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지 경상도 남자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그것은 시골아이가 서울깍쟁이 여학생을 동경하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멋들어진 사투리를 쓰고 무뚝뚝한 말투와 행동 속에 배어 있는 세심함이랄까? 한껏 부푼 기대를 안고 떠난 첫 경상도 여행길이다. 포항에 있는 친구에게 내가 내려가니 환영의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으라고 큰소리를 쳤다.
버스에 몸을 싣고 유유히 안내팜플랫을 열어보고 있는데 친구한테 문자가 왔다.
‘미안, 나 갑자기 세미나가 잡혀서 나대신 내 친구 보냈어. 남자애야. 뭐 이왕 이렇게 된 거 소개팅이라고 생각해! 이 언니의 예기치 않은 깜짝 선물이다. 좋은 시간 보내!’
소개팅? 좋은 시간? 이걸 말이라고. 황급히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전화는 무심하게 신호음만 연결할 뿐이었다. 다시금 차를 되돌릴 수도 없고 1박 2일을 혼자 보내기도 겁이 났던 나는 일단 남자가 나와 있을 것이라는 포항터미널에 도착했다. 긴장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한 남자가 다가왔다.
“김수정씨?”
“아, 네.”
이 남자인가보다. 괜히 얼굴이 화끈거렸다. 포항터미널에서 갑작스럽게 만난 남자라니.
“연주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요. 경상도 남자한테 관심이 많으시다고 에스코트 좀 잘하고 오라고 하던데요?”
“아. 연주가 그래요? 아. 뭐..”
연주 이 기집애가 쓸데없는 소리를 했나보다. 그리고 이 남자. 낯도 안 가리고 싹싹한 면이 있다.
“배 안고프세요? 포항 오셨으면 과메기 정도는 먹어줘야 되는데, 드셔보셨나 모르겠어요.”
“아. 한번인가? 자주 먹어보지는 못했어요.”
“그래요? 그럼 제가 제대로 먹는 법 알려줄게요. 가요.”
그렇게 처음 본 남자와 처음 와본 곳에서 점심을 먹으러 앉아있다. 죽도시장에서 가장 맛있는 집이라며 남자의 추천으로 들어온 집이다. 주문한 과메기가 나왔고 남자는 김과 과메기, 갖가지 채소들을 얹더니 ‘아’ 해보라고 했다. 괜찮다는 대도 자꾸만 ‘아’해보라고 했다. 쌈이 풀어진다나. 그렇게 수줍게 받아먹은 과메기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비리지도 않았고 고소한 맛이 감돌았다.
“어때요? 맛있죠?”
“네. 비리지도 않고 생각보다 고소하네요.”
“그렇다니까요. 제가 황금비율로 싸드려서 그래요.”
남자는 그러면서 싱긋 웃는다. 그렇게 식사를 마친 후 일일 가이드로 일임한 남자를 따라 포항 이곳저곳을 다녔다. 남자는 경상도 남자답게 말이 많지는 않았지만 다정하고 세심했다. 어느덧 해가 저물고 붉은 노을이 하늘을 수놓았다. 일출 명소인줄 알았는데 해가 저무는 모습도 아름다웠다.
“저,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 이렇게 일일 가이드도 해주시고. 이제 그만 들어가 보세요.”
“뭘요. 저도 포항 여행 제대로 했는데요. 참. 내일 오전에 해돋이는 보시고 가셔야죠? 아침 일찍 여기로 나올게요. 해돋이 보고 가세요.”
“네? 아. 괜찮은데.”
“무슨 말씀이세요. 호미곶와서 일출 안보고 가면 여기 왔다고 명함도 못 내밀어요.”
남자는 그렇게 말하더니 내일 6시 10분까지 나오겠다며 내일 보자고 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쓸데없는 호의인가. 아니면 무엇일까.
다음날. 약속했던 시간이 약 30분이 남았음에도 모든 준비를 끝냈다. 애꿎은 시계만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봤다. 드디어 6시. 호텔 로비를 서성이는데 남자가 나와 있다. 언제부터 와 있던 건지 코끝이 살짝 빨갛다.
남자는 곧 해가 뜬다며 슬며시 내 손을 잡고 일출 명소로 뛰었다. 호미곶의 상생의 손 사이로 붉은 해가 솟아올랐다. ‘와.’ 속으로 감탄을 삼키고 있는데 남자가 말을 걸었다.
“멋있죠?”
“네. 멋있네요.”
“그럼, 나는 어때요?”
남자가 여자의 손을 잡고 빙긋 웃으며 말했다. 나는 수줍게 따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산은 그저 산일뿐이야. 어떤 의미를 갖다 붙인다고 해도 산이라고.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몰라? 이런 논리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여자는 막무가내였다.
