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년생 여자가 티켓의 자리표를 보며 서성인다. 열차 안에는 그다지 많은 사람들이 있었던 건 아니었음에도 여자는 쉽게 자리를 찾지 못했다. 그때 맞은편에서 한 여자가 걸어왔다. 86년생 여자이다. 둘은 한 지점에서 만났다. 이 여자의 행선지가 어디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쩐지 춘천까지 함께 앉아 가게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어색한 미소를 주고받으며 각자 자리에 앉았다. 둘은 서로를 탐색했고 왠지 모를 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두 정거장쯤 지난 후였을까 젊고 앳된 모습의 90년생 여자가 그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어쩌다 이 셋은 마주 보며 앉게 되었다.
우연일까. 세 여자 모두 홀로 춘천으로 떠나는 모양이었다. 79년생 여자는 책을 들고 있었고 86년생 여자는 거울만 들여다보고 있다. 90년생 여자는 스마트폰으로 연신 메시지를 날렸지만 셋은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심 신경이 쓰인 79년생 여자가 연장자답게 먼저 말을 꺼냈다.
“춘천까지 가시나 봐요?”
79년생 여자가 입을 떼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두 여자가 그렇다고 대답을 했다. 다시 어색함이 짙은 안개만큼이나 무겁게 깔렸으나 이전만큼은 아니었다.
한번 말을 붙여봐서일까 그 다음부터의 질문은 어렵지가 않았다. 세 여자는 각자 통성명을 하고 춘천으로 떠나는 여행에 대해 질문을 했다. 왜 혼자인지. 다른 사람이 홀로 떠나는 여행에 대해 세 여자는 나름의 추측을 던졌다. 실연을 당했나? 각오를 다지기 위해 떠나는 건가? 각자 조금의 차이는 있었지만 세 여자의 대답은 같았다.
‘젊었을 때 언제 한번 혼자 여행을 떠나보고 싶었어요.’
언젠가부터 춘천으로의 여행은 청춘 그리고 낭만이 되어버렸다. 누군가가 지정한 것이 아님에도 세 여자의 머릿속엔 춘천 이코르 청춘이었다.
이번엔 가장 젊은 90년생 여자가 입을 떼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함께 1박 2일을 보내자는 것이었다. 홀로 떠나는 여행을 계획한 그들에게는 다소 파격적인 제안이었음에도 거절하기가 미안해서였는지 그녀들은 쉽게 수락을 했다.
여행이 주는 맛이 이런 것일까? 생판 남이었던 사람과의 1박 2일의 여행이 마치 오래도록 알고 지내던 사람과의 여행처럼 편안했다. 이곳이 춘천이어서 그런 것인지 세 여자의 취향이 우연히 맞아서 인지는 모르겠으나 셋은 즐거운 얼굴을 하고 있다.
셋은 이곳저곳에서 사진을 찍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숙소로 돌아왔다. 반나절의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이라서 그럴까 세 여자는 조금 센티멘털해졌다. 왠지 가장 친한 친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말을 해도 괜찮겠다 싶을 정도였으니까.
86년생 여자가 오늘 찍은 사진들을 넘겨보면서 말했다.
“사실 난 내가 정말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인 줄 알았어. 늘 가던 편의점만 가고 늘 만나던 사람만 만나왔었으니까. 그런데 누가 알았겠어? 오늘 처음 만난 사람들과 밥 먹고 차 마시고 웃고 떠들고. 놀라운 하루야.”
가만히 듣고 있던 79년생 여자도 거들었다.
“그러게. 사실 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마음 추스르려고 온 여행이었어.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거든. 그리고는 다시는 결혼 같은 거 안 한다고 소리소리 지르고 무작정 짐을 싸서 나오긴 했는데 어디를 가야 할지 모르겠더라. 외롭기도 했고. 이제 다시는 누군가를 만날 수 없겠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그것도 아닌가 봐. 이렇게 우리 셋이 있는 걸 보면.”
79년생 여자는 자신의 속 이야기를 털어놓고 자신도 깜짝 놀랐다.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지만 자신의 파혼이야기까지 털어놓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던 그녀였다. 아무렴 어떤가. 왜 그런 이야기까지 내게 하느냐고 부담스러워하는 이도 없었고 안쓰럽거나 가여워하지도 않는 둘이었으니까 괜찮았다.
세 여자가 오늘의 여행을 뒤로하고 지속적인 연락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세 여자는 말없이 서로의 등을 토닥였고 그 토닥임이 무슨 의미인지는 그녀들만 알 수 있었다.
또! 또 이야기 해주세요! 네?
