하다는데.
“금, 은, 동 등 바탕 재료에 다양한 색상의 유약을 올리고 고온의 가마에 구워내 이처럼 다양한 디자인에 필요한 색상을 연출할 수 있다니!”
“요새 이 너리굴문화마을 전통공예기법 강좌가 참 인기라지? 여기는 어린 시절부터 자연 속에서 나무, 흙과 함께 사는 꿈을 키워온 임계두 원장의 꿈을 그대로 옮겨놓은 곳이야.”
식당이나 카페, 숙소, 문화시설 등이 모두 정겨운 모습을 하고 있는 마을. 숙소 건물 뒤편에는 작은 동산이 있고, 여기에는 각종 예술작품들이 즐비하다.
“자연 속에서 만나는 예술작품들은 `조화`와 `균형`이 흘러 넘치는 듯해. 문화마을 안에는 너리굴 미술관과 입사박물관, 너리굴아트숍, 조각공원 등 갖가지 문화시설이 있다지?”
“맞아. 뛰어난 예술가들이 많이 모여 있는 안성의 특색을 나타내기라도 하듯, 이곳 미술관에는 신진 중견작가들의 작품전시가 끊임없이 이어져왔으니까.”
안성에 가면 왠지 바우덕이의 화려하고도 슬픈 생을 한 번 더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남사당바우덕이축제 기간이 아니더라도 토요일에 남사당전수관을 찾는다면 축제장에서 느꼈던 신명을 되뇌어볼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수려한 외양과 빛나는 광채로 명성을 얻고 있는 안성유기는 70여 년째 전통의 맥을 잇고 있는 곳 역시 이곳 안성입니다. 전통공예 체험과 바우덕이 유래를 짚어가다 보면 오랫동안 묵혀둔 자신의 꿈까지 되살아나는 듯합니다. 포기한 꿈이 있다면 다시 한 번 도전해 보는 건 어떠세요?
고매화 암향 은은한 학자의 봄
- 경상남도 산청군 -
지조를 지키고 일관된 삶을 지향하는 선비는 그릇됨과 교만함을 경계하고 늘 자신을 되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경남 산청군 덕산기슭 산천재는 남명 조식선생의 기품과 정신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수수한 솟을대문과 현판에서도 찾을 수 있고, 낡은 서가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특히 초록빛 자태를 뽐내고 남명매가 청량한 향기를 뿜어낼 때 그 고결한 품성은 고스란히 와 닿습니다. 이곳에서 선생의 시를 읊조리며 걷다 보면 ‘학자의 봄’을 만날 수 있을까요? 오늘 <트래블아이>의 미션은 ‘산천재에서 남명의 시를 노래하라!’
수십 차례를 오르내릴 정도로 지리산을 좋아했던 남명 선생은 천왕봉이 보이는 덕천강 옆에 산천재를 지었다. 담을 따라 흐르는 강가에서 ‘두류산양단수’를 읊어보자.
“두류산 양단수를 예듣고 이제 보니 도화 뜬 맑은 물에 산영(山影)조차 잠겼어라
아이야, 무릉(武陵)이 어디냐 나는 옌가 하노라“
어느새 강과 산 사이에 고즈넉한 담벼락을 두르고 있는 작다란 산천재가 보인다. 이곳에서 선비로서 올곧은 길을 가고자 다짐을 ‘제덕산계정주’를 읊어보자.
“천석의 무게를 가진 큰 종을 보게나! 크게 치지 않으면 소리가 없네.
어떻게 하면 저 두류산처럼,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을 수 있을까.“
대문 위에 수수하게 펴 있는 배롱나무 아래를 지나 선생이 기거하던 산천재의 솟을대문과 현판이 소박하기만 하다. 이곳에서 ‘덕산복거’를 노래해보자.
“봄 산 어딘들 향기로운 풀 없으랴만, 하늘 가까운 천왕봉 마음에 들어서라네
빈손으로 왔으니 무얼 먹을 건가? 십리 은하 같은 물, 먹고도 남으리.“
산천재에는 선생이 직접 심었다고 하는 남명매가 고고한 자태로 서 있다. 그가 이 매화나무에 담아낸 심경, ‘종죽산해정’을 읊다 보면 알게 될까?