결혼을 약속한 둘이 유일하게 말다툼이 시작하는 곳 바로 산이다. 남자는 산이 좋았고 여자는 그런 남자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모든 것이 적당했으면 하는 여자의 바람이 그리 욕심인 걸까? 여자는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였으나 남자의 산사랑 만큼은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악몽 같던 첫 데이트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둘은 지인의 소개로 처음 만났다. 둘이 소개팅을 하던 날 여자는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질문을 했다.
“취미가 뭐예요?”
“등산이요.”
남자의 한껏 격양된 목소리는 무심코 던진 돌에 반응하는 개구리처럼 번뜩였다. 등산이라는 단어는 무미건조하고 일반적인 취미 중 하나였으므로 특별할 것 없다고 여겨지기 쉬웠으나 남자의 등산사랑은 일반적인 상식을 뛰어넘었다.
여자는 어쩐지 남자의 체구가 더 탄탄해보였고 요즘 트렌드에 맞게 자기관리 하는 남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금 그때로 돌아간다면 등산이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것 같다고 말하겠지만 그때의 남자는 듬직하고 씩씩해보였다.
“그럼, 막 높고 험한 산들도 잘 타시겠네요?”
“그럼요, 언제 한 번 같이 등산 가실래요?”
그렇게 둘의 첫 데이트는 등산이었다. 보통 연인들처럼 아기자기한 카페에서 자기 한입 나 한입을 하지는 않았지만 서로의 손을 잡아주면서 그렇게 도란도란 구경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계절을 생각하지 못했다. 흰 눈이 소복이 쌓인 산을 먼 발치에서 바라보는 것은 멋있었으나 그 현장에서는 발이 푹푹 빠졌으며 몇 걸음 안가 금세 체력이 바닥이 나기 일쑤였다. 더군다나 등산이라고는 동네 언덕배기 정도 오르락내리락 한 것이 전부였던 여자에게 친하지도 않은 사람과 험준한 산행을 한다는 것은 더욱 체력소모가 큰 일이었다. 가족과 함께였다면 벌써 징징거리며 내려가겠다고 떼를 썼겠지만 명색이 첫 데이트에서 내려가겠다고 신경질을 부리는 건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것도 저렇게 황홀한 표정으로 산을 오르는 남자에게.
어느새 여자는 조금씩 뒤쳐졌고 조금 쉬었다 가자는 말도 잦아졌다. 여자는 내색하고 싶은 생각은 아니었지만 표정에서 지치고 짜증이 섞인 표정이 새어나왔다. 남자는 여자의 심경을 눈치 채지 못했는지 연신 감탄사만 내뱉고 있었다.
“이야, 정말 멋있지 않아요? 이건 돈 주고도 경험하지 못한다니까. 제가 이래서 산을 끊을 수가 없어요.”
“네, 그러네요...”
남자는 여자가 이와 비슷한 어조로 대꾸를 해줄 것이라 생각했지만 여자는 달랐다. 여자의 눈에 산은 그저 산이었고 힘든 건 힘든 것이었다. 그제야 여자의 마음을 눈치 챈 남자는 서둘러 여자의 상황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어디 아픈 건 아닌지 오늘 너무 무리한 것은 아닌지. 하지만 여자의 마음은 정상에 쌓인 눈처럼 쉽게 녹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미안해요. 정말. 제가 더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저도 여기는 처음 와본 곳이라.”
남자는 말끝을 흐렸다.
“제가 산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남들은 산을 정복했다는 묘미나 자기와의 싸움에서 승리를 얻었다는 마음에 희열을 느낀다고 하는데 저는 좀 다르거든요. 뭐랄까. 숨이 차는 느낌이 좋다고 할까?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 정말이지 한 발자국도 내딛기 힘을 때 보이는 것들이 있어요. 나뭇가지에 고스란히 쌓여있는 눈과 흙과 솔방울을 밟을 때 사박사박 내는 소리. 그런 게 좋아요.”
남자는 제법 진지했고 남자의 말을 듣는 여자는 더욱 진지했다.
“산, 산, 산! 이번엔 또 어떤 산인데?”
“너와 처음 갔던 곳, 그곳에서 너에게 해줄 말이 있어.”
남자는 여자의 손을 잡았다.
79년생 여자가 티켓의 자리표를 보며 서성인다. 열차 안에는 그다지 많은 사람들이 있었던 건 아니었음에도 여자는 쉽게 자리를 찾지 못했다. 그때 맞은편에서 한 여자가 걸어왔다. 86년생 여자이다. 둘은 한 지점에서 만났다. 이 여자의 행선지가 어디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쩐지 춘천까지 함께 앉아 가게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어색한 미소를 주고받으며 각자 자리에 앉았다. 둘은 서로를 탐색했고 왠지 모를 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두 정거장쯤 지난 후였을까 젊고 앳된 모습의 90년생 여자가 그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어쩌다 이 셋은 마주 보며 앉게 되었다.