손주 녀석이 주위를 맴맴 돌며 자꾸만 성가시게 군다. 옛날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성화다. 녀석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생각하는 것이 늙은이의 소일거리가 되어버렸다. 딸애가 손주를 맡기고 외출을 했을 때 하도 심심해하기에 옛날이야기를 한 번 해준 것이 시작이었다.
“동화책보다 할머니가 이야기 해주는 게 훨씬 재미있단 말이야.”
“할머니 귀찮으시니까 책을 보든가 비디오 봐. 네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빌려왔어.”
“싫어. 싫어, 할머니 무릎에 누워서 이야기 들을 거야. 메롱~”
손주 녀석이 내 무릎위에 자리를 잡고 눕더니 기어이 눈을 감고 이야기를 기다린다. 하기야 이제 좀 더 크면 이런 어리광도 못 보겠다 싶어 못이기는 척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야기보따리를 푼다.
“옛날 옛날에, 아주 탐스러운 사과나무 한그루가 있었어. 사과나무는 마을 한 가운데 우물 옆에 있었지. 처음에 마을사람들은 사과나무에 탐스러운 사과가 열리면 우물물처럼 공동으로 사이좋게 나누어 먹었어. 남는 것은 따다가 마을 공동 창고에 보관하면서 먹었지. 그때까지만 해도 마을에 큰 문제가 없었단다. 그런데 문제는 마을사람들의 탐욕이었단다.
언젠가 마을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는 욕심이 자라났고 옆 동네 김씨가 자기네보다 더 많은 사과를 가져가는 것 같았고 옆 집 박씨가 더 탐스럽고 빛깔 좋은 사과를 먼저 골라가는 것 같이 느꼈던 거야. 마을 사람들 모두 마을 한가운데에 있는 탐스러운 사과나무가 자기네 소유물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그래서요? 막 싸우고 그랬어요?”
“원래 사람의 마음에 욕심이 들어차는 순간이 문제란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이 오기를 기다렸던 김씨가 사과나무 근처로 가서 마을사람들 몰래 탐스러운 사과를 따기 시작했단다. 처음에는 한 다섯 개만 몰래 가지고 왔지. 그런데 도둑질이라는 게 습관이 되면 무서운 법이지. 하루 이틀이 지나고나니 김씨는 사과나무에서 사과를 열 개, 스무 개씩 몰래 따오기 시작했단다. 원래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지.
한 달에 한 번씩 열리는 마을 회의 때 누군가가 사과나무의 사과가 자꾸만 줄어드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단다. 도둑이 제 발 저린 김씨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화를 내면서 그런 양심 없는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걸리면 가만두지 말아야 한다고 했지. 마을사람들은 김씨의 의견에 적극 동조하면서 사과도둑을 잡아야 한다고 했단다.
그래서 김씨는 머리를 썼단다. 자신이 도둑을 잡아오겠다고 큰 소리를 친 거지. 도둑은 아무래도 새벽녘에 나타날 테니 자신이 숨어 있다가 도둑을 잡겠다고 한 거야. 그리고는 날이 밝으면 도둑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할 속셈이었단다.
날은 어두워졌고 김씨는 우물 옆에 숨어있었단다. 그리고는 잽싸게 사과를 땄지. 그런데 그 때였어. 마을 사람 중에서도 유독 김씨를 눈여겨 본 박씨였지. 박씨는 ‘도둑이다. 사과 도둑이 나타났다’라고 소리를 치며 긴 몽둥이를 휘두르며 김씨에게로 달려왔단다. 놀란 김씨는 그만 휘청하여 옆에 있던 우물에 빠지고 말았어.”
“헉, 그래서 김씨는 어떻게 되었어요? 우물에 빠져서 죽었어요?”
“뒷이야기가 꽤나 궁금한 모양이로구나. 우물에 빠진 김씨는 박씨에게 목숨만 살려달라고 빌면서 그동안 자신이 사과를 훔쳤다고 솔직하게 말을 했단다. 박씨는 김씨를 용서하고 우물에서 꺼내어 주었지. 그런데 박씨가 우물에서 김씨를 구해주자 마자 김씨의 태도가 별안간 달라졌단다. 목숨을 구해준 박씨에게 오늘 일을 마을사람들에게 말한다면 가만두지 않겠다며 박씨를 협박했지. 박씨는 무서운 마음에 알겠다고 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고 있었단다. 그런데 마을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단다. 새벽녘이 되면 우물에서 김씨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어.
자기가 사과도둑이었고 목숨만 살려준다면 마을사람들에게 잘못을 빌겠다고 김씨가 우물에 빠졌을 때 말한 내용이었지.
우물에서 들려온 소리 때문에 김씨의 잘못이 온 동네방네 소문이 났고 김씨는 진정으로 마을 사람들에게 잘못을 뉘우쳤고 박씨에게도 사과를 했단다.”
