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좀 해, 나 시간 없단 말이야.”
예진이의 말에 나는 묵묵히 가방 싸는 손놀림을 조금 더 빠르게 했다. 군대에 다녀온 나보다 이 년이나 빠르게 대학을 졸업하게 된 예진이는 요즘 들어 눈에 띄게 짜증이 많아졌다. 항상 카페 창가에 앉아 마시던 커피도 이제는 테이크아웃을 해서 도서관으로 직행하게 되었고, 거리를 마다 않고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도 먼 일이 되었다. 토익 점수가 몇 점이고, 자격증이 몇 개이고 하는 것들이 나와 함께 보내는 시간보다 중요해져 버리는 그런 때가 오고야 만 것이다.
남자친구의 입장으로 서운하기는 했으나, 이번 학기가 마지막 학기이니 조급해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었다. 창밖에는 봄꽃들이 피었지만, 예진이의 달라진 생활 방식에 맞추어 기숙사와 도서관을 오가다 보니 나들이는 꿈도 못 꿀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예진이가 나와 헤어지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니었다.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내게 짜증을 내고서도,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아 기분이 조금 가라앉으면 항상 먼저 사과를 해 오는 예진이였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나를 불러내어 사과를 건넨 예진이가 기지개를 켜다 말고 테이블 위에 그대로 엎드려 버렸다.
“진짜, 마음 같아서는 다 때려치우고 눈이나 봤으면 좋겠다.”
또 눈 얘기였다. 겨울에 딸기가 먹고 싶다 하면 마트에 가면 되는 시대가 왔으니, 나는 예진이가 조금이라도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다 해 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중에서도 남단에 위치해 있는 이 도시에서 4월에 눈을 찾으니, 이건 나로서도 정말 어찌 할 방법이 없었다.
“예진아, 조금만 더 힘내자. 우리 예진이 잘 할 수 있는 거 내가 다 알아.”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내 말이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졸업 후에 바로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회사에서 일하게 될 터라, 예진이가 느끼고 있는 막막함의 절반도 제대로 와 닿지 않으니 말이다. 예진이 말 대로 눈이나 보여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루에도 수십 번씩 그런 생각을 했다.
“눈 내리는 데는 없어도, 눈 내리는 거 뺨치게 예쁜 데는 있는데.”
내 고민을 들은 친구의 한 마디에 귀가 번쩍 뜨였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대구에 4월에 눈 내리는 곳 없냐고 물었는데, 의외의 대답을 들은 것이다.
“수성못 말이야, 수성못. 한 번도 안 가 봤어?”
“야, 우리는 학교 때문에 여기 와 있는 거잖아. 대구 지리를 알 리가 있냐.”
“하긴, 학교에서 대중교통으로 두 시간은 걸리니까 너희들은 못 가 봤겠다. 대구 사람이면 다 아는 곳인데 말이야.”
대구 토박이인 친구는 여자 친구와 싸웠을 때에는 꼭 수성못에 가서 화해를 하고 온다고 하였다. 봄이면 벚꽃 가지 사이로 오리 배들이 지나다니는 걸 볼 수 있는데, 눈처럼 날리는 벚꽃을 배경으로 오리 배를 타는 것만큼 로맨틱한 연출도 없을 거란다. 목련과 개나리도 만개했을 테고, 잔디와 흙길이 많아 잘 정비된 아스팔트 공원보다 훨씬 정겨운 느낌이 날 거라고 했다.
“게다가 바로 옆에 수성유원지도 있어. 벚꽃 보다 지치면 이쪽으로 가도 되고. 근데 벚꽃으로 워낙에 유명한 데라 지칠 틈도 없을 걸?”
꽃구경도 하고, 예진이가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눈 구경도 하니 이것보다 지금 우리에게 안성맞춤인 곳이 어디 있을까. 나는 먹던 밥값을 모두 계산하는 것으로 친구에게 사례를 하고는 서둘러 일어섰다.
예진이의 수업이 끝날 시간이었다. 강의실 앞으로 찾아간 나는 새삼스럽고도 정중하게 데이트 신청을 했다. 묵직한 가방을 팔에 안고 있는 예진이의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기에, 쉽게 대답하지 못하고 쭈뼛쭈뼛 망설이는 예진이의 손을 먼저 잡아 이끌었다.
“또 머릿속으로 공부 계획표 생각 하고 있지? 오늘 하루만 노는 건데, 뭐 어때. 눈 내리는 거 보러 가는 거야, 우리.”
