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좀 해, 나 시간 없단 말이야.”
예진이의 말에 나는 묵묵히 가방 싸는 손놀림을 조금 더 빠르게 했다. 군대에 다녀온 나보다 이 년이나 빠르게 대학을 졸업하게 된 예진이는 요즘 들어 눈에 띄게 짜증이 많아졌다. 항상 카페 창가에 앉아 마시던 커피도 이제는 테이크아웃을 해서 도서관으로 직행하게 되었고, 거리를 마다 않고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도 먼 일이 되었다. 토익 점수가 몇 점이고, 자격증이 몇 개이고 하는 것들이 나와 함께 보내는 시간보다 중요해져 버리는 그런 때가 오고야 만 것이다.
남자친구의 입장으로 서운하기는 했으나, 이번 학기가 마지막 학기이니 조급해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었다. 창밖에는 봄꽃들이 피었지만, 예진이의 달라진 생활 방식에 맞추어 기숙사와 도서관을 오가다 보니 나들이는 꿈도 못 꿀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예진이가 나와 헤어지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니었다.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내게 짜증을 내고서도,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아 기분이 조금 가라앉으면 항상 먼저 사과를 해 오는 예진이였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나를 불러내어 사과를 건넨 예진이가 기지개를 켜다 말고 테이블 위에 그대로 엎드려 버렸다.
“진짜, 마음 같아서는 다 때려치우고 눈이나 봤으면 좋겠다.”
또 눈 얘기였다. 겨울에 딸기가 먹고 싶다 하면 마트에 가면 되는 시대가 왔으니, 나는 예진이가 조금이라도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다 해 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중에서도 남단에 위치해 있는 이 도시에서 4월에 눈을 찾으니, 이건 나로서도 정말 어찌 할 방법이 없었다.
“예진아, 조금만 더 힘내자. 우리 예진이 잘 할 수 있는 거 내가 다 알아.”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내 말이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졸업 후에 바로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회사에서 일하게 될 터라, 예진이가 느끼고 있는 막막함의 절반도 제대로 와 닿지 않으니 말이다. 예진이 말 대로 눈이나 보여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루에도 수십 번씩 그런 생각을 했다.
“눈 내리는 데는 없어도, 눈 내리는 거 뺨치게 예쁜 데는 있는데.”
내 고민을 들은 친구의 한 마디에 귀가 번쩍 뜨였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대구에 4월에 눈 내리는 곳 없냐고 물었는데, 의외의 대답을 들은 것이다.
“수성못 말이야, 수성못. 한 번도 안 가 봤어?”
“야, 우리는 학교 때문에 여기 와 있는 거잖아. 대구 지리를 알 리가 있냐.”
“하긴, 학교에서 대중교통으로 두 시간은 걸리니까 너희들은 못 가 봤겠다. 대구 사람이면 다 아는 곳인데 말이야.”
대구 토박이인 친구는 여자 친구와 싸웠을 때에는 꼭 수성못에 가서 화해를 하고 온다고 하였다. 봄이면 벚꽃 가지 사이로 오리 배들이 지나다니는 걸 볼 수 있는데, 눈처럼 날리는 벚꽃을 배경으로 오리 배를 타는 것만큼 로맨틱한 연출도 없을 거란다. 목련과 개나리도 만개했을 테고, 잔디와 흙길이 많아 잘 정비된 아스팔트 공원보다 훨씬 정겨운 느낌이 날 거라고 했다.
“게다가 바로 옆에 수성유원지도 있어. 벚꽃 보다 지치면 이쪽으로 가도 되고. 근데 벚꽃으로 워낙에 유명한 데라 지칠 틈도 없을 걸?”
꽃구경도 하고, 예진이가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눈 구경도 하니 이것보다 지금 우리에게 안성맞춤인 곳이 어디 있을까. 나는 먹던 밥값을 모두 계산하는 것으로 친구에게 사례를 하고는 서둘러 일어섰다.
예진이의 수업이 끝날 시간이었다. 강의실 앞으로 찾아간 나는 새삼스럽고도 정중하게 데이트 신청을 했다. 묵직한 가방을 팔에 안고 있는 예진이의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기에, 쉽게 대답하지 못하고 쭈뼛쭈뼛 망설이는 예진이의 손을 먼저 잡아 이끌었다.
“또 머릿속으로 공부 계획표 생각 하고 있지? 오늘 하루만 노는 건데, 뭐 어때. 눈 내리는 거 보러 가는 거야, 우리.”
눈이라는 말에 예진이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그럴 줄 알았다. 못 이기는 척 끌려오는 예진이를 보며, 오늘 공부 못한 건 모두 내 탓으로 돌려주리라 결심했다.