“이야. 역시 할머니 이야기가 제일 재미있어요! 다음에도 또 재미있는 이야기 들려주셔야 해요!”
이번 이야기도 꽤나 재미있던 모양이다. 다음 이야기는 무엇을 들려주어야 하나 오늘도 행복한 고민거리가 하나 늘었다.
괜찮아. 내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긍정적인 말이었다. 말. 단지 말뿐이었다. 조금 느린 것뿐이라고 괜찮다고.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조금 다르다고 느낀 건 아이가 다섯 살 무렵이었다. 아이는 자동차, 인형, 기차 등 많은 장난감들 사이에서도 말 모양 인형을 가장 아꼈다. 럭키라는 이름도 지어주며 잘 때도 밥을 먹을 때도 항상 럭키와 함께했다. 아이가 말에 대한 강한 애착이 있다고 생각했지 그것이 자폐아이의 보편적인 특징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내 아이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기까지 나도 남편도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아이에게서 말 인형을 빼앗아 숨긴 적도 있었다. 말 인형이 보이지 않으면 다른 아이들처럼 한 곳에 집착하지 않고 차츰차츰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싶어서였다. 점점 아이의 불안증세가 깊어지고 말 인형을 찾아 온 집안을 헤집고 다니는 통에 결국 두 손을 든 것은 나였다.
아이에게 말이 그렇게 좋으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이 아니라 럭키라고 했다. 그러니까 이 동물이 말이잖아라고 타일러봐도 아이는 고집 있는 말투로 말이 아니라 럭키라고 했다. 결국 또 그래, 럭키. 라고 대답을 한 나다.
아이가 말을 좋아하니 남편은 이제 아이의 상태를 받아들이자고 말했다. 그리고는 주말에 아이가 좋아하는 말을 보러 가자고 했다. 아이가 뛸 듯이 좋아할 것을 생각하니 엷은 웃음이 지어졌다. 분명 많은 말들을 보고 다 럭키라고 부르겠지라고 생각했다.
아이는 지금 10살이다. 태어나서 살아있는 말을 처음 보아서일까 아니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럭키를 닮은 것들이 하나도 아니고 여러 마리가 눈앞에 펼쳐져서 신기해서일까 아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계속 감탄사만 연발하였다. 남편은 다정하게 아이의 손을 잡고 말을 쓰다듬어보기도 하고 말과 교감을 나누는 법을 알려주었다. 아이도 무서워하지 않고 말과 교감을 나누었다.
“아들, 여기는 말 정말 많다. 그치? 말 어때? 다 럭키처럼 보여?”
“아니. 난 이 말이 가장 마음에 들어요. 이 아이만 럭키라고 불러줄거야.”
아이는 뜻밖에도 말 한 마리를 콕 집어 말했다. 말이라면 다 좋아할 줄 알았는데 유난히 마음에 든 말이 있는 모양이다.
아이가 어떤 결정이나 선택을 한 것이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지나온 순간에는 그저 엄마인 내가 이건 좋지? 이건 별로다 안 그래? 이런 식으로 아이의 선택을 나 스스로 해왔다. 그것이 아이의 결정인양. 아이의 선택이나 생각은 뒷전이었다. 알면서도 아이의 상태를 내세워 그렇게 살아온 것이 미안해졌다. 충분히 결정하고 선택할 수 있는 아이였는데 말이다.
날이 어두워졌다. 이제 그만 진짜 말인 럭키와 작별인사를 나누어야 할 때였다. 아이도 헤어짐을 아는지 더 있겠다는 떼를 쓰지 않고 말과 인사를 나누었다. 잘 있으라며 또 보러 오겠다고했다. 작은 손바닥위에 각설탕을 올려놓고 말이 먹을 수 있도록 손을 뻗어주었다.
마사에서 나와 아이를 데리고 별을 관측할 수 있는 천문대로 향했다. 아이에게 천천히 우리가 별을 보러 오는 것이라고 설명해주었다. 아이는 반짝반짝이라고 대답했다.
그래 반짝반짝.
요즘처럼 선선한 가을에 보이는 별자리는 무엇인지 간단히 설명을 들은 후 무엇이 보이냐고 물어보았다. 아이가 말이 보인다고 했다. 말? 아이의 머릿속에는 온통 말로 가득한 것 같았다.
“아! 페가수스자리를 본 모양이구나?”
페가수스자리가 말 모양을 했다고 해도 저렇게 큰 하늘을 수놓는 별자리로 말을 떠올리긴 힘들 텐데.
“우리아들 대단하네.”