눈이라는 말에 예진이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그럴 줄 알았다. 못 이기는 척 끌려오는 예진이를 보며, 오늘 공부 못한 건 모두 내 탓으로 돌려주리라 결심했다.
유난히 지독한 악몽을 꾸었다. 여전히 꿈에서 깨면 식은땀이 베개에 흥건했고 꿈에서 깨면 얼마동안은 쉬이 움직이기도 힘들었다. 이러한 지독한 악몽은 며칠 째 계속되었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괴롭히는지 몰랐다. 꿈에서도 그를 쫒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저 두려움에 앞만 보고 달리다보면 어느새 헉 하는 소리와 함께 잠에서 깨곤 한다. 그가 이런 상황을 이야기하면 친구들은 뒤늦게 키가 크려나보지, 네가 애냐며 비웃음 섞인 조롱만 늘어놓았다. 그는 이러한 악몽의 끝에는 돈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항상 가난에 허덕였고 좀처럼 빈곤함은 나아지지 않았다.
깨어나고 싶어도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것처럼 답답하기만 했다. 누군가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불편한 것이라 했던가.
어렵사리 대학등록금을 마련하여 학교에 다니다보면 또 다시 돌아오는 등록금 납부기간. 도대체 한 학기는 왜 이렇게 빠른 것인지 몰랐다. 남자의 얼굴에는 늘 그늘이 져 있었고 빈곤의 주름이 깊게 패여 있었다.
대학입시와 함께 부모님께는 손을 벌리기 않기로 마음 먹은지 어언 삼년이 넘었다. 그동안에도 그는 풍족함 없이 지냈지만 이렇게 힘든 적도 없었다. 그는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을 정도로 열심히 살았다. 과수원을 하는 부모님을 생각하며 과일, 채소를 팔아본 적도 있었고 고기 집에서 불판도 닦으며 중국집에서 배달하는 일도 했다. 사람들은 참 열심히 사는 청년이라며 칭찬을 늘어놓았지만 쉽게 그의 사정을 봐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 그가 망설임 없이 구매하는 것. 복권이었다. 그의 친구들은 네가 일확천금을 노리기 때문에 안 되는 거라며 비아냥거렸지만 그는 이렇게 작은 희망이라도 품지 않으면 꼬여만 가는 가난의 실마리를 풀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되던 안 되던 추첨 시간이 되면 그의 답답한 가슴이 잠시나마 두근거리며 뚫리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제도 오늘도 꽝이었지만 그는 잠시 동안의 해방감을 즐겼다.
며칠째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또 다시 불면증과의 사투에 들어가야 하는 것인지 생각했다. 내일이면 아르바이트다 수업이다 해야 할 일이 태산 같은데 잠이 오지 않았다. 물론 잠이 든다고 해도 악몽 때문에 제대로 잔 것 같지도 않게 깨긴 했지만.
그러다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게 잠 속에 빨려 들어갔다. 어딘지 모르는 낯선 곳이었다. 물이 흐르는 곳에 솥 모양의 바위가 있었고 그 곳에는 물안개가 피어나면서 어렴풋이 보아도 심상치 않은 곳이었다. 그는 무언가에 이끌리는 것처럼 바위 쪽으로 손을 뻗었다.
물에 비친 모습 때문이었을까? 손에 닿을 듯 말듯 애간장을 태웠다. 안간힘을 써 손을 뻗었다. 탁! 하고 바위를 치는 순간 잠에서 깨었다. 번쩍하는 느낌에 온 몸에 전율이 흘렀고 긴 악몽에서 깨어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식은땀이 흘렀지만 분명히 그전까지 꾸던 악몽은 아니었다. 어딘지 모르는 곳에 있던 바위, 그리고 바위를 만지던 손의 느낌이 생생했다. 왠지 개운함까지 감돌았다.
남자는 예삿꿈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분명히 길몽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꿈을 꾸고 난 뒤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었다. 여전히 자장면을 배달해야 했고 고기 집에서 불판을 닦아야 했다. 복권을 사도 꽝이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엔 더 이상 빈곤의 주름이 보이지 않았다.
내 이름은 성춘향이다. 나이는 열 살이다. 나는 학교나 학원뿐만 아니라 어디를 가도 금세 주목받기 일쑤이다. 아마 이름 때문이겠지. 나는 한동안 누가 내 이름을 물어보는 것이 싫었다. 성춘향이라고 하면 무엇인지 나를 통해 춘향전의 춘향이를 떠올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아닌 소설속의 인물로 기억되고 싶지는 않은 데 말이다.
