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가을바람이 옷깃을 스치는 가을이건만 남자는 한여름처럼 땀을 뻘뻘 흘렸다. 너무 오래 걸어온 탓일까 걷는 것도 사는 것도 힘에 부치다고 느껴지는 하루였다. 남자의 머릿속엔 오직 하나.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남자에게 유일한 피붙이라고는 남동생 하나였다. 동생을 공부시키기 위해 어릴 때부터 안해본거라곤 결혼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형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자의 동생은 남자의 구속이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더욱 엇나가기 일쑤였다. 남자의 동생은 12살 무렵 소년원에 들어갔다 나온 전적이 있다. 남자는 그런 동생을 때려도 보고 협박도 하고 회유도 해보았지만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남자는 그저 동생이 눈앞에 있는 것만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남자의 직업은 정원관리사였다. 말이 좋아서 정원관리사였지 남의 집에서 청소, 빨래 등의 허드렛일과 함께 곁다리로 정원까지 관리하는 사람이었다. 집주인은 남자의 일하는 방식과 일처리의 결과에 만족하였다. 청소를 하라고 하면 청소를 하였고 정원관리를 하라면 정원관리를 했다.
“내가 이래서 자네를 믿어. 청소를 하라면 하면 그만이고 빨래를 하라고 하면 빨래를 하는 게 그게 어려운가? 지금까지의 사람들은 그게 참 안됐는데. 자네만 된단 말이지. 암. 그래서 좋아.”
남자는 집주인 남자의 말에 달리 어떤 대꾸를 해야 할지 몰라 정원을 정리하다 떨어진 나뭇잎들만 쓸어 모았다. 집주인의 말을 보면 남자는 지극히 단순한 일차원적인 일을 하였다. 명령이 떨어지면 그 명령대로 수행했다. 컴퓨터에 0이라는 숫자를 입력하면 0의 결과값을 나타내는 식이었다. 말하자면 집주인은 남자의 노예근성이 마음에 든 것이다.
남자는 처음 이 집에서 정원관리사로 일할 때 월급의 반을 줄이는 대신 남자의 동생과 함께 지낼 방 하나만 비워달라는 것이었다. 집주인은 그러마했으나 실제로 남자의 동생이 집에 들어온 것은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주인은 남자의 월급의 반을 올려주지 않았다. 남자가 달리 이야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주인은 달에 한번 남자를 곤욕스럽게 했다. 밤늦게 친구들을 데려오는 것이었다. 그럴 때면 남자는 조용히 집을 나온다. 하룻밤을 떠돌아 다녀야했다. 남자의 방에서 보란 듯이 자신의 친구들을 재우고 밤새도록 술을 퍼마셨다. 남자는 그래도 아무런 말대꾸를 하지 않았다. 방을 우리에게 내어준 전제로 월급의 반을 깎지 않았냐고 한번은 따져물을 법도 하건만 남자는 그러지 못했다. 남자의 동생이 언제 들어올지 몰랐기 때문이다.
남자에게서 동생의 전화가 왔다. 받아보았더니 경찰서로 와달란 전화였다. 동생이 또 무슨 짓을 저지른 모양이다. 그저 그 죄질이 가볍기를. 오늘 안으로 합의해서 나올 수 있기를 이러한 말만 수없이 되뇌며 도착한 경찰서 안은 공간이 주는 압박만큼이나 무거웠다. 남자는 분위기만으로도 동생의 죄질이 가볍지 않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동생이 이번에는 살인을 저질렀다는 말을 담당 형사로부터 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방화가 일어난 곳에 남자의 동생과 그 무리들이 있었는데 남자의 동생이 그동안 저질러온 전적이 화려하여 피의자로 추정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남자는 형사에게 달리 할 말이 없었다. 형사도 그런 남자에게 달리 해줄 말이 없었다. 그저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불리한 진술에 거부할 수 있다는 말뿐이었다.
남자는 동생을 바라보았고 동생은 고개를 숙였다. 남자는 한숨을 쉬며 형사에게 물었다.
“만약 지금 들어간다면 언제 나올 수 있나요?”
형사는 적잖이 놀란 눈치로 아직 혐의가 인정된 것이 아니고 범인이라고 자백한 상태도 아니기 때문에 형이 얼마나 될지는 모른다고 했다.
형사의 말에 개의치 않은 남자는 한 번 더 물었다.
“죄질이 무거운 만큼 오래 있다 나오게 되겠지요? 그렇담. 저는 이제 좀 쉬어도 되는 건가요?”
형사는 남자가 꽤나 충격을 받아서 실언을 하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물 한잔을 권했다.
남자는 식은땀을 흘리며 그저 한가로이 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 예쁘게 꾸며놓은 정원을 바라보며 한가로이 산책을 하는 것. 남자는 집주인을 떠올렸다.
아직까지 남자가 들어오지 않은 것을 알면 집주인이 화를 낼 것이 분명했다. 남자는 형사에게 집에 좀 다녀오겠다고 했다. 언제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지 않은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