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잃은 지 벌써 닷새가 조금 넘었다. 집 앞 골목에서 놀던 아이는 이내 사라져버렸다. 달도 기울어진 밤. 어스름히 비추는 가로등이 자꾸만 깜박거린다.
아이를 찾으려 경찰, 미아신고센터 등 발을 넓혀 수소문해보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실마리는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 유괴라면 협박을 하는 전화 한통쯤은 걸려왔을 법한데 이상하리만큼 잠잠했다. 그렇다면 아이의 실종일까. 일곱 살 난 아이가 혼자서 길을 잃었다면 누군가 보호를 하거나 신고를 했을 텐데 동네에 아이의 흔적은 토막 난 시간처럼 깨끗했다.
“생김새가 유사한 아이를 목격했다는 제보전화입니다. 사례금을 먼저 묻는 걸 보니 약간 의심스럽긴 한데 그래도 일단 만나보심이…….”
사람들은 남들의 아픔에 치명적인 순간을 노리곤 한다. 장난전화라는 무책임한 단어에 피가 마르고 심장이 덜컥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돈을 노린 하이에나들처럼 전화를 걸어오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솟는다는 기분이 이럴까. 아내는 자신이 아이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에 반 실성을 하며 통공했다. 식음을 전폐하고 결국 자리에 누웠다. 아이의 이름만 중얼거릴 뿐이었다. 경찰은 아직 일주일을 넘기지 않은 상황이니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노력을 해보자고 했다. 물론 그들도 달리 뾰족한 방법은 없는 듯했다.
아이가 어디로 사라진 걸까. 단순히 길을 잃은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 보호하고 있는데 이야기를 해주지 않는 것일까. 그 다음의 최악의 상황은 떠올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런데 왜 불길한 상황에서의 생각은 자꾸만 최악의 상황으로 빠져드는지 모르겠다. 아이가 ‘아빠’하며 찾을 것을 생각하니 밤이 깊어가도 좀처럼 자리에 누울 수 없었다. 아이가 어디에서 살아있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데 부모가 되어서 어떻게 발 뻗고 잠들 수 있을까.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났다. 경찰에서도 우리 쪽에서도 그렇게 발 빠르게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이제는 조금 느슨해졌다.
따르르르르릉. 전화 한 통이 울렸다.
화순의 한 절이라고 했다. 우연히 아이를 찾는 전단지를 보았는데 자신이 보호하고 있는 아이와 비슷한 것 같아 전화를 했다고 했다. 몇 차례 장난전화를 받았지만 매번 아이를 보호하고 있다는 전화가 걸려오면 심장이 심하게 요동쳤다. 그런데 아이를 보호하고 있는 곳이 절이라니. 장난일리는 없겠다고 생각이 되었지만 만약 정말 아이가 있다면 어떻게 그곳에서 보호하고 있을까 생각했다. 전화를 건 사람의 목소리에서는 장난기라고는 없었고 꽤나 진실했다. 우선 아이는 잘 있다는 말을 먼저 하는 걸 보니 안심이었다. 문제는 그곳까지 아이가 어떻게 갔을까이다. 차로 족히 10Km는 가야할 거리이다. 버스를 타고 간다고 해도 아이혼자 쉽지 않은 거리인데. 아이를 만나러 가는 길임에도 자꾸만 의심이 가슴 속에서 콕콕 솟아올랐다.
급하게 차를 세워두니 저 멀리서 아이가 뛰어왔다. 아이의 상태는 괜찮은 듯 했다. 눈으로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니 5일간의 마음고생이 사라지니 급하게 피곤이 몰려왔다. 아이를 어떻게 보호하게 되었는지 자초지종을 듣기위해 스님과 잠시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많이 놀라셨지요? 빨리 연락을 드리지 못하여 죄송할 따름입니다.”
“아닙니다. 그래도 이렇게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아이도 잘 보살펴주시고.”
스님은 천천히 칠성바위 쪽으로 나를 안내했다. 며칠 째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여 몸이 천근만근이었으나 아이를 찾았다는 마음 하나만으로도 버틸 수 있었다.
“이것이 칠성바위입니다. 언뜻 보면 그냥 7개의 원반석으로 보이나 자세히 보면 북두칠성이 지상에 그림자를 드리운 듯한 모습을 하고 있지요.”
아이를 어떻게 보호하게 되었는지를 묻었는데 스님은 대뜸 북두칠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다. 그렇다고 스님의 말을 자를 수 없었기에 말없이 예에. 하고 듣고만 있었다.