철썩철썩 파도가 몰아치는 밤이었어. 밤이면 밤마다 한 꼬마아이가 높이 뜬 달을 보고 기도를 하는 거야. 두 손을 꼭 마주 잡고 말이야. 무슨 소원을 그렇게 간절하게 빌고 있나 이야기를 들어보았지, 그랬더니 자기네 집이 이사를 하게 되었다는 거야. 그런데 동네가 철거되면서 마을 사람들 모두가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지 뭐야. 그래서 이사 가지 않게 해달라고, 친구들과 함께 학교도 가고 말뚝 박기도 하게 해달라고 벽에 기대어 달을 바라보고 기도를 하는 것이었지.사실 이 아이는 동피랑 마을이라는 벼랑 끝 동네에 살고 있어. 통영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아침이면 철썩이는 파도소리에 눈이 떠지는 마을이지. 그런데 안타깝게도 낡고 허름해진 벽과 지붕들로 재개발에 들어간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어. 아이는 엄마, 아빠가 밤에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된 거지.
그때였어! 아이가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신기한 일이 벌어 진거야. 어디선가 작은 음성이 들려오더니 새끼 손톱만 한 다섯 명의 꼬마요정들이 나타난 거야. 그러고는 속닥속닥 무슨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어. 그러더니 아이의 집에 들어가 아이가 쓴 그림일기장을 꺼내어 읽기 시작했어. 고개를 끄덕이더니 밖으로 나와 아까 그 아이가 서 있던 벽을 한참 동안 바라보는 거야. 그리고는 엄지손가락만 한 붓을 꺼내어 벽에 대고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겠어?
손톱만 한 꼬마요정들의 움직임으로 저 커다란 벽에는 아이의 그림일기장에 그려진 그림으로 순식간에 가득 메우기 시작했지.
다음날 학교에 가려고 나온 꼬마와 마을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렸어. 누군가가 어두운 밤에 벽에 그림을 그리고 사라졌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이 아이는 자기의 그림일기장에 그려진 그림을 알아채고는 말했어.
“달님이 제 기도를 들어주시려나 봐요!”
신이 난 아이는 매일매일 일기장에 예쁜 그림들을 그려 넣었어. 예쁜 동백꽃, 고래, 친구와 말뚝 박기 하던 날, 재미있게 읽은 어린 왕자 등등 …….
그렇게 그림일기를 그려 넣고 자기 전에 똑같이 기도를 했지. 그러면 어김없이 요정들이 나타나 그 그림들을 동네 벽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
그러자 마을 사람들에게도 이 이야기가 소문이 나기 시작 한 거야. 마을 사람들 모두 아이의 집 벽에 그려진 그림들이 너무 예쁘다고 부러워하고 있었거든. 그런데 철거하기로 한 날짜가 얼마 남지 않게 된 거야.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동피랑을 떠나기 전 자신의 추억들을 하나씩 남기기로 했지. 그래서 자신들의 집 벽마다 저마다의 소중한 추억들을 그려 넣기 시작했어. 각자 자신들의 추억들이 고스란히 남은 집을 떠나려니 더욱 마음이 아팠어.
그래서 이 아이는 다시금 두 손을 모아 쥐고 기도를 했어.
“달님. 우리 마을 사람들이 모두 행복하게 해주세요.
마을 사람들 모두 흩어지지 않고 여기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말이어요.
그리고 우리 마을을 찾아오는 사람들도 이 그림처럼 행복한 표정을 지었으면 좋겠어요. 달님.”
그러자 꼬마요정들이 나타나 마을 골목골목에 비어있던 벽들을 향해 바람을 불어넣었어. 그랬더니 집 벽면에 그려진 그림처럼 골목마다 아름다운 그림들로 넘실거리는 거야.
이웃마을에 점점 소문이 나고 점점 동피랑 벽화에 관한 이야기가 퍼져 나갔어. 그랬더니 전국 방방곡곡 사람들이 모여들어 그림을 보고 웃으며 행복한 표정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겠어?
동피랑은 꽃이 피는 마을이라며 말이야. 마을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너무나 행복했어. 그리고는 마을 사람들과 이 꼬마아이의 간절한 바람이 마을을 지키게 되었던 거지.
아이는 너무 기뻤어. 마을 사람들도 모두 함께 기뻐했지.
지금도 동피랑에 가면 아름다운 벽화를 만날 수 있어. 그리고 마을 어딘가에서 지금도 꼬마 요정들이 마을 곳곳에 새로운 그림들을 그려 넣고 있다고 해!
언젠가 동피랑 마을을 찾아가게 된다면 꼬마요정들이 벽화에 남긴 숨은 메시지를 찾아봐도 좋아!