언젠가 할머니 댁에 친척들이 모두 모인 적이 있다. 나는 언니, 오빠들이 많이 신 나게 방방 뛰어다녔으나, 할머니께서는 춘향이가 단정하고 단아하지 못하고 그렇게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뛰어다녀서야 되겠냐고 꾸짖으셨다. 난 춘향이라는 이름 때문에 늘 조심조심하여야 했고 상냥하게 웃어야 했다. 특히나 내가 남원사람이라서 더욱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가끔 잠자리에 들 때면 이런 생각을 한다. 정말 소설에 나오는 춘향이도 조신하고 얌전하며 단아했을까.
나는 일기 속에 춘향이를 만나보고 싶다고 적었다. 춘향이를 만나면 꼭 한번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잠자리에 들면서 되뇌었다. 지금의 춘향이가 과거의 춘향이를 만나는 상상을 말이다. 생각만 해도 키득키득 웃음이 새어나왔다.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들렸다. 춘향이의 꿈속이다. 그곳은 조선시대였다. 춘향이도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있었다. 춘향이는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가 춘향이의 이름을 불렀고 춘향이는 대답을 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뒤를 돌아본 것이 자신 하나가 아닌 또 다른 사람도 있었던 것.
그리고 춘향이를 부른 사람도 열 살 성춘향을 부른 것 같지 않았다. 나와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었나 하는 생각에 고개를 돌려보니 웬 도령이 한 처자에게 춘향이라고 부르며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순간 어린 춘향이는 자신이 정말 과거의 춘향이를 만나러 온 것임을 짐작했다. 놀랍고도 신기한 마음에 춘향이는 몰래 과거의 춘향이 뒤를 졸졸 따라갔다. 인기척을 느낀 과거의 춘향이는 어린 춘향이의 손을 탁 잡았다.
“얘! 너는 뉘 집 자제이기에 나를 이리도 졸졸 쫓아다니는 것이냐!”
“아... 그게.. 그게 아니라.”
놀란 춘향이는 쉽게 말을 잇지 못하다가 두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혹시 언니가 그 성춘향이에요? 내 이름도 성춘향이라고 해요. 나는 저 먼 미래에서 왔어요. 나이는 열 살이에요.”
“뭐? 언니? 그리고 먼 미래?”
과거의 춘향이는 이 꼬마 춘향이가 하는 말을 도통 알아듣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고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 미래에서 온 춘향이가 말을 이었다.
“믿을 수 없겠지만 사실이에요. 먼 미래의 이곳 남원 땅에서 왔다고요. 그리고 중요한 건 난 언니가 참 보고 싶었어요. 내 이름도 춘향이니까.”
과거의 춘향이는 이름이 같다는 것에서일까 여전히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었지만 미래에서 왔다는 춘향이가 궁금해졌다.
“그래? 미래에서 왔다고! 믿을 수 없지만 네 말이 사실이라고 치자꾸나. 그런데 왜 날 찾아온 거지?”
둘은 졸졸졸 흐르는 시냇가 앉아 어느덧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지요.
“난요. 누가 내 이름을 물어보는 것이 싫었어요. 이름을 말하면 먼저 웃음부터 터졌고 그다음으로는 내 얼굴을 보면서 언니를 떠올렸을 테니까요. 사람마다 자신의 머릿속엔 춘향이라는 사람이 다 다른 모습으로 있나봐요. 마치 어른들이 이야기하는 첫사랑처럼요. 그리고 모두들 자신이 생각하는 언니의 모습을 나한테서 보길 바라는 것 같았어요. 얌전해야 하고 조신해야 하며 심지어는 이몽룡을 만나야 되겠다고 놀리기도 하였지요.”
과거의 춘향이는 미래에서 온 춘향이의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알 길이 없었으나 그저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말했지요.
“그런 것 신경 쓰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그저 춘향이라는 이름의 너. 너 자신을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어. 그러다보면 사람들도 다른 사람이 아닌 너를 기억하게 될 거야. 춘향이라는 이름의 다른 너를 말이지. 새로운 춘향이를 네가 만들어 나가는 것 말이야.”
그렇게 말하고는 어린 춘향이의 손을 꼭 잡아주었습니다. 따뜻하고 보드라운 손길에 어린 춘향이는 잠에서 깬 줄도 몰랐지요. 눈을 떠보니 옆에 자던 곰돌이의 손을 꼭 잡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춘향이의 학교에서 자신의 이름의 뜻과 자기소개로 발표를 하는 날이었습니다. 서둘러 학교에 간 춘향이는 꿈속에서 만난 과거의 춘향이의 말대로 자신의 이름을 사랑하게 되었고 당당하고 자신 있게 말했지요. 이제부터 과거의 춘향전을 이을 새로운 춘향전이 시작되었다고.