“대나무가 외로운가 외롭지 않은가? 소나무와 이웃이 되었네
풍상 치는 때 보려고 하지 말게나 살랑거리는 모습 속에 참된 뜻 보겠네“
관직에 나가지 않고 이곳 산천재에서 한 평생 마음을 정진하고 후학양성에 몰두했던 선생. 학문의 맥과 깊이를 ‘원천부’ 구절에서 느낄 수 있을까?
“진실로 신령한 뿌리가 마르지 않으면 천하를 적시고도 마르기 어려우리
덮어 놓지 않은 샘의 차가운 물을 보라 아무리 퍼내어도 여전하지 않은가!“
툇마루에 올라서서 보면 세상을 관조하는 듯 소나무 아래에서 바둑을 두는 신선의 벽화를 볼 수 있다. 허나 선생의 시에서 분명 선비는 이곳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해지는데 산골의 아이 호미를 메고 서서 김맬 때도 묻지 않고 심은 때도 잊어버렸네
오경의 학 울음소리에 새벽 꿈을 깨자 비로소 몸이 개미나라 왕을 겸했다는 걸 알았다“
산천재 오른편의 작은 문집 책판서고는 오랜 세월만큼이나 빛이 바랬다. 이 낡은 서가건물에서 단단한 남명선생의 정신이 이 명시를 통해 되살아날 수 있을까?
“한 마리 학은 구름을 뚫고 하늘 나라로 올라갔고, 구슬이 흐르는 한 가닥 시내는 인간 세상으로 흐르네.
누(累)없는 것이 도리어 누가 된다는 것을 알고서, 산하를 마음으로 느끼고서 보지 않았다고 말하네.“
바른말하는 하는 사람들이 죽임을 당는 난세의 병폐를 지적하는 그의 대쪽 같은 기품도 지리산 기상과 닮아 있다. ‘민암부’를 노래하다 보면 남명학의 기풍을 느낄 수 있을까?
“볼 수 없는 건 마음인데 위험이 안에 있어 소홀히 대한다네
걸어다니기에 평지보다 더 평탄한 곳이 없지만 맨발로 살피지 않고 다니다간 발을 상하지“
덕천강이 보이는 평지에 자리한 산천재 툇마루에 앉아 강줄기를 보며 가벼운 졸음 오기를 기다리는 여유를 즐기다가도 이따금씩 고개 돌려 천왕봉 머리를 보고는 흐뭇해했을 조식 선생. 산천재 기둥의 주련에 쓰인 글귀는 분명 ‘봄’입니다. 그냥 봄이 아니라 안분지족(安分知足) 하는 선비의 봄입니다. 청량한 향기를 뿜어내는 고결한 품성을 느낄 수 있는 ‘학자의 봄’이 그의 시를 통해 고스란히 와닿았나요? 남명 조식 선생이 가장 사랑했던 이곳 지리산자락 산천재와 덕천강에서 여러분은 선생의 진짜 ‘봄’을 발견했나요?
꿈꾸듯 별을 만나다. 시민천문대
- 대전광역시 유성구 -
최근 도심 속에서 별을 볼 수 있는 기회는 그리 흔치 않습니다. 아주 맑은 날, 깜깜한 곳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아주 흐리게 보이거나 한 두 개 정도. 그런데 하늘을 올려다 볼 여유조차 없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대전에서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바로 도심 속에 자리한 시민천문대 덕분인데요, 도심 속에서 느끼는 낭만과 여유, 그리고 교육적인 효과까지! 오늘의 <트래블아이> 미션은 ‘하늘을 관찰하며 잃어버린 어릴 적 동심을 찾아라!’입니다.
별과 예술, 그리고 낭만. 대한민국 이라는 글자가 커다랗게 쓰여진 하얀 건물 위로 별이 쏟아진다. 저 속에는 어떤 별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산 속이나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닌데도 별 관측을 잘 할 수 있을까요?”