거센 바람이 아님에도 촛대의 불이 하늘거리며 흔들렸다. 촛불이 흔들리는지 장군의 두 눈동자의 여린 초점이 흔들리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수많이 적과의 전투가 있었고 곧게 뻗은 대나무처럼 한결같이 묵묵하게 전투를 치러왔던 그였다. 신라군과의 유난히 힘든 전투를 보낸 후라 그런지 그날따라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이 감도는 듯 했다. 문밖은 이상하리만큼 고요했다. 무심하게 불던 바람에 더욱 평강이 보고 싶던 온달장군은 말없이 붓을 들었다.
온달장군은 늘 평강공주에게 표현이 서툴렀다. 하지만 누구보다 평강을 생각하는 그였다. 사람들은 그래서인지 그를 보고 바보온달이라고 불렀다.
온달은 서툰 솜씨로 편지를 써내려갔다. 막상 붓을 들고 그리운 마음을 전하려 하니 평강이 처음 집으로 와 살림을 꾸리겠다고 당차게 말하던 일이 떠올랐다. 단정하게 빗어 내린 머리칼과 곱디고운 얼굴을 하고 내게 시집을 오겠다고 하던 공주.
보고 싶은 평강공주 보시오.
오늘은 유난히 긴 하루였소. 아마도 당신이 그리워 그렇겠지. 이렇게 당신을 생각하니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이 떠올라 웃음이 나는구려. 당신은 한없이 고운얼굴과 단정한 차림을 하고선 나에게 시집을 와 살림을 차리겠다고 말했었지. 그때 당신에게 단호하게 거절한 것은 당신이 내게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오.
사람들은 모두 나를 바보라고 불렀지만 당신만은 늘 나를 최고라 불러주었던 날들이 생각나오. 내가 당신만큼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에 능숙했더라면 당신이 조금은 덜 외로웠을 텐데, 한 마디 서운함 없이 옆에 있어주어 고맙소.
당신과 함께 장에서 말을 고르며 무술과 학문을 배우던 시간들이 떠오르는 밤이오. 말을 타는 것도, 검술을 익히는 것도 더딘 내게 당신은 그저 최고의 장군이라고 나를 치켜세워주던 것이 지금도 생생하오.
당신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이 고구려도 지켜내기 힘들었을 것이오.
항상 미안하고 고마운 공주. 오늘은 이상하리만큼 밖이 고요하오.
늘 거침없고 두려움 없이 섰던 전투임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지나가는 바람에도 마음이 일렁이는구려.
아마도 당신이 그리워서이겠지. 이곳 단양에서의 전투가 끝나면 다시 볼 수 있을 것이오.
그 때까지 건강히 지내시오.
온달은 떨리는 붓을 조용히 거두었다. 막상 편지를 쓰니 평강이 더욱 그리운 밤이었다. 오늘은 쉽게 잠자리에 들지 않을 것 같은 그런 긴긴밤이리라.
어김없이 날은 밝고 일찍부터 전투준비에 성 안팎은 분주했다. 병사들도 지칠 대로 지쳐있었고 물과 식량도 점점 바닥을 드러냈다. 온달은 얼른 전투를 끝내고 승전보를 울리며 평강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견고하게 쌓여진 성벽사이로 여느 때와 같은 긴장감이 맴돌았다.
화살과 돌이 쏟아져 내렸고 날이 선 칼은 순식간의 병사들을 위협했다. 밤에 한숨도 못잔 탓일까, 사력을 다해 싸워온 그였다. 그 때 온달을 향해 날아온 화살. 온달은 정신이 희미해졌다. 온달은 힘없이 쓰러졌다. 맹렬한 그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꼭 승리해서 돌아가겠다는 평강과의 약조가 스쳐지나갔다. 그렇게 그는 세상을 떠났다.
급히 온달의 죽음을 알리기 위한 전갈이 보내졌고 평강은 놀란 마음에 눈물로 통곡하며 산성으로 도착하였다. 하지만 이미 싸늘하게 식어버린 그의 맹렬한 기세. 평강은 하염없이 울었다. 편히 보내주기 위해 화살을 제거하면서 온달의 가슴팍에서 어제 그가 써내려간 편지를 발견한다. 평강은 또 한 번 크게 울었다.
이제는 온달을 편히 보내줄 차례다. 그런데 장사를 지내기 위해 관을 움직이려 하자 관이 꿈적도 하지 않았다. 힘이 센 장정들이 들어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평강은 관을 쓰다듬으며 마지막 가는 길에 마지막으로 마음을 전했다.