“북두칠성은 북극성과 같이 나그네의 길잡이가 되어준다지 않습니까. 아이가 저를 찾아오게 된 것도 다 그런 이치이지요.”
스님은 자꾸만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으셨다. 간절한 마음이 북두칠성의 밝은 빛을 받아 아이를 이쪽으로 움직이게 하였을까.
자꾸만 졸음이 쏟아져 스님의 이야기가 희미해진다. 이제 겨우 아이를 어떻게 발견하였는지 이야기를 하는데 정신이 희미해지고 몽롱해진다.
파란 눈에 오뚝한 코. 검은 머리에 흰 피부를 가진 내 이름은 레이나이다. 아빠는 한국계 독일 사람이었고 엄마는 한국 사람이다. 나는 아빠를 본 적은 없다. 그렇지만 아빠가 있다. 새아빠. 새아빠는 재미교포 2세다.
엄마는 이국적인 취향을 가졌나보다.
어렸을 때 나는 누구보다 애국가를 힘차게 불렀고 누구보다 빨리 외웠다. 조회시간에 국기에 대한 경례도 열심히 했다. 그래서 운동회 날 개회식에 대표로 조회대에 올라 애국가 제창을 하기도 했다. 나는 내가 노래를 잘 불러서 그런 줄 알았으나 나중에 알기로는 신선한 문화적 느낌에서랄까 그래서 나를 쓴 모양이었다.
새아빠는 내게 친절하고 상냥하다. 항상 나를 존중해 주었고 내 앞에서 엄마와의 애정표현도 잘 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난 새아빠가 엄마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지금에 와서 하는 말이지만 엄마는 내가 친아빠에 대해 궁금해 하는지 안 궁금해 하는지도 묻지 않았다. 돌아가셨는지 일찍이 이혼을 하신건지조차도 모르고 지냈으니까. 내가 먼저 물어봤어야 하나 아니면 엄마가 먼저 말해줬어야 하나. 이건 마치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묻는 것과 같을 것이다.
학교에서는 다들 내가 우리나라 말을 능숙하게 하는 것에 대해 신기해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보고 바보 같다고 생각했으나 아주 이해를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마치 외국인이 영어보다 한국말을 더 잘하는 것같이 느껴졌을 테니까.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일 년에 한 번씩 남해로 나를 데려갔었다. 그곳에는 공교롭게도 미국마을 그리고 독일마을이 있었다.
그곳에는 아빠를 닮은 사람도 새아빠를 닮은 사람도 많았고 나는 그들속에 더 자연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엄마는 내가 열세 살이 되던 날 처음으로 친아빠 이야기를 해주었다. 친아빠는 참 멋있는 사람이었다고 했고 특히 오뚝한 코가 제일 멋있었다고 했다. 내가 아빠를 닮아서 다행이라고 하면서.
엄마는 나중에 내가 다 자라고 나면 이곳에 내려와 살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 그러면 나는 짓궂게 미국마을에서 살 것인지 독일마을에서 살 것인지를 물었다. 엄마는 내 콧잔등을 가볍게 치며 다랭이 마을에서 농사지으면서 살겠다고 하기도 했다. 거짓말.
어렸을 적 나는 엄마와 외할머니가 싸우는 걸 몰래 엿본 기억이 있다. 할머니가 엄마에게 못된 소리를 하기에 엄마가 무엇을 잘못했나보다 생각을 하긴 했으나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그저 친아빠가 아직 돌아가신 건 아닌가 보다 라는 일종의 정보만 얻게 되었을 뿐이었다.
그 정보를 듣고 난 후에도 나는 엄마에게 친아빠에 대한 유무를 확인하지 않았다. 친자식이 아빠를 궁금해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음에도 나는 그것이 마치 엄마를 힘들게 하는 못된 짓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아빠라는 단어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처럼 쉽게 내뱉지 못하며 자라온 것도 있다. 그래서 인지 아니면 엄마가 다시 만난 사람도 외국인이어서 그런지 나는 아빠라는 단어에 집착하지 않는 새아빠가 고마웠다.
나는 사실 엄마보다 새아빠와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던 내게 새아빠는 아빠가 보고 싶지 않느냐고 먼저 물었다. 나는 그저 새아빠 얼굴만 뚫어지게 쳐다보았던 기억이 난다. 보고 싶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보고 싶지 않다고 해야 할까.