우연일까. 세 여자 모두 홀로 춘천으로 떠나는 모양이었다. 79년생 여자는 책을 들고 있었고 86년생 여자는 거울만 들여다보고 있다. 90년생 여자는 스마트폰으로 연신 메시지를 날렸지만 셋은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심 신경이 쓰인 79년생 여자가 연장자답게 먼저 말을 꺼냈다.
“춘천까지 가시나 봐요?”
79년생 여자가 입을 떼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두 여자가 그렇다고 대답을 했다. 다시 어색함이 짙은 안개만큼이나 무겁게 깔렸으나 이전만큼은 아니었다.
한번 말을 붙여봐서일까 그 다음부터의 질문은 어렵지가 않았다. 세 여자는 각자 통성명을 하고 춘천으로 떠나는 여행에 대해 질문을 했다. 왜 혼자인지. 다른 사람이 홀로 떠나는 여행에 대해 세 여자는 나름의 추측을 던졌다. 실연을 당했나? 각오를 다지기 위해 떠나는 건가? 각자 조금의 차이는 있었지만 세 여자의 대답은 같았다.
‘젊었을 때 언제 한번 혼자 여행을 떠나보고 싶었어요.’
언젠가부터 춘천으로의 여행은 청춘 그리고 낭만이 되어버렸다. 누군가가 지정한 것이 아님에도 세 여자의 머릿속엔 춘천 이코르 청춘이었다.
이번엔 가장 젊은 90년생 여자가 입을 떼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함께 1박 2일을 보내자는 것이었다. 홀로 떠나는 여행을 계획한 그들에게는 다소 파격적인 제안이었음에도 거절하기가 미안해서였는지 그녀들은 쉽게 수락을 했다.
여행이 주는 맛이 이런 것일까? 생판 남이었던 사람과의 1박 2일의 여행이 마치 오래도록 알고 지내던 사람과의 여행처럼 편안했다. 이곳이 춘천이어서 그런 것인지 세 여자의 취향이 우연히 맞아서 인지는 모르겠으나 셋은 즐거운 얼굴을 하고 있다.
셋은 이곳저곳에서 사진을 찍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숙소로 돌아왔다. 반나절의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이라서 그럴까 세 여자는 조금 센티멘털해졌다. 왠지 가장 친한 친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말을 해도 괜찮겠다 싶을 정도였으니까.
86년생 여자가 오늘 찍은 사진들을 넘겨보면서 말했다.
“사실 난 내가 정말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인 줄 알았어. 늘 가던 편의점만 가고 늘 만나던 사람만 만나왔었으니까. 그런데 누가 알았겠어? 오늘 처음 만난 사람들과 밥 먹고 차 마시고 웃고 떠들고. 놀라운 하루야.”
가만히 듣고 있던 79년생 여자도 거들었다.
“그러게. 사실 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마음 추스르려고 온 여행이었어.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거든. 그리고는 다시는 결혼 같은 거 안 한다고 소리소리 지르고 무작정 짐을 싸서 나오긴 했는데 어디를 가야 할지 모르겠더라. 외롭기도 했고. 이제 다시는 누군가를 만날 수 없겠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그것도 아닌가 봐. 이렇게 우리 셋이 있는 걸 보면.”
79년생 여자는 자신의 속 이야기를 털어놓고 자신도 깜짝 놀랐다.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지만 자신의 파혼이야기까지 털어놓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던 그녀였다. 아무렴 어떤가. 왜 그런 이야기까지 내게 하느냐고 부담스러워하는 이도 없었고 안쓰럽거나 가여워하지도 않는 둘이었으니까 괜찮았다.
세 여자가 오늘의 여행을 뒤로하고 지속적인 연락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세 여자는 말없이 서로의 등을 토닥였고 그 토닥임이 무슨 의미인지는 그녀들만 알 수 있었다.
창밖에는 바닥이 하얗게 변할 만큼 꽤 큼지막한 눈발이 하얗게 나렸다.
“겨울에 태어난 아름다운 당신은~”
또 저 노래다. 지겹지도 않냐고 물어보려다 가자마 눈을 하고 흘기는 것이 무서워 관둔다.
“그래, 창 밖에 봐봐, 당신이 요즘 그렇게 목청껏 불러 마다않는 겨울이야. 근데 원래 넌 여름이 더 좋다고 하지 않았어? 사람들도 활기차보이고 무엇보다 보기만 해도 뼛속까지 시린 얼음골 폭포 보는 거 좋아했잖아. 겨울은 너무 추워서 싫다며.”
“응, 여름도 좋아. 그런데 난 우리 아이는 겨울에 태어났으면 좋겠어.”
아내는 갑자기 태어나지도 아니 계획에도 없던 아이이야기를 꺼냈다. 아내는 당황한 내 표정을 본체만체하곤 아이 그리고 겨울이야기를 독백처럼 떠들어댔다.