거센 바람이 아님에도 촛대의 불이 하늘거리며 흔들렸다. 촛불이 흔들리는지 장군의 두 눈동자의 여린 초점이 흔들리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수많이 적과의 전투가 있었고 곧게 뻗은 대나무처럼 한결같이 묵묵하게 전투를 치러왔던 그였다. 신라군과의 유난히 힘든 전투를 보낸 후라 그런지 그날따라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이 감도는 듯 했다. 문밖은 이상하리만큼 고요했다. 무심하게 불던 바람에 더욱 평강이 보고 싶던 온달장군은 말없이 붓을 들었다.
온달장군은 늘 평강공주에게 표현이 서툴렀다. 하지만 누구보다 평강을 생각하는 그였다. 사람들은 그래서인지 그를 보고 바보온달이라고 불렀다.
온달은 서툰 솜씨로 편지를 써내려갔다. 막상 붓을 들고 그리운 마음을 전하려 하니 평강이 처음 집으로 와 살림을 꾸리겠다고 당차게 말하던 일이 떠올랐다. 단정하게 빗어 내린 머리칼과 곱디고운 얼굴을 하고 내게 시집을 오겠다고 하던 공주.
보고 싶은 평강공주 보시오.
오늘은 유난히 긴 하루였소. 아마도 당신이 그리워 그렇겠지. 이렇게 당신을 생각하니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이 떠올라 웃음이 나는구려. 당신은 한없이 고운얼굴과 단정한 차림을 하고선 나에게 시집을 와 살림을 차리겠다고 말했었지. 그때 당신에게 단호하게 거절한 것은 당신이 내게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오.
사람들은 모두 나를 바보라고 불렀지만 당신만은 늘 나를 최고라 불러주었던 날들이 생각나오. 내가 당신만큼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에 능숙했더라면 당신이 조금은 덜 외로웠을 텐데, 한 마디 서운함 없이 옆에 있어주어 고맙소.
당신과 함께 장에서 말을 고르며 무술과 학문을 배우던 시간들이 떠오르는 밤이오. 말을 타는 것도, 검술을 익히는 것도 더딘 내게 당신은 그저 최고의 장군이라고 나를 치켜세워주던 것이 지금도 생생하오.
당신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이 고구려도 지켜내기 힘들었을 것이오.
항상 미안하고 고마운 공주. 오늘은 이상하리만큼 밖이 고요하오.
늘 거침없고 두려움 없이 섰던 전투임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지나가는 바람에도 마음이 일렁이는구려.
아마도 당신이 그리워서이겠지. 이곳 단양에서의 전투가 끝나면 다시 볼 수 있을 것이오.
그 때까지 건강히 지내시오.
온달은 떨리는 붓을 조용히 거두었다. 막상 편지를 쓰니 평강이 더욱 그리운 밤이었다. 오늘은 쉽게 잠자리에 들지 않을 것 같은 그런 긴긴밤이리라.
어김없이 날은 밝고 일찍부터 전투준비에 성 안팎은 분주했다. 병사들도 지칠 대로 지쳐있었고 물과 식량도 점점 바닥을 드러냈다. 온달은 얼른 전투를 끝내고 승전보를 울리며 평강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견고하게 쌓여진 성벽사이로 여느 때와 같은 긴장감이 맴돌았다.
화살과 돌이 쏟아져 내렸고 날이 선 칼은 순식간의 병사들을 위협했다. 밤에 한숨도 못잔 탓일까, 사력을 다해 싸워온 그였다. 그 때 온달을 향해 날아온 화살. 온달은 정신이 희미해졌다. 온달은 힘없이 쓰러졌다. 맹렬한 그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꼭 승리해서 돌아가겠다는 평강과의 약조가 스쳐지나갔다. 그렇게 그는 세상을 떠났다.
급히 온달의 죽음을 알리기 위한 전갈이 보내졌고 평강은 놀란 마음에 눈물로 통곡하며 산성으로 도착하였다. 하지만 이미 싸늘하게 식어버린 그의 맹렬한 기세. 평강은 하염없이 울었다. 편히 보내주기 위해 화살을 제거하면서 온달의 가슴팍에서 어제 그가 써내려간 편지를 발견한다. 평강은 또 한 번 크게 울었다.
이제는 온달을 편히 보내줄 차례다. 그런데 장사를 지내기 위해 관을 움직이려 하자 관이 꿈적도 하지 않았다. 힘이 센 장정들이 들어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평강은 관을 쓰다듬으며 마지막 가는 길에 마지막으로 마음을 전했다.