아이에게 참 오랜만에 대단하다고 칭찬을 한 것 같다. 아이는 쑥스러운지 머리를 긁적이며 웃어보였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건물을 높이 올려다보려니 핑하고 현기증이 났다. 퇴근 시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거리에는 행인이 많았다. 지수는 선배가 소개해 준 도자공방을 찾는 중이었다. 공방 이름과 간단한 약도가 적힌 메모지를 들여다보다가 비슷비슷하게 생긴 건물을 한번 더 올려다보았다. 아까부터 고약한 냄새를 풍기던 은행나무에 손을 짚고 지끈거리는 머리에 손을 대었다. 여기가 아닌가 싶을 때 지수의 눈에 들어온 자그마한 공방 하나.
지수는 회사에서 맡게 된 ‘우리 고장 바로 알기’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끝내야 했다. 입사 후 처음으로 맡은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지수는 심혈을 기울여 준비했다. 도자기라니 말만 들어도 지루하고 따분했다. 지수는 학창시절 여학생들 사이에서 한창 유행한 십자수니 비즈공예니 하는 것들에 눈길 한번 준 적이 없었다.
또각거리는 신발을 다시 한 번 고쳐 신은 지수는 자그마한 공방으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널찍한 실내에는 갖가지 도자기와 사기그릇, 앙증맞은 실내 인테리어 장식품까지 단정하게 놓여있었다. 문에 걸린 종이 딸랑거리자 상냥하고 단정해 보이는 여자가 나왔다.
어서 오라는 여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도자기 만드는 법 좀 배우러 왔다며 용건을 말했다. 지수의 급한 성격이 여기에서 나왔다. 여자는 친절히 지수를 안내했다.
지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조심스럽게 흙을 만졌다. 반죽된 흙을 쓰다듬듯이 만지는 지수를 보고 여자는 주물러 보라고 했다. 지수가 공들여 받은 네일아트가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쉬워 보였던 물레를 돌리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정신집중을 하지 않으면 금세 틀에서 벗어나기 일쑤였다.
‘하아, 따분해.’
지수의 속마음이라도 들리는 걸까 여자는 마치 대답이라도 하듯 대꾸했다.
“많이 따분하죠? 처음 하시는 분들은 다들 그러시더라고요. 영화나 텔레비전으로는 쉬워 보이죠. 그런데 정신 집중 안 하면 틀 하나 잡는 것도 어려운 게 바로 도자기에요.”
지수는 정신을 집중했다. 손의 감촉을 느끼고 흙이 전해주는 소리와 느낌에 신경을 기울였다. 질척거리지만 부드러운 그 촉감을 손끝 감각으로만 느끼려 했다.
‘아, 살아있는 것 같아.’
지수가 빙긋 웃자 여자도 따라 웃었다.
오늘은 첫날이니 흙의 감촉을 느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자가 말했다. 특별할 것 없다고 그저 프로젝트만 잘하면 그뿐이라고 여겼던 지수에겐 적잖이 놀라운 일이었다.
지수는 공방에 들어올 때 보았던 사기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여전히 투박했다.
다음날도 그 다음 날도 지수는 틈틈이 공방에 들렀다. 지수는 가만히 도자에 손을 대보았다. 가마에서 갓 나온 도자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따뜻함이 남아있었다. 흙의 기운일까 만든 이의 기운일까, 도자기는 여전히 투박했지만 따뜻했다.
조용하고 단순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진중함과 무게감이 좋았다. 옛것이지만 촌스럽거나 싱겁지 않음을. 단순하지만 그 속에 묻어있는 화려함이 좋았다.
“지수씨, 뭔가 바뀐 것 같은데. 머리했어?”
회사선배가 지수 옆을 스치며 툭 던지듯 말했다.
“아니요? 딱히 바꾼 건 없는데…….”
지수는 말끝을 흐렸으나 달라진 것이 무언지 내심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어제가 공방에서의 마지막 날이었고 공방 여자와 대화를 나눈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이다.
“지수씨 제법 실력이 늘었어요. 성격도 많이 차분해진 것 같고.”
“그래요? 호호. 제가 원래 성격 급하기론 둘째가라면 서러웠는데, 여기 다니면서 많이 차분해 진 것 같긴 해요. 흙 만지는 것도 그렇고 물레 돌리는 것도 그렇고. 물레를 돌릴 때면 잡생각이 싹 사라지니까요.”
“선물이에요. 그때 한참 바라보고 있길래.”
여자는 지수에게 작고 아담한 사기그릇 세트였다. 사기그릇을 바라보느라 지수는 고맙다는 말도 잊었다. 손을 대어보았다. 여전히 투박하지만 따뜻했다.
“아, 또 포장마차 가려는 거잖아. 난 싫다고! 레스토랑 가자니까?”
집에서 멀리 떨어진 대학교에 다니는 딸이 오랜만에 집에 왔다. 귀하신 얼굴을 영접했으니, 마땅한 대접을 해 드리는 것이 인지상정. 아빠랑 단둘이 외식 한 번 하자며 대뜸 손을 잡아끌었는데, 녀석이 예전 같지가 않다.