“여름은 여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좋지. 여름은 시원하고 겨울은 따뜻하니까.”
오늘은 당최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만 떠들어 댄다고 핀잔을 주려다 꾹 참는다. 아내는 가끔 나로서는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그러니까 논리에 전혀 맞지 않는 이야기를 자주 하곤 했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내게 전형적인 이과남자라며 이과생이 문학과 정서를 이해할 수 있겠냐며 소설책을 읽고 있는 내 손이 민망해 질 정도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물론 오늘도 괜히 덤볐다가 본전도 못 찾을 것이 뻔했기에 잠자코 아내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여름은 시원한 곳으로 찾아가니까 우리가 매년 얼음골로 피서를 가는 것처럼. 그리고 민소매도 마음껏 입을 수 있고. 그러니까 여름은 시원한 거고 겨울은 흰 눈이 온 세상을 감싸니까 왠지 따뜻해보여. 연말엔 기부도 많이 하니까. 안 그래?”
“듣고 보니 그러네. 그런데 요즘 들어 부쩍 겨울 겨울 그런다. 흰 눈이 그렇게 보고 싶었어?”
“아니. 아주 시원하고 달콤한 사과 때문에.”
사과? 네가 사과를 좋아했던가? 연애만 4년 그리고 결혼 2주년까지 총 6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면서 네가 사과를 특별하게 좋아했다는 것을 몰랐다. 내가 무심했던 건가 생각해보지만 특별히 그렇지도 않았다.
“사과? 겨울하면 넌 사과가 생각난다고? 군밤이나 군고구마도 아니고?”
“그래. 사과! 아. 생각하니까 먹고 싶다.”
아내는 해맑은 표정으로 사과를 떠올렸다. 절로 군침이 도는 모양이었다. 아내는 특별히 과일을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다. 그저 철이 되면 마트에 진열되어 있는 과일들 중 하나를 골라 집어 의무적으로 섭취하는 식이었기 때문이다.
“사과? 먹고 싶으면 사다줄까? 이렇게 추운데. 눈이 펑펑 오는데?”
괜히 맘에도 없는 말을 던져본다. 그것도 암묵적으로 가기 싫다는 티를 팍팍 내면서 말이다. 설마 다녀오라고 할까.
“정말? 그래 주면 좋고. 아참, 그냥 사과 말고 꼭 얼음골 사과로!”
오랜만에 애교 섞인 목소리를 낸다. 싫은 티를 팍팍 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주면 좋다는 대답아 날아온 걸로 보아서는 어지간히 먹고 싶었던 모양이다.
“알겠어. 추우니까 요기 따뜻한 이불 속에서 조금만 기다려. 금방 다녀올게.”
오리털 점퍼를 꺼내 입고 집을 나섰다. 큼지막한 눈발이 내렸지만 앞이 안보일 정도는 아니었다. 숨을 쉴 때마다 하얀 입김이 호호 나오는 겨울이었다. 아내는 이 한겨울에 이름만 들어도 등골이 서늘한 얼음골 사과를 먹고 싶다고 하는지.
과일 가게 앞에서 서성일 필요도 없이 사과를 찾았다.
“어머, 색시가 아기를 가졌나 보네, 얼음골 사과를 찾는 거 보니. 아삭하고 달콤한 게 태기가 있을 땐 그런 게 땡기는 법이거든.”
“아기요? 에이. 아니에요.”
“그래? 난 또. 아무튼 야무진 놈들로만 골랐으니 얼른 가져다 줘요.”
아기라고? 에이 설마. 갑자기 걸음이 빨라졌다. 아내가 혹시 숨기고 있던 건가? 그래서 아까 아이 이야기를 꺼낸 건가? 머릿속이 흰 눈송이만큼 하얘졌다. 빠른 걸음으로 집 앞에 도착했다. 턱 끝까지 숨을 몰아쉬고는 문을 열었다.
“사과 사왔어! 아주 시원하고 아삭한 얼음골 사과”
아내는 이불 속에서 쌔근쌔근 자고 있었다.
어렸던 내게, 할머니들은 내 부모님이 용을 타고 멀리 떠나셨다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주 훌륭하신 분이었다 한다. 강직하고 정의감 넘치는 성격의 아버지와 온화하고 정이 많은 어머니. 모두들 자신의 부모를 더러 이렇게 묘사하곤 하지만, 내 경우는 조금 특별하다. 그러니까 그게 얼마만큼의 훌륭함이냐고 하면, 이십 여 년 전의 교통사고에서 두 분의 몸으로 나를 끌어안아 내 목숨만을 구하고 돌아가셨을 정도. 딱 그 정도의 훌륭함이다.