나는 엄마가 아빠와 왜 헤어졌는지 궁금했다. 언젠가 아빠를 만나면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어디에 계신지 내가 만나볼 수 있는지 조차도 모르는 아빠에게.
내가 아빠에 대한 정보를 아는 것이 독일 사람이고 코가 오똑하며 예쁘다는 것뿐이었다.
나는 가끔 엄마 몰래 혼자 남해를 찾아오곤 한다. 독일 마을에 내가 알지 못하는 우리 아빠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흰 벽에 주황색 지붕을 한 어느 따뜻해 보이는 집에 나와 닮은 오뚝한 코를 가진 독일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언젠가 나와 닮은 외국 사람을 만나게 되면 아주 반가운 얼굴을 하고 손을 흔들어 줄 것이다. 이렇게 예쁘게 잘 자라고 있다고.
내가 생각한 여행은 이런 것이었다. 친구와 도란도란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며 푹 쉬다 돌아가는 국내 여행. ‘레일바이크를 타고 섬진강변을 따라가며 자연을 만끽해야지!’ 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나 홀로 여행이 되고 말았다.
새벽 여섯 시쯤 되었나, 민정에게서 전화가 왔다.
“너 왜 벌써 전화했어. 일곱 시에 만나기로 했잖아.”
“우리 쁘띠가, 우리 쁘띠가! 흐윽윽윽!”
쁘띠는 민정이 키우는 개다. 나이가 열 살이 넘었으니 사람으로 치면 노인에 가깝다. 외동인 민정과는 형제처럼 지낸지라 쁘띠에 대한 민정의 사랑이 상당하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쁘띠가 호흡곤란이 왔단다. 그래서 민정은 지금 24시간 동물병원에서 대기 중이다. 결국 민정은 여행 출발 한 시간 전, 펑크를 냈다.
그렇다고 여행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열차도 끊고, 숙소도 예매하고, 고대하던 레일바이크도 나를 기다린다. 혼자라고 못 탈쏘냐! 난 결국 혼자만의 여행을 감행했다.
그러나 애초에 시작이 꼬여서 그런 걸까? 벌써 레일바이크에서 발이 묶였다. 이인용이라도 혼자 페달을 밟아 갈 생각이었는데, 혼자서는 탈 수 없단다. 그리고 이건 몰랐던 사실인데, 증기기관차가 레일바이크와 같은 레일을 사용한단다.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운행하긴 하지만, 그래도 자칫 잘못하면 열차랑 같이 갈 수 있다고…….
직원들이 혼자 태울 수 없다고 말리는 바람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혼자 침곡역에 멀뚱히 앉아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포기할 내가 아니었다. 나는 눈에 불을 켜고 나처럼 혼자온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어쨌든 둘이 타기만하면 되는 거 아닌가! 모르는 사람이라도 좋으니 어떻게든 레일바이크를 타고 싶었다. 그때, 침곡역 구석에 앉아있는 한 남자가 눈에 띄었다.
“저기, 혼자 오셨어요?”
“아, 네.”
“괜찮으시면 저랑 레일바이크 타실래요? 저도 혼자 왔거든요.”
“아, 그런데 어쩌죠. 저도 레일바이크 탈 생각으로 왔는데, 아까 곡성역에서 그만 다리를 삐끗했어요. 오기로 오긴 했는데, 아무래도 페달밟는건 무리 같네요. 죄송해요.”
하지만 여기서 물러설 내가 아니었다.
“일단 타세요! 페달을 저 혼자 밟을게요. 보시다시피 저 허벅지 끝내줘요.”
나는 막무가내로 남자의 승낙을 받아냈다. 그리고 절룩이는 그를 부축하여 레일바이크에 태웠다.
“여기 직원들 앞에서는 다리 안 아픈척 하세요. 잘못하면 또 저지당하니까.”
신호와 함께 꿈에 그리던 레일바이크 체험이 시작됐다.
“여러분! 앞사람과 간격 맞추시고, 뒤처지지 않게 페달 열심히 밟으세요!”
그러나 우리 앞에는 운 없게도 건장한 남자 둘이 타고 있었다. 그들을 태운 레일 바이크는 이미 저 멀리 사라진 후였다. 그림자도 찾을 수 없었다.
“죄송해요! 한쪽다리로라도 페달 좀 밟아볼게요.”
