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코, 여기야!”
공항에서 부르는 일본 이름이 조금 낯설었다. 몇 년 전부터 펜팔을 주고받아 오던 일본인 친구가 드디어 한국 땅을 밟게 된 것이다. 유코는 상기된 표정으로 내 쪽으로 다가왔다. 둥근 얼굴에 긴 머리를 가진 유코는 내 예상처럼 키가 작고,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일본 소녀였다.
“안녕, 미주. 만나고 싶었어. 나는 한국을 많이 좋아해.”
이번 여행을 위해 한국어를 많이 공부했다는 유코가 더듬거리며 인사를 건넸다. 나는 유코를 꼭 안아 주었다.
공항을 떠나 우리 집이 있는 강북 쪽으로 향했다. 한국은 물론이고, 외국에 나와 본 것이 이번이 처음이라는 유코는 많이 긴장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고 보니 마지막 편지에서 ‘한국인들은 일본인을 많이 싫어하지 않느냐’고 물었는데, 그것을 신경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는 유코를 데리고 어디로 가장 먼저 갈까 고민하다가, 유코가 ‘쇼핑을 가장 좋아한다.’고 썼던 것을 기억해냈다. 아무래도 문화재 같은 것들을 먼저 보여주는 것 보다는 즐거운 분위기에서 긴장을 풀어주는 것이 급선무일 것 같았다. 어디가 좋을까 생각하다가, 외국인들이 쇼핑을 위해 많이 찾는 명동을 떠올렸다.
“일본의 하라주쿠 같은 곳이 있는데, 한 번 가 볼래?”
유코는 자신의 친구들도 한국에 왔을 때 명동에 가 보았다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명동의 거리는 여느 때처럼 북적이고 있었다. 유코는 내 팔을 꼭 잡고 걸었다. 친구들과 왔을 때는 몰랐는데, 유코와 함께 걸으며 살펴보니 여기저기서 일본어와 중국어로 말하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유코도 일본어로 말하는 사람들과 일본어로 된 안내판이 적혀 있는 것들을 보고 신기한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옷이나 화장품들을 사며 명동을 활보하는 동안, 유코의 긴장도 많이 풀린 것 같았다.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유코는 명동 거리에서 느껴지는 젊음이 마음에 쏙 든 모양이었다. 호객인들 몇이 유코가 일본인인 것을 알아채고 다가와 말을 걸자 웃는 얼굴로 대답을 하기도 했다. 중국어로 말을 걸었다가도, 유코가 입을 열자마자 일본어로 다시 말을 걸었다. 우연히도 우리가 들어간 음식점의 종업원도 일본인이기에, 이제 유코는 자신감을 조금 되찾은 것 같았다.
정말 외국인들이 많이 오긴 하는 모양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유코가 웃으며 말을 꺼냈다.
“미주, 여기 사람들은 모두 친절한 것 같아. 나는 한국에 오면 한국어만 써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여기 사람들은 일본어도 잘해. 신기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해.”
일본어와 한국어가 반쯤 섞인 유코의 말을 듣고, 나도 조금 뿌듯해졌다. 예전에 중국으로 여행을 갔을 때, 한국인과 한국어로 쓰인 호객 문구들을 보고 반가웠던 것과 같은 기분일까. 낯선 땅에 와서 혹시나 길을 잃거나 사기를 당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많았는데, 한국인들이 많이 다녀가는 곳이다 보니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중국 상인들도 많았고, 모두 한국인을 친절하게 대해줘서 정말 고마웠던 기억이 났다. 전에는 느끼지 못했었는데, 외국인 관광객들을 가장 많이 배려하는 곳이 바로 명동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명동의 필수 코스, 회오리감자와 노점상 식혜까지 먹은 뒤 숨을 좀 고를 겸 번화가를 벗어나 명동성당으로 향했다. 해가 넘어갈 무렵이라, 명동성당의 멋진 야경을 보여주기에 딱 좋은 시간이었다. 유코는 성당의 규모에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건물을 한 바퀴 둘러보고 있자니 여기저기서 아름다운 조명이 켜지기 시작했다.
그 때, 유코가 저 멀리서 한 무리의 불빛이 일렁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봉헌초였다. 유코와 나도 촛불을 하나씩 켜 보았다.
“한국의 밤은 정말 아름다운 것 같아.”
초를 밝히고 돌아서는데, 이번에는 건물 너머로 남산타워가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것들을 보여줄 수 있어 다행이었다. 내가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유코가 먼저 벤치에 걸터앉아 남산타워를 올려다보았다. 미소를 띠고 있는 유코의 옆얼굴을 보며, 나도 따라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