아내가 집을 나가 버린 지도 십여 년이 흘렀다. 집을 나갔을 때에 바로 찾으러 나갔다면 세 식구 오순도순 사는 집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인데, 자존심 때문에 잡지 않은 것이 지금까지도 한으로 남아 있었다.
후회는 빠르게 찾아왔다. 나는 매일 술을 마셨고,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딸애가 내 뒷바라지를 해 주곤 했다. 정신을 차리고 난 뒤에는 그것이 죄스러워 미선이를 공주님처럼 오냐오냐 해 가며 키웠다. 엄격한 아빠 노릇을 하기에는 이미 늦은 일이었지만, 이제는 딸애가 내 장단에 맞춰주질 않으니 이건 또 서럽기도 하다.
“우리 딸도 다 컸으니 이제 아빠랑 술 한 잔 기울일 수도 있는 거지, 뭐. 너도 포장마차 떡볶이랑 국수 좋아하잖아.”
일부러 풀이 죽은 표정을 짓자, 미선이가 어쩔 줄을 몰라 하는 게 눈에 보였다. 내가 어디 가서 말은 안 하지만, 우리 미선이는 이렇게 속이 깊고 정이 많은 것이 제일 큰 장점이다.
“아니, 내 말은……. 아빠 좋아하는 것도 많이 먹었으니까 이제 내가 좋아하는 것도 좀 먹으면 안 되냐고. 나 피자도 좋아하고 해물도 좋아하는데, 아빤 내가 집에 오면 맨날 분식만 먹이려고 하잖아.”
듣고 보니 그도 그렇다. 이건 내가 반성해야 할 부분이었다. 하지만 레스토랑 음식은 영 내 입맛에 맞지를 않으니, 이를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더 시간을 끌었다가는 저녁때를 완전히 넘겨 버릴 것 같았다. 미선이는 아까부터 뭘 하는지 제 방에서 나오질 않고,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거실을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사과를 먼저 해야 하나, 아니면 그냥 넉살좋게 다시 한 번 말을 붙여볼까 고민하고 있던 그 때, 미선이가 방문을 벌컥 열고 나왔다.
“아빠, 찾았어! 가자!”
무어라 대답을 할 틈도 없이 미선이 손에 이끌려 집을 나섰다. 미선이가 이끄는 대로 따라 걷고 있는데, 문득 아내가 집을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이 생각났다.
미선이가 정해 준 통금 시간은 아홉 시. 그 어린 것이, 아홉 시가 넘으면 나를 찾아 온 동네 포장마차를 다 돌아다녔다. 어린 애 혼자 술파는 곳을 기웃거리고 있으니, 처음에는 덮어두고 혼을 내던 동네 어른들이 언젠가부터 내가 있는 곳을 넌지시 일러 주었다고 한다. 예쁜 딸을 두고 여기서 뭘 하고 있느냐고 처음 보는 어르신에게 호통을 들은 기억도 있는 것을 보니, 동네에서 꽤 유명해졌을 정도였나 보다.
동네 포장마차 한 구석에서 만취해 잠들어 있는 나를 찾아내면, 미선이는 항상 ‘우리 아빠, 괜찮다. 괜찮다.’하고 말하며 웃어른처럼 내 머리를 몇 번 쓰다듬어 주고는 내 주머니를 뒤져 술값을 계산하고 고사리 손으로 나를 잡아끌어 집으로 데려왔었다. 술에 취한 와중에도, 어린 딸의 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정말 부끄럽고, 또 한편으로는 정말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미선이와 함께 도착한 곳은 허름한 파전 집이었다.
“포장마차가 싫다더니, 파전이 먹고 싶어서 그랬어?”
머쓱해진 내가 말을 건네자. 미선이가 웃는다. 아빠가 파스타니 피자니 하는 것들 싫어하는 거 다 안다고. 우리 둘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뭐가 있을까 해서 찾아봤더니, 동래파전이라는 게 있었단다.
“봐봐. 파전이라도 해물 잔뜩 들어가고 두꺼운 게 꼭 시카고 피자 같잖아?”
