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옛날, 동해안 바닷가 마을에 효은이라는 처녀가 살았다. 그녀는 양반집 규수로 일찍 어미를 잃고 홀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성품이 곱고 어질어 집안 노비들에게도 친절하게 대하니 남녀 가릴 것 없이 마을 사람들 모두가 그녀를 예뻐했다.
그러던 어느 날, 효은의 아버지가 옆 마을 아름다운 처자와 결혼을 하였다. 효은의 계모는 성질이 사납고 야박하여 베풀 줄 모르는 욕심쟁이였다. 아버지는 계모의 꼬임에 빠져 밤낮 가리지 않고 술을 마셨고, 계모는 몸치장에 혈안이 되어 가산을 탕진하였다.
몇 년 후, 아버지가 죽자 계모는 집안의 노비들을 팔아넘기고, 효은에게 노비의 옷을 입혀 밤낮으로 집안일을 시켰다. 마음씨가 고운 효은은 군말 없이 집을 청소하고 밥을 해다 바쳤다. 효은은 알뜰하여 어떤 물건도 허투루 버리지 않았다. 모든 가재도구를 아끼고, 늘 닳아 해질 때까지 사용했다.
하루는 효은이 낡은 빗자루로 마당을 쓸다가 가시에 엄지손가락을 찔렸다.
“이런, 빗자루가 못 쓰게 되었구나.”
하얀 손가락에서 떨어진 피는 마당과 빗자루 위에 뚝뚝 떨어졌다. 피가 묻은 물건을 써서는 안 된다는 미신에 따라 효은은 빗자루를 빈 곳간에 넣었다.
오래된 물건에 사람의 피가 묻으면 괴기한 일이 생기는 법. 밤이 되자, 피가 묻은 빗자루에 푸른빛이 돌더니 도깨비로 변하였다. 그곳에는 이미 여러 도깨비가 살고 있었다.
“당신들은 어디서 왔소?”
빗자루 도깨비가 물으니 도깨비들 저마다 자신을 소개했다.
“나는 아씨가 고운 손 얼어가며 개울에서 빨래할 때 쓰던 방망이요.”
“나는 아씨가 아픈 팔 부여잡고 떡을 칠 때 쓰던 절굿공이요.”
“나는 아궁이 옆에 놓여 아씨 발 등에 불 떨어질까 걱정하던 부지깽이요.”
“나는 아씨의 고운 머리 빗어주던 얼레빗이라오.”
모두 효은의 피가 묻은 물건들이 도깨비로 변한 것이었다. 도깨비들은 저마다 사정이 달랐지만 착한 효은을 걱정하는 마음만은 똑같았다.
“좋소. 오늘부터 우리가 아씨를 도웁시다.”
도깨비들은 밤새 질통에 물을 길어놓고, 깨끗이 집안을 쓸고 닦았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지?”
아침이 되자 효은은 깨끗해진 집안을 둘러보며 어리둥절했다. 도깨비들의 선행은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사흘에 한 번꼴로 산 짐승을 잡아다 놓았으며, 밤중에도 아궁이에 불이 꺼지지 않도록 했다. 풍족해진 밥상에 계모가 웬 횡재냐 물었으나, 효은 역시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집은 활기를 되찾았고, 효은의 표정은 나날이 밝아져만 갔다.
“아씨의 표정이 밝아진 것 같아 다행이오. 하지만 손끝에 물 마를 날 없으니 전처럼 모습이 곱지는 않소.”
어느 날, 도깨비들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다가 효은의 방 문 앞에 비단옷과 노리개를 가져다 놓았다. 아침이 되자 효은은 문 앞에 놓인 옷을 보고 감탄하였다.
“곱기도 곱다. 이렇게 빛깔이 고운 옷은 난생처음 보는구나.”
옷을 입은 효은의 모습은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았다. 그 모습을 본 계모가 시기하며 달려왔다.
“요망한 계집. 어디서 이런 물건을 훔친 게냐. 자고 나면 손 쓸 것 없이 온 집안이 깨끗해지고, 먹을 걱정 안 해도 풍족하니. 이제 집안에 너는 필요 없다.”
계모는 옷을 찢고 효은을 동구 밖으로 내쫓았다. 마을에서 쫓겨난 효은은 오갈 데 없어 헤매다 바다에 몸을 던졌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도깨비들은 화가 나 밤마다 심술을 부렸다. 황소를 지붕 위에 올려놓고, 솥뚜껑을 솥 속에 넣어 두었다. 개똥을 퍼다 마당에 쌓아놓고, 질통의 물을 전부 마셔버렸다. 그러자 계모는 기겁하여 집을 두고 줄행랑치다 효은이 죽은 절벽에서 발을 헛디뎌 목숨을 잃었다.
계모가 죽고 나서도 도깨비들의 화는 가라앉지 않았다. 밤이 되면 우물물을 마르게 하고, 파도를 높게 했다. 마을의 쌀을 훔쳐 산에다 버리고, 말려놓은 물고기나 궤를 훔쳐갔다. 그리하여 마을 사람들은 도깨비들의 화를 가라앉히기 위해 도깨비 고사를 지내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자 도깨비 고사는 별신굿이라는 풍어제로 발전했고, 지금도 동해에서는 이 제사를 지내는 곳이 남아있다.