부모님께 ‘감사’라는 단어를 생각하게 된 것은 얼마 지나지 않은 일이다. 아마 부모님의 훌륭함이 내 성격에까지 번져 오기까지는, 꽤 오랜 세월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적어도 6년 보다는 많은 시간 말이다. 부모님과 함께 한 시간이 짧아서인지 나는 좀처럼 부모님의 얼굴이나 성함을 기억해내지 못했고, 대신 고아로 지내 온 시간 동안 견뎌야 했던 숱한 아픔들을 기억했다. 부끄럽게도, 나는 내 생의 대부분을 부모님을 원망하는 데에 쏟았다.
“야가 또 뭘 하고 있노, 퍼뜩 좀 온나.”
“아이구, 사돈. 좀 천천히 가요. 노인네가 무슨 걸음이 그리 재답니까?”
나는 두 할머니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나란히 굽은 할머니들의 등이 보였다. 부모님께서 돌아가신 이후로, 나는 이 두 분의 손에 자랐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한 자식을 한 날 한 시에 잃은 두 분은 이십 여 년을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 오셨다. 자식을 잃은 아픔도, 엇나가는 손자에 대한 아픔도 함께 나누어 오셨던 것이다.
“천천히 가요, 차 시간까지는 아직 한참 남았어요.”
내 말에 뒤를 돌아본 할머니들이 곧바로 말을 꺼내지 못하고 머뭇거리시다 다시 고개를 돌리셨다. 오늘은, 할머니들의 품을 떠나 서울로 향하는 날이다.
이십 여 년. 누구도 짧다고는 말하지 못할 그 세월 동안 두 분의 할머니는 매주 이 산길을 오르셨다. 슬픔을 이기기 위해, 지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내 이름의 끄트머리와 같은 글자를 쓰는 절을 찾아 시작한 산행은 이제 두 분의 낙이 되었다. 그 이십 여 년 동안 한 번도 할머니들을 따라 이 길을 오른 적이 없다니, 나도 좋은 손자는 아니라는 생각에 새삼스레 얼굴이 붉어졌다.
산 중턱의 너른 터를 너머로 지붕을 환히 펼친 건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둥그런 산의 능선들과 어우러진 사찰의 모습이, 마치 작은 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서 울리는 풍경 소리가 귓가에까지 와 닿았다. 화려함도 떠들썩함도 없는 절을 왜 그렇게들 찾아가나 했더니, 이 따뜻하고 향기로운 분위기 때문이었나 보다. 두 할머니는 석탑 앞에서, 또 불상 앞에서 끊임없이 두 손을 모아 고개를 숙이셨다.
“뭘 그렇게 비시는 거예요?”
“뭐긴, 이놈아. 다 너 잘 되라고 비는 거지. 이십 년 동안 빌었으니 이제 곧 지문이 닳겠어.”
나는 멋쩍게 뒤통수를 긁적이며 웃었다.
“봐라, 여기 우리가 서 있는 데가 용이 웅크린 자리다. 옛날에 이 산에서 아홉 마리의 용이 올랐다고 하는데, 원래는 열 마리가 있었다고 하데. 혹시 아나. 니가 그 마지막 용을 타고 하늘에 오르게 될지 말이여.”
“그렇게 오래 마음고생을 하며 웅크려 있었으니 얼마나 답답하고 서러웠겠노. 우리가 그 마음을 다 용한테 맡겨 놨다. 이제 훨훨 나는 일만 남은 것이여.”
나는 아리송하고도 복잡한 마음으로 할머니들의 주름진 얼굴을 바라보았다. 할머니들은 내게, 부모님이 용을 타고 떠나셨다고 했다. 저 멀리 구름 너머로, 춤추듯 너울거리는 용의 등허리를 타고 가셨다 했다. 이제 내게 용을 타고 떠나라 하시는 것을 보니, 할머니들은 아직 그녀들의 자식을 보내지 않으신 것이 분명했다.
“용진이 니도 용 허리 한번 타그라. 근심걱정 다아 용한테 맡기고, 니는 그냥 훨훨 날아가그라.”
그 때, 할머니들의 미소 아래로 오래 된 이야기 속의 용들을 보았다. 쉬이 보지 못할 곳, 너무 멀어 쉽게 닿지 못할 곳에서 할머니들의 소중한 보물을 끌어안은 용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할머니는 점점 기력이 쇠해지면서 말수도 적어지셨다. 동네 경로당이라도 다시시면 좋으련만 며칠 나가시더니 그마저도 발길을 끊으셨다. 말이 경로당이었지 할머니보다 연배가 훨씬 적은 젊은 할머니들의 등쌀에 외부인 취급을 받으신 할머니는 그날로 줄곧 집안에만 계신다.