“당연하지! 대전 유성구의 대전시민천문대에서는 낮에는 태양, 밤에는 별을 관찰할 수 있도록 전문적인 장비가 잘 갖추어져 있단다. 게다가 하늘을 잘 볼 수 없는 흐린 날에도 우주를 관측할 수 있도록 천체투영기까지 있는 곳이란다.”
돔으로 된 주 관측실의 천장이 열렸다. 그러자 맑은 하늘에 선명한 햇살이 관측실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그것을 헤쳐 나가는 천체망원경 속에 그려지는 그림이 궁금하다.
"열린 하늘을 올려다보면 흐리게만 보이는 별들이 망원경 속에서는 정말 또렷하게 보여요! 꼭 우주 속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에요."
"주 관측실에 있는 망원경과 보조관측실에 위치한 망원경들은 각각 다른 하늘을 올려다 볼 수 있단다. 이렇게 많은 망원경들이 있으니, 사람들이 많이 와도 불편함이 없지 않을까?"
천체투영실 객석의자를 뒤로 눕히자 밤하늘이 펼쳐진다. 저 높은 천장은 사실 천체투영기로 이루어진 그림일 뿐이지만, 정말 밤하늘 아래 누워있는 기분이 색다르다.
"와! 정말 하늘 아래에 누워 있는 것 같아요. 그저 의자를 뒤로 젖혔을 뿐인데 어떻게 돔 천장에서 하늘이 나오는 걸까요?"
"천체 투영기를 이용한 하늘이란다. 날씨에 관계없이 밤하늘을 볼 수 있도록 똑같은 가상의 별을 천장에 투영해 놓은 것이지."
오늘의 관측 대상은 태양이다. 주 관측실에서는 태양 홍염을, 보조 관측실에서는 태양의 흑점을 관찰한다. 밤이 되면 오늘의 별자리를 볼 수도 있다.
"낮에는 태양을 관찰했는데, 밤이 되니 별자리를 관찰 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런데 제가 좋아하는 별자리를 보고 싶은데, 오늘을 볼 수 없는건가요?"
"시민천문대에서는 그 주에 가장 잘 보이는 별자리를 골라 관측 대상으로 선정한단다. 보고싶은 별자리가 있었다니 조금 아쉽구나."
토요일 밤, 50분간의 환상적인 여행이 시작된다. 별자리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천체투영실의 돔 천장 아래 누워 있자니, 별이 곧 쏟아질 것만 같다.
"이 곳에서 음악회를 여는 분들은 자원 봉사를 하고 있는 것이란다. 아름다운 별과 음악을 한 곳에서 체험하는 낭만적이고 교육적인 행사란다."
"네 맞아요. 곡에 대한 설명도 친절하게 해 주고 다른 사람들 눈치도 안보고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는 어두운 공간도 그 매력 중의 하나인 것 같아요."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이 생각나는 금요일 밤. 시의 아름다운 선율을 낭송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음악이 얹힌다.
"시 낭송인 협회에서 진행하는 시 낭송회래요. 어쩐지 시 한 구절, 한 구절에 감정이 촉촉이 젖어있는 것 같았어요."
"토요일에 열리는 음악회와는 달리 2주에 한번 씩 열리는 시 낭송회에는, 별 빛과 어울리는시와 음악이 어우러져 색다른 낭만을 얻어갈 수 있단다."
천문대 안에 자리 잡은 아스트로 갤러리. 이곳에 가득 찬 그림들 속에는 별, 자연, 사계절 등 새로운 이야기가 가득하다. 어떤 사람들이 그린 것일까?
"실력 있는 예술가들은 끊임없이 시민 천문대의 아스트로 갤러리에 참여를 하고있단다. 지역의 문화발전에 이바지 하고 있는 이 그림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음, 글쎄요. 무상으로 제공되고 있지만 그 가치가 정말 높은 것 같아요! 무상전시이지만 돈을 주고서라도 꼭 보고싶은 문화공간인 것 같아요."