"장군. 삶과 죽음이 이미 결정되었으니. 이제 편히 가소서." 하며 편지를 가슴이 품었다.
그러자 꿈적도 않던 관이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평강만을 바라보던 바보장군과 온달만을 바라보던 평강공주. 이 둘의 사랑이야기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로 남아있다.
결혼을 앞둔 여자의 목소리는 한껏 흥분과 설렘이 적절히 섞여 있었다. 그녀에게 세상은 핑크빛일 테고 파스텔 톤의 바람이 불어오는 것처럼 아름답게 보일 것이다. 상견례와 결혼 날짜까지 한 큐에 끝내버리고 요즘은 친정엄마와 혼수를 보러 다니고 피부숍을 다니며 생애 한번 있을 아름다운 날을 위해 온 신경을 쏟았다.
서른둘의 나이. 요즘으로 치면 적지도 많지도 않은 나이라지만 먼저 결혼한 친구들의 훈수 덕에 그녀의 머릿속은 적잖이 복잡해졌다. A는 근사한 카페를 통째로 빌려 피아노를 치며 영화의 한 장면처럼 프러포즈를 받았다더라. 친구 B는 청담동으로 시집간다더니 몇 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몇 세트를 받았다더라 하는 말들이 자연스레 들렸고 친구들은 며칠 굶주린 하이에나들처럼 여자의 결혼에 관심을 기울였다.
여자는 신경 쓰지 않고 남자친구에게 내색하지 않기로 마음먹고도 내심 신경이 쓰였고 기대가 되었다. 여자라면 누구나 그럴 거라며 자신은 속물이 아니라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리면서 말이다. 그렇다고 남자친구에게 대뜸 나 어디서 어떻게 프러포즈해줄 거냐. 몇 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워줄 거냐고 따져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무엇보다 남자친구의 형편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여자의 얼굴엔 점점 그늘이 드리웠다.
오늘 예쁘게 입고와. 일 끝날 때 맞춰서 데리러 갈게.
남자친구의 문자다. 여자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예쁘게 입고오라니, 왜? 혹시 프러포즈하려고 그러나? 그렇담 뭘 입어야 하지? 야외에서 하면 좀 쌀쌀할 텐데 겉옷을 준비해갈까? 눈물을 흘려야 하나? 여자는 30초간의 짧은 순간에 몇 가지 생각들을 흘려보냈다.
귀여운 것. 조금 무뚝뚝하긴 했어도 예쁘게 입고 오라는 힌트까지 주다니. 여자는 한껏 들뜬 마음을 즐겼다. 언제 또 이렇게 행복하겠느냐며 이 순간을 즐기자고 생각했다.
여자는 자신이 아끼던 옷을 꺼내 입고 싱글벙글 하며 남자를 기다렸다. 남자는 칼같이 여자를 데리러 왔다.
“어디 가는 거야? 어디로 가는 건데? 응? 왜 예쁘게 입고 오라고 했어? 어?”
여자는 남자의 차에 타자마자 콧소리를 내며 남자에게 질문을 쏟아 부었다. 남자는 가보면 안다며 목적지를 알려주지 않았고 여자의 기대감은 극도로 높아졌다.
그런데.
남자는 카페를 빌리지도 근사한 곳에서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불러주지도 않았고 무릎을 꿇으면서 눈물을 보이지도 않았다. 그리고 무심히 스윽 건네는 반지케이스 하나.
이게 뭐야. 여자는 기쁨과 감동의 눈물을 준비해왔으나 서러움으로 흘릴 줄은 몰랐다. 여자는 기쁨도 감동도 하지 않은 채 말없이 반지케이스만 바라보았다.
“실망했어?”
그걸 말이라고. 여자는 이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으나 차마 내뱉지 않았다.
“어떤 반지인지 궁금하지 않아?” 라고 말하며 반지케이스를 열었다.
붉은빛이 선명한 반지다. 루비인가. 동시에 남자가 말한다.
“루비 아니야. 빨간색을 띄는 희귀 다이아몬드도 아니고.”
“내가 하늘에 떠있는 별을 따다 달래 달을 따다 달래. 그냥 말 한마디 아니 말 한마디가 어려우면 꽃이라도 아니 꽃도 어려우면 노래라도. 그만하자.”
“알아. 네 마음. 섭섭하겠지 속상하겠지. 그런데 반지 꽤 의미 있는 거야. 이게 1월 탄생석으로 만든 거거든. 당신 생일이자 우리 결혼기념일이 될 1월.”
여자는 애써 침착하게 반지를 바라보았다.
“다음번 결혼기념일에는 근사한 카페도 빌리고 백송이 꽃도 준비하고 피아노도 배워서 노래도 불러줄게. 더 예쁜 반지와 함께.”