할머니는 건넌방도 거실도 아닌 베란다에 보금자리를 만드셨다. 구부정한 허리에 다리를 곧게 뻗으시고는 베란다 발코니에서 창밖을 내다볼 뿐이었다. 식사를 하거나 화장실에 용무를 보러 가시는 시간 이외에는 대부분 베란다에 계셨다. 베란다와 할머니는 위태로워 보였다. 그런 점에서 할머니에게 제법 어울리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엄마는 할머니에게 화초라도 가꿔보는 것은 어떠냐고 했지만 금방 죽어버릴 걸 뭐 하러 사오냐며 그만 두라고 했다.
할머니는 줄곧 시골에서 사셨다. 꽃다운 나이에 시집온 그 동네에서 알콩달콩 살림을 꾸리며 십수 년의 세월을 보내셨다. 할머니 댁 앞마당에는 작은 개울가와 원두막이 있어 여름이면 꼭 할머니 댁에서 하루를 보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작은 개울가에서 발도 담그고 빨래도 하던 공간을 70여 년 만에 떠나 서울로 올라오신 거다. 얼마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엄마가 우리 집으로 할머니를 모셔왔다. 할머니는 한사코 거절하였지만 혼자 시골에서 적적하실 뿐더러 몸도 편치 않으셔서 안 된다며 엄마의 고집이 할머니 고집을 꺾었다. 서울로 올라오신 할머니는 서울도 참 많이 변했다고 하셨다.
할머니는 점점 더 위태로워지셨다. 엄마는 그런 할머니에게 산책이라도 다녀오시라고 했지만 말뿐이었다. 엄마도 할머니에게 최선을 다하고는 있었지만 그 무엇도 할머니의 무언가를 채워주지는 못했다. 베란다에 있는 시간도 더 길어지셨다.
“베란다에 도대체 뭐가 있길래 하루 종일 거기만 쳐다보고 있느냐고. 누가 보면 억지로 데려가 가둬두는 줄 알겠어. 우리 집 신고 당하면 다 엄마 때문인 줄 알아.”
“그냥 답답해서 그런 거니 신경 쓰지 말라 안하나.”
“답답하면 산책을 나가던가. 왜 집밖을 안 나가는데 같이 쇼핑가자고 해도 싫다고 하고 외식을 하러 나가자고해도 싫다 그러고. 노인네가 고집은 또 왜 이렇게 센지.”
엄마는 속상한 마음을 풀어놓았다. 그럴수록 할머니는 더욱 베란다 가까이에 붙었다. 나는 할머니가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아!
할머니를 모시고 청계천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는 변해버린 서울이 두려워 집 밖을 나가기가 무서우셨던 거다. 늙어버린 당신과 함께한 고향을 두고 모든 것이 낯선 동네에서의 두려움은 할머니를 베란다로 내 몰았던 것이다. 그렇게 보금자리에서 위태로운 삶을 버텨가던 할머니는 결국 시골집의 작은 개울이 그리우신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가 병원 검진 때문에 집밖을 나오셔야 하는 날, 나는 진료를 받고 할머니를 청계천으로 모시고 갔다. 아이들은 발을 담그고 하하 호호 웃으며 놀고 있었고 청계천 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할머니는 한참 동안 청계천을 바라보셨다.
막혀있던 물줄기가 시원하게 뻗어나가듯 청계천을 흐르는 물줄기가 제법 거셌다. 잘 꾸며놓은 조형물에 가까운 곳이었지만 할머니는 서울 한 가운데에서 시골 앞 개울가를 만난 듯 하셨다. 반가움에 두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할머니, 다리 안 아프셔요? 이제 그만 갈까?”“조금만 더 있다 가자꾸나. 조금만.”
“서울도 많이 바뀌었지요? 옛날에는 여기가 다 시멘트 바닥이었는데. 몰라보게 바뀌었어. 이렇게 꾸며놓으니 좋지요?”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리고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시골 개울가처럼 아이들이 물장구를 치거나 멱을 감지는 않았지만 할머니 눈에는 검게 그을린 개구쟁이 아이들이 수업이 끝나고 미꾸라지를 잡는 모습으로 보이는 듯했다. 청계천 8경 중에서도 할머니는 5경에서 가장 오래 머물러 계셨다. 5경은 빨래터를 재연한 공간으로 아마 할머니의 집 앞 개울을 가장 많이 닮은 곳이기도 했다. 할머니의 눈시울이 조금은 붉어졌다. 그리고 마른 입술을 매만지셨다.
청계천에 다녀오신 후로 할머니는 기력을 조금씩 되찾으셨다. 베란다에 나가 계시는 시간도 줄고 간간히 산책도 다녀오셨다.
할머니의 시간은 앞으로도 흐를 것이고 청계천의 물도 이제는 마르지 않고 흐를 것이다. 언제나 언제나.