우리가 사는 세계와 문화의 이해를 이끌어 주는 천문우주과학. 그리고 도심 가까이에서 우주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어릴 적에는, 동네 어디를 가나 별을 볼 수 있었고 하늘을 올려다 볼만한 여유도 있었던 것 같은데 이렇게 천문대에 와야만 별을 볼 수 있다니 조금 아쉽구나."
"하지만 별을 보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이 이어지고, 또 가끔 이런 곳에서 낭만을 찾을 수 있다니 다행이 아닐까 싶어요."
하늘을 올려다 볼 여유가 없는 바쁜 현대인들에게 ‘힐링’의 공간으로 다가 오고 있는 대전 시민천문대입니다. 단지 하늘을 관측하는 데에서 머물지 않고 음악, 시, 미술작품 등 별과 어울리는 문화를 함께 이어가는 대전 시민천문대의 노력이 돋보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별에 대한 이해와, 다른 별들을 볼 수 있는 여유.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것들이 아닐까 합니다. 별에 대한 낭만을 놓치기 싫다면, 이곳 대전 시민천문대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마음을 비우고 향기를 채우다
- 서울특별시 은평구 -
골치 아픈 일 있을 땐 다도와 참선, 새벽예불로 1박2일 산사여행을 다녀오는 것만큼 좋은 게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굳이 먼 곳까지 발걸음을 하는 건 또 엄두가 나질 않습니다. 심신을 달래려 떠나는 여정이라면, 기왕 찾아가는 길만큼은 부담을 내려놓는 게 좋습니다. 그렇다면 지하철을 이용해 쉽게 닿을 수 있는 비구니 스님의 수행사찰 진관사로 떠나보는 건 어떤가요? 그래서 오늘 <트래블아이>가 적극 제안합니다. 마음 비우는 여정, 진관사에서 심신 가득 맑은 향기를 채워보세요!
템플스테이에 대해, 첩첩산중으로 가기 위해 뭔가 거창한 준비과정이 필요하다는 고정관념이 따른다.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 뒤 나즈막한 야산 길을 따라 진관사로 가보자!
“지하철에서부터 복잡한 마음 훌훌 털어버려도 좋을 도심 속 명품 산사를 기대하라니?”
“말 그대로야. 찾아보면 동네 카페만큼이나 편하게 찾을 수 있는 템플스테이 장소가 은평구에도 있다고!” “지하철 타고 떠나는 템플스테이라…. 이거 의심 반, 기대 반인데?”
삼각산자락을 따라 올라가다가 돌다리 세심교(洗心橋)를 건너면 예스런 ‘진관사‘를 만난다. 하지만 이곳은 본디 안에서 밖을 바라볼 때 그 진가가 드러난다는데?
“세심교 너머에 계곡과 소나무숲을 마주보도록 지어진 함월당을 좀 봐봐! 선방에 앉으면 창호 너머로 푸른 숲을 그대로 볼 수가 있대. 정말 멋지지 않니?”
“다리도 사찰도 심지어 마당까지 자연지형을 그대로 반영한 걸까? 자연과 하나가 돼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듯해!”
<힐링캠프> 진행자인 방송인 김제동은 틈만 나면 찾는다는 이곳 진관사에서는 단연 최고라 꼽는 명물 몇 가지가 자리하고 있다. 과연 뭘까?
“전국 사찰 중 으뜸이라는 진관사 절밥 맛이 그렇게 좋다지? 보러도 온다지?” “아니, 마음을 비우러 왔건만, 도착하자마자 밥 타령이라니!” “하하~ 진관사는 사찰음식으로 템플스테이 중에, 아니, 사찰의 최고봉이니까 이러는 게지!”
“그보다도 지금 가는 길과 홍제루 쪽에 가면 서울시가 지정한 보호수 세 그루도 유명하지.”
실제 진관사 밥맛도 꽤 알려져 있다. 어떤 사찰음식이 차려지기고, 또 어떤 깊은 맛이 담겨 있는 걸까?
“이 담백하고도 깊은 맛~. 나는 발우공양 시간이 이렇게 행복할 줄 미처 몰랐지.”