좀 전에 남자가 내민 보석은 가넷이었다.
간만에 친구들을 만나 수다 좀 떨었다. 고등학생일 때부터 줄기차게 보던 얼굴들이기는 하나, 기혼자 다섯 명이 한꺼번에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요즘은 늦게 하는 결혼이 대세라는데 내 친구 녀석들은 뭐가 그리 급한지 스물다섯 먹던 해부터 줄기차게 시집을 갔다. 스물다섯, 스물여섯, 스물일곱, 스물여덟, 이렇게. 다들 아홉수를 피하려고 작정을 한 건지 마의 스물아홉 이전에 전부 유부녀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 뒤 나 혼자 독신녀로 남아 저 독한 유부녀들을 상대했다. 친구들은 남편 얘기, 아이 얘기, 아니면 또 다른 애인 얘기에 여념이 없는데, 나는 뭐 일거리 말고는 할 만한 얘기도 없었다. 남자아이돌들을 좋아하긴 하나, 친구 녀석들한테 얘기해봤다 정신 못 차렸다며 잔소리나 들을 테고. 그래서 친구들이 수다 떨 동안 조용히 쭈그린 채로 음식에 심취하거나, 이따금 고개를 끄덕이며 리액션을 해주었다. 아, 가끔 야한 이야기를 할 때는 집중해서 들었다.
그러다 서른다섯 겨울, 드디어 나도 결혼이란 걸 하게 됐다. 상대는 나보다 세 살 많은 회사원. 평소 핥던 아이돌처럼 얼굴이 잘나지도, 몸매가 뛰어나지도 않았다. 오히려 반대였다. 그래도 같이 있으면 말이 통하고 편안해서 살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을 준비하던 무렵, 친구 녀석들이 나에게 넌지시 물었다.
“동준씨, 기력은 좀 있어?”
나는 무슨 소린가 싶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친구 녀석들은 서로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눈치만 봤다. 그 중 미경이가 총대를 메고 입을 열었다.
“아니, 너네 애기도 낳을 거라면서 신랑 기운이 좋아야 2세를 낳지.”
순간 얼굴이 좀 붉어졌지만, 미경이 말이 맞다 싶었다. 우린 만나기만하면 서로 죽겠다며 피로를 토하고, 카페에서 책을 읽다가 고개를 젖힌 채 잠들기 일쑤였다. 이래가지고 어디 자식 보겠나 싶어 걱정이 됐다. 그때 혜진이가 내 표정을 읽었는지 입을 열었다.
“우리 다음 주에 광양에 어른 물 받으러 갈 건데, 너도 갈래?”
“어른물이라니, 물중에 어린 물도 있고 늙은 물도 있나?”
“야야, 알아듣게 설명을 해줘야지. 광양에 고로쇠물이 유명하다잖아. 미경이 남편이랑 우리 남편이 요즘 영 골골거리고 지루해서 우리 다음 주에 물 받으러 갈 거야. 고로쇠물이 기력 회복에도 좋고 비뇨기 계통에도 아주 좋다더라고. 너도 갈래?”
결혼준비도 중요하지만, 결혼 후의 생활을 생각하니 갑갑해지는 게 사실이었다. 그이나 나나 나이 마흔이 다 되어 가는데, 신혼도 즐기고 아이도 가지려면 역시 몸관리가 필수지! 가구랑 전자제품 들어오는 날짜를 어찌저찌 계산하다보니, 결혼 일주일 전 딱 반나절 정도 시간이 비었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바로 광양으로 향했다.
약수통 하나 들고 룰루랄라 가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현실은 생각과 전혀 달랐다. 왜 난 백운산 중턱을 오르고 있는가! 왜 아무도 나에게 산으로 올라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단 말인가! 물먹으러 사람들이 이런 산중까지 올라오다니 이해할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어느 정도 걸어 들어가니 평지와 함께 고로쇠나무들이 등장했다. 나무마다 하얀색 물통이 꽂혀 있었고, 나무에 꽂혀 있는 호스를 통해 고로쇠 물이 한 방울이 똑똑 떨어지고 있었다.
“겉보기엔 그냥 맑은 물인데 이거 한 말에 오만 원씩이나 한단말야? 아깝다. 이 돈이면 족발을 아주 그냥 원 없이 먹을 수 있는데.”
“아서라, 너는 그게 예비 신부가 할 말이냐? 이리 와서 어른 물 한 잔 마셔봐. 고로쇠 물로 끓인 백숙도 죽여줘.”
혜진이의 닦달에 고로쇠 물 한 모금 먹고, 백숙 한 점 뜯었다. 신기하게도 물이 달았다.