내가 시카고 피자가 뭔지 알 턱이 있나. 파전 한 입에 막걸리 한 대접을 기분 좋게 원 샷 하는 딸을 보니 왠지 콧등이 짠해져 왔다. 아빠가 이런 말을 하면 안 된다는 건 알지만, 오늘은 꼭 우리 딸이 만취해버렸으면 좋겠다. 의젓한 우리 딸은 취해서 미안하다며 민망해하겠지만, 나는 괜찮다며 미선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줄 것이다. 그리고는 손을 잡고, 아니 등에 꼭 업고 콧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사 년 차 커플. 남들은 그 쯤 되면 서로에게 질릴 때도 되지 않았느냐는 악담을 농담처럼 건네지만, 우리는 결혼을 생각할 만큼 진지했다. 새내기 때부터 사귀기 시작 해 내가 입대를 하고, 제대 할 때까지도 우리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권태기가 오는 것을 걱정하기에는 이미 잔뼈가 굵어진 사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요즘, 나는 그것이 나만의 착각이었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특별한 곳에 가고 싶어.”
밥을 먹다가 무심하게 한 마디 툭 던진 말이었지만, 나는 그 말에 민주가 원하는 모든 것이 담겨져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민주는 눈에 띄게 짜증이 많아졌고, 우울해 하고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민주의 이런 태도를 이별을 준비하는 여자의 태도 같은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군대에 다녀오면 남자가 여자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하지만, 내게는 그럴 마음이 전혀 없었다. 민주는 내가 군대에 가기 전보다 훨씬 더 예쁘고 어른스러워졌다. 물론 외모나 성격 때문에 민주를 사랑한다는 말은 아니다. 내게 민주는 우리가 함께 해 온 모든 시간들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민주를 데리고 부산으로 향했다. 민주는 이제 가 볼만 한 곳은 다 가 보지 않았느냐며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런 민주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그저 오늘 내가 준비한 풍경이 민주가 보았던 그 어떤 것보다도 아름답기만을 빌었다.
민주를 데리고 도착한 곳은 광안대교가 잘 보이는 민락 수변공원이었다. 벌써부터 사람이 북적이고 있었는데, 민주는 또 그게 불만인 모양이었다. 왜 이렇게 사람이 많으냐고 하며 화를 내는 통에 애를 먹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겨우 돗자리 하나를 깔고 자리에 앉았다.
“이 먼 데까지 와서 쉬지도 못하고 여기 있자고?”
나는 조금만 기다려 보라며 민주를 달랬다. 뭐가 민주를 그렇게나 짜증나고 화나게 만드는 것일까. 이러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의기소침해져 버렸다. 내가 말을 하지 않자, 우리 둘 사이에는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처음 사귀었을 때를 생각하며 기차 안에서 건네주었던 인형은 가방 안에 처박혀 있는 모양이었다. 예전에 민주는 토이 크레인에서 인형을 뽑아다 주면 어린 애처럼 하루 종일 그것을 안고 있곤 했었다. 이제는 그런 사소한 것들도 모두 변해 버린 것이다. 괜스레 장난을 치려다 민주의 화만 더 돋우게 된 나는 거의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축제가 시작 되는 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민주의 입꼬리가 움찔거리는 것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아마 입을 열면 민주는 오랫동안 준비해 왔던 말을 할 것이다. 헤어지자는 그 말을 말이다. 나는 민주를 보며 마음속으로 기도를 하고 있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된다.
“성준아, 나 할 말이 있어.”
그 순간, 첫 불꽃이 터졌다. 민주의 다음 말은 불꽃이 터지는 소리와 사람들의 환호성에 묻혀 버렸다. 나는 놀란 얼굴로 꽃처럼 피어나는 불꽃을 바라보는 민주를 꼭 안아 주었다. 민주는 봄날 캠퍼스에서처럼, 나를 첫눈에 반하게 했던 그 순진하고 예쁜 얼굴로 웃고 있었다. 민주는 내가 나도 모르게 ‘감사합니다!’라고 외쳐버렸던 것을 들어버렸을까.
민주가 특별한 곳에 가고 싶다고 했던 그 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지난 사 년 동안 우리가 갔던 모든 장소를 물색했다. 처음에는 민주가 가장 좋아했던 장소, 가장 사랑했던 시간을 새롭게 기억하도록 해 주고 싶은 마음에 시작한 일이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쉬운 작업은 아니었다. 어느 사진 속에서나 민주는 행복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그런데 수천 장의 사진 중에서 딱 한 장, 눈에 띄는 사진이 있었다. 서울 불꽃 축제에 갔다가 길을 잃어 불꽃은 구경도 하지 못하고 돌아온 날의 사진이었다. 괜히 미안해하는 내게, 민주는 여느 때처럼 웃는 얼굴로 괜찮다고 말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민주는 딱 한 마디를 했었다.
“불빛이 춤추는 걸 보고 싶었는데.”
그 때는 아무렇지도 않게 한 귀로 흘려버렸던 그 말들을 하나씩 맞추어 나가다 보면, 민주의 마음도 제 자리로 돌아와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입단속 철저히 하거라.
상궁마마님의 낮고 지엄한 목소리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이곳은 말 한마디도 새어나갈 수 없는 지밀이다. 나는 지밀나인 중 하나로 나이가 가장 어리다.