“그건 이곳 진관사에만 전해져오는 사찰음식들의 조리법이 독특하기 때문이야. 고려시대 국찰로써 왕실에 음식을 제공하던 그 내공이 어디 가겠어? 맛과 화려함이 있지만 그래도 사찰음식은 사찰음식이야. 기본적으로 ‘오신채’를 넣지 않았다고 해. 그게 뭔지 알고 있니?”
신라 진덕왕 때 원효대사가 삼천사와 함께 창건하여 ‘신혈사’라 이름 한 천년고찰 진관사. 그 기나긴 만큼이나 살펴볼 만한 역사자원도 곳곳에 산재하고 있다는데?
“고려시대에 창건된 진관사는 억불정책을 펴던 조선시대에 수륙재로 제대로 명성을 떨쳤지. 실제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 때 집현전 학자들의 비밀연구소로 사용되기도 했어.”
“와~ 여긴 역사뿐 아니라 문화적 가치도 넘치는 것 같아. 나한전과 독성전, 칠성각 등을 보면 그래. 이런 곳이니 템플스테이 장소로 쓰이기에 왠지 아깝다는 생각마저 든다니까.”
비구니 스님들과 다실에 둘러앉아 차 마시며 담소를 나누다 보면 외갓집에 온 손자처럼 편안하다. 세상 밖에서 짊어지고 온 온갖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보자.
“스님, 100일째 술을 끊고 있습니다. 힘든 일은 아니죠. 100일 내내 술을 마시는 사람도 있는데요. 술은 마셔도 좋지만 끊고 살아도 좋아요. 하지만 제 마음은 누가 치유해줄까요.”
“극락교를 거쳐 세심교를 건너 진관사에 들어오면, 그 순간 마음 속 번뇌는 싹 사라지고 청량한 마음으로 치유되지 않을까요?”
1박2일을 기본으로 하는 템플스테이. 이중 템플라이프는 그야말로 반나절 산사에 머물며 템플스테이 간을 보는 프로그램이다. 어떤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예불과 108배를 통해 마음을 다스리는 시간부터 다도, 참선, 새벽예불 시간도 어느덧 다 지나가는구나. 마음도 몸도 정갈해지는 기분이야.”
“스님들과 이렇게 여유롭게 대화를 나눈 자체만으로도 나는 뭔가 문제 속 답을 찾은 듯해.” “여기서 만난 많은 사람들과의 추억들은 또 어떻게 잊겠어.”
소박한 의자 하나에도 그는 의미를 심는 사찰, ‘인생을 낭비한 죄’만큼은 경계하자는 ‘무소유’의 정신이 깊게 밴 절이 바로 진관사다.
“이 사찰은 소박하기 그지없어. 그저, 풋풋해. 그러면서도 뭔가 평범함을 벗어나 있어.”
“맞아. 마치 법정의 삶을 옮겨놓은 것 같지 않아? 여느 산사처럼 일주문도 없고 눈을 부릅뜬 사천왕상도, 그 흔한 대웅전도 없어. 그래서일까? 이곳 템플스테이는 왠지 정겹고 부담도 더 없는 것 같아.”
혹, 고리타분할까 걱정된다고요? 절대 아닙니다! 살 빼주는 다이어트 템플도 있고, 노래하는 음악 템플도 있고, 심지어 크루즈를 타고 럭셔리하게 참선을 하는 명품 템플까지 각양각색 템플라이프가 있으니 안심 붙들어 매십시오! 아, 그리고 멀지도 않다는 거 이번 기회에 알게 됐으니 더더욱 마음 놓고 떠나보세요. 그저 지하철 패스만 들고 떠날 수 있는 도심 속 명품 산사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떤가요. 삶의 여백처럼 담백한 템플스테이 힐링사찰 진관사, 구미가 당기십니까? 그럼, 이번 주말은 조금 서둘러 보세요.
돌돌 말린 제주의 맛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푸른 바다물결이 넘실대는 제주는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이 집약되어 있는 섬으로 보고 즐기고 맛볼 것이 풍부한 섬입니다. 해마다 많은 관광객들이 휴식을 취하기 위해 제주도를 찾고 있는데요. 제주는 대표적으로 알려진 곳들도 아름답지만 제주의 소소한 맛과 멋을 간직한 곳들도 꽤 아름답습니다. 제주도를 좀 더 특별하고 소소하게 즐기고 싶다면 <트래블아이>의 이번 미션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이번 미션은 ‘돌돌 말린 빙떡으로 제주를 맛보고 오라’ 입니다.