"장군. 삶과 죽음이 이미 결정되었으니. 이제 편히 가소서." 하며 편지를 가슴이 품었다.
그러자 꿈적도 않던 관이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평강만을 바라보던 바보장군과 온달만을 바라보던 평강공주. 이 둘의 사랑이야기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로 남아있다.
주말인 오늘은 승호가 가장 기다리는 날 중 하나입니다. 오늘은 아빠와 단 둘이 여행을 떠나는 날이기 때문이지요. 눈을 뜨자마자 승호는 아빠에게 달려갑니다. 오늘의 목적지가 궁금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아빠는 어떤 영문인지 목적지를 알려주지 않는 것입니다. 아빠 다리에 매달려도 보고 힌트라도 달라고 졸라보아도 요지부동이었습니다. 돌아오는 말이라고는 그저 잠자코 아빠만 믿고 따라오라는 말뿐이었습니다.
궁금증과 기대에 한껏 들뜬 승호는 연신 싱글벙글하며 동생인 연호에게 자랑도 늘어놓았습니다. 드디어 출발입니다. 아빠 차에 탄 승호는 엄마와 동생에게 인사를 한 뒤 콧노래를 흥얼거렸습니다.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도 도착하지 않는 바람에 승호는 그만 지쳐 잠이 들었습니다. 집에서 출발한 뒤 무려 3시간 30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잠에서 깬 승호는 도로 이정표를 보고 강원도 태백에 와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승호는 속으로 오늘 아빠와 둘이 등산도 하고 맛있는 한우도 먹을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마침내 도착한 목적지. 그런데 도착한곳은 태백산도 아니고 한우고기집도 아닌 석탄박물관이라는 곳이었습니다. 급격히 실망한 승호는 투덜거리고 싶었지만 아빠가 목적지도 알려주지 않고 여기로 온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어 일단 들어가 보았습니다.
그곳에는 책에서만 보던 광부들이 캄캄한 동굴에서 석탄을 캐는 모습과 그 시대 광부들의 삶을 모형으로 고스란히 옮겨놓은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모형들을 바라보고 있는 나를 향해 아빠는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를 하나 해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옛날 옛날에 승호가 아직 태어나기도 전이니까 아빠가 딱 승호만한 나이였을 때였어. 아빠의 아빠. 그러니까 승호 할아버지는 여기 보이는 사람들처럼 석탄을 캐는 광부셨어. 할아버지도 이렇게 검은 때가 온 몸을 뒤덮어도 열심히 일하셨지. 우리 승호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 삼겹살 있지? 그것도 사실 이렇게 하루 종일 탄가루에 뒤덮여 있는 광부들이 검은 가루가 씻겨 내려가라고 먹었던 음식인거 알았니?
그리고 아주 가난하던 시절 가족들의 끼니와 교육을 위해 앞이 보이지도 않는 어두컴컴한 지하 막장에서 땀 흘려 일하셨단다. 할머니는 노란 양은 도시락에 부족하지만 정성스레 담은 도시락을 매일 싸드렸어. 그리고 할아버지가 돌아오시기만을 기다렸지. 달그닥 달그닥 빈 도시락 통이 부딪히는 소리만 들려도 반가운 마음에 버선발로 뛰어나가셨던 모습이 생생해. 석탄 캐는 일이 목숨을 내놓고 일할만큼 위험한 일이었기 때문에 도시락 소리가 들려야만 안심을 하곤 했었지. 승호 넌 모르겠지만 할아버지는 정말 멋진 일을 하시던 분이셨어.”
이야기를 하는 아빠의 눈이 잠시 붉어졌습니다. 개구쟁이 승호도 이야기를 듣고는 얌전히 생각에 잠긴 모습이었습니다. 아빠가 왜 오늘 다른 곳이 아닌 태백에 석탄박물관에 왔는지 알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며칠 후 승호는 4시부터 분주한 모습이었습니다. 두 시간 뒤에 아빠가 회사에서 돌아오실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승호는 아빠와 석탄박물관에서 들었던 아빠의 이야기가 자꾸만 머릿속에서 맴돌아 아빠도 할아버지가 보고 싶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빠 몰래 승호가 맛있는 저녁밥을 만들어드리기로 마음먹은 것이지요. 서툰 솜씨지만 뚝딱뚝딱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딩동! 초인종이 울리고 아빠가 들어오셨습니다. 으쓱한 마음에 승호는 아빠에게 달려가 품안에 쏙 안기며 아빠를 위한 멋진 선물을 준비했다고 말했습니다.