남자는 미안해했다. 침곡역에서 가정역까지 레일바이크로 사십분 정도 걸린다는데, 십오 분 정도 왔을까? 벌써 다리에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분명 섬진강은 아름다웠고. 레일 위를 지나는 기분도 좋았다. 그렇지만 너무 힘들었고, 증기기관차가 언제 돌진할지 모른다는 이상한 공포가 밀려왔다. 아직 레일바이크 타다 증기기관차에 치여 죽었다는 얘기는 못들은 것 같긴 한데……. 도저히 기운이 나질 않았다. 젖 먹던 힘까지도 쥐어짤 수 있는 동기부여가 절실했다.
나는 페달을 밟으며 소리쳤다.
“저기요!”
“네?”
“제가 너무 기운이 없어서 그러는데요! 페달 빨리 밟게 힘 좀 북돋아주실래요?”
“어, 어떻게요? 음악 틀어드릴까요?”
“아뇨!”
남자는 놀라 눈이 휘둥그레 졌다.
“그럼, 제가 불러야 돼요?”
“아뇨! 노래 말고 다른 거요.”
이 말을 할까 말까 할까 말까 하다가 그냥 뱉었다. 아, 내가 죽겠다는데! 우리 두 사람의 목숨이 달려 있잖아!
“가정역 도착하면 저랑 맥주한잔 하실래요?”
내 말을 들은 남자의 얼굴에서 약간의 긴장이 사라졌다. 오호, 싫지는 않은가본데?
“하하. 네, 그래요. 신세도 졌으니 제가 살게요.”
하지만 나의 패기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전화번호도 알려주세요.”
“네? 아, 알겠습니다. 밟으세요.”
아싸! 나는 신이 나서 전력을 다해 페달을 밟았다. 더욱 힘차게 밟았다.
백설공주가 한입 베어 물고 죽음의 문턱까지 이르렀던 독사과. 세 번이나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던 그녀가 또 모르는 사람이 내민 사과를 덥석 받아 물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빛깔이 좋았던 것일까 향이 치명적으로 달콤하였을까? 마녀가 백설공주에게 사과를 내민 것을 아무 의심 없이 받아주었던 것처럼. 그래서 다들 사과를 할 때 손을 내민다고 하나. 손을 내밀면 아니 사과를 하면 받아줄 수밖에 없는 것일까?
승희는 딸에게 명작동화 백설공주를 읽어주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든 것이다. 딸아이가 그 다음 이야기를 말해달라고 보채지 않았다면 그녀의 머릿속은 수만 가지 질문들로 가득 채워졌을지도 모른다.
승희는 정신없이 떠올리던 생각들을 더듬어보았다. 사과를 내민다. 사과를 받아준다. 그것이 백설공주의 목숨을 앗아갈 뻔할 만큼 치명적이든 아니든. 사과하고 싶은 사람에게 정말 사과를 내밀면 사과를 받는 사람도 문득 이런 생각을 하며 받아줄 수 있을까? 유치하다.
삼 년 전 승희와 다툰 그녀의 친구 A와의 일이 떠오른다. 전혀 관계없는 세계 명작 백설 공주를 읽으면서 왜 A가 떠오른 걸까. 그녀와 A는 쌍둥이처럼 생각이 잘 맞곤 했다. 그래서 대학 캠퍼스 시절엔 늘 A와의 추억이 가득했다. 그런 그녀들이 다시는 얼굴을 마주하지 않기로 다짐하던 그 순간, 4년간의 우정이 모래성이 쓰러지듯 한 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하지 말아야 하는 걸 알면서도 승희는 A에게 못된 말을 쏟아 부었고 A도 울부짖으며 다시는 만날 일 없을 것이라며 관계를 끝내버렸다.
둘은 울고 있었고 서로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서로가 서로에게 서운했던 마음이 물밀 듯이 몰아쳐 오면서 폭풍우처럼 상대방의 가슴으로 쏟아져 내렸다. 그 후 승희는 결혼을 했고 귀여운 아이도 낳았다. 간간히 또 다른 친구를 통해 A의 소식을 들었으나 관심 없는 척 했다. A도 승희의 소식을 들었겠지만 감감무소식인걸 보니 그녀의 마음도 아직 인가 보다.
딸아이가 자꾸만 보챘다. 이번엔 밖에 나가자고 하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복잡한 생각들을 했던 승희는 몸이 천근만근이라 나가기 싫었지만 딸아이는 좀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승희는 하는 수없이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볼 심산이었다.
“엄마! 사과다 사과. 오늘 우리가 책에서 읽었지? 사과!”
목요일이었지. 오늘은 우리 동네 장이 열리는 날이다. 딸아이는 그새 과일을 파는 곳을 본 모양이었다. 그리고는 신이 나서 과일아저씨가 하는 말을 흉내 내기 시작했다.