메밀가루 반죽에 무채를 넣고 말아 만든 빙떡은 옛 제주목에서는 빙철에 지진다 하여 빙떡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한다. 빙떡 말고도 불리는 또 다른 이름이 있다는데?
“이번에는 뭔가 다른 제주도를 보여주겠다더니, 그게 빙떡이야? 그런데 이름이 독특하다.”
“옛날 제주에서는 빙철에 지진다고 해서 빙떡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정의현 남원 지역에서는 모양따라 '멍석떡', 작은 제사에서 약식으로 제물을 차릴 때 쓴다 하여 '홀아비떡', 서귀포 지역에서는 '전기떡'혹은 '쟁기떡'으로라도 불린다고 해.”
보기에는 평범하고 심심해보이지만 이래봬도 어엿한 제주 최고의 향토음식으로 많은 이들이 맛보고 가는 별미 중에 별미다. 맛을 보면 그 자부심이 느껴질걸?
“엄청 대단한 걸 보여줄 것처럼 하더니 겨우 빙떡이야? 호떡은 들어봤어도 빙떡은 처음인데?”
“실망한 눈치인데? 이래봬도 빙떡이 제주시의 오랜 향토음식이라니까? 제주에 오면 꼭 한번 먹어봐야 할 음식이라고. 그래야 제주의 전통문화도 알 수 있지.”
고급음식점보다는 재래시장이나 오일장에서 맛보는 빙떡의 맛이 일품이다. 투박한 손으로 막 부쳐낸 빙떡은 재래시장의 보물이 아닐까?
“그런데 빙떡 맛보러 간다더니 재래시장으로 가는 거야?” “응, 뭐니 뭐니 해도 빙떡은 재래시장이나 오일장에서 맛보는 것이 일품이거든."
"막 지져 낸 빙떡을 한 입 먹으면 얼마나 고소하고 따끈한지 할머니 댁에서 맛보던 맛이 난달까?” “너희 할머니 댁 서울 아니었니?”
재료가 꽤 단순해 보이는데 빙떡의 속에는 무엇이 들어가는 걸까? 자칫 심심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들 땐?
“그런데 빙떡 만드시는 것 보니까 재료가 별로 없네. 만드는 방법도 꽤 단순해보이고.”
“응, 맞아. 빙떡은 메밀가루 반죽에 채 썰어 데쳐낸 무소를 넣고 말아 돼지비계로 지진 떡이야. 요즘은 밀가루를 혼합하기도 하는데 메밀가루만 사용하면 얼마나 고소한지 몰라. 그리고 요즘엔 무소와 육류, 당근을 함께 넣기도 한다고 해.”
메밀의 고소함과 건강함으로 돌돌 말아 부담스럽지 않다. 빙떡을 보니 터키의 케밥이나 토르티아가 떠오르기도 하는데?
“그런데 생긴 것이 꼭 케밥이나 토르티아처럼 생겼다. 어쩐지 낯이 익다 했어.”
“응, 그러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 때 제례용으로 많이 이용되었다고 해. 최근에는 제주를 찾는 많은 외국인들도 낯설어 하지 않고 많이 찾는 다고 해. 아마 모양이 비슷해서가 아닐까?”
빙떡을 맛보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이 보인다. 이렇게 사람들이 자주 찾는 이유는 무엇보다 싸고 맛있어서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매력 때문이 아닐까?
“빙떡 하나 가격이 정말 싸다. 천원을 넘지 않는 가격이니 웬만한 간식보다 저렴하고 맛도 좋네. 그래서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거구나!”
“그래, 맞아. 저렴하면서도 건강하고 어른들은 옛날 생각이 나니까 자주 빙떡 맛보러 오신다고 해.”