삼겹살에 돼지고기 김치에 돼지껍데기 등 돼지고기로 가득한 한 상이 차려져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아빠 귀에 대고 귓속말로 속삭였습니다.
“아빠, 아빠도 할아버지처럼 정말 멋진 아빠에요!”
아빠도 승호도 정말 푸짐하고 따뜻한 저녁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몇 년 전, 우연히 건넜던 다리가 하나 있다. 친척집에 다녀오던 길, 어머니가 갑작스레 야경이 보고 싶다 하셔서 일부러 차를 돌려서 갔던 곳에서 본 다리였다. 아치와 원 모양이 붉은 색과 녹색의 조명으로 빛나고 있던 그 다리는 화려하지도, 소박하지도 않았다. 다리 건너편으로 펼쳐져 있던 울산의 야경이 참 조용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말문을 여셨다.
“옛날에는 여기까지 고래가 들어왔다지.”
울산이 고래로 유명한 곳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강까지 고래가 다녀갔다니? 아버지의 말에 놀라 다리를 다시 살펴보니, 그것은 고래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물론 강에 고래가 지나다닌 것은 아주 오래 전의 일일 터였다. 하지만 그 후로 나는 가끔, 울산에 흐르는 작은 강과 그 아래를 헤엄치는 고래의 모습을 상상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강은 그리 작은 편은 아니었다. 다만, 내 상상 속의 커다란 대왕고래 한 마리가 헤엄치기에 작을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내 상상 속에서 고래는 항상 하얀 배로 강바닥을 긁으며 천천히 태화강 상류로 헤엄쳐간다. 고래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속도로 가끔씩 하얀 물안개를 그려내며 유유히 헤엄친다. 그 거대한 고래가 지나가고 움푹 팬 자리에 푸른 강물이 넘실대며 차오르고, 고래의 지느러미가 쓸고 지나간 부분은 그대로 아름다운 강둑이 된다. 그야말로, 고래가 만든 강이었다.
그리고 며칠 전, 나는 다시 그 다리를 찾게 되었다. 오랜만에 다시 친척집을 찾았는데, 돌아오는 길에 가족 나들이가 계획된 것이었다. 어디로 갈까 하고 있는데, 어머니가 고래를 닮았던 그 다리를 다시 보고 싶다 하셨고, 마침 아버지도, 나도 그 다리가 그리워지고 있던 참이라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이제 막 정오를 지났으니 야경을 보는 건 무리겠네.”
어머니가 아쉬운 듯 말씀하셨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우리 가족은 야경만큼이나 값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해가 내리쬐는 시간에 본 태화강변은 내 상상과는 달리, 아주 넓은 대밭이었던 것이다. 밤에는 그저 강변공원에 조성된 숲인 줄로 알았던 것이, 낮에 보니 모두 대나무였다.
“세상에,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에 낮에 들렀을 텐데 말이야. 고래 다리도 예쁘지만 대숲이 아주 장관이네!”
“그럼 아예 지금부터 해 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야경까지 보고 갈까?”
아버지의 말에 우리 가족 모두 오케이를 외쳤다. 흔히들 그러듯이, 울산이라 하면 공업 도시를 생각하는데 이곳은 사람 키의 몇 배나 되는 대나무들이 녹색 장막을 펼치고 있었다. 이전부터 자생하던 대나무를 시민들이 합심하여 이만큼 키워낸 것이라는데, 사람들뿐만 아니라 백로나 괭이갈매기, 고니, 왜가리나 민물 가마우지 같은 철새들도 많이 다녀간다고 했다. 도시 한가운데임에도 불구하고, 너구리가 살고 있다는 안내판까지 붙어있는 것을 보고 다들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만하면 고래도 아직 살지 않을까?”
실없는 말 한 마디를 던졌을 뿐인데,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러면 좋겠다며 고개를 끄덕여 주셨다.
대숲을 누비고 다니다 지친 우리는 배를 탔다. 강 이쪽 편과 저쪽 편 사이를 연결한 줄을 잡고 직접 뗏목을 움직여가는 이 배의 이름은 갯배라고 하였다. 태화강 전망대와 그 뒤에 펼쳐진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가 직접 줄을 잡고 당기게 되었다. 아버지와 함께 줄을 당기는 동안, 건너갈 수 없을 것만 같던 강 저편이 점점 가까워져갔다.