“아주 달고 맛있는 장수 사과입니다. 당도가 높고 몸에 좋은 장수사과입니다.”
승희는 순간 사과를 보내면 A가 받아줄까요? 라는 바보 같은 질문을 던질 뻔했다. 순간 얼굴이 달아오른 승희는 사과 한 박스를 주문하는 걸로 질문을 대신했다.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에 사각사각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아까 시식용 사과를 집어 들더니 여전히 사각사각 잘도 베어 먹는다.
누군가에겐 큰 상처가 될 만한 일을 그런 유치한 사과를 보낸다고 해서 받아줄 수 있을까?
나 같으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받아줄 수 있을까?
사과를 보내본다.
빛깔 좋고 치명적인 달콤한 향이 나는 사과를 받아든 A. 상처가 아물지 않는 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백설공주처럼 한 입 베어 물어본다.
멀리서 경종소리가 들려왔다. 바우덕이는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했다. 청룡사 남사당패인 개패거리에 들어온 지 오늘로 꼬박 열 두 해째 되는 날이었다. 그녀가 다섯 살이 되던 해 홀아비 머슴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생을 얼마 연명하지 못하고 숨을 거두고 말았다. 시름시름 앓던 그가 끼니도 제대로 연명하지 못한지 닷새만이었다. 아비는 임종 직전, 때때로 함께 술을 나누던 청룡사 남사당패 꼭두쇠에게 그녀를 맡겼다. 왜 하필 남자들만 있던 남사당패에 그녀를 맡겼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개머리패에 들어온 그날부터 그녀는 김암덕이라는 이름 대신 바우덕이라고 불렸다.
그녀는 갖가지 기예를 배워나갔다. 어름(얼음 위를 걷듯이 어렵다는 줄타기), 풍물과 버나(대접돌리기), 살판(땅재주)까지 기예를 하나씩 익혀갈 때마다 사람들은 그녀의 재능을 놀라워했다. 바우덕이는 모든 기예에 능했다. 그녀가 거리낌 없이 재주를 익혀나갈 수 있었던 것도 꼭두쇠인 곤(滾) 덕분이었다. 그는 바우덕이에게 있어 아비나 마찬가지였다. 발이 부르트도록 줄 위에 올려두었다가도, 밤이 되면 그녀의 발에 어렵사리 장(醬)을 구해 발라주던 것도 그였다. 바우덕이는 곤을 유독 따랐다. 그럴수록 줄타기에 매달렸다. 그녀는 위태로운 줄 하나에 몸을 내맡겨 날아오르는 것이 좋았다. 그 모양새가 제 처지와 비슷해 보이기도 했고, 늘 바닥에 납작 엎드려서 살아야 했던 그녀에게 하늘을 위해 솟아오르는 일은 유일한 해방구였다.
곤은 그녀가 열다섯이 되자 꼭두쇠에서 물러났다. 이레 전 수레에 다리가 밟히는 사고를 당했기 때문이었다. 바우덕이를 향해 돌진하던 수레를 가로막아 당한 사고였다. 곤의 다리는 점차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더 이상 놀이를 하지 못하는 그는 꼭두쇠로 있을 수 없었다. 곤은 울고 있는 그녀를 불렀다.
“덕아, 왜 우느냐.”
덕이는 울음이 북받쳐 대답할 수 없었다. 그러자 곤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는 그저 놀면 되는거다. 네 재주껏 한 판 놀면 되는 거란다.”
그녀는 그날부터 힘껏 뛰어올랐다. 조금 더 높이. 더 크게. 그녀의 줄타기를 본 사람들은 저마다 탄성을 질렀다. 그토록 위태롭고도 높이 날아오르는 사람은 없었다. 바우덕이는 안성을 넘어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탔다. 그녀의 줄타기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대원군은 경복궁 중건에 쓰이는 일꾼들을 위해 그녀의 남사당패를 불러 들였다.