“야, 어른 물 생각보다 달고 맛난다. 어른은 쓴물만 먹고 살아야 되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단물 먹어도 되는 거야? 어른 좋네.”
그 후로도 나는 한참동안 닭 한 점 뜯고 고로쇠 물 마시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처음에는 한두 잔만 주고, 동준씨 갖다 줄 생각이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약수통이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그래, 동준씨만 기력 차리란 법 있나? 애는 내가 낳는 데 내 몸부터 챙겨야지. 고로쇠 물에 푹 빠져 입맛을 다시는 날 보고 미경이가 말했다.
“지금 많이 마셔 둬. 너 이제 시집가고 나면 쓴 물 배터지게 먹을 테니까.”
나는 약수통 바닥에 남은 고로쇠 물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잔에 부었다. 그리고 잔 바닥까지 핥아 마셨다. 캬, 어른 물 달다.
옛날 어느 마을에 아픈 딸을 위해 명약을 구하러 다니던 남자가 살았습니다. 마을에 소문난 의원들을 찾아 다녔지만 아무도 딸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의원이 없었지요. 그렇게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몸에 좋다는 만병통치약을 구하러 다니던 남자는 온몸에 힘이 빠져 금세라도 주저앉고 싶었지만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딸아이의 걱정에 다시금 발걸음을 재촉하였습니다. 걷고 또 걸어 힘이 빠진 남자는 목이라도 축이려고 한 주막을 들렀습니다. 그런데 그 때 범상치 않은 행색을 한 사내가 홀로 앉아 막걸리를 마시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남자는 말이나 붙여볼 요량으로 옆에 다가가 앉았습니다. 그러자 사내는 남자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말했습니다.
“딸아이가 병을 앓은 지 꼬박 두 달이 넘었구먼.”
“아, 아니. 그것을 어찌 알았습니까요?”
사내는 여전히 남자를 쳐다보지도 않고 남자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습니다.
“흐음. 명약을 찾고 있나본데 그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은 없다네. 허나 병을 낫게 할 방도는 있지.”
딸아이의 병을 낫게 할 방도가 있다는 사내의 말에 토끼눈이 된 남자는 사내를 재촉하며 물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란 말입니까?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으나 딸아이의 병을 고칠 수 있는 명약이 없다 들었습니다.”
“가평으로 가보시게. 그곳에 최고로 높이 자란 잣나무에서 잣을 따다 죽을 쑤어 먹여보게. 그럼 병이 씻은 듯이 날걸세.”
사내의 말 한마디에 남자는 가평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곳에는 몇 그루의 잣나무가 우거져 있었지요. 남자는 사내의 말대로 가장 높이 자란 잣나무를 올랐습니다. 하지만 20m가 족히 넘는 나무에 오르는 일이 마음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겨울이라 눈이 내려 나무는 더없이 미끄러웠지요. 그렇게 몇 번을 나무에서 떨어지고 또 떨어졌으나 오로지 딸을 위해 열심히 잣을 땄습니다. 그러나 위험을 무릅쓰고 얻은 잣은 몇 알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이것만 먹으면 딸의 병이 나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서둘러 산길을 내려오던 남자는 길가에 쓰러진 다람쥐를 발견하였습니다. 겨울이라 먹이를 제대로 먹지 못한 모양이었습니다.
딸의 병을 고치기 위해 딴 잣이었지만 가엾게 떨고 있던 다람쥐가 불쌍하여 잣을 잘게 으깨어 다람쥐에게 먹였습니다. 힘들게 딴 잣 전부를 다람쥐에게 먹이고 터덜터덜 산길을 내려왔습니다.
날이 밝자마자 남자는 어제 잣을 따던 나무를 향해 산길을 올랐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어제 그 잣나무 아래에 잣이 한 움큼 쌓여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놀란 마음에 나무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다람쥐 한 마리가 열심히 나무를 타고 올라가 잣을 입에 물고 내려오는 것이었지요.
자세히 보니 잣을 물고 내려오는 다람쥐가 어제 남자가 살려준 다람쥐였던 것이지요. 다람쥐는 재빨리 나무를 타고 올라가 높이 매달려 있는 잣을 내려다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남자가 서 있는 쪽으로 잣을 밀어주었지요. 얼마나 많이 잣을 따다 주었는지 잣죽을 쑤어 딸아이를 먹여 병이 낫고도 남을 만큼의 양이었지요.
남자는 가평 잣의 놀라움과 겨울철 다람쥐들이 굶주리지 않도록 남은 잣을 잣나무 옆에 심었답니다. 남자가 심어놓은 잣 씨는 무럭무럭 자라나 산림을 이루었고, 지금도 가평에 우거진 잣나무는 맛과 효능이 뛰어나기로 소문이 나있지요.