요즘 들어 남편이 수상하다. 대중가요에서였나 님이라는 글자에 점하나만 찍으면 남이 된다더니 20여년을 가까이 살 맞대고 살았는데 의심의 불씨는 생각보다 빠르게 번져나갔다. 남편은 오로지 한 길밖에 모르고 살았다. 가정과 직장. 성실하나로 친정 부모님의 마음을 사로잡고 뚝심 있게 밀어부처 결혼까지 골인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요즘의 남편은 수상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얼마 전 만난 고등학교 동창애의 말이 자꾸만 머릿속에서 빙빙 맴돌았기 때문이다.
“얘, 남자는 다 똑같더라. 우리 남편은 아니겠지. 우리 애 아빠는 그럴 리가 없어라고 생각했는데 뒤에서 딴 주머니 차고 다니는 게 남자라니까. 글쎄 세훈이 엄마 알지? 그 집도 이번에 이혼한다고 난리잖아.”
“어머, 왜?”
“왜긴, 여태 뭐 들었니? 딴 주머니 찼다니까. 글쎄 뭐라더라? 등산모임에서 둘이 눈이 맞았다나? 아무튼 뒤돌아서면 딴 생각하는 동물이 남자라는 동물이라더니. 세훈이 아빠 병수발 다 받아낸 게 세훈이 엄마인데 건강 생각한다면서 다닌 등산모임에서 바람이 날 줄 누가 알았겠니?”
“어머, 어머. 세훈이 엄마 어떻게 하니.”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위자료나 왕창 뜯어내고 갈라서는 거지. 간통죄로 안 처넣은 게 다행이라나 뭐라나.”
동창애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언행이 점점 거침없었다. 동창애의 언행처럼 나의 의심도 거침이 없었다. 남편의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는 둥, 셔츠 옷깃을 살피는 등의 드라마에서나 나올 것 같던 행동들을 내가 하고 있었다. 남편의 휴대전화에는 모르는 번호들이 적혀있었고 퇴근하면 바로 퇴근하던 남편은 요즘 새벽에나 들어왔다. 어딜 다녀오는 것이냐고 해도 답이 없었고 술을 마신 것 같지 않은 것이 회식도 아닌듯했다. 자고 있는 남편의 얼굴을 보니 비참한 마음이 들었다. 슬쩍 거실에 나와 서 있는데 남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이때다 싶어 문자를 열어보니 오늘도 수고 많았다고 집 앞까지 데려다 줘서 고맙다는 등의 문자가 와있었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무에게도 이야기 할 수 없음에 더 서글퍼졌다.
날이 밝았다. 새하얗게 밤을 지새우니 두 눈이 퀭했다. 어쩐지 잠을 한 숨도 못잔 나보다 남편의 얼굴이 더 퀭해보였다. 속으로는 두 집 살림 하려니 힘들기도 하겠지라며 비꼬았으나 아직은 내색을 할 때가 아니었다. 이렇다 할 현장을 목격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남편이 씻으러 들어갔을 때 어제 밤에 문자를 보낸 사람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당연히 어떤 여편네가 받겠지라는 생각을 했건만 멀쩡한 남정네가 전화를 받았다.
“저, 혹시 김영훈씨 아세요?”
“네? 김영훈이요? 누구시죠? 전 그런사람 모르는데.”
“네? 어제 김영훈씨한테 수고 많았고 집 앞까지 데려다 줘서 고맙다고 문자 보내시지 않으셨어요?”
“아~ 대리기사요?”
전화를 받은 남자의 입에서는 대뜸 남편을 대리기사라고 불렀다. 큰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멀쩡히 직장 잘 다니는 남편이 왜 야간 대리운전을 뛰고 있는가. 왜 나에게는 일언반구 아무런 말도 없이 투잡을 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씻고 나온 남편이 채 옷을 다 꺼내 입기도 전에 따져물었다.
“당신 뭐야? 당신 밤에 대리기사 뛰어? 도대체 왜? 당신이 왜!”
“당신 내 휴대전화 뒤져봤어?”
“지금 그게 문제야? 왜 대리기사를 나한테 아무런 말도 없이 하고 있냐고 왜!”
나는 남편에게 울부짖으며 악을 썼다. 그간 남편을 의심한 것에 대한 미안함과 남편이 왜 힘든 시간을 홀로 보내게 내버려두었나 하는 자책감이 얽혀있었기 때문이다.
“그럴 만 한 사정이 있었으니까. 이제 얼마 안 남았어. 곧 그만 둘 거야.”
남편은 제대로 된 답을 주지 않고 자리를 회피했다. 하루종일 넋이 나가 멍청하게 소파에 앉아있는데 친정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얘, 나다. 김서방한테 고맙고 미안해서 어쩌니. 내가 손 벌릴 곳이 없어서 너네한테까지 손을 다 벌리고. 김서방 덕분에 다행히 급한 불을 껐다고 전해줘. 너도 마음고생 많았지? 조만간 집으로 와. 맛있는 저녁 해 줄 테니까.”