합장을 하던 그녀의 손이 떨렸다. 그녀는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쥐고 있던 부채를 크게 펼쳐보았다. 곤에게서 받은 부채였다. 그녀는 그것을 무척이나 아꼈다. 가는 부채살들이 제대로 펼쳐졌는지 꼼꼼히 살폈다. 살 하나가 크게 구부러져 있었다. 부러진 살을 세우려고 했다. 하지만 한번 부러진 부채살은 세워지지 않았다. 눈을 질끈 감았다. 그녀는 크게 한번 숨을 가다듬었다. 바우덕이에게 오늘은 무엇보다 제일 큰 놀이판이었다. 머리에 두른 두건을 다시 한번 질끈 묶었다. 꽹과리 소리가 크고 경쾌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그때 멀리서 곰뱅이쇠가 뛰어왔다. 숨을 헐떡이는 그의 얼굴은 온통 눈물범벅이었다. 그녀는 보따리에서 탈 하나를 꺼내들었다. 곰뱅이쇠가 바우덕이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녀는 곤이 처음으로 만들어주었던 탈을 썼다. 바우덕이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어떠한 표정으로 서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녀의 손이 줄을 튕겼다.
이내 바우덕이는 줄을 타기 시작했다. 그리고 평소보다 더 거침없이 뛰어올랐다. 한번! 두 번! 세 번! 일꾼들이 그녀의 줄타기를 보며 추임새를 넣었다. 그녀는 마치 춤을 추는 듯 했다. 한 손에는 활짝 펼쳐든 부채를 부드러운 곡선을 따라 흔들었다. 바우덕이의 양 다리는 꼿꼿이 그러면서도 유연하게 움직였다. 하늘을 향해 춤을 췄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크게 회전하며 돌기 시작했다. 그녀의 춤은 멈출 줄을 몰랐다.
오래된 수탁의 아침을 알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삐거덕 하는 문을 열고 조용한 걸음걸이의 소녀 설화가 나왔습니다. 마을에서 설화라는 소녀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효녀로 소문이 나있었지요. 설화는 아픈 아버지와 어머니를 대신해 마을일을 돕고 바느질 삵을 받아 근근이 살아갔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번 돈으로는 반찬은 가족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쌀을 사기도 힘들었답니다. 소녀 설화는 마을일을 도와드리며 반찬 조금씩을 얻어오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소녀가장이 된 설화의 착한 심성과 딱한 사정을 아는 마을사람들은 집에 있는 반찬을 조금씩 바가지에 담아주었습니다. 그런데 마을사람들의 반찬을 따로 담을 수 없어 그만 한 바가지에 나물들이 전부 섞여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래도 반찬들을 얻었다는 기쁨에 한달음에 달려간 설화는 나물들이 섞인 바가지에 밥을 넣어 숟가락으로 비벼 상을 차렸습니다. 부모님께 이렇게 밖에 상을 차리지 못했다는 죄송스런 마음이 들었지요. 설화의 어머니와 아버지도 처음 보는 생소한 밥에 두 눈이 휘둥그레 졌습니다. 그런데 막상 먹어보니 그 맛도 맛있고 다른 찬을 따로 준비할 필요가 없어서 더 잘됐다고 설화를 위로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설화가 막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낯선 행색의 웬 남자가 설화의 집 앞에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행색을 보니 이 동네 사람은 아닌 듯싶었지만 사람을 구하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되어 집으로 데리고 들어왔습니다.
우선 물을 먹여 목을 축이게 하고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 주었습니다. 그러자 남자가 정신을 차리고는 고마운 마음을 전하였습니다. 달리 내 드릴 것이 없던 설화는 금방 얻어온 반찬들과 산에서 캐온 나물들을 섞어 고추장과 함께 내드렸습니다.
“소녀, 집안 살림이 누추하여 이런 것 밖에 내 드릴 것이 없사옵니다. 송구스럽습니다.”
남자도 생전 처음 보는 밥상에 잠시 놀랐으나 고추장에 쓱쓱 비벼 맛을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맛도 맛이지만 밥에 들어간 나물들이 모여 이만한 영양가를 내는 밥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밥의 이름이 무엇이냐? 혹, 밥을 이렇게 만들게 된 경위를 내게 알려줄 수 있겠느냐?”
“이 밥에 이름은 달리 없사옵니다. 사실….”
설화는 집이 가난하여 이웃사람들에게 얻은 반찬이 우연히 섞여 밥과 함께 먹은 것이라고 남자에게 말했습니다.
“허허. 그것 참 딱하면서도 놀랄 일이구나. 사실 나는 궁에서 시찰을 나온 암행어사니라. 아까는 잠시 현기증이 나 쓰러져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너를 만난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이런 천한 음식을 내 드렸으니, 송구할 따름입니다.”
“아니다. 밥과 함께 갖가지 나물들을 비벼먹는다... 비빔밥이 좋겠구나!”
“네? 비빔밥이요?”