더 놀라운 것은 지금도 잣을 따기 위해 사람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나무를 타고 올라가 잣송이를 떨어뜨려 수확을 한답니다.
그곳이 어디든 산을 오르는 것이 미연은 영 못마땅하다. 서울의 많고 많은 곳 중에 산이라니. 미연은 혀를 끌끌 찼다.
“너도 참 너다. 이 넓은 서울에 갈 곳이 얼마나 많은데 고작 동네 산이니?”
“왜, 좋잖아. 자 공기한번 쭉 마셔봐. 이렇게 맑은 공기를 돈 안내고 마시는 걸 감사해야해. 그리고 멀리 가지 않고 등산할 수 있는 게 얼마나 좋아!”
“웃겨. 너랑 주말을 보낸다고 온 내가 바보다.”
미연은 투덜거리면서도 연수의 뒤를 곧잘 쫒아온다. 리본 끈으로 길을 안내하는 곳곳에는 이야기가 있는 관악산 둘레길이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아, 힘들어. 원래 이렇게 힘든 코스였어? 동네산이 뭐 이래?”
“여기만 넘어가면 내리막길이야. 조금만 힘내. 너 다이어트 한다며, 한발자국 내딛을 때마다 지방 타는 소리가 들리지~ 안 들려?”
“놀리냐, 힘들어 죽겠구만. 물이나 좀 줘봐.”
관악산 둘레길 제2구간은 물과 바람 공기가 참 시원했다. 작고 아담한 계곡을 지나면 장승과 솟대가 등산객을 반긴다. 한여름이면 여름의 냄새가 나고 가을이면 또 가을의 냄새가 나는 곳이다. 흙길을 걷다보면 오르막길 내리막길이 번갈아가며 나왔다. 오르막을 오르다 지칠 즈음이면 내리막길이 나와 쉼을 주었고 땀이 식을 만하면 다시 오르막길이 나왔다. 작은 들꽃은 휴식을 함께 기뻐해주기라도 하듯 아담하게 피어있다.
희진은 미연이 올라올 수 있도록 보폭을 맞춰주었다. 그리고 뒤에서 미연의 등을 살짝 떠밀어주기도 하며 미연의 힘을 나누고자했다.
“어! 다람쥐다. 여기 다람쥐가 다 있네.”
“그러게, 귀엽다. 우리 이러고 있으니까 소풍 온 어린애들 같아.”
“소풍? 소풍이라면 소풍이지. 점심으로 김밥도 싸왔으니까, 제대 론데?”
미연과 희진은 마주보고 웃었다.
관악산 제2구간은 돌산 조망점에 올라 서울시내를 바라 볼 수 있으며 인근 호수공원도 둘러볼 수 있는 코스라고 했다. 미연과 희진도 곧 돌산 조망점 지점에 도착하였다. 한숨 돌리고 큰 바위에 털썩하고 주저앉으니 서울시내가 한눈에 다 담겼다. 이곳이 정상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는 것이 신기했다. 뭉친 다리근육을 털고 수분을 보충하기 위해 오이를 꺼냈다.
“경치는 좋네.”
“거봐, 따라오길 잘했지? 땀 흘리고 먹으니까 더 맛있는 것 같다. 그치?”
“이래서 사람들이 산을 오르는 걸까?”
“무슨 소리야?”
“아니, 그냥. 턱 끝까지 숨이 차고 다리가 후들거려도 자신이 할 수 있다는 걸 느끼고 자신이 숨을 쉬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공기가 좋아서 오는 사람도 있고, 바람을 좀 더 많이 느끼고 싶을 수도, 그냥 산이라는 것 자체가 좋아서 오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이야기가 있는 둘레길은 친구와, 가족과 연인 등 사랑하는 사람과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길이기 때문일 것이다. 각자의 산을 오르는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산이 주는 행복과 시원함은 각자의 추억대로 되가져갈 것이다.
누군가 산다는 것은 산을 오르는 것처럼 오르막길 내리막길이 있다고 했다. 흙길로 걷기도 했다가 딱딱한 아스팔트를 걷기도 하며 계단을 오르기도 하고 평지를 걷다 내리막길을 만나기도 한다. 그래도 중요한 것은 그곳에 바람도 있고 물도 있고 나무도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 구간까지 정복하고 나니 석수역이다. 꽤나 긴 코스를 마치고 내려오니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도 꽤나 알찬 주말을 보낸 것 같은 뿌듯함과 쾌감이 밀려오는 순간이었다. 그저 그런 주말이었다면 집에서 밀린 잠을 잔다거나 텔레비전이나 붙잡고 있었을 것이다.
