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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목포시 지역호감도

아픈 과거와 교훈의 현재, 목포근대역사관


반만년 한반도 역사에서 가장 험난했던 시기는 단연 일제강점기일 것이다. 이 시기에 우리나라는 온갖 학살과 약탈을 자행한 일제의 만행으로 민족성을 박해받았다. 다 서술할 수도 없는 당시의 사건들은 현재까지 한국인들에게 큰 아픔으로 남아 있다. 일본제국주의의 국권침탈로 인해 고통받았던 35년은 한국인이 일본에 가지는 적대감의 근거가 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일제강점기의 아픔은 목포에 고스란히 남아 많은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고 있다.

                    
                

일제 수탈의 주범,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

  • 구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 현 목포근대역사관 2관

구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 현 목포근대역사관 2관

고등학교 시절, 근현대사를 공부하면서 한 번쯤 들어봤을 이름이 동양척식주식회사다. 동양척식주식회사는 일제가 한국의 경제를 효과적으로 착취하기 위해 설립된 국책회사로 일제강점기에 한국 농민을 수탈할 때 가장 큰 역할을 했다. 이들은 한국의 토지를 근대적인 기술로 측량한다는 이유로 조선 팔도의 토지를 탈취하여 일본인에게 나누어주었다. 이 동양척식주식회사는 서울의 본점을 제외하고 전국에 8개 지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목포근대역사관은 동양척식주식회사의 목포지점으로 지어진 건물이었다.
 
한반도 해양 교통의 요지인 목포는 농업 및 수산업이 활발한 곳으로 많은 농산물과 해산물을 얻을 수 있고 일본으로 물자를 운송하는데 유용한 위치에 있었다. 일제는 이러한 이유로 목포에 동양척식주식회사 지점을 세웠으며 이곳은 한국의 물자가 일본으로 건너가는 관문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곳은 8곳의 동양척식주식회사 지점 중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 건물이 보존이 잘 된 이유는 무엇일까?

 

수탈의 본거지에서 역사를 교육하다

  • 아픈 역사를 잊지 않게 하는 목포근대역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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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픈 역사를 잊지 않게 하는 목포근대역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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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역사를 잊지 않게 하는 목포근대역사관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은 일제의 잔재이기 때문에 헐어내야 한다는 의견으로 1999년 철거작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일제강점기 수탈의 상징물이었던 이곳을 통해 아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의견은 대립을 거듭해오다 전라남도 시도기념물 제174호로 지정되면서 근대역사관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현재 남한에 남아있는 동양척식주식회사의 건물은 목포와 부산 두 곳뿐이다. 그리고 목포는 부산보다 큰 규모를 가지고 있으며 1920년에 지어진 르네상스 양식의 2층 건물로 보존가치가 크다. 예전에는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이었고 현재 목포근대역사관이라 불리는 이곳은 일제 수탈의 역사가 담긴 곳이지만 치욕스러운 역사를 잊지 않고 올바른 역사관을 교육받기 위한 장소로 손색이 없는 공간이다. 

 

일제가 만든 건물 속 한국의 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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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도 충분히 들어갈 크기의 대형 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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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도 충분히 들어갈 크기의 대형 금고

목포근대역사관은 1관과 2관으로 나누어져 있다. 목포근대역사관의 2관은 해방 이후 해군 헌병대 건물로 사용되기도 했으며 2006년부터는 대규모 개수 및 보수 공사를 진행하면서 내부의 구조가 많이 바뀌었다. 안쪽에서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강하게 끄는 곳은 1층 계단 옆의 대형 금고다. 대형 금고는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사용하던 것으로, 해군 헌병대가 사용할 때는 범인들을 가두던 유치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사람이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큰 금고다. 얼마나 많은 조선인의 재물이 이곳에 있었을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공간이다. 
 

  • 역사적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는 2층

역사적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는 2층

목포근대역사관 2관의 1층은 주로 개항 이후 목포의 역사를 볼 수 있는 곳이지만 2층은 대한제국과 일제 강점기, 광복의 날에 대한 전시가 이루어져 있다. 이곳은 임산부와 노약자의 관람에 주의를 요한다는 경고문이 있을 만큼 사실적인 내용들이 전시되어 있다. 악랄한 고문이 자행되었던 서대문 형무소를 비롯하여 도산 안창호가 포함된 105인의 재판 사진, 그리고 조선의 식민지화를 주도한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 등 일제강점기의 사진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진다. 
 

  • 구 일본영사관, 현 목포근대역사관 1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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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 일본영사관, 현 목포근대역사관 1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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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일본영사관, 현 목포근대역사관 1관

목포근대역사관 1관은 일본영사관으로 사용되기 위해 만들어진 건물이다. 1900년에 완공된 이 건물은 목포의 근대 건축물 중에 가장 크고 가장 오래되었다. 붉은 벽돌로 정갈하게 지어져 있어 겉으로 보기에는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지만 건물이 담고 있는 역사는 쓰리고 아프다. 1987년 목포항이 열리고 지어지기 시작한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 내내 목포는 물론, 호남지역의 자원 수탈의 중심지였다.
 
실내화로 갈아 신고 들어간 목포근대역사관 1관은 목포의 역사를 알아볼 수 있는 곳에서부터 출발한다. 이곳에서는 다른 항구와는 다르게 고종황제의 칙령으로 개항했던 목포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리고 발전되는 목포와 일제강점기의 목포를 보여주며 아픈 기억을 가진 목포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이곳은 목포근대역사관 2관만큼 먹먹함을 주는 곳은 아니지만 역사 속의 목포, 일제강점기의 모습 등을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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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 윈스턴 처칠

트래블투데이 박선영 취재기자

발행2019년 05월 20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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