“그래, 이 마을이 전주이니 전주비빔밥이 좋겠구나.”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암행어사가 다시 설화의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왕실의 수라간 나인이 되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임금님이 드시는 음식을 손수 차릴 수 있다는 생각에 승낙한 설화는 궁으로 들어갔습니다. 궁에는 수많은 음식들이 있었습니다. 설화는 갖가지 좋은 재료 중에서 나물과 고기를 가지런히 밥 위에 올려 수라상을 만들었습니다. 맛을 본 임금은 이름을 음식의 이름을 물었고 설화는 그 때 암행어사가 지어준 이름을 대었습니다.
맛의 우수함과 영양까지 두루 갖춘 전주비빔밥의 시작은 우연함이었지만 궁중음식으로 사랑받으며 전주의 제일가는 음식으로 지금까지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옛날, 어느 마을에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잠잘 때, 밥 먹을 때 빼고는 입을 쉬는 일이 없었다. 목소리는 또 얼마나 우렁찬지 가까이 있으면 귀가 따가울 정도였다. 도대체 어떤 말을 하고 다니느냐. 옆집 똥개가 새끼 낳은 일부터 아랫동네 아낙이 바람난 일, 나라님 흉보기, 어제저녁 밥상의 반찬, 죽다 살아난 할아버지 이야기, 조상님 묏자리까지 인간세상 일은 다 관여하고 다녔다. 남의 일이라면 상대 가리지 않고 이리저리 말을 나르는 탓에 피해 본 사람도 한둘이 아니었다.
하루는 마을 사람들이 훈장님 댁에 모여 앉아 불만을 토로했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 때문에 귀가 따가워 일할 수가 없소.”
“그가 안 해도 되는 말을 옮긴 탓에 나는 아직도 마누라와 전쟁 중이라네.”
“이대로는 안 되겠소. 이제부터 우리 모두 그의 얘기를 들어주지 맙시다.”
그리하여 마을 사람들은 그의 이야기를 듣고도 못 듣는 척했다. 들어주는 이가 없자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마을을 떠날 결심을 했다.
“좋아. 말을 하면서 전국 팔도를 유랑하는 거야. 내가 직접 들을 사람을 찾아서 이야기하고 다니자.”
그는 그렇게 봇짐을 꾸려 여행을 떠났다. 세상은 넓고 말할 사람은 많았다.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말을 지어내고 옮기며 행복하게 몇 년을 보냈다.
전국방방곡곡을 다니던 어느 날,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정동진에 도착하였다.
“풍광이 아름답구나. 신선이 따로 없네. 이제 내 얘기를 들어줄 사람만 있으면 되겠어.”
이야기할 사람을 찾아 바닷가를 걷던 그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하지만 너무 작아 잘 들리지 않았다. 소리를 향해 다가가자, 파도가 바닷가에 선 나무를 향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는 바위 뒤에 몸을 숨겼다.
“그래서 토끼가 용왕님에게 뭐라고 했느냐면…….”
파도의 목소리가 신기하여,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집중해서 듣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파도의 이야기는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이야기보다 재미있는 게 아닌가.
‘아니, 이렇게 재밌는 이야기가 있었단 말이야? 전부 들어 말하고 다녀야지.’
그는 바위에 쪼그려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파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는 난생처음 들어보는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가 다리가 저렸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슬쩍 다리를 펴다가 솔잎을 밟고 말았다.
“어머나, 깜짝이야.”
솔잎의 소리에 놀란 파도가 저만치 바닷속으로 도망쳤다. 그는 파도를 향해 외쳤다.
“파도야. 도망치지 말고 더 이야기해다오. 뒷내용이 궁금해서 자리를 뜰 수가 없구나.”
하지만 파도는 그를 경계하며 말했다.
“안 돼요. 제가 했던 말은 용궁의 비밀이랍니다. 오로지 해안가의 나무만이 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요.”
용궁의 비밀이라니, 더없이 탐나는 이야기였다. 용궁의 비밀을 전국 팔도에 말하고 다닐 생각에 잔뜩 들뜬 그는 파도를 향해 외쳤다.
“내 그 이야기를 위해 기꺼이 나무가 되마.”
그러자 그는 다리가 땅에 박히고 피부는 점점 딱딱해졌다. 손에는 싹이 돋았고 머리칼은 초록으로 변해갔다. 하지만 소나무가 되자 입도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말하는 데에 눈이 멀어 영영 말할 수 없게 되어버린 그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에게 입이 없으니 영원히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는 소나무가 되어 아직도 정동진 해변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다.