순간, 나는 물밑으로 커다란 고래 한 마리가 헤엄치는 상상을 했다. 고래의 숨구멍에서 뿜어져 나온 물줄기가 대밭으로 떨어진다. 대나무는 고래가 뿌린 물을 마시려 고개를 한껏 빳빳이 세웠다. 난데없는 상상에 웃음이 났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셨다. 나는 그 순간 우리 모두 같은 상상을 한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흐뭇한 마음에 줄을 더욱 힘껏 당겼다.
그곳이 어디든 산을 오르는 것이 미연은 영 못마땅하다. 서울의 많고 많은 곳 중에 산이라니. 미연은 혀를 끌끌 찼다.
“너도 참 너다. 이 넓은 서울에 갈 곳이 얼마나 많은데 고작 동네 산이니?”
“왜, 좋잖아. 자 공기한번 쭉 마셔봐. 이렇게 맑은 공기를 돈 안내고 마시는 걸 감사해야해. 그리고 멀리 가지 않고 등산할 수 있는 게 얼마나 좋아!”
“웃겨. 너랑 주말을 보낸다고 온 내가 바보다.”
미연은 투덜거리면서도 연수의 뒤를 곧잘 쫒아온다. 리본 끈으로 길을 안내하는 곳곳에는 이야기가 있는 관악산 둘레길이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아, 힘들어. 원래 이렇게 힘든 코스였어? 동네산이 뭐 이래?”
“여기만 넘어가면 내리막길이야. 조금만 힘내. 너 다이어트 한다며, 한발자국 내딛을 때마다 지방 타는 소리가 들리지~ 안 들려?”
“놀리냐, 힘들어 죽겠구만. 물이나 좀 줘봐.”
관악산 둘레길 제2구간은 물과 바람 공기가 참 시원했다. 작고 아담한 계곡을 지나면 장승과 솟대가 등산객을 반긴다. 한여름이면 여름의 냄새가 나고 가을이면 또 가을의 냄새가 나는 곳이다. 흙길을 걷다보면 오르막길 내리막길이 번갈아가며 나왔다. 오르막을 오르다 지칠 즈음이면 내리막길이 나와 쉼을 주었고 땀이 식을 만하면 다시 오르막길이 나왔다. 작은 들꽃은 휴식을 함께 기뻐해주기라도 하듯 아담하게 피어있다.
희진은 미연이 올라올 수 있도록 보폭을 맞춰주었다. 그리고 뒤에서 미연의 등을 살짝 떠밀어주기도 하며 미연의 힘을 나누고자했다.
“어! 다람쥐다. 여기 다람쥐가 다 있네.”
“그러게, 귀엽다. 우리 이러고 있으니까 소풍 온 어린애들 같아.”
“소풍? 소풍이라면 소풍이지. 점심으로 김밥도 싸왔으니까, 제대 론데?”
미연과 희진은 마주보고 웃었다.
관악산 제2구간은 돌산 조망점에 올라 서울시내를 바라 볼 수 있으며 인근 호수공원도 둘러볼 수 있는 코스라고 했다. 미연과 희진도 곧 돌산 조망점 지점에 도착하였다. 한숨 돌리고 큰 바위에 털썩하고 주저앉으니 서울시내가 한눈에 다 담겼다. 이곳이 정상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는 것이 신기했다. 뭉친 다리근육을 털고 수분을 보충하기 위해 오이를 꺼냈다.
“경치는 좋네.”
“거봐, 따라오길 잘했지? 땀 흘리고 먹으니까 더 맛있는 것 같다. 그치?”
“이래서 사람들이 산을 오르는 걸까?”
“무슨 소리야?”
“아니, 그냥. 턱 끝까지 숨이 차고 다리가 후들거려도 자신이 할 수 있다는 걸 느끼고 자신이 숨을 쉬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공기가 좋아서 오는 사람도 있고, 바람을 좀 더 많이 느끼고 싶을 수도, 그냥 산이라는 것 자체가 좋아서 오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이야기가 있는 둘레길은 친구와, 가족과 연인 등 사랑하는 사람과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길이기 때문일 것이다. 각자의 산을 오르는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산이 주는 행복과 시원함은 각자의 추억대로 되가져갈 것이다.
누군가 산다는 것은 산을 오르는 것처럼 오르막길 내리막길이 있다고 했다. 흙길로 걷기도 했다가 딱딱한 아스팔트를 걷기도 하며 계단을 오르기도 하고 평지를 걷다 내리막길을 만나기도 한다. 그래도 중요한 것은 그곳에 바람도 있고 물도 있고 나무도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 구간까지 정복하고 나니 석수역이다. 꽤나 긴 코스를 마치고 내려오니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도 꽤나 알찬 주말을 보낸 것 같은 뿌듯함과 쾌감이 밀려오는 순간이었다. 그저 그런 주말이었다면 집에서 밀린 잠을 잔다거나 텔레비전이나 붙잡고 있었을 것이다.