문과 문 사이를 두고 나오는 말소리. 상궁마마님들이 하는 이야기. 왕후와 상궁이 나누는 이야기. 그리고 생과방이나 소주방에서 새어나오는 잡다한 이야기 등이 떠도는 곳, 비밀이 만들어지나 절대 새어나가지 못하는 곳 중 하나가 된 곳이다.
“월이 너 그 이야기 들었니?”
“또 무슨 이야기? 도대체 이런 이야기들은 어떻게 떠도는 것인지 모르겠구나. 전하께서 궐에 이야기꾼이라도 들였단 거냐?”
“쉿, 마마님께서 입조심 하란 말 못 들었어? 전하라는 단어도 입에 함부로 올리지 못 하는거 모르니?”
“답답해서 그래. 답답해서. 떠돌아다니는 이야기는 많은데 도무지 말할 곳이 없잖아. 그나저나 아까 하려던 이야기는 무어냐?”
“아, 그게. 전하께서 사모하는 여인이 있는데 그 여인을 위해 매일 밤 가야금을 탄다고 하더구나.”
“뭐? 중전마마 말고 사모하는 여인이 따로 있다고?”
“쉿, 목소리 좀 낮춰. 네 덕에 제 명에 못 죽겠다. 왜 가락국에서 온 악성 우륵이라는 자 있지? 그 자가 가야금을 잘 탄다고 하더구나. 그래서 그 자를 통해 노래를 전한다나 뭐라나.”
“게 거기서 무엇을 속닥거리는 것이냐?”
참모의 불호령이었다.
“아 아닙니다. 그저 잡언이었습니다.”
“입 함부로 놀렸다가는 다들 알지? 쓸데없는 말 흘리지 말고 일이나 해야 할게야.”
가야금이라. 우륵이라는 자를 통해 노래를 띠운다. 전하께서 꽤나 로맨틱한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다. 어쩐지 가야금에서 참으로 기묘한 소리가 난다고 생각했다. 그저 기교가 좋아서가 아니었다. 튕기고 뜯는 그 음정 하나하나에 무언가 있었어.
드르륵 문이 열렸다. 지밀나인 두 명과 김상궁과 조내관만이 동행하여 우륵을 만나러 간다는 명이 있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오전에 생과방에서 나눈 이야기 때문이었다.
입을 함부로 놀릴 수 없었던 월야는 입을 꾹 다물고 김상궁의 뒤만 바짝 쫒았다.
구슬픈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전하께서는 꽤나 흡족한 미소를 보였다. 눈을 감으시고는 구슬픈 가락에 귀를 기울였다. 흐음 하고 전하의 입에서는 작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우륵이라는 자가 전하의 심정을 너무 잘 꾀고 있었던 것일까. 노랫가락에 온 신경을 쏟느라 숨 한 번 크게 쉴 수 없었고 침도 함부로 삼킬 수가 없었다. 고개를 빳빳이 들 수도 없었기 때문에 좀 더 가락에 집중할 수 있었다.
확실히 궐 안에 있는 악사들과는 다른 음색이었다. 무언가 힘이 있다고 생각했다. 오전에 생과방에서 있었던 이야기가 거짓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여인을 위해 올리는 곡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아. 하마터면 감탄사를 입 밖으로 내뱉을 뻔했다.
처소로 돌아온 뒤 날이 밝고 나인들 몇 명이 소주방에 모여 있었다.
“얘, 너 어제 우륵이라는 자의 가야금 가락 들었다며? 어때? 정말 전하께서 여인을 위해 띄우는 가락이더냐?”
“글쎄요. 저는 모릅니다. 그저 가락만 들은 것이었지요.”
“얘가, 자세히 좀 말해봐.”
“정말이어요. 가락이 구슬프고 또 구슬펐지요. 그것이 여인을 위함인지 나라를 위함인지는 모르겠어요.”
“아이 재미없어. 됐다 얘, 가봐.”
언젠가 전하의 용안을 뵙는 날. 전하의 마음이 잘 전달되었을 것이라 말씀드려야 겠다는 것뿐이었다.
엄마한테는 짭조름한 냄새가 난다. 그것은 땀 냄새도 아니고 엄마 한테서만 풍기는 엄마냄새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슈퍼맘이나 워킹맘이라는 단어가 선풍적으로 쓰인 때가 있었다. 육아와 직장생활을 병행하는 엄마들로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하지 않는 슈퍼우먼을 뜻하는 말이었다. 나는 엄마를 생각하며 우리 엄마가 슈퍼맘이 아닐까 생각을 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홀로 자식들을 키워야 했기 때문이다. 거의 대부분의 슈퍼맘들은 자신의 선택으로 슈퍼맘의 길에 접어들었겠지만 우리 엄마는 등 떠밀려 슈퍼맘이 되어야했다. 자식들을 굶기지 않고 공부시키려고 엄마는 참 열심히 일했다.