시계를 보니 오후 4시 50분.
“드디어 도착. 음, 막걸리에 파전 어때?”
“좋지!”
어느새 ‘강남’이라는 행정자치구 자체가 하나의 문화가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강남을 외쳤고 그 외침 하나로 강남이라는 지역 일대에 파란이 일었다. 땅값은 물론 그곳에서 피어난 문화, 패션, 거리 하나까지 그 시대의 트렌드를 이끄는 한 공간이 되어버렸다.
강남스타일이라는 대중가요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도대체 ‘강남스타일’이 무엇이기에 사람들은 그것에 열광을 하는 것일까 생각한 적이 있다.
언젠가 강남이라는 단어는 부의 상징이었고 무너져가는 아파트라도 강남에서 산다는 것 자체가 훈장처럼 달리는 명예였다. 소위 잘산다는 사람들의 동네로 불리는 강남은 여전히 많은 이들의 워너비 동네로 자리 잡고 있다.
“너 장래 희망에다 뭐 썼어?”
“난 청담동 며느리.”
“청담동 며느리가 되는 것이 꿈이야?”
“그럼, 좋은 집안에 시집가서 남편 잘 만나 행복하게 사는 것만큼 좋은 게 어디 있니?”
민지는 청담동 며느리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민지 말대로 좋은 집안에 시집가서 행복하게 사는 것만큼 좋은 것도 없겠지만 그것이 곧 행복이고 꿈이라는 건 조금은 슬픈 일이었다.
드라마에서 재벌집들이 전화를 받으면 동네 이름을 말하며 전화를 받는 것처럼. 민지도 콧소리를 흘리며 ‘청담동입니다’라고 할 것이다.
민지는 항상 만날 약속장소를 말하면 강남역 7번 출구였다. 그래서 친구들은 민지를 강남역 7번 출구라고 부르기도 했다. 금요일이면 강남역은 젊은이들의 문화로 가득했고 만남과 만남으로 들떠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붕붕 울리는 음악과 현란한 사람들의 발소리가 늦은 시각임을 실감하지 못하게 했다. 민지의 헬스클럽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강남역 7번 출구로 나갔다.
민지는 운동으로 잘 다져진 탄탄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것도 다 청담동 며느리가 되기 위한 하나의 조건이라고 하며 자랑스러워했다.
커피숍에 들어가도 민지는 아메리카노 이외에는 입에도 대지 않았다. 나는 약간 비꼬는 목소리로 그것도 강남 스타일이냐? 라며 비웃었지만 민지는 눈 하나 끔뻑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도도한 목소리로 그렇게 달달한 거 자꾸 먹으면 ‘살쪄’라며 생크림 잔뜩 들어간 달달한 내 음료를 비난했다.
한강을 사이에 두고 사람들은 강남과 강북을 갈랐고 조망권과 교통권, 문화생활의 차이를 만들어갔고 그 차이를 통해 만족을 느끼려했다.
어쩌면 강남은 서울의 수도가 아닐까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뛰는 이유는 무엇일까. 더 많은 스펙을 쌓으며 어떤 것을 이루려고 하는 것일까. 과연 서울에도 수도가 있다면 그곳은 강남일까.
여전히 강남역엔 사람들이 붐볐다. 압구정동이나 청담동에는 비슷한 차림새에 비슷한 얼굴을 한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생각과 다른 사연들을 품고 거리를 누비고 다녔다. 나는 물끄러미 지나가는 행인들을 바라보았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돈이 많은 건 아닐 텐데. 비슷한 얼굴에 비슷한 차림을 하고 있지만 그들이 원하는 삶과 생각은 다를 텐데 말이다.
민지와 꽤 늦은 시간에 헤어졌다. 민지는 저들 틈으로 사라져갔다. 유유히. 민지는 금세 사람들 사이에 스며들어 누가 누군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멀어져갔다.
순간 나는 길을 잃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서 내가 가야할 곳을 말해줄 것 같은 사람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만 나에게 ‘이쪽으로 가면 강남역이 나오고 저쪽으로 가면 청담으로 가는 길일 거예요. 저쪽은 삼성동이고요.’정도로 이야기 해주겠지.
겨우 길을 걸으면서 나는 민지를 떠올렸다. 우리는 민지를 선뜻 속물이라고 말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아니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사람들의 통념이 그렇듯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웬만하면 서울, 그 중에서도 강남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더 많은 사람들의 장래희망이 혹은 꿈이 ‘도곡동 고급아파트, 삼성동 유명백화점, 청담동 며느리’가 되지 않기를 바랄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