시계를 보니 오후 4시 50분.
“드디어 도착. 음, 막걸리에 파전 어때?”
“좋지!”
어머니는 시장에 갈 때면 줄곧 나를 데리고 가셨다.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사람구경 많이 해보겠노 하면서 고사리 손을 꼭 잡고 시장 이곳저곳을 구경시켜주셨다. 작은 아이의 눈에 비친 시장은 없는 것 없는 만물상자 같았다. 엄마는 시장에 오시면 항상 마늘 한 접을 사셨다. 요즘 마트에는 깐 마늘이며 다진 마늘이며 편하게 나온 것들이 많은데 엄마는 항상 흙 묻고 주렁주렁 매달린 통 마늘을 사오셨다.
집에 오면 신문지 하나 깔고 구부정한 자세로 마늘을 까셨다. 그러면서 매우신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나는 엄마에게 슬퍼서 우는 것이냐고 물은 적이 있고 엄마는 아니라고 했다. 그냥 눈이 매워서 그런 것뿐이라고 했다. 엄마의 구부정한 등허리가 흐느낌에 들썩였다.
엄마의 시집살이는 마늘만큼이나 매웠다. 아빠는 엄마와 할머니 사이를 방관하였고 할머니는 그런 엄마를 쥐 잡듯이 잡았다. 엄마는 할머니가 이러는 것이 할아버지 때문이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중풍으로 쓰러져 계셨기 때문이다. 중풍으로 쓰러지신 것이 엄마 때문도 아니었는데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쓰러지신 이후로 엄마를 못살게 굴었다. 할아버지가 쓰러지시는 바람에 할아버지 뒤치다꺼리까지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엄마를 더욱 못살게 굴었다.
서슬이 퍼런 눈매로 엄마의 일거수일투족을 따지고 들었고 서방 기 빨아먹는 것이라며 욕도 서슴지 않았다. 그럴 때면 나는 쪽방 구석에서 귀를 막고 있었다. 엄마는 할머니에게 한 소리를 듣고 나면 나에게 시장에 가자고 했다. 시장에서 엄마를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손을 꼭 잡으면 엄마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시장을 한 바퀴 돌고도 살 것이 마땅치 않으며 한 바퀴를 더 돌곤 했다. 애호박과 마늘, 부추를 사고 난 뒤 마지막으로 마늘 한 접을 또 샀다.
엄마는 주방 귀퉁이에 쪼그리고 앉아 마늘을 깠다. 하나 두 개를 까다보니 또 눈이 매운 모양이었다. 엄마의 구부정한 등이 들썩거렸기 때문이다. 나는 마늘이 엄마를 괴롭히는 괴물이라고 생각했다.
동그마니 몸을 말고 앉아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마늘 깔 때마다 울면서 왜 시장갈 때마다 마늘을 사?”
“마늘이 몸에 좋으니까 그렇지.”
“마늘이 몸에 좋아? 그렇지만 너무 맵잖아.”
“매우니까 먹는 거야. 매우니까.”
엄마는 대답을 하면서도 훌쩍거렸다. 눈물과 콧물이 뚝뚝 떨어졌다. 이제 곧 외출했던 할머니가 오실 시간이기 때문에 엄마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내가 도와주겠다고 해도 엄마는 ‘아서’라는 말을 하며 만지지 못하게 했다. 나는 마늘을 까도 맵지 않았는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할머니가 들어오셨다. 마늘 정리를 하고 있는 엄마를 곁눈질로 힐끔 보시더니 ‘뭐하려고 맨날 마늘이고.’라고 중얼거리며 쿵 하고 방으로 들어가셨다.
엄마는 할머니가 중얼거리는 소리도 놓치지 않고 ‘의성마늘이 매콤한 게 혈액순환에 좋다고 하잖아요, 풍에도 좋지 않을까 해서.’라고 대답을 했으나 이미 할머니가 방문을 있는 힘껏 닫고 들어간 후였다. 나는 할머니가 들어간 방문이라도 흘겨보았다. 언젠가 할머니에게 엄마를 왜 이렇게 미워하냐고 물으려다가 그럼 못쓴다고 엄마에게 호되게 혼이 난 적이 있어서 그러지는 못했다.
엄마는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엄마에게 마늘은 ‘매움’ 그 자체였나 보다. 엄마의 굽은 등허리가 들썩거릴 때마다 마늘은 더욱 매워졌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