휴학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새내기로 맞았던 대학의 첫 봄은 너무 빨리 지나가버렸다. 남들도 다 겪는다는 미완의 러브스토리도 두어 개 생겼고, 아주 많은 사람들과 아주 많은 시간을 보냈다. 벚꽃 날리는 캠퍼스 잔디밭에 앉아 이야기를 하던 꿈같은 지난 봄. 올해도 캠퍼스에서 봄을 맞을 수 있었는데, 연년생인 동생이 사립 명문에 턱걸이로 합격하며 나는 휴학을 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동생의 학비를 위해 내 학업을 잠시 접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카페에서 시작한 파트타임의 아르바이트는 많이 힘들지는 않았다. 흰색과 푸른색으로 꾸며진 심플한 내부에 하얀 의자들이 놓인 카페는 내 취향에 꼭 맞는 곳이었고, 사장님께 라떼 아트를 배우는 재미도 쏠쏠했다. 직장인들이며 대학생들이 한꺼번에 몰려드는 점심시간 대를 제외하고는 손님도 그렇게 많지 않았고, 별다른 사건 사고도 없었다.
문제는 이 사건사고가 없는 점이었다. 스물한 살이 맞는 봄 치고는 너무도 단조로운 이 봄. 동생의 SNS 페이지에 올라오는 대학 생활의 단면들을 감상하며, 왠지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여기에서 샷을 내리고 휘핑크림을 얹고 있고, 동생은 웃고 떠들고 공부하고 논다. 등록금 때문에 빚을 낼 수도, 갓 대학에 합격한 동생을 휴학시킬 수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억울한 마음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정오 즈음부터 해가 질 무렵까지 이어지는 아르바이트 때문에 여행을 가기도 애매했고,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과는 시간이 맞지를 않았다.
작년 12월에 1학년의 두 번째 학기를 종강한 이후로 카페와 집만을 오가던 내가, 갑자기 카페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린 것은 순전히 기분 전환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 날도 불만에 가득 찬 표정으로 계양역에서 내려 계양대교 위를 건너가는데, 기차 한 대가 다리 밑을 지나갔다. 갑작스런 소음에 귀를 틀어막고 눈을 감았는데, 눈을 떠 보니 아라뱃길 위로 지나는 유람선이 보였다.
평소에는 눈길도 주지 않던 아라뱃길이 그날따라 왜 그렇게 아름답게 보였을까. 계양대교를 따라 아라뱃길 위를 건넌 나는 주저하지 않고 귤현타워 계단을 내려가 버렸다. 그리고 그대로 걷기 시작했다.
봄꽃이 꽃망울을 틔워내는 시기였다. 바람은 차가웠지만, 봄바람에 섞여 온 아련한 꽃향기가 코를 간질였다. 그러고 보니 봄이 된 지 한 달이 다 되어 가는데, 꽃구경 한 번 하지 못했다. 시간이 없어 못했다기보다는, 도저히 꽃구경을 할 기분이 나지 않았다.
삼십 여 분을 걸었을까, 저 멀리 아라폭포가 보였다. 친구들한테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인공 폭포라고 해서 공원이나 캠퍼스에 조성되어 있는 작은 폭포를 상상했었는데, 아라폭포는 생각보다 꽤 컸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아라폭포 위로 올라 가 볼 수 있는 계단이 만들어져 있었다.
사람들은 왜 떨어지는 모습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래로 떨어지는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며 나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폭포 안쪽에 사람이 걸을 수 있는 길이 있었다. 옛날이야기 속의 신선이라도 된 것 같이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폭포 안으로 들어갔다. 물줄기에 가려져 바깥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대로 폭포 안에 쪼그려 앉아 머리 위에서 힘차게 떨어져 내리는 물줄기를 바라보았다. 아래로 흐른 물은 다시 위로 올라갈 것이고, 또다시 아래로 떨어질 것이다. 그리고는, 또 위로 올라갈 것이다. 하루가 지나듯, 한 달이 지나듯. 그리고 일 년이 지나듯 말이다.
휴대전화를 꺼내 보니 사장님의 부재중 전화가 열통이 넘게 찍혀 있었다.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는 문자와 함께. 그리고 동생이 보낸 메시지가 와 있다. 메시지를 읽기 전에 나는 폭포를 나와 내려가는 계단에 앉았다. 시원한 물소리가 귀를 때렸다. 물줄기를 따라 봄이 오고 있는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