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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이순신의 발자취를 따라서


이순신 장군은 '만약 호남이 없었다면 국가가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호남 지방, 그중에서도 여수는 임진왜란 당시 위태로운 나라를 지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곳이다. 거북선을 처음으로 출정시킨 곳이며, 삼도수군통제영의 본영이기도 했다. 이순신의 수군이 옥포, 명량, 한산도 등에서 거둔 승리는 조선이 왜적에게 7년 전쟁에서 승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전남 여수에 남아 있는 이충무공의 발자취를 찾아서 [트래블투데이]와 함께 떠나 보자.

                    
                

전라좌수영의 심장, 진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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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전라좌수영에 속했던 진남관은 현재 국보 제304호로 지정돼 있다. 

현재 진남관의 자리는 본래 충무공 이순신이 전라좌수영의 본영으로 사용하던 곳이다. 먼저 있었던 진해루가 정유재란 때 불타 없어진 뒤, 1599년 삼도수군통제사로 부임한 이시언이 새로 지은 객사다. 이후 진남관은 줄곧 조선 수군의 중심 기지 역할을 했다. 진남관의 역사는 우리나라의 역사만큼이나 순탄치 않았다. 1716년 화재가 발생해 또 한 차례 소실된 것이다. 그 후 1718년 전라좌수사였던 이제면이 다시 지은 것이 지금의 진남관이다. 진남관은 서울 이외의 지역에 현존하는 관아 건물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그리하여 처음 보물로 지정되었다가, 지난 2001년 국보 제304호로 승격되었다. 현재 진남관 안에는 임진왜란과 이순신을 주제로 한 전시관이 마련되어 있다. 옛 전라좌수영의 모습을 복원한 모형이 있는데 현재 모습과 많이 다르기 때문에 지금의 풍경과 비교해보면서 살펴보면 그 재미가 쏠쏠하다. 

 

이순신 장군을 모신 충민사, 국운을 함께한 흥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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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의 충민사는 전국의 이순신 장군을 모신 사당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사진은 충민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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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흥국사의 스님들은 수군에 합류에 나라를 지켜냈다. 사진은 흥국사 전경.

여수에 남아 있는 이순신 장군의 흔적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충민사와 흥국사다. 충민사는 이순신 장군을 모신 사당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통영의 충렬사보다는 5년, 아산의 현충사보다는 103년 먼저 건립된 것으로 알려졌다. 왕명에 의해 건립된 최초의 사액 사당이기도 하다. 충민사가 세워진 것은 충무공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지 3년 후인 1601년의 일이다. 충무공의 공을 여기면서도 끊임없이 그를 견제했던 선조 임금이 직접 명하여 세운 사당이다. 한편, 충민사의 수호사찰인 석천사는 임진왜란 당시 승병 대장이었던 옥형이 충무공을 기리기 위해 세운 초당으로 알려져 있다.

흥국사는 나라의 운명과 함께해 온 절로 이름이 높다. 고려 명종 25년 보조국사 지눌이 창건한 절로, 사찰의 이름인 '흥국'은 '절이 흥하면 나라가 흥하고, 나라가 흥하면 절도 흥한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그 이름에 걸맞게 흥국사는 나라의 운명과 함께 해왔다. 나라가 위기에 빠질 때마다 절 역시 모두 불타 사라졌다가 다시 짓기를 반복했다. 사찰이 불타 없어진 것은 고려 시대 몽골군이 침입했을 때와 조선 시대 임진왜란, 정유재란 때였다. 특히, 임진왜란 당시 승병들의 훈련본부로 사용된 것으로 유명하다. 흥국사에 모였던 400여 명의 승병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전함을 타고 7년여간 전쟁을 함께 치렀다. 그런가 하면 이들은 임진왜란 후에 민심 수습을 위한 복구사업에도 적극 참여했다. 이러한 인연으로 이순신 장군이 친필로 썼다는 흥국사 공북루 현천이 지금까지도 전해오고 있다. 


 

애국충절을 기리는 좌수영대첩비와 눈물의 타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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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수영대첩비를 보러 가는 길. 아치형 다리엔 '좌수영 다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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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나란히 서 있는 좌수영대첩비와 타루비. 

조선 광해군 7년에 세워진 좌수영대첩비는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대첩비다. 1620년에 건립되었으며 비문에는 이순신의 활약상이 대략 적혀 있다. 이 비는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는데, 비석 아래는 거북의 형상이, 머릿돌은 두 마리의 용이 구름에 둘러싸인 채 다투고 있는 형상이다. 뒷면에는 구름무늬와 꽃무늬가 있고 맨 위에는 꽃무늬의 보주가 있다. 충무공의 승첩과 공덕을 기리는 비석이라는 이유로 일제강점기 때 반출되었다가, 1946년 경복궁 근정전 앞뜰에서 발견해 1948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 

좌수영대첩비 옆으로는 '비석을 보면 반드시 눈물을 흘린다'는 뜻을 지닌 '타루비'가 서 있다. 타루비는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후, 그 부하들이 장군의 죽음을 슬퍼하고, 그 공덕을 기리기 위해서 세운 비석으로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 때 좌수영 대첩비와 함께 행방이 묘연해졌는데, 1948년 좌수영 대첩비와 함께 고소대로 옮겨졌다. 처음에는 좌수영 대첩비와 함께 보물 제571호로 일괄 지정되었다가, 유물의 성격과 건립 연대 등에 차이가 있어 1998년 11월 보물 제1288호로 분리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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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대첩비인 좌수영대첩비, 여수 대표 사찰 흥국사가 있는 곳! 이순신 장군의 흔적을 따라 전남 여수시로 떠나 보세요!

트래블투데이 박선영 취재기자

발행2019년 11월 17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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