처음부터 식당을 개업한 것은 아니었다. 동네의 조금 큰 한식당에서 주방 설거지를 하고 홀 서빙 일부터 시작했다. 식당이 문을 여는 아침 일찍부터 나가서 식당이 문을 닫는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엄마는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의 손은 항상 부르트고 거칠었다. 사실 엄마와 같이 살면서도 함께 시간을 보낸 기억은 거의 없었다. 학교에 가려고 일어나면 엄마는 이미 식당에 가신 후라 아침상만 덩그러니 있었고 밤에는 엄마를 기다리다 먼저 잠든 적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해를 더 식당에서 일을 한 엄마는 이듬해 봄에 작은 한식당을 열었다. 식당에서 음식판매뿐 아니라 반찬을 함께 팔기도 했다.
엄마는 외할머니를 닮아 요리솜씨가 있다고 했다. 엄마는 음식에 있어서 간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며 소금을 가장 깐깐하게 생각했다. 엄마는 메인 요리와 함께 나가는 밑반찬들을 직접 만들었으며 식당을 찾는 사람들은 밑반찬이 깔끔하고 맛있다며 종종 구매해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환갑을 바라보는 연세에도 계속 일을 고집하는 엄마에게 이제 그만 쉬라고 말을 꺼낸 적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사람이 하던 일을 안 하고 집안에만 있으면 빨리 늙는 거라고 했다. 하긴 지금까지 엄마의 삶에는 조금의 쉼도 없었다. 늘 바쁘고 억척스럽게 살아왔던 삶이라 여유라는 쉼이 엄마에겐 어떤 것보다 낯설기도 할 것이다. 엄마의 삶을 봐왔던 동네 아주머니들은 누가 짠돌이 아지매 아니랄까봐 자식농사 풍년인데 뭣하러 지금까지 고생이냐고 했고, 엄마는 “짠돌이 어디 가나요. 그러지 말고 계모임 같은 거 있으면 다른 식당 가지 말고 우리 식당으로 와요”하며 웃음만 지었다.
사람들은 엄마를 짠돌이 아지매라 불렀다. 엄마와 나의 공통점을 찾으라면 아마 짠돌이라는 별명에서 일 것이다. 엄마는 내가 초등학생 때부터 용돈을 참 적게 주셨다. 그래서 돈을 아끼고 아껴야만 겨우 학교 준비물을 살 수 있을 정도였다. 학교 문구점에서 파는 100원 200원짜리 불량식품도 내겐 사치였다. 그렇게 지내다보니 고등학교 때까지 내 별명은 짠돌이였다. 물론 지금도 짠돌이라고 부르는 친구들이 있다. 지금은 여유 있는 생활을 할 만큼 벌이가 괜찮아 졌지만 여전히 돈을 허투루 쓴 적이 없다. 아마 나도 나이가 들면 엄마처럼 짠돌이 아지매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침부터 엄마가 분주한 걸 보니 반찬으로 나갈 배추겉절이와 오이소박이, 각종 나물을 만들려는 모양이었다. 가끔 회사에 월차를 내는 날이면 엄마를 도와 반찬을 만들며 식당일을 돕는다. 엄마는 반찬을 만들 때에도 항상 ‘소금’의 중요성을 연설했다. 싱싱하고 좋은 재료만큼 음식의 풍미를 돋우어주는 소금의 선택이 맛을 좌우한다고 했다. 그래서 엄마는 신안에서도 가장 좋은 천일염만을 고집했다. 나는 이런 좋은 소금 쓴다고 누가 알아주기나 하냐고 했지만 엄마는 식당을 찾는 손님들의 입맛은 귀신보다 더 무서운 법이라고 했다. 간 하나에 발길이 이어지고 끊기는 일이 다반사였고 칭찬과 쓴 소리가 좌우되는 것이라고 했다. 질 낮은 소금을 쓰면 음식이 텁텁하고 쓴 맛이 감돌며 질 좋은 천일염을 쓰면 깔끔하고 풍미 있는 깊은 맛을 낸다고 했다.
엄마의 고집은 소금만큼이나 짭짤했다. 질 좋은 소금을 써서 일까 사람들은 엄마의 음식솜씨를 칭찬했고 ‘짠돌이 아지매’ 식당을 찾는 사람들도 부쩍 많아졌다.
엄마가 일을 갔다 돌아오면 엄마 특유의 짙은 냄새가 났다. 엄마에게 풍기는 짭조름한 냄새도 질 좋은 천일염처럼 기분 좋은 엄마 고유의 냄새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