빙떡을 보니 제주의 또 다른 별미가 떠오른다. 빙떡이 간식정도라면 메인요리로 제주를 한껏 느낄 수 있는 말고기 육회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빙떡 맛보고 또 어디로 가는 거야?” “제주까지 왔는데 또 다른 향토음식도 맛봐야 하지 않겠어? 바로, 말고기 육회.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지.”
“잘됐다. 빙떡은 맛있지만 뭔가 배가 부르지는 않았는데.”
빙떡처럼 돼지고기가 부족하던 시절에 먹던 제주 향토음식으로 최근에 각광받고 있는 제주의 인기 별미다. 빙떡과 또 다른 매력이 있다면?
“그럼, 내일 아침은 제주의 또 다른 인기 향토음식, 몸국 어때? 최근에 매체에서 많이 등장하면서 제주의 최고 인기음식으로 꼽히기도 한다는데.”
“몸국? 이름이 독특하다. 제주의 향토 음식 빙떡을 맛보고 난 후라 그런지 왠지 기대되는데?”
무채 속에 메밀전병으로 감싼 빙떡은 이름만큼이나 정겹고 친숙한 맛입니다. 음식점이나 고급레스토랑보다 전통시장이나 오일장이 더 어울리고 더 맛있는 소소한 서민음식, 빙떡은 제주의 향토음식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고소하고 심심한 맛이 일품인 빙떡은 제주의 향토성 짙은 맛과 투박한 정성이 깃들어 있어 더 정감이 갑니다. 제주의 알려지지 않은 속속 들이를 알고 싶고 향토문화를 즐기고 싶다면 제주시 향토음식 ‘빙떡’을 맛보고 그 속에서 제주를 마음껏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요?
한국의 폼페이를 아십니까?
- 서울특별시 송파구 -
이탈리아의 폼페이 유적지는 잘 알아도 송파구 올림픽공원 일대에 수천 년 전 유물이 고스란히 잠자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 겁니다. 이곳이 88서울올림픽을 상징하는 공간이라는 점도 물론 자랑스러워해야 합니다. 하지만 세계평화의 문을 지나 아름다운 몽촌호수를 만나면 그 역사는 무려 17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송파구의 풍납토성, 석촌동 고분군 모두 한성백제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우리네 소중한 보물입니다. 오늘 <트래블아이>의 미션은 바로 ‘한국의 폼페이 한성백제 왕궁터를 찾아라!’입니다!
아파트와 주택이 빽빽이 들어선 풍납동 땅 아래에는 지금도 수많은 백제 유물들이 묻혀 있다고 전해진다. 한성백제 유적지가 표시된 지도만으로 보물찾기가 가능할까?
“유물을 발굴 할 때는 조심조심 파야 해요. 유물을 찾으면 꼭 모눈종이에 정확한 위치를 표시해보자!”
“앗! 여기요, 여기! 지금 막 토기가 나왔어요.” “음, 글쎄. 그건 그냥 도자기그릇 조각 같구나. 봐봐. 공정과정에서 새긴 글씨가 선명하지?"
한성백제박물관에는 풍납토성 일부를 그대로 잘라 옮겨놓은 토성 절개면을 전시해 놓고 있다. 당대 백제인의 축조기술은 어떠했을까?
“백제의 첫 왕성이에요. 현재는 2km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지만 평지에 쌓은 토성 가운데가히 세계적인 규모라 할 수 있죠. 당시 백제의 국력의 위대함이 느껴지니?”
“네! 시루떡처럼 층층이 다져 쌓은 판축법, 나뭇잎 등을 깐 부엽법 등 백제사람들 손재주도 참 뛰어났던 것 같아요!”
경당연립이 있던 자리는 현재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이곳에서 풍납토성이 한성백제의 왕궁터임을 입증하는 중요 유물을 다시 발견할 수 있을까?
“말 머리뼈, 우물, 창고, 대부(大夫)라는 한자가 새겨진 목 짧은 항아리까지… 이게 다 어디에 쓰였을까요?”
“제사 지낼 때 사용된 것으로 추측되지. 왕들의 역할이었는데 그래서 이곳을 사당 역할을 겸하는 왕궁터로 보는 거야.”