“엄마, 그게 다 무슨 소리야? 알아듣게 이야기 해봐.”
“어머, 너 몰랐니? 내가 얼마 전에 급한 목돈이 좀 필요해서 전화했는데 김서방이 받더라고, 그래서 너랑 잘 상의해서 돈 좀 구할 수 있겠냐고 했지. 그랬는데 넌 모르고 있었니?”
남편은 그런 사람이었다. 내가 괜히 친정 부모님 걱정할까봐 내 통장 하나 건드리지 않고 혼자 그 목돈을 구하려 대리운전까지 했던 거다. 그런 사람이었다. 우리 남편은.
자정이 넘어서야 남편은 축 처진 어깨를 하고 들어왔다. 나는 말없이 남편을 꼭 안았다.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과 함께. 그런 내게 남편은 부부라는 이름으로 살면서 이 정도도 못하면 어디 쓰겠냐고 한다. 부부라는 이름으로 나는 남편과 다시 하나가 되어 살아간다.
초조한 마음에 소식 없는 문 앞만을 지키고 서있다. 나올 시간이 지났는데 깜깜 무소식이었다. 그때 아기 울음소리가 우렁차게 들렸고 남자는 자리에 멈추어서 소식을 말해줄이를 두손 모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
문 안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찢어지는 듯한 울음소리 뒤로 안도의 한숨과 함께 산모는 아이의 성별을 물었다. 아들인가요? 딸인가요? 돌아오는 대답은 떡두꺼비 같은 아들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하. 여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산모들 같으면 손가락 발가락 다 있나요? 혹은 아이는 어떤가요? 라는 말을 물었을 텐데 아이의 성별을 먼저 묻는 걸 보니 한참을 기다렸던 아들인가보다 했다.
드디어 문이 열리고 간호사가 나왔다. 아이의 성별을 말해주기 위함이었다. 방금 나온 아이가 아들이라는 것을 들은 남자는 털썩 주저앉았다. 기뻤다. 딸이었어도 기뻤을 것이었지만 아들이라는 말에 조마조마했던 시간을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남자는 한참 만에 시골에 전화를 할 수 있었다. 감격에 찬 목소리로 전화를 걸고 아이가 아들임을 당당히 말했다.
“그게 정말이가? 고추가 나왔단 말이지? 아이고, 장하다. 장해.”
“어머니도 참. 아무튼 그렇게 아세요.”
“그래, 마. 아가한테도 수고했다고 전해주고. 알긋나?”
남자의 엄마는 수화기 주변으로 모여 앉은 사람에게 아들이라는 단어 대신에 또 고추라는 단어를 쓰며 아들이 태어났음을 알렸다. 그리고 며느리에게 아가라는 말을 단어를 쓴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렇게 아들을 기다렸던 모양이다. 어머니는 이제 시골집에 금줄에 고추를 매달아 놓을 것이다. 그리고 마을 잔치를 벌이시겠지.
요즘은 많이 사라졌다고 해도 시골에 계신 시부모들의 마음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사실 아들귀한 집안에 줄줄이 딸을 낳았으니 애가 타는 마음을 아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넷째를 가졌다는 말에 시골에서는 아들 낳기 좋다는 한약재들과 각종 음식들을 보내왔다.
그 중에서도 고추로 만든 음식들이 많았다. 여자는 눈앞이 아찔해졌다. 아무리 아들을 바라왔던 이들이지만 너무 노골적이지 않은가 생각했다. 고추를 많이 먹는다고 아들을 잘 낳게 된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나라 인구비율이 제대로 맞춰질 리가 없었으니 말이다.
부담가지지 말라며 보내온 음식들을 꼬박꼬박 챙겨먹으며 여자는 온몸으로 모든 시선과 부담을 감수해야 했다.
의사는 양수와 분비물로 뒤섞인, 마치 핏덩어리 같은 갓난아이를 품에 안아주었다. 뱃속에 있다 나와서인지 따뜻했다.
“아들을 많이 기다리셨나봐요.”
“네. 많이 기다렸어요. 제가 그동안 고추를 얼마나 많이 먹었는데요.”
“아, 네. 참, 아이도 산모도 건강해서 다행입니다.”
의사는 마무리 말을 하고 간호사에게 뒷마무리를 넘긴 뒤 자리를 벗어났다. 의사에게 괜한 소리까지 한 것을 알면서도 여자는 감격의 눈물인지 슬픔의 눈물인지 모를 눈물을 흘렸다.
이 아이가 딸아이였다면 아니, 또 딸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나왔더라면 어땠을까 생각을 했다. 맵기도 정말 매웠던 고추를 그렇게 씹어 먹으며 눈물로 기다리던 아이였다. 막상 기다리던 아들이라는 소식을 들었는데 왜 이렇게 슬픈 건지 몰랐다.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데 눈가가 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