고대백제의 500년 도읍지였던 송파는 여전히 웅혼한 백제의 기상과 빛나던 문화를 조용히 들려주고 있다. 근데, ‘한성백제’라 일컫는 기준은 뭘까?
“어쩔 때는 ‘고대백제’, 어쩔 땐 ‘한성백제’라고 하는데, 왜 그렇죠?”
“고구려 시조 주몽의 두 아들 온조와 비류는 큰 꿈을 안고 남하해 지금의 서울 북부지역에 이르렀을 때가 약 2000년 전. 기원전 5년 온조가 송파 지역으로 천도해서부터 문주왕 원년까지 송파가 백제 수도로 문명을 꽃피운 시기를 ‘한성백제’라고 했다는 주장이 있지.”
그러나 많은 천도 기록과 여러 가지 지명은 한성백제 수도 실체를 놓고 큰 혼란을 야기한다. 그래서 한성이라는 명칭도 아직은 논란거리. 왕궁성이라는 풍납토성은 어떨까?
“한강 유역을 차지한 고구려가 평지성인 풍납토성은 폐기하는 대신 산성인 몽촌토성을 군사용으로 재활용하면서 한산성, 즉 한성은 점차 백제 고도를 대표하는 명칭으로 부상했다는 기록에서 ‘한성’의 기원은 사실 아직 뚜렷한 정답은 알 수가 없지.”
“풍납토성은요? 축조에 연인원 100만명이 넘었다는 점에서 왕성이라고 봐도 될까요?”
서울에서 열리는 축제 가운데 유일하게 문화관광축제의 영예를 안고 있는 축제가 바로 송파에서 열린다고 한다. 어떤 축제일까?
“조선왕조 500년 도읍지답게 조선시대 문화유적이 적잖이 남아 있는 서울에서 송파는 독특한 위상을 점하지. 바로 1,500여 년 전까지 존속한 백제 한성시대의 도읍지였다는 점이야.”
“그래서 송파가 그 못지않게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고도라고 말들을 하는군요!” “그렇지. 그렇다면 이와 연관된 축제도 유명한데, 뭔지 알 수 있겠니?”
500년 한성백제시대의 찬연했던 역사문화의 발자취를 재현한 전통문화축제 현장, 그 속에는 어떤 참신한 내용들로 꾸며져 있을까?
“근초고왕 열병식, 근초고왕 개선행렬 등 역사문화행사도 너무나 흥미로워요!”
“전통과 미래를 잇는 축제이니만큼 철저한 역사적 고증을 거쳤지. 그렇게 역사성을 강조한 교육적인 프로그램들도 많지만, 즐거움이 가미된 그야말로 축제다운 축제들도 많단다.” “백제마을 체험이나 혼불채화, 단심줄 대동놀이 같은 것들을 말씀하시는 거죠?”
풍납리 일대, 특히 경당 역사문화공원에서 진행되는 유물 발굴체험은 흔치 않은 기회라 더 특별하다. 한성백제 왕궁터의 진짜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
“나는 포기! 하지만, 책에서만 봤던 유물 발굴을 직접 해보니 꽤 인상적이에요. 500년간 지속된 한성백제의 역사적 의미를 제대로 알고 돌아갈 수 있어 너무 뿌듯해요!”
“사실 백제 왕궁이 있었던 풍납토성은 세계적인 규모의 토성이야. 세계적인 관광지 폼페이처럼 풍납토성 일대도 매력적인 관광지가 충분히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들지 않니?”
고대백제의 500년 도읍지였던 송파구에는 여전히 백제시대의 유적들이 남아 그 당시 웅혼한 백제의 기상과 빛나던 문화를 조용히 들려주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특히 백제 초기 왕도를 구성한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이 핵심 성터로 남아 있습니다. 고대백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여행을 하고 싶다면 송파구를 둘러보는 시간도 상당히 있을 것 같습니다. 문화역사의 향기에 정서적, 지적 욕구를 함께 충족시켜보고 싶다면 이번 주말은 송파구로 나가보